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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과 속이 다른 여자 <나의 PS 파트너> 김아중
2012년 12월 14일 금요일 | 정시우 기자 이메일


<나의 PS 파트너> 출연 제의는 언제 받았나?
작년 여름 즈음에 받았다.

그때면, 드라마 <싸인>이 끝났을 때인가?
맞다.

<미녀는 괴로워>의 성공으로 로맨틱코미디 배우의 이미지를 입었다. 그래서 그 이미지를 경계했었다고 들었고. <싸인>은 그런 이미지를 털어내게 해 준 작품인데, 그래서 궁금하다. <싸인> 이후 한 번 더 강하게 장르 변화를 시도할 수도 있었을 텐데, 다시 로맨틱코미디로 돌아온 이유가.
오랜만에 하는 작품이어서 가볍고 밝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싸인>이 무거운 이야기이다 보니, 털어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밝은 걸 찾던 중에 만난 게, 이 영화다. 그리고 내 나이 때의 여자를 대변할 수 있는 캐릭터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개성 강한 특정 캐릭터를 많이 맡아 와서, 그동안 20-30대 여자를 표현해 볼 기회가 없었거든. 한국영화에서 다뤄보지 않은 폰섹스라는 소재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기도 했다.

<싸인>이 아니었으면, <나의 PS 파트너>에서 김아중을 못 봤을 수도 있겠다.
그랬을 수 있다. 로맨틱코미디가 아닌, 다른 장르를 선택했을 거다.

로맨틱코미디는 배우의 매력과 극 중 캐릭터가 중요한 장르다. 개인적으로 <싱글즈>의 나난(정진영)과 동미(엄정화), <쩨쩨한 로맨스>의 다림(최강희),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정인(임수정), <아내가 결혼했다>의 인아(손예진)가 기억에 남는다. 당신이 연기한 <나의 PS 파트너>의 윤정은 캐릭터로만 두고 보면, 개성이 살짝 약한 감이 있다. 이 영화는 캐릭터보다 상황에 무게를 두고 있달까.
폰섹스라는 소재가 윤정이라는 캐릭터를 너무 관통하고 있었으면, 아마 안 했을 거다. 그러니까 슥슥 문질러 주면 나타나는 알라딘 요술램프처럼, 윤정이 남자들이 원하는 폰섹스 요정으로 그려졌다면 안했을 거다. 윤정이 폰섹스를 시도하는 이유는 시들해진 남자친구의 마음을 돌리기 위함이잖나. 이 아이가 선택하고 감행하는 건 범상치 않지만, 어쨌든 그냥 보통의 여자 아이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모습에 내 또래 여성 관객들이 공감해 주리라 생각했고. 그래서 감독님을 두 번째 만났을 때 “감독님이 원하시는 윤정의 캐릭터가 뽕뽕하고 나타나서 남자들을 자극해주는, 그런 기능적인 역할이라면 저와는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왜 두 번째 만남에서인가. 첫 미팅 땐 그런 생각을 얘기 안 했나?
시나리오 상에서 윤정은 우울하고 내성적인 캐릭터였다. 첫 만남 때 감독님이 그러시더라. 윤정의 캐릭터를 치정멜로 <언페이스풀>(2002년)의 다이안 레인을 떠올리면서 썼다고.

아! <언페이스풀> 속의 다이안 레인은 정말 매력적이지.
그 캐릭터가 매력적인 건 동의하나, 그것이 로맨틱 코미디에 들어왔을 때 잘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말을 아꼈다. 윤정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저렇게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데, 아무 말도 못하겠더라고. ‘아, 내 것이 아닌가 보다.’ 했다. 두 번째 만남은 감독님이 내 생각을 들어보고 싶다고 해서 가진 자리였다. “지난 1년간 시나리오를 쓰면서 계속 여자주인공 부분만 수정하고 있는데, 여배우가 붙어서 함께 고치는 것만큼 시너지가 나는 건 없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 그때 말씀 드렸다. 내가 느낀 점들과 걱정들을.
변성현 감독님이 당신 의견을 많이 받아들인 모양이다.
꼭 내 말이어서 라기보다는, 여성스태프들이나 이성친구들에게 많이 물어본 것 같다. 그러면서 감독님 스스로가 방향을 잡으신 거지.

감독님이 <언페이스풀>의 다이안 레인을 상상했다면, 당신은 어떤가?
섹시코드 코미디에서 내가 보고 싶은 여성 캐릭터는 카메론 디아즈다. 이 장르에서 카메론 디아즈만큼 제격인 배우는 아직 못 봤다. <언페이스풀>의 다이안 레인 캐릭터는 치정멜로에서나 가능한 거고. 감독님이 원하는 방향과 내가 원하는 방향의 합의점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런 얘기를 들었다. 여배우의 마음을 제대로 간파하고, 여자의 마음을 제대로 그려내는 남자 감독은 드물다고. 그런 걸 느낀 적, 많겠지?
여자감성을 잘 모른다기보다는 어떤 거리감 때문인 것 같다. 여자배우와 남자감독 사이의 어쩔 수 없는 그 거리감이 나는 너무 싫다. 남자배우와 남자감독은 편하게 술자리도 하고 동료를 뛰어넘는 친구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여배우와 남자감독 사이엔 거의 없다. 묘한 거리감 때문에 소통의 기회가 닫히는 게 아쉽다.

주위 시선을 무시하지 못하겠지. 괜한 말들이 나올 수 있으니.
그런 게 너무 답답하다. 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거리감이 생기는 걸 못 견뎌하는 스타일이다. 특히 영화의 경우 드라마보다 감독과 배우가 나눠야 할 얘기들이 많다. 섹시코드로 점철된 이번 영화 같은 경우는 더욱 그렇고. 거리감이 애매하게 있으면, 감독이 여배우에게 야릇한 디렉션을 주기가 괜히 민망하고 그렇잖나. 그래서 많이 친해지려 노력했던 것 같다.

윤정은 남자친구가 바람피우는 현장을 목격하고도 모른 척 한다. 그것이 사랑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믿으면서. 어떻게 보면 굉장히 바보같은데, 또 어떻게 보면 이해가 간다. 왜 많은 부부들이 알면서도 넘어가는 게 있다고 하던데, 그런 심정일까 싶기도 하고.
맞다. 그래서 그런지 20대 초반 관객보다는, 20대 중후반부터 30대, 혹은 결혼생활하시는 분들이 더 공감하시는 것 같다.

윤정이 평범한 여자라고 했지만, 애정관계 회복을 위해 폰섹스 이벤트까지 시도하는 발칙한 면도 있는 여자다. 김아중은 어떤가? 윤정처럼 사랑 앞에 당돌해지기도 하나?
시작할 땐 많이 조심스러운 편이다. 친해지기까지도 오래 걸리고. 애교도 ‘저 남자가 정말 내 남자구나’하는 확신이 들어야 나온다. 그리고 그런 경우가 많다. 남자 쪽에서 먼저 사랑을 줘서 시작하는데, 나중엔 내가 더 사랑하게 되는 거. 역전당하는 감정을 많이 느꼈던 것다.

의외다. 상대를 쥐락펴락할 것 같은데.
내가 그런 걸 잘… 하하하. 내가 그런 만큼 ‘밀당(밀고 당기기)’ 하는 남자도 싫다.
연인 관계에 적당한 ‘밀당’은 필요하지 않나. 당신은 ‘밀당’이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면 ‘밀당’이 필요 없는 관계를 원하는 건가
굳이 꼽자면, 후자다. ‘밀당’이라는 게 필요 없는 관계가 좋다. 그래야 편해지고, 편해야 마음 놓고 빠지는 것 같다.

김아중에게도 그런 남자가 있었겠지?
그럼. 그런 관계의 연인이 과거에 있었지.

친해지는데 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뭔가? 상대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고 싶은 건가?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진짜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게 맞나?’, ‘믿어도 되나?’ 그런다. 상처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큰 것 같다.

오래 전 인터뷰에서 김태용, 이해영, 이해준 감독님과 작업해 보고 싶다는 희망을 비친 적이 있다. 그래서 그 감독님들의 최신작품 속 여주인공들, 이를테면 김태용 감독의 <만추>에서 탕웨이가 했던 애나, 이해준 감독의 <김씨 표류기>에서 려원이 맡은 여자김씨, 이해영 감독의 <페스티발>에서 엄지원이 했던 지수에 당신을 대입해 생각해 봤는데, 잘 어울리겠다 싶더라.
아, <만추>도 어울릴까, 내가? 너무 좋아하는 영화거든. 김태용 감독님이 <만추>를 하신다고 해서, 시나리오도 몰래 구해서 봤었다. 보면서 펑펑 울었다. 그런데 역시나. 영화가 더 잘 나왔더라고. 보면서 굉장히 부러웠다.

캐스팅이 완료 된 이후에 시나리오를 본 건가?
탕웨이로 이미 캐스팅이 된 상태였다.

<만추> 속 애나의 어떤 부분에 마음이 움직였나?
그냥 탕웨이의 시선 하나 하나가 내겐 너무 큰 사건이었다. 안타까운데 안타깝다 감정을 토로하지 않고, 고통스러운데 그 고통을 얘기하지 않는 그런. 마치 태어나 한 번도 그래보지 않았던 사람 같은 그런. 그런 감정 하나하나에 너무 연민이 갔다. 그리고 아무것도 연기해내지 않으려는 모습 때문에 그녀가 오히려 더 반짝반짝 빛났다고 본다. 그 또한 김태용 감독님의 깊은 연출력이기도 하고. 항상 배우들이 표현해내는 것보다 더 많은 걸 느끼게 해 주신다. 정말 존경스럽다.

<가족의 탄생>에서 공효진이 맡았던 캐릭터도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뭔가를 꾸지 않는 일상적인 캐릭터에 흥미를 느끼나 보다.
영화가 주는 어떤 위로나 감성이 꼭 스펙터클한 사건이나, ‘죽을 뻔 했다가 살아나는’ 그런 안도감에서만 오는 게 아니잖나.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별로 얘기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안고 있는 상처나 비밀들. 어떻게 보면 그런 게 가장 고질병적인 거거든. 그래서 일상을 덤덤히 그린 영화에서 어느 순간 훅 위로를 받고, 눈물을 쏟는 거지. 그게 더 대단한 것 같다. 어떤 사건으로 치달아서 손에 땀을 쥐게 하다가 안도감을 ‘훅’ 주는 건 어떻게 보면 쉬울 수 있거든.

궁금하다. 김아중이 그런 역할을 맡으면 어떨지.
그게 나도 너무 궁금하다. 사실, 나는 장르에 더 충실한 배우다. 아직은 그런 배우인 것 같다. 그래서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안 하는 순간들을 만나고 싶다. 언젠가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 그런데 잘 모르겠다. 그게 어울리는 배우가 될 수 있을지.
시나리오를 쓰는 걸로 안다. 얘기를 듣다보니 당신이 쓰는 시나리오는 일상에 밀착한 내용이 아닐까 싶다.
아니. 시나리오는 또, 굉장한 장르영화다. 하하하. 아직 완성된 시나리오는 없다. 트리트먼트 식으로 생각날 때마다 적어 두는 정도다.

트리트먼트로 쓴 것 중에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을 잠시 떠올라 보라. 그게 영화화 된다면, 어떤 배우를 쓰고 싶나?
(지체 없이) 이병헌 선배님?(웃음)

남자가 주인공인 영화인가 보다.
여자 주인공은 내가 할 거니까. 하하하하. 어머, 나 너무 다 얘기하는 것 같다. 어떡해.(웃음) 아, 너무 창피하다.

흐흐흐흐. 알았다. 주제를 바꿔보자. 윤정은 사랑은 뻔하다고 말한다. “사랑은 만나고 설레고 헤어지고 아프고 그러다 또다시 만나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그 대사 하면서 굉장히 공감했다. 만나고 설레고 헤어지고 아프고. 그런 반복 속에서 상처도 받을 테지. 상대에게 사랑을 못 받고 있다고 느끼면 외롭고 지칠 거다. 그래서 사랑을 받는 것 못지않게, 사랑하는 것 자체에 만족감을 두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여자 입장에서 그러기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가장 로맨틱한 사랑은 어떤 걸까?
둘의 체면이나 관계가 어디로 치닫는지 의식하지 않고 사랑하는 게 가장 로맨틱한 사랑인 것 같다. 왜, 상대에게 불만이 있어서 토로하고 싶은데 자존심 때문에 먼저 안하게 되는 경우들이 있잖나. 한 번은 대차게 싸우고 부러져야 또 다시 관계가 회복되고 사랑에 더 불이 붙는데, 많은 이들이 그런 걸 자꾸 통제하는 것 같다. 성인들이 특히 더 그런다. 그런 의식 없이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토로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상처 받아도 좋을 만큼, 아이 같은 마음으로 사랑을 하는 게 로맨틱한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 실수 중 하나가, 헤어지는 순간에서조차 자존심을 지키려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결국 자기 보호를 하는 거지.
맞다.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연인임에도 불구하고 그 앞에서 계속 스스로를 보호했다. 감정 표현에 소극적인데, 이제는 조금 달라지고 싶다. 마음껏 사랑하고,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불만 있으면 토로하고, 화가 나면 소리치고. 편한 상대를 만나 그러고 싶다.

<나는 PS 파트너>의 PS는 ‘폰섹스 파트너’의 줄임말이다. 조금 19금스러운 질문 하나 하겠다. ‘폰섹스 파트너’ 혹은 ‘섹스 파트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대한민국의 적지 않은 남녀가 섹스파트너가 있다고 들었는데.
나는 그렇게 개방적인 편은 못되는 것 같다. 폰섹스도 시도하기 어려울 것 같고. 글쎄. 사실, 그런 것들이 편하다는 하시는 분들이 거기에서 어떤 걸 얻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렇거든. 마음의 위로나 정신적인 교감이 없는 관계는 지치거든. 왜, 미키 루크와 킴 베신저 주연의 <나인 하프 위크>(1986년)에도 나오잖나. 여자 주인공은 단순한 관능적 일탈을 뛰어넘는 언어를 원했지만 남자는 그러지 않았다. 그 앞에서 사랑은 결국 무색해져 버리고 말았다.
이런 논리를 펼치는 사람도 있다. ‘섹스 파트너가 있는 게 연인 관계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
말도 안 된다! 나는 정말 보수적인 가봐.

‘섹스 파트너에게 위안을 얻는다’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잘못된 위안!

그럼 그건 뭘까? 현실 도피일까?
순간적인 자극에 현실을 잠시 잊는 게 아닐까? 순간적인 자극에 스스로를 자꾸 길들이면 안 되는 것 같다.

(아래, 두 개의 문답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는? 상황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애인이 있는 윤정도 현승(지성)과 밤을 함께 보내고 공원에서 키스도 한다. 그 과정에도 위안도 얻고. 당신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어땠을 것 같나?
안 그래도 연기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다. 남자친구와 현승 사이를 오가는 불안함. 어떻게 해야 현승에게 자연스럽게 마음이 흐를 것이며~ 현승을 만난 후 남자친구를 바라보는 시선은 또 어떻게 변해야 할 것이며~ 불안한 감정을 표현하는데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또, 의외로 잘 나온 씬이 불안과 설렘이 교차하는 씬이다. 버스 몽타주 씬 말이다.

어! 그러고 보니, 버스 몽타주 씬에서 <언페이스풀>의 지하철 몽타주 장면이 얼핏 보인다. 다이안 레인 역시 의도치 않은 바람을 피운 다음에 지하철 안에서 설렘과 불안에 휩싸이지 않나.
맞다! 약간 오마주다!(웃음) 그 씬 찍으면서 고민이 참 많았다. 감독님이 콘티도 주지 않았거든. <언페이스풀>처럼 핸드헬드로 불안한 감정을 잡아내는 것도 영화 분위기완 맞지 않고. 겁을 먹었는데 생각보다는 잘 나왔다.

<나의 PS 파트너>는 잘못 걸린 전화로 우연히 연결된 두 남녀의 이야기다. 우연으로 만난 커플은 인연이라고 느끼기 쉬운데, 당신도 특별한 만남을 그려본 적 있나?
우연에 대한 환상은 별로 없다. 물론 로맨틱하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특별히 기대하지는 않는다.

사랑에 있어서는 현실주의인가?
아니. 푹 빠진다. 사랑에 빠지면 혼자 동화 속을 걷는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이 ‘연애하는 김아중은 위험하다’고, 한다.

이제 30대가 됐다. 어릴 때 꿈꿨던 20대의 삶을 산 것 같나?
아쉬운 건 딱 하나다. 조금 더 다양한 작품을 하지 못한 거, 그거 하나다. 그 외에는 후회되는 게 없다.

20대에 당신이 가장 잘 한 일은?
배우가 된 거.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그래도 내 직업이 배우인 건 행운이다.

배우는 외로운 존재라고도 하는데.
외로움이 있지만 그걸 뛰어넘는 존재감이 있으니까. 작품을 통해 내가 내 존재를 느낄 수 있는 건 기쁨이다. 그건 외로움보다 훨씬 더 큰 것 같다.
여배우 김아중과 여자 김아중의 욕망은 많이 다른가?
그걸 모르고 살았다. 항상 역할에 대해서만 고민했다. 어떤 배우가 돼야 하고, 어떤 작품을 해야 하고, 집에선 어떤 딸이어야 하고, 학교에서는 어떤 학생이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고민. 정작 무엇을 좋아하고, 결혼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남자를 만나고 싶은지에 대한, 여자로서의 고민은 진지하게 안 하며 살았다. 여자로서의 취향은 너무 모른 척 하며 살았던 거다. 그런데 윤정을 연기하면서 ‘이젠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왔구나’를 느꼈다. 예전에는 주위 친구들이 결혼에 대해 고민할 걸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착한 학생, 착한 딸. 혹시 착한여자 콤플렉스에 갇혀있었던 걸까?
착하다기보다는, 지나친 책임감이 있었다. 잘 해내야 한다는 게 컸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신을 둘러싼 주변 상황은 달랐다. 너무나 많은 언론과 대중이 ‘김아중은 예쁜 배우’, ‘김아중은 섹시한 배우’라고 했다. 당신이 여자임을 느끼게 하는 것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그렇더라고. 대중이나 관계자들이 생각하는 김아중과 내가 생각하는 김아중의 차이가 거기에서 나는 것 같다. 많은 분들은 나를 몸매라든가 패션이라든가 여성이 누리는 것의 한 가운데 놓아주시는데, 정작 나는 그런 취향이 아니고 그런 걸 즐기지도 않는다. 패션 뷰티 미용 쪽에 성실하지도 못한 편이고. 이런 차이들을 보면서 많은 걸 느낀다. 대중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 못지않게, 내 취향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당신을 둘러싼 그런 편견을 어떻게 생각하나? 그렇게 나쁜 편견은 아니라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드는데, 어쨌든 많은 대중이 여자 김아중을 좋아해주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니까.
나쁘다는 생각은 안 했었다. 여러 가지를 덧붙여주고, 예쁘게 봐 주시는 거니까 감사하지. 장점화 시켜주셨다는 면에서도 고맙고. 다만, 맡은 캐릭터의 분위기가 처음 기획의도보다 조금 더 섹시해 질 때가 있다. 감독님들이 나에게 우선순위를 두는 게 여성적인 매력의 캐릭터인 경우가 많고. 그러면 이제, 배우로서는 걱정이 되는 거다.

<미녀는 괴로워> 이후에 가진 인터뷰에서 “쓸모 있는 배우가 나왔다고 인정받으려면 다음 작품이 더 중요할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에 스스로 답을 해 본다면? 쓸모 있는 배우가 됐다고 느끼나?
아니.(웃음) 그때는 그랬다. 완벽한 배우가 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다. 20대는 사실 그런 시기가 아닌데 말이다. 많은 걸 용서 받을 수 있는 나이에 다양한 경험을 하고 30-40대에 좋은 배우가 되는 게 맞는데, 너무 일찍 욕심을 부렸다. 그로 인해 작품 선택도 어려워졌다.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는 100% 만족시켜 드리지 못하더라도,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쓸모 있는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다양함을 보여드리는 게 우선인 것 같다.

40대가 돼서 30대를 돌아봤을 때, 어땠다고 느꼈으면 좋겠나?
30대를 아까운 시간 없이 보내고 싶다. 여자 김아중과 배우 김아중이 밸런스를 이뤘으면 좋겠고. 그래서 40에 돌아봤을 시간낭비 없이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다. 20대에는 정말 후회 없이 고민만 했거든.(웃음) 후회 없이 행동했어야 했는데, 고민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 30대에는 후회 없이 행동하고 싶다.

2012년 12월 14일 금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2012년 12월 14일 금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    

3 )
aegean
기사 내용이 생기가 넘치네요~ 싱싱한 인터뷰!!   
2012-12-23 01:17
wkdrntmf17
인형이 말도 하네~^^*   
2012-12-18 08:08
movistar0802
마리아 이후 뭐 내놓을만한 작품이 없었는데 나의 ps 파트너로 다시한번 이목을 끈 김아중! 그녀의 변신에 박수를 보냅니다   
2012-12-18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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