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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늙음으로, 죽음으로 가고 있다 <욕창>
2020년 11월 6일 금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감독 : 심혜정
출연 : 김종구, 강애심, 전국향



공무원을 정년 퇴직한 아버지(김종구)가 돌연 결혼을 선언한다. 상대는 몇 년 째 병상에 누워있는 아내(전국향)를 돌봐온 이주노동자 입주간병인(강애심)이다. 장성해 출가한 자식들은 아버지의 파격적인 선언에 혼란스럽다. 하지만 자기 연금으로 간병비를 대는 아버지에게 시비를 따지자고 달려들거나, 고된 육체노동을 성실히 수행하는 입주간병인을 내치는 행동은 차마 할 수 없다. 그 누구도 등에 욕창이 생기기 시작한 어머니를 도맡아 돌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상황의 힘을 업은 아버지의 뜻은 꽤 완고하다. 영화 <욕창>이 보여주는 한 가족의 문제는 인간이라면 필연적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누군가의 늙음과 죽음, 그리고 삶에 얽힌 공교로운 이야기다.

심혜정 감독은 30분간의 다큐멘터리 <아라비아인과 낙타>(2013)에서 비슷한 소재를 다뤘다. 12년째 병상에 누워있는 엄마를 돌보는 중국 이주민 아주머니와 한국 선주민인 자신의 미묘한 관계를 들여다봤다. “엄마 집이 아주머니 집처럼 변하는 게 편치 않았다”던 감독 자신의 감정과 터부에 집중했던 이야기는 <욕창>이라는 극영화의 틀 안에서 보다 확장한다. 겉보기에는 멀쩡하지만 제 손으로는 밥도 빨래도 하지 못하는 장년 남성인 아버지, 활기차게 일하지만 알고 보면 만료된 비자 문제로 마음 졸이고 있는 중년의 이주노동자 여성인 입주간병인 아주머니, 그들과 한 발짝 떨어진 공간에서 개입과 외면 사이의 불편한 줄타기를 하는 젊은 자식들의 입장이 고루 전개된다.

영화는 모든 인물의 도덕적 흠결을 조금씩 들춰낸다. 아버지는 병든 아내를 두고 입주간병인과의 새로운 결혼을 떠올린다. 결혼으로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얻은 입주간병인이 계속해서 아내를 돌보고 집에 머물러 주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죽어가는 아내와 달리 늘 생기가 가득한 입주간병인의 활동력에 마음이 동하기도 한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아내를 빈집에 홀로 남겨두고 입주간병인의 외출 길을 몰래 따라나설 정도다. 그런데 어떤 언쟁 끝에는, 그토록 관심을 뒀던 입주간병인의 뺨을 갈긴다. 가부장의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을 답습하는 도무지 정이 가지 않는 모습이다.


주변 인물도 크고 작은 못난 모습을 드러내기는 마찬가지다. 불법 체류 상태로 일하는 입주간병인은 생존비를 벌기 위해 매순간 ‘을’의 자세를 견지하지만, 휴일이면 병상에 누워 움직이지 못하는 안주인의 옷가지를 허락 없이 몸에 걸치고 외출한다. 종종 집에 들르는 딸(김도영)은 돌아가는 상황을 뻔히 알고 있지만 신경질만 잔뜩 내고 돌아갈 뿐,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는 않는다. 자신에게 돌아올 모든 종류의 책임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큰아들(김재록)과 미국에 체류하는 작은 아들은 아예 이 모든 상황에서 발을 뺐다. 큰아들의 아내(권미아)이자 집안의 며느리가 종종 이런저런 눈치를 살피지만, 대부분은 남보다 못한 관망자들이다.

등장인물의 치부가 속속 드러나는 동안 역설적으로 관객은 그들의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다. 어머니의 긴 투병 생활로 불거지는 여러 문제를 직접 겪어본 심혜정 감독이 영화 속 인물에 대한 온정과 공감의 시선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에게도 곧 들이닥칠 것만 같은 죽음이 못내 두려워 반려자를 뒤로하고 삶의 생기를 좇으려는 아버지, 법의 허용과는 상관없이 더 나은 삶을 끝없이 갈구하는 입주간병인, 제 인생 치다꺼리에 부쳐 이런저런 핑계를 찾아 부모를 외면하는 자식들. 이들의 얼굴에서 우리의 숨겨진 욕망을 찾아내는 일은 어렵지 않다. 늙음과 죽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 하는 삶의 가운데에 버티고 서있는 이들의 삶이 왜 그토록 실망스러운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지 관객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영화의 가장 큰 사건은 말미에 등장한다. 입주간병인은 경찰당국에 연행되고 노부부만 남은 집에는 화재가 발생한다. 관객에게는 예상치 못한 마무리다. 불법 체류 중인 입주간병인을 신고한 건 누구일까. 관객은 아무런 답도 얻을 수 없다. 화재로 뿌연 연기가 가득한 채 결말을 맞는 노부부와 자식들의 삶은 어떻게 될까. 더 이상의 장면을 넣지는 않았지만, 심혜정 감독은 “앞으로는 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욕창>은 자기 위치에서 꼼짝하지 못하기 때문에 썩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불안함을 말하는 영화이고, 오랫동안 굳어 딱딱해진 가족 사이의 얽힘도 쉽게 재배치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 숨 쉬는 동안, 그들의 고민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욕창>과 만나는 순간 그 고민은 우리에게 와닿는다. 관객 모두가 늙음으로, 죽음으로 가고 있는 공동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자기 손으로 밥 한 숟가락 떠먹지 못할 정도로 병든 뒤에도 목숨만큼은 끊어지지 않았을 때, 내 어머니와 아버지와 나 자신이 그러한 상황에 놓여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 누구도 이런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점이다. 제26회 브졸국제아시아영화제에서 심사위원 우수상, 이날코 심사위원상 2관왕에 오른 작품이다.


이 기사는 영문으로 번역돼 영화진흥위원회가 발간하는 영문 잡지 '코리안 시네마 투데이' 부산국제영화제호(Vol.37) 실렸습니다.

2020년 11월 6일 금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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