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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잖게도 함 짚어봤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와 <체인질링>을 통해 본 친절한 고집쟁이 할배!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변주!
2009년 1월 23일 금요일 | 김진태 객원기자 이메일


193cm라는 어마어마한 신장, 강한 남성미를 풍기는 이목구비, 중후한 목소리와 속을 알 수 없는 무표정. 여기까지만 말하면 훈훈한 외모를 지닌 꽃미남 남자배우나 몸짱 액션배우를 떠올릴만하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앞의 조건에 몇 가지 요소들만 더 갖다 붙이면 놀라움과 함께 고개를 끄떡이게 할 만한 한 명의 영화인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나라 나이로 따지면 내일 모레 팔순을 바라보고(1930년생), 일생에 한 번도 받기 어렵다는 아카데미 감독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감독이자 연기력까지 제대로 되시는(!) 배우. 그렇다. 배우라는 수식어와 함께 감독으로서의 세계적인 명성까지 얻고 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그 주인공이다.

필자가 먹어 온 쌀밥이 그리 많지 않은 까닭에 어마어마한 쌀밥 내공을 지닌 클린트 할아버님의 젊은 시절 영화 속 혈기 왕성했던 모습을 기억할 수는 없다. 그래서 필자에게는 그의 이름 앞에 붙는 배우라는 수식어 보다 감독이라는 수식어가 더 크게 와 닿는지도 모르겠다. 1993년에는 직접 주연 및 연출한 <용서받지 못한 자>로, 2005년 역시 주연 및 연출을 맡은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아카데미 감독상 및 작품상까지 수상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이렇듯 그는 분명 감독이라는 수식어 앞에 ‘거장’이라는 단어를 하나 덧붙여도 전혀 아까지 않은 존재임에 분명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위의 두 작품을 비롯 <미스틱 리버(2004)>,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2007)>까지 내놓는 연출작마다 평단으로부터 대단한 환호를 받아왔다. 그래서 이제 곧 국내에도 개봉을 앞둔 그의 새로운 연출작 <체인질링> 역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팬들에게는 대단히 반가운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영화 <체인질링>은 실종된 아들을 찾기 위한 한 어머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얼마 전 열린 제 66회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영화-드라마부문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오른바 있는 안젤리나 졸리의 연기변신으로 일찌감치 주목 받기도 한 이 영화는 다시금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그의 신작이라는 점에서도 호기심과 기대를 동시에 던져준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속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데 대해서 새삼스럽게 호들갑이냐 하겠지만 지금껏 그의 연출작들을 꽤나 챙겨 봐 온 사람들이라면 다들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클린 이스트우드 감독이라 하면 항상 험한 남성들을 주인공으로, 어둡고 냉혹한 이야기를, 무겁게 그려낸 영화들만 떠오르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일 듯. 그랬던 그가 2004년에 선보인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관객들은 물론 평단에게도 실로 큰 놀라움과 신선함을 안겨주었다. 그것은 바로 여성이 주인공이었던 것(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유일무이한 로맨스 영화인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장르적 특성상 제외하고!). 그리고 이 색다른 한 편의 영화는 그에게 일생에 있어 두 번째 아카데미 감독상을 안겨주었다. 이후 4년 만에 또 다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 <체인질링>은 그런 이유에서 더 흥미롭다.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것 외에도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두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와 <체인질링>의 닮은 점은 여러 가지가 있다. 2시간을 훌쩍 뛰어 넘는 러닝타임은 물론이요, 그 시간들을 전혀 아깝지 않게 만들어주는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과 여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 게다가 영화가 끝나는 순간 묵직하게 전해오는 감동 역시 굳이 따지자면 닮은 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이 뿐만이 아니다. 두 영화를 하나하나 세심하게 보다보면 참으로 비슷한 느낌을 주는 요소들이 많다.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좋아하는 필자로서는 영화 <체인질링>을 그 변주곡이라 말하고 싶다. 진정 대단한 감독들은 그 어떤 영화 속에서도 자신만이 가진 신념과 정의를 내비치고, 개성과 특징을 은은하게 그 속에 녹아들게 한다. 또한 그것을 찾아낼 줄 아는 현명하고, 예리한 관객들의 눈이 있을 때, 비로소 그 감독의 진가는 확인되는 법이다.

그래서 필자가 몇 가지 짚어 보았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와 <체인질링>을 통해 나타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대단한 변주능력! 지금부터 하나하나 공개해 보겠다! 하찮은 필자의 눈으로 바라 본 영화 <체인질링> 속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만의 변주 포인트가 그의 영화를 이해하고, 선택하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보면서.

# 여성 권투선수에서 강한 어머니로의 변주.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첫 번째로 여성 권투선수를 선택했다. 얼핏 보기에도 쓰러질 것처럼 깡마른 체구의 한 여자가 체육관으로 들어온다. 남자들도 하기 어렵다는 권투선수가 되겠다는 이 여자의 이름은 ‘매기(힐러리 스웽크)’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는 반응과 함께 결국 발길을 돌린 그녀는 거기에 굴하지 않고 매일 체육관에 나와서 홀로 연습을 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고집 세고, 무대포적인 여성이 여기 한 명 더 있다. 바로 영화 <체인질링> 속 강한 어머니 ‘크리스틴’이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고집을 피우고, 무대포로 나갈 수밖에 없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행방불명되었다 몇 달 만에 경찰이 찾아 준 아들이 그녀의 친 아들이 아니라는 것. 그렇지만 아무도 그녀를 믿어주지 않는다. 심지어 경찰에서는 그녀를 정신병자 취급까지 한다. 그래서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아들을 찾기로 결심한다.

두 영화 속 주인공은 멜로영화나 로맨틱 코미디 속 그녀들과는 사뭇 다르다. ‘매기’와 ‘크리스틴’에게는 남성들 보다 더 강한 의지가 있고, 삶에 대한 깊은 상처가 있으며, 자신의 삶과 신념에 대한 질기디 질긴 고집과 ‘깡다구’가 있다. 바로 이것이 첫 번째 변주 포인트다.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 권투선수가 아닌 강한 어머니의 모습으로 바뀌었지만 두 영화 속 주인공은 모두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인간을 바라보는 모습 그 자체를 지니고 있다. 그들에게는 삶에 대한 끈질긴 열정, 세상과 거짓된 정의로부터 맞서려는 강한 의지가 여실하게 녹아있다. ‘살아보자’라는 그저 그런 열정이 아닌 ‘살아야한다’라는 처절하리만큼 끈질긴 열망을 이렇듯 두 여성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 세상과 정의에 대해 던지는 질문들, 그것이 또 하나의 변주.


한 때 잘 나가던 권투 트레이너였던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헌신적인 도움과 남자들보다 몇 배는 더 땀 흘려 연습하고, 의지 하나만으로 이 악물고 노력한 결과로 매기는 드디어 최고의 위치에까지 오르게 된다. 하지만 세상은 그녀에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최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더 힘든 상대들과 싸워야 하고, 가족들은 힘이 되어주기 보다 오히려 그녀를 이용하려고만 한다. 한편, <체인질링>의 ‘크리스틴’ 역시 아들을 찾기까지가 험난하기만 하다. 경찰들은 자신들의 이론과 증거들만 내세워 그녀를 설득하려 하고, 그녀를 ‘이상한 여자’, ‘나쁜 엄마’로 몰아가기까지 한다. 이런 그녀의 답답하고 억울한 사연을 아는 브리그랩 목사(존 말코비치)의 도움으로 사건은 새 국면을 맞게 되지만 이 또한 경찰의 방해로 그녀는 다시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속 세상은 저마다 냉정하고, 심지어 무섭기까지 하다. 강한 자와 약한 자, 거짓과 진실, 부정과 정의, 그리고 이기심 등이 서로 혼재되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무게감을 묵직하게 느끼게 한다. 거기에 덧붙여 감독은 항상 관객들에게 질문한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와 우정 그 이상의 정신적 교류를 통하여 삶과 죽음의 선택에 대한 꽤나 어려운 질문을 던졌었다. 그리고 영화 <체인질링>은 커다란 사회 속에서 나약한 개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달픔과 안일하고 부패한 경찰에 대한 비판을 통해 진정한 정의와 진실에 대한 물음표를 던져주고 있다. 그리 가볍지 않은 소재와 이야기임에도 140여분이라는 러닝타임 속에 묵직하지만 부담스럽지 않고, 차분하지만 지루하지 않게 그려나갈 줄 아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만의 변주 능력은 그 어떤 사람들도 놀라지 않을 수 없다.

#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통해 바라 본 그의 변주.


앞서 말했지만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와 <체인질링>의 두 주인공이 살아가는 현실은 차갑고, 험난하기만 하다. 그야말로 묵직한 삶의 무게를 보여주고 있음에도 두 영화가 사람들에게 뜨거운 온기를 느끼게 하는 것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그려내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만의 깊이 있는 통찰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매기’에게는 그녀를 자신보다 더 소중하게 여긴 아버지 같은 존재인 트레이너 ‘프랭크’가 있었다. ‘우정’ 그 이상의,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그 무언가를 보여준 그들의 모습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자 감동이 되어준다. 그리고 세상과의 싸움을 시작한 <체인질링>의 크리스틴 역시 곁에 브리그랩 목사가 있었다. 그 누구도 관심 갖지 않았던 진실과 정의에 대하여 크리스틴과 함께 싸워 나가준 브리그랩 목사를 통해 답답한 현실 속에서도 작은 온기와 희망을 엿볼 수 있도록 해준다.

인간에게 있어 인간이라는 존재는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든든한 동반자인 동시에 가장 두려운 적이 되기도 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에는 이러한 논리가 너무도 예리하고, 깊이 있게 담겨있다. 치열하고 두려운 세상 속에서 홀로 살아가려는 강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결코 그들을 외로운 존재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인간으로서의 온기와 희망을 지닌 동반자를 등장시키는 것, 그것 역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변주를 경험하게 해준다. 영화 속에 이성과 비판만이 담겨 있다면 사람들은 그 영화를 보며 감동을 느낄 수 없는 법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힘, 즉 휴머니즘 역시 놓치지 않고 자신만의 변주 방식으로 담아내는 것 또한 감독이 놓치지 말아야 할 덕목임을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분명하게 알고 있다.

작가주의적 관점에서 감독의 강한 고집이 담긴 예술영화는 비평가들이 환호하는 반면 관객들은 쉽게 공감하지 못한다. 반면 SF, 로맨틱 코미디, 공포영화 등 이른바 상업적인 장르영화는 관객들에게 큰 재미를 주지만 평단으로부터는 철저한 비판의 대상이 되곤 한다. 한 편의 영화가 작가적인 고집과 깊이 있는 통찰, 그리고 대중적인 공감과 호응을 동시에 담아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각 장르 혹은 장르를 떠나 자신의 영화를 통해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아내는 감독들에게 우리는 ‘거장’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준다. 그들은 영화들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고집, 성격과 개성들을 수없이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하여 보여준다. 하지만 그것을 관객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과 이야기로만 보여준다면 이기적인 아집으로 밖에 비쳐지지 않는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너무도 친절한 고집쟁이이다. 내일 모레면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 임에도 감독으로서나 배우로서 탄탄한 기둥이 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친절한 고집을 지니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연륜이 묻어나있는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작품에 대한 고집들로 연주하는 다양한 변주곡을 관객들이 가슴으로 듣고, 뜨겁게 감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힘, 그것이 있기에 우리는 그를 주저 없이 거장이라 부르는 것이다. 세월은 그에게 늘어나는 주름살과 함께 더욱 깊어지는 가슴과 눈을 주는 듯하다. 그래서 우리는 기다린다. 1년, 2년, 3년, 그 이상이 지나도 변치 않을 그의 멋진 변주곡들을!

2009년 1월 23일 금요일 | 글_김진태 객원기자(무비스트)
24 )
kisemo
잘봤어요~   
2010-04-15 16:01
taijilej
대단합니다   
2009-02-17 17:54
gurdl3
감동 그자체..   
2009-02-12 01:53
mina7359
체인질링 보고싶다 꼭 봐야곘어요 ~   
2009-02-07 22:31
mckkw
체인질링..   
2009-02-07 13:47
pjs1969
세상과 정의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멋진 감독~~   
2009-02-03 18:26
wjswoghd
나름 좋아요   
2009-02-03 16:35
yparkeh
좋은 배우는 좋은 감독이 될 수 있는 자질을 지니고 있는 듯.
좋은 감독과 좋은 배우들의 만남이 결국은 좋은 영화를 만들어 냅니다.   
2009-02-02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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