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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are Revolutions?-’매트릭스 2 리로디드’를 보고
이해경의 무비레터 | 2003년 6월 13일 금요일 | 이해경 이메일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보고 나왔습니다. 아내가 자동차 핸들을 잡았습니다. 옆에 앉은 제가 말했습니다. “트리니티, 사정 없이 밟아!” 우리는 둘 다 선글래스로 눈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정신 차려.” 저는 물러서지 않고 대꾸했습니다. “정신 차려, 니오! 해야지.” 저 되게 실없는 인간이죠? 영화에 빠지면 한 동안 영화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 속에 사는 유치한 버릇을 못 버리고 사네요. <터미네이터 2>를 보고 나서도 며칠을 목소리에 힘주고 다녔다니까요. I’ll be back… 그게 벌써 몇 년 전인가요? 드디어, 목을 빼고 기다리던 터미네이터도 곧 돌아오고, 매트릭스 세상 구경도 한 번 더 남았으니, 월드컵은 안 열려도 그럭저럭 버틸 만한 한 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매트릭스> 시리즈가 재미없거나 싫은 사람은 세상을 잘 살고 있는 거라고 봅니다. 사는 목적도 확실하고, 성취욕과 자신감도 상당하지 않을까… 당사자는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건 아마 그럴 겁니다. 의심 없는 건강한 삶. 다는 아닐 거예요. 세상 사는 건 여의치 않은데, 이미 ‘매트릭스’와 같은 분야에 통달해서 영화가 시시한 사람도 있을 겁니다. 매트릭스. 그냥 우리가 사는 세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라고 말하면 좀 심한가요? 이 세상이 실재한다고 굳게 믿는 사람에게는 정신 나간 소리로 들리겠죠. 혹시 무슨 소린지 모르는 분이라면 영화를 보시구요, 그 전에 전작 <매트릭스>도 보십시오. <애니매트릭스>를 곁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물론 계속 모르고 싶은 분들에게까지 강권하지는 않겠습니다. 잘 사는 사람은 계속 잘 살아야지요.

11월에 나머지 하나를 마저 보고 나면, 영화 전체에 대해 긴 글을 써 볼
생각입니다. 아예 소설로 쓸까요? 당장은 참겠습니다. 그럼 이제 무슨 얘기를 해야 하나… 이미 세상에 나온 두 편에 대해서는, 평론가들의 리뷰를 들먹일 것도 없이, 무비스트 게시판에만 가도 넘넘 빼어난 분석과 해석들이 넘치는데… 아, 간혹 눈에 띄기는 하지만, ‘how to be concluded’에 대해서는 아직 많이들 언급하지 않았죠. 그걸 해봐야겠네요. MATRIX REVOLUTIONS! 과연 어떻게 완결될 것인가? 기대하시라, 다섯 달쯤은 어영부영 살다 보면 아니 벌써? 수직상승하는 네오와 맞먹는 속도로 후딱 흘러가리니…

어떻게 완결될 것인지 점쳐 보겠다고 나서기는 했지만 막막하네요. 제가 뭐 예언자 오라클도 아니고… 참, 오라클 역을 맡은 배우 글로리아 포스터가 재작년 9월에 당뇨로 죽었답니다. 세번째 영화를 찍기 전이었대요. 중도하차해서는 안 될 중요한 인물, 아니 프로그램인데 어떻게 처리했을지 궁금하네요. 다른 배우를 썼을까요? 타임지는 그녀의 죽음으로 인해 시나리오에 모종의 변화가 있었다고만 보도했다는데, 형제가 어련히 알아서 잘 했으려니 믿고 넘어가도록 하구요, 제가 정말로 궁금한 점은 다른 데 있습니다. 제목의 ‘revolution’에 왜 s가 붙어 있냐는 거지요. 왜 단수가 아니라 복수일까요?

제목이 가르쳐주지 않더라도, 뭔가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매트릭스의 설계자는 그것까지도 예측하고 있겠지요? 네오가 트리니티를 구하러 가리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요. 네오가 ‘사랑’을 ‘선택’한 결과, 시스템의 에너지 공급원 노릇을 해왔던 인간 종족이 전멸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시스템 전체의 위기지요. 하지만 예외성마저도 예측할 수 있는 설계자는, 다른 레벨의 생존이 준비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시스템은 살아남을 것이고, 사라지는 것은 인간일 뿐이라는 얘기지요. 이런 상황에서 무슨 혁명이 가능하겠습니까? 설마 그 혁명이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시스템의 새로운 존재 방식을 뜻하는 것은 아니겠죠? 배터리로 소모되는 신세보다는 차라리 깨끗하게 사라져주는 게 낫다는 결말이라면, 그건 너무…

혁명은 가능성과 예측을 뛰어넘기 때문에 혁명입니다. 완결편의 혁명 또한 설계자도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예측됩니다. 그런 예측도 부질없는 짓일까요? 그런 의문을 뒤로 하고 ‘미리 재보기’를 계속하겠습니다. 혁명의 주체가 네오일 것이라는 예상은, 예상이라고 할 것도 없겠습니다. 네오의 힘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지요. <… 리로디드>의 막판에서, 가상 세계를 벗어나서도 발휘되는 네오의 능력이 확인됩니다. 그 힘이 설계자의 프로그램을 앞지르는 순간, 그 지점에서 혁명의 가능성은 싹트게 되지 않을까요? 다만 예외적인 존재로서 프로그램에 갇혀 있던 네오가 완전한 자유를 획득한다… 그 동력은 물론 사랑이겠지요.

그런데 다시, 왜 혁명이 아니라 ‘혁명들’일까요? 그 동안 여러 번의 혁명이 있었다? 네오 이전에 다섯 번에 걸쳐 실행됐다는 시온의 재편성 프로그램을 두고 혁명이라 하는 것은 아닐 테고, <애니매트릭스>에 나오는 ‘세컨드 르네상스’와 연관지어야 할지… 아니면 이 혁명은 다단계 혁명이다? 글쎄요, 그럴 만한 시간 여유가 있을 것 같지 않던데… 그럼 뭘까요? 혹시 이 혁명이 네오의 원맨쇼는 아니라는… 그렇다면, 트리니티도 있고 모피어스도 있고 또 새로 합류한 니오베도 있으니까, 그들 모두의 합작 혁명이라는 의미일까요? 저는 그 이상일 거라고 봅니다. 정확히 어떠할지는 알 수 없지만, 모든 ‘인간들’과 관련이 있을 거예요. 캡슐 속에 웅크린 채 가상 현실에 결박된 인간들 하나하나가 어떤 중요한 선택을 하게 된다… 물론 그 동력은 네오로부터 얻겠지요.

아니면 말고요. 무책임한 태도이기는 하지만, 특정인을 곤경에 빠뜨리려는 악의 따위는 있을 수 없는 추측이니까 봐주세요. 돌이켜보면 사실 혁명이란 원래 그런 게 아닌가요? 누구 혼자 하는 게 아니지요. 네오 혼자 할 수 있는 건 수퍼맨 놀이, 총알 멈추기 놀이, 이 문 저 문 열어보는 놀이… 그런 것들이 고작이잖아요. 그가 갖추게 되는 진짜 강한 힘은, 자신의 힘을 어떻게 써야 할지 알게 된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 혁명의 결과는… 인간과 기계가 새로운 방식으로 공존하는 세상일까요? 그것까지야 뭐… 너무 앞서가지는 말도록 해요. 다만 어정쩡하고 애매모호한 결말이 아니기를 희망합니다.

아무튼 혁명의 와중에 네오가 여러 위기를 겪게 될 것은 뻔합니다. 괴멸된 시온의 유일한 생존자가 시스템에서 이탈한 스미스 요원 맞나요? 줄기차게 네오를 노리겠죠. 혹시 영화 <페이스 오프>처럼 둘이 뒤바뀌게 되는 건 아닐까요? 네오가 구해준 소년 포퍼(그 에피소드는 <애니매트릭스>에 나옵니다만, <… 리로디드>에서도 네오는 포퍼에게 너 스스로 구한 거라고 말하지요.)가 <… 리로디드>에서도 그랬듯이 다시 한 번 네오의 은혜를 갚는지도 모르구요. 자신은 죽었지만 네오에게 건네준 숟가락 비슷한 쇠붙이를 통해서… 역시 아니면 말고요. 또 페르세포네가 <… 리로디드>에서 보여준 유혹의 몸짓은 맛보기에 불과할 듯싶네요. 모니카 벨루치도 몸값이 비싼 배우잖아요. 네오와 트리니티의 사랑을 훼방놓기에 충분하죠.

이런 식으로 시시콜콜히, 게다가 터무니 없는 예측을 거듭하다가는 한도 끝도 없겠습니다. 얌전히 기다렸다가 때가 되면 그냥 영화를 보는 게 상책이겠어요. 영화가 복잡해서 머리 속이 뒤죽박죽이라 영 개운하지가 않다면, 중요한 건 ‘사랑’과 ‘선택’이라고 시원하게 정리해 버리자구요. 하나 더 고른다면 ‘자유’가 될까요? 정신 차린 듯 눈에 훤히 보이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유하며 살고 있을까요? 진정한 자유란… 글쎄요… 근근이 살아도 우리야 매트릭스의 안락이 더 편하고 좋죠 뭐. 그걸 탓할 수도 없고… 정말 그럴까요?

4 )
apfl529
좋은 글 감사~   
2009-09-21 18:36
kpop20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07-05-24 15:38
js7keien
양자역학을 뜻하는 대사가 악당의 입에서 나오다니!
철학과 액션의 어울림은 전편에 이어 계속된다!   
2006-10-08 22:48
imgold
매트릭스 시리즈는 다른 시리즈에 비해 그나마 훌륭하다고 봅니다.   
2005-02-02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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