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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일은 최면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무사 | 2001년 8월 31일 금요일 | 허리케인 박 이메일

명보극장에서 <무사> 시사회를 보고 후여후여 한강을 건너다보니 한강을 가로지르는 10억짜리 가교를 지어 영화의 피날레를 멋지게 장식하겠다던 영화가 생각난다. 인조반정을 소재로 한 영화 <청풍명월> 이었지 아마.... 얼마 전 충무로 전철역에선 <싸울아비> 시나리오 각색작업에 참여했던 작가를 잠깐 만났었고, 그러고보니 <비천무>부터 시작해 <무사> <청풍명월>, <싸울아비> 등 칼싸움 영화의 대부분의 시나리오를 읽어봤다. 영화로 만들 때 어떤 부분이 얼마나 바뀔지 모르지만 나름대로 독특한 재미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만은 틀림 없다.

수많은 욕을 먹으면서도 흥행에 성공한 <비천무>가 개봉한지 1년이 넘었다. <비천무>가 산천을 떠돌던 고려 유민의 아들 진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과 <무사>가 고려 무사의 혼을 다룬다는 것은 산술적으로 비교된다. 똑같이 중국에서 촬영했고 톱스타를 전면에 배치한 점도 수학 공식처럼 똑같다. 둘 다 스케일을 강조했고 제작비를 자랑한 것도 닮아있다. 찬사와 질타로 갈리는 관객의 반응도 엇비슷하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비천무 2'나 '업그레이드 비천무'로 부르기에 주저주저하는 것은 그나마 남아있는 미덕이 있기 때문이다.

<파이란>이 한국영화의 깊이를 더했다면 <무사>는 한국영화의 폭을 넓혀주기를 기대했다. 적어도 스케일만은 남다르기를 바랬다. 스토리가 빈약하다, 드라마가 약하다 등의 비판을 묻어버릴 수 있을 만큼. <브레이브 하트> 같이 잔인하고 작나라한 전투장면이나 <글래디에이터>같은 웅장하고 아름다운 그것을 바랬던 것은 애초 무리였는지, 영화는 2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내내 그 스케일을 낭비한다는 느낌을 준다. 드넓은 사막, 거친 모래람을 뚫고 달려가는 50여 필의 말은 너무 초라하고 드넓은 초원에 그려지는 전투장면은 차라리 안쓰럽기까지 했다. 한번도 줌아웃을 쓰지 못하는 촬영이 그랬고 지평선이 보이는 광활한 대지에 서있는 4동의 원군 파오가 그랬다. 아무리 한국 영화 최고의 스케일이라 최면을 걸어도 대륙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이 영화가 예상만큼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면, 가장 큰 이유는 캐릭터에 있을 것이다. 캐릭터가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해가는지, 그 캐릭터가 환경을 어떻게 변화시켜 가는지를 웅장한 화면과 피튀기는 칼싸움, 거기에 친절한 해설까지 더해주면서 보여주기는 하지만 154분을 끌고 가기에는 무리다. 연기자나 연기력이 아니라 캐릭터를 말하는 것이다. 도식적이고 기계적이고 평면적인 인물에게 빨려들 만큼 관객의 수준이 낮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저기서 멋들어지게 창을 돌리는 사람이 노비 여솔로 보이지 않고 미끈한 정우성으로만 보이니 말이다.

엉성한 드라마와 갈등구조, 어설픈 '후까시'는 전투장면에서 가졌던 긴장감을 이완시킨다. 정우성, 장쯔이, 주진모가 펼치는 삼각러브로멘스는 영화 갈등의 중심이자 딜레마이기도 하다. "우린 삼각관계야, 잘 모르겠어? 한 번 더 보여주지!" 애정과 증오와 연민, 질투를 나타내는 표정은 너무나 연극적이고 TV드라마 적이다. 조연들의 훌륭한 연기는 오히려 빛을 발해 연기자들이란 어떤 것인가 보여주는 듯 하다. 정우성은 시종일관 우성스럽고(우성스럽다 : 잘생긴 사람이 말수도 별로 없으면서 한번 입을 열면 멋있는 대사를 날리며 어디가도 주인공 티가 팍팍 나기도 하지만 아웃사이더로 있을 때 더 화려해 보이는 것) 장쯔이는 공주스럽고 주진모는 장군스럽다. 그들의 연기는 그 틀 안에서 갇혀있을 뿐이다.

<무사>는 분명 나같은 허접한 글쟁이한테 욕을 얻어먹을 만큼 못난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스스로 "한국 영화의 불패 신화를 끌고가야 할 후반기 기대작"으로 자부한 만큼의 책임은 져야 한다. 한 영화에 기대를 건다는 것은 관객 개인의 선택일지 몰라도 그 선택 동기를 부여하는 것에까지 영화가 비껴갈 수는 없다. 일정정도의 규모와 어느정도의 액션과 그만큼에 걸맞는 이야기, 또 그것을 이끌어가는 톱스타들이 포진해 있는 <무사>, 하지만 그 정도로는 영화가 너무 길다. 2시간이 넘는 영화가 갖추어야 할 덕목 중에서 가장 중요한 무언가가 하나 빠진듯한, 그래서 못내 아쉬운 생각이 드는 영화였다.

5 )
ejin4rang
스케일이 크다   
2008-10-16 17:08
rudesunny
너무 너무 기대됩니다.   
2008-01-21 16:13
kangwondo77
스케일은 최면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2007-04-27 15:33
ldk209
그래도 지금 보면, 한국 무협 액션 중 가장 잘 만든 영화...   
2007-01-31 09:50
ldk209
무사? 별로 사고 싶지 않은데....   
2007-01-29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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