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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승화를 응시하는 사려 깊은 시선 (오락성 7 작품성 8)
햄넷 | 2026년 3월 3일 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감독: 클로이 자오
배우: 제시 버클리, 폴 메스칼, 에밀리 왓슨, 조 알윈, 보디 레이 브레스낙, 자코비 주프, 올리비아 라인스
장르: 드라마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시간: 125분
개봉: 2월 25일

간단평
숲의 치유력을 믿는 야생적 자연주의자 ‘아녜스’(제시 버클리)와 아버지의 빚 때문에 원하지 않는 라틴어 가정교사가 된 청년 ‘윌리엄 셰익스피어’(폴 메스칼). 신분과 환경의 차이를 넘어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감행한다. 세 자녀와 함께 일궈낸 행복도 잠시, 이들 가족에게 거대한 상실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노매드랜드>(2020)로 유랑하는 삶의 심연을 응시하며 아카데미를 사로잡았던 클로이 자오 감독이 다시 '제 옷'을 입고 돌아왔다. 마블 <이터널스>(2021)에서 히어로물의 문법을 넘어 존재론적 질문을 던졌던 그녀는, 매기 오패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햄넷>을 통해 특유의 사색적이고 관조적인 시선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영화는 대문호 셰익스피어라는 거대한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아내 ‘아녜스’를 역사의 전면으로 불러낸다.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삶을 주도해 나가는 강인한 여성의 내면을 응시하는 감독의 카메라는 집요하면서도 사려 깊다.

이 영화의 진정한 가치는 부부의 비극을 다루는 방식에 있다. 흔한 부부싸움이나 감정적 격돌로 갈등을 전시하는 대신, 영화는 상실 이후 찾아오는 지독한 고독과 회한을 정적으로 응시한다. 쌍둥이 중 아들 ‘햄넷’(자코피 주프)을 잃은 후, 손에 잡힐 듯 만져지는 부부의 깊은 슬픔은 객석에 고스란히 전이되어 먹먹함을 안긴다. 죽음을 지키지 못한 아버지의 자책이 불멸의 비극 ‘햄릿’으로 이어지는 과정의 중개에 집중했다면, 이 영화는 자칫 평범한 ‘걸작 탄생기’에 머물렀을 터. 클로이 자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영화는 직접적인 언어 대신 '무대'라는 매개체를 통해 화해와 치유의 역사를 써 내려간다. 켜켜이 쌓아온 슬픔을 ‘햄릿’의 공연 장면에서 조용히 폭발시키는 연출은 단연 <햄넷>의 정점이다. 아내 아녜스가 남편의 연극을 마주하며 비극 속에서 아들의 숨결을 발견하고, 예술을 통해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과정은 말이 필요 없는 승화의 장이다. 이때 아녜스로 분한 제시 버클리의 연기는 가히 독보적이다. 언어를 넘어 온몸으로 뿜어내는 그녀의 에너지는 관객의 심금을 흔들기에 충분하며, 그녀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빛나는 성취라 할 만하다. 미술과 영상 면에서도 충분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감독이 고수하는 자연광으로 빚어낸 16세기의 자연과 시대상은 이 영화의 서사와도 완벽하게 맞물린다. 무엇보다 셰익스피어의 아내라는 역사 속의 여백을 채우며 주체적인 여성상을 제시함과 동시에, 예술이 인간의 비극을 어떻게 구원하는지를 아름답게 증명해 낸 작품이다.



2026년 3월 3일 화요일 | 글 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셰익스피어의 아내를 조명한 새로운 시선 + 관람 후 ‘햄릿’과 셰익스피어 일대기를 뒤적이게 될 지도
-영화의 전개나 배경 설명이 썩 친절하지는 않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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