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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드림’을 꿈꾸며...
북경 자전거 | 2001년 10월 18일 목요일 | 박우진 이메일

얼마 전 중국에서 한국으로 밀입국하려는 사람들의 참담한 현실이 보도되었다. 그들은 음식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할 뿐 아니라, 밀폐된 공간에서 질식사의 위험을 겪어내고, 선원들에게 폭행 당하는 등, 갖은 고초를 겪으며 한국까지 흘러들어 온다고 한다. 물론 무사히 도착했다고 평탄한 삶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한꺼번에 25명이나 물귀신이 되고서야 쉬쉬하던 이 모든 사실이 까발려졌다는 현실 또한 이제껏 인권을 유린당하던 그들에게는 통탄할 노릇일 게다. 하기야 정작 번지르르한 미국이 그 기름진 배때기에 테러를 당하고, 콧대 높은 한 이슬람 테러 용의자와 숨바꼭질하느라 아프간을 연일 펑펑 터뜨려 쑤석대고 있는 요즘, 누추한 중국인들의 인권따위에 관심 기울일 여력이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느냐마는.

우리 나라에 ‘아메리칸 드림’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드넓은 개척의 땅 아메리카에 당도하면 누구나 땀방울만큼 수확을 거두고, 자손 만대 평화롭게 떵떵거리며 살 줄 알았더랬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의 ‘아메리칸 드림’은 중국의 ‘코리안 드림’처럼 허황한 희망으로 탈출하고 싶었던 남루한 삶의 험난하고 까끌한 국면에 새삼 살갗을 부대끼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그 ‘드림’류에 성공한 사람들은 어쩌면 그저 발 밑에 든든한 뿌리 하나를 내리는 것으로 만족하는 법을 체득한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 규모는 좀 작더라도 ‘자식 낳으면 서울 보내’는 풍습 아닌 풍습도 이런 ‘드림’의 맥락에 닿아있다. 인간은 아무래도 미지의 공간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어두는 법이니까.

중국이 자본주의 경제 논리에 눈을 뜨면서, 중국의 젊은이들 또한 북경으로 모여들고 있다. [북경자전거]의 주인공 격인 구웨이나, 그가 도시 처녀로 오인하고 훔쳐보는 파출부 아가씨가 ‘북경 드림’을 대표한다. 그들은 이방인도 토박이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서. 같은 민족이지만 ‘도시인’에게 착취당하고 이용당한다. 단지 내 힘으로 잘 살아보겠다는 순박한 의지 하나로 극복하기엔 도시의 간교함과 영악함은 도무지 버겁다. 구웨이의 희망으로 집약되는 자전거 하나조차도 온전히 그의 것이 되지 못한다. 그에게는 생활 수단인 자전거가 북경에 사는 고등학생들에게는 한낱 향락과 유희의 대상이고, 그 사고방식의 간극은 구웨이의 꿈에서부터 북경에서의 삶까지의 거리만큼이나 넓다. 북경의 구웨이에 대한, 사회의 개인에 대한 폭력은 별 이유없이도 늘상 처절하게 얻어터지는 구웨이의 일그러진 모습으로 나타난다. [북경자전거]는 단순히 자전거 하나 놓고 아웅다웅 줄다리기를 하는 소년들의 깜찍한 해프닝이라기보다 사회에 대한 씁쓸한 시각이 빚어낸 한 편의 풍자인 셈이다.

구웨이와 대립해 있던 지안은, 없어본 사람 사정은 없어본 사람이 헤아린다고, 제 여자친구를 뺏기고 나서야 연대의 손길을 내민다. 자전거를 하루씩 나누어 타기로 한 것. 하지만 그는 북경과 구웨이의 가교 역할은 하지 못한다. 오히려 북경 친구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구웨이와 지안이 함께 도망가다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는 장면은, 박힌 돌과 굴러 들어온 돌이 화해하기 어려운 막막한 현실을 나타낸다. 한 어리숙한 개인에게 관대하기에 사회는 이미 너무 약삭빠르고, 교활해질 대로 교활해진 채 단단히 굳어버린 것일까.

[북경자전거]는 중국의 변화와 그로부터 파생된 삶의 부조리와 모순, 현실을 바라보는 감독의 안타까운 시선이 고스란히 녹아든 작품이다. 이 영화가 못내 가슴 아팠던 것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과거와 현재, 가해자와 피해자로서의 모습을 되짚고 있는 듯 섬뜩섬뜩 멀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3 )
ejin4rang
드림을 꿈꾸다   
2008-10-16 17:04
rudesunny
너무 너무 기대됩니다.   
2008-01-21 16:04
kangwondo77
‘북경 드림’을 꿈꾸며...   
2007-04-27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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