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기회로 <정글 스토리>, <장미빛 인생>등을 만든 김홍준 감독님과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요즘은 영화 보다 부천 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더욱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감독님은 지치긴 했지만 영화 일을 한다는 것 자체로도 상당히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처음 영화제에 준비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어느 순간 텔레비전 영화 소개 방송에 대한 이야기로 주제가 옮겨갔다.
성렬 : 요즘 텔레비전에서 하는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보고 나서 극장에 가면, 내가 영화를 보고 있는 건지 아니면 드라마 재방송을 보고 있는지 헷갈릴 때가 많아요
김홍준 감독님(이하 감독) : 그래요 그거 문제야. 영화를 보고싶게 끔 만드는 게 아니라 100분짜리 영화를 5분만에 다 정리해서 다이제스트 해 버리니까... 영화를 보지 않아도 내용을 다 알게 되니까 영화를 보기가 싫어지게 되지
감독 : 예전에 내가 <서편제>를 임권택 감독님이랑 할 때는 이런 일도 있었어. 영화를 노출 시켜야 하니까 필름을 베타로 하나 마련해서 방송국에 개봉하기도 전에 보냈다는 거야. 극장에서 개봉도 하기 전에 방송국 PD라는 작자들이 VHS테이프를 하나씩 가지고 다니는데,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얼마나 화가 나던지...
성렬 : 아무래도 잘못된 관행이 영화를 좀먹게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임시 방편으로는 영화를 많은 이들에게 알린다는 점에서 유효하겠지만 자꾸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결과적으로 영화를 망치게 되지 않을까 싶거든요.
감독 : 그렇지. 이젠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식스센스> 같은 영화 소개하면서 "○○○가 유령이래요" 혹은 <유주얼 서스펙트>같은 영화 소개하면서 "○○○가 범인이랍디다" 같은건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성렬 : 어떤 분들은 텔레비전에서 소개해 주는 거 보고 자기가 마치 영화를 본 줄 알고 "그 영화 봤어" 했다는 경우도 있었어요. 디테일하게는 아니지만, 영화 한편을 통으로 다 알려주니까 마치 본 것처럼 착각을 하신 거죠.
감독 : 근데 문제는 그런 점에 대해 영화를 다룬다는 저널들이 함구 한다는 거야. 따지고 들면 영화 소개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저널에 속하는데, 그들이 앞장서서 그 짓거리를 하고 있으니 원... 할말이 없지.
필자는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보지 않겠다 라고 나름대로의 철칙을 만들어 준수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나 하나가 그런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 프로그램이 바뀔까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깝고 속상해진다. 영화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이런 프로그램으로 피해를 호소하고 있지만, 어떠한 대책도 세워지지 않고 뒤로만 투덜거리고 있는 실정이다. 텔레비전이라는 매체가 그렇게 대단한 것이었단 말인가?
감히 한마디 하자면, 영화를 소개하고 알려주는 것은 좋지만 부디 그 선을 적당히 해서 영화를 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폐를 끼치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 영화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은 그 정보가 영화를 보는데 도움이 되는지 혹은 방해가 되는지 한번만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단세포가 아닌 이상 <디 아더스>같은 영화의 비밀을 알려 주었을 때 얼마나 심각하게 영화에 대해 아쉬워할 지에 대해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