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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를 맥거핀처럼 활용해 인간 군상을 드러낸다는 점이 흥미로웠고,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었어요.” 웨이브 6부작 시리즈 < S라인 >의 연출을 맡은 안주영 감독이 작품에 끌린 이유다. < S라인 >은 성관계를 의미하는 붉은 선 ‘S라인’을 볼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 여고생 ‘현흡’(아린), 연쇄살인을 쫓는 형사 ‘한지욱’(이수혁), 그리고 비밀스러운 국어교사 ‘규진’(이다희)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SF 스릴러다. 몰카, 관음, 근친, 불륜 등 성적인 소재를 스릴러 장르 안에 녹이며 초반 몰입도를 끌어올린 뒤, 후반부에는 예상치 못한 전환과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호불호가 강하게 갈리는 작품이지만, 안주영 감독은 “후회 없는 작품”이라고 단언한다. 다소 성급한 마무리였을지 몰라도, 그는 끝까지 밀어붙였다고 말한다. 그가 본 < S라인 >의 세계와 연출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5회부터 시공간이 초월되는 판타지 같은 모습이다. 후반의 예상치 못한 전환에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
작품을 선보일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반응을 찾아보니 화가 많이 나셨더라. (웃음) 애초에 < S라인 >은 혼자만 볼 수 있는 초능력 같은 능력을 가진 주인공 ‘현흡’과, ‘규진’이라는 베일에 싸인 인물, 그리고 판타지적인 요소가 담긴 작품이다. 만약 1회부터 5회 사이에 이런 판타지적 부분들을 조금 더 보여드렸다면, 6부의 갑작스러운 톤과 매너의 변화에 덜 놀라셨을 것 같다. 이 소재를 가지고 어떻게든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이 있어서 다소 설명이 부족하더라도 밀어붙인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호의 반응 중 ‘마지막까지 밀어붙이는 에너지가 느껴졌다’는 반응이 있어서 이 부분은 기분이 좋았다.
서둘러 마무리해야 했던 까닭이 있을까.
결말이 다소 급하게 전개된 건 사실이지만, 전반부와 후반부의 톤이 바뀐 것은 다소 의도한 부분이다. 처음 기획 자체가 꼬마비 작가의 원작에 대한 프리퀄의 느낌으로 출발했다. 엔딩의 모두에게 S 라인이 보이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풀어낼지 고민했다. 원작처럼 어느 순간 ‘뿅’하고 아무 이유 없이 S라인이 등장할 수도 있지만, 나는 이를 ‘현흡’과 ‘규진’이라는 인물을 통해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원작은 옴니버스 구성인데, 이에 변화를 주었더라.
원작은 주인공이 따로 없고 각각의 에피소드가 ‘S라인’이라는 세계관 아래 분절된 구조다. 사실 우리도 처음에는 옴니버스로 가려고 했는데 드라마화 과정에서 ‘하나로 끌고 갈 주인공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주인공에 걸맞은 에피소드를 선별하다 보니 6부작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이야기를 충분히 담을 시간이 조금 부족했던 것 같다.
S라인을 보는 매개체로 안경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 또 안경이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기준은 무언지.
시각적인 요소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보니, ‘보는 매개체’가 필요했다. 그 매개체가 안경이 될 수도, 카메라가 될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일상적이면서 직관적인 상징이 안경이라 선택했다. 안경의 전달 기준은… 딜레마에 놓여 있는 인물 혹은 딜레마가 생긴 사람에게 안경을 주어 시험하고 싶은 의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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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규진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하더라. (웃음) 그녀가 상징하는 바는. 또 규진이 바라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그녀가 바라는 세상은 모두가 S라인을 보는 세상이라기보다는 어떤 선택을 던져주고 각자가 결정하는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규진은 단순한 절대자 혹은 악마라기 보다 신과 인간 사이에서 선과 악의 선택을 던져주는 대리자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에덴 동산에서 뱀이 아담과 이브에게 선악과를 건네준 것처럼 말이다. ‘S라인’이 등장하게 된 것도, 이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망이 조금씩 모여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닐지 상상해 봤다. 마치 기후 변화가 자연스러운 변화일 수 있지만, 인간에 의해 미세하게 환경이 변해 가듯이, S라인 역시 사람의 욕망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 혹은 메시지는 무얼까.
‘S라인’을 본다는 것은, 우리가 타인의 사생활을 궁금해하는 마음이 확장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즉, 타인의 속내를 들여다보고 싶어하지만 정작 자신의 속내는 드러내고 싶지 않은 현대인의 심리 혹은 세태를 반영한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S라인의 CG 구현을 위해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S라인의 질감과 톤을 잡기 위해 계속 수정하다 보니 다른 드라마보다 편집하는데 좀 더 오래 걸렸다. S라인 이미지 구현을 위해 CG팀과 많이 논의했다. 너무 레이저처럼 선명하면 부자연스럽게 떠 있는 느낌이 들고, 반대로 매트하게 표현하면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에 그 중간 정도를 목표로 여러 시도를 했었다. 잘 보이면서도 크게 거슬리지 않는 방향으로 구현하고자 했다.
극 중 ‘지욱’의 S라인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웃음)
그가 매우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었다는 걸 표현하려 했다. (웃음) 범죄로 이루어진 행위가 아니라면, S라인 자체를 나쁘게 볼 이유가 없지 않나. 지욱은 자기의 S라인이 전부 드러난다 해도 개의치 않는 굉장히 쿨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형사의 딱딱한 이미지와 달리 여유롭고 열린 분위기로 가져가려 했고, 여기에 이수혁 배우가 지닌 특유의 공기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선이 많아지다 보니 질감이 달라지고, 자칫 덩어리처럼 보이기도 해서 작업하면서 고생 좀 했다.
칸국제시리즈 페스티벌에 초청되었고 음악상을 수상했다. 현지 반응은 어땠나.
오디토리움에 꽉 찬 관객이 끝나고 환호해 주셨다. 음악상도 수상할 수 있어 고마웠다. 국내에서는 호불호가 갈려서 아쉽다. (웃음)
에피소드별 출연한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하더라. 단편 영화나 연극 무대에서 경험을 쌓아 오신 분이 많다고.
감사하다. 배우 칭찬이 내겐 제일 큰 칭찬이다. 단편 영화를 찍을 때부터 함께한 워낙 잘하고 나름 유명하신 분들이다. 그래서 에피소드별 주인공으로 섭외하는 데 전혀 망설이지 않았다.
‘현흡’ 역의 아린 역시 연기로 호평받았다. 그간의 이미지와 전혀 다른 모습인데 어떻게 아린을 떠올렸을까.
고등학생 역할이어서 우선 나이가 어린 배우를 염두에 두고 찾았다. 아린 씨는 드라마에서 본 이미지가 밝고 청순했는데, 실제로 보니 단단한 면모가 엿보였다. 현흡이라는 캐릭터는 겉으로 강해 보이기보다 속이 단단한 ‘외유내강’형이라, 겉모습은 청순하길 바란 이유도 있다. 흥미로웠던 건 촬영이 진행될수록 아린 씨가 점점 현흡에 가까워지는 모습이 모니터를 통해 느껴졌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낯선 역할이라 인물에 의도적으로 몰입하려는 흔적이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현흡의 분위기가 묻어나와 나도 놀랐다. 아린 씨를 비롯해 함께한 배우분들 모두 너무 열심히 해주셔서,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중학생의 성장 영화인 장편 데뷔작 <보희와 녹양>(2018)으로 주목받은 바 있다. 시리즈는 처음 작업인데, 영화와 시리즈의 차이점이 있다면.
영화 작업 경험이 많은 팀과 함께해서 촬영 과정에서는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다만 각색 단계에서, 드라마는 1, 2부를 보고 시청을 이어갈지 결정하는 경우가 많아 앞과 뒤를 어떻게 열고 닫을지가 중요한 고민이었다. 영화가 한 호흡으로 진행된다면, 드라마는 에피소드 형식으로 분절되어 있어 띄엄띄엄 이어지는 호흡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이 어려웠다.
혹시 시즌2를 기대해도 될까.
원작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프리퀄로서 잘 수렴되기를 바랐다. 전혀 시즌2는 염두에 두지 않았고, 개인적으로는 닫힌 결말로 생각했다.
차기작이 있다면 소개를 부탁한다.
시리즈나 영화를 구분하지 않고 또 장르에 상관없이 열어두고 있다 < S라인> 전부터 준비하고 있는 판타지 멜로가 하나 있는데, 아직은 구체화되지 않았다.
사진제공. 웨이브
2025년 8월 12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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