상반기 한국영화에는 그다지 큰 관심을 끄는 작품이 없었다. 영화들이 안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기대작’이라는 타이틀을 붙일 정도로 세간의 관심을 끈 작품이 없었다. 그래서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제작부터 주목을 받았다. 천 만 감독 이준익 감독의 신작사극이라는 점과 함께 황정민, 차승원, 백성현 등의 출연에도 기대가 컸다. 게다가 박흥용 화백의 작품을 원작으로 했다는 점도 이 영화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임진왜란의 기운이 감도는 조선은 그보다 더 큰 문제인 당파싸움으로 혼란스럽다. 왜구를 막고자 만들어진 ‘대동계’도 당파싸움의 희생양으로 해체되고 만다. ‘대동계’의 일원이었던 이몽학(차승원)은 썩어빠진 정치를 뒤엎고자 다시 ‘대동계’를 규합해 조정을 압박한다. 한 때 ‘대동계’에 몸담았던 맹인 무사 황정학(황정민)은 이러한 이몽학의 반란에 제동을 건다. 그리고 여기에 이몽학에 의해 죽임을 당한 세도가 한신균의 서자 견자(백성현)가 등장한다. 견자는 이몽학을 향한 복수의 칼을 가는 동시에 그의 여자인 백지(한지혜)에게 연정을 품는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난을 일으킨 이몽학은 끝내 한양까지 입성하지만, 그곳에선 뜻밖의 결과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박흥용 화백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한신균의 서자인 견자가 주인공이다. 신분 차별에 대한 설움을 갖고 있던 견자가 험한 세상 속에서 성장해가는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원작에서는 황정학, 이몽학의 대립 관계가 그렇게 뚜렷하지 않다. 하지만 영화로 만들어진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견자를 화자로 활용하면서도 세 남자의 관계를 확장해 대치시킨다. 왜구로부터 조선을 지키고자 했던 ‘대동계’의 일원인 황정학과 이몽학은 점차 다른 욕망을 드러내며 서로에게 칼을 겨누고, 이몽학에 대한 복수만을 꿈꾸며 살아온 견자 역시 조금씩 성장해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영화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황정학과 이몽학의 대립 관계다. 두 사람은 왜구로부터 나라를 구하려는 ‘대동계’를 통해 뜻을 모았지만, 점차 엇갈린 노선을 걷게 된다. 맹인 무사 황정학은 끝까지 나라의 안위를 우선하는 ‘대동계’를 주장하지만, 이몽학은 썩어빠진 정치에 분개하며 나라를 뒤엎고 새로운 왕이 되려는 야망을 키운다. 아쉬운 점은 두 사람의 대의가 부딪히는 미묘한 지점이 없다는 거다. 황정학은 ‘구국’이라는 그럴싸한 대의라도 갖고 있지만, 이몽학은 왕이 되겠다는 개인적인 야망만 부각되면서 결국 선과 악이라는 단순한 대결 구도로 점철된다. 또한 이몽학에 대한 복수를 키우는 견자나 견자의 사랑을 받으면서 이몽학을 사랑하는 백지도 캐릭터로서 명확한 색깔을 드러내지 못한다.
하지만 이준익 감독의 사극답게 당시의 정치, 사회에 대한 풍자는 현대의 그것들과 중첩되며 야릇한 쾌감을 준다. 사소한 것까지도 서인과 동인으로 나뉘어 으르렁거리는 모습은 현대의 정치판과 비교돼 웃음을 주고, 신분 차별에 대한 분노와 민중 봉기에 대한 긴장은 나름의 카타르시스도 전한다. 또, 김창완부터 송영창, 정규수, 신정근, 류승룡, 김보연, 김상호 등 여러 연기파 조연들을 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인물들에 시선이 가는 영화다. 해학적인 맹인 무사를 연기한 황정민의 연기가 든든하게 영화의 중심을 잡아주지만, 대의에서 시작해 단순한 악인으로 돌아선 차승원이나 미숙한 소년이라는 설정으로 소리만 질러대는 백성현은 캐릭터적인 매력이 없다. 또한 여성 캐릭터를 잘 그려내지 못하는 이준익 감독답게 한지혜의 포지션도 애매하다. 하지만 고속촬영에서도 어설픈 티가 나지 않는 검술 장면이나 풍자적으로 그려진 정치적 상황, 웃음을 자아내는 황정민의 애드리브는 영화의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
2010년 4월 26일 월요일 |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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