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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사투를 끝내고 비상하다 <콘돌은 날아간다> 배정화
2013년 6월 5일 수요일 | 서정환 기자 이메일

영화 속 캐릭터가 강렬하다보니 실제로 볼수록 새롭네요. 막연하게 캐릭터로 유추했던 모습과는 많이 달라서요.
제가 그렇게 우울한 사람은 아니죠(웃음).

밝은 면과 우울한 면, 실제 성격은 어떤가요?
반반인 것 같아요.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갖는 편이에요.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진지하고 조용한 면도 있고 반면 굉장히 활발한 면도 있고 그래요.

연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굉장히 우연한 기회에요.

우연한 기회요?
어렸을 때 소위 얘기하는 길거리 캐스팅? (웃음)

어릴 때면?
고등학교 때요. 아무 생각 없이 시작했고, 입시 때가 돼서 자연스럽게 연극영화과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잘 몰랐어요. 연극영화과는 동국대에만 있는 줄 알았어요(웃음). 꼭 가야될 것 같아서 들어갔는데 한 학기 다니고 휴학했어요.

어떤 이유로 휴학을 했죠?
생각 없이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하고 싶어서 하는지, 왜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한 학기 정도 쉬었는데 해야 할 것 같더라고요. 그때부터 정말 열심히 다녔죠.

길거리 캐스팅된 후에는 잡지 모델 같은 활동을 한 건가요?
네, 그런 거였죠. 매체 쪽으로 활동하기 직전 입시 시즌이라 입시 준비와 드라마 활동 중에서 학교가 더 중요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학교를 선택해서 들어갔고 쉬는 동안 정리를 좀 했죠. 저랑 잘 맞지가 않았어요.

연기 자체는 경험을 거의 하지 못한 채 학교에 들어간 거잖아요.
거의가 아니라 전혀 없었죠. 정말 입시만 열심히 준비해서 입학했어요.

부모님들의 반대는 없었나요? 길거리 캐스팅되기 전에는 다른 진로를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요?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어요. 그리고 이미 고등학교 때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어서 다른 생각은 사실 안 해본 것 같아요.

예쁘고 늘씬하니까 주변에서 바람들을 넣었겠죠. 배우 하라거나, 미스코리아 나가라거나(웃음).
그죠(웃음). 그래서 전 제가 제일 예쁜 줄 알았어요(웃음).

스스로 배우 해볼까, 생각한 적도 있었겠네요.
그렇죠. 하면 재밌겠다. 딱히 다른 게 하고 싶었다는 생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부모님이나 선생님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대학도 그렇고 다른 것도 생각해보지 않겠냐고 걱정을 하셨던 것 같아요.

휴학하는 동안 다시 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잘해보고 싶었어요. 배우라는 직업, 연기하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아무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될 수 없는 것이 배우라고 많이 말씀들 하시잖아요. 이 세상에 소중한 직업들이 많이 있지만, 배우는 내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그게 지금까지도 연기를 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자질이나 끼 같은 것들도 객관적으로 평가해봤나요?
자질이 있는 줄 알았죠(웃음). 자질이 너무 없는 것 같진 않고요, 특출 나게 있는 것 같지도 않아요. 그래서 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요.

예쁘고 끼도 없는 것 같진 않았는데 막상 학교에 와보니 예쁘고 끼 많은 친구들이 많아서 상대적 비교내지는 박탈감 같은 것도 들진 않았나요? 어렸을 때부터 경험도 하고 준비도 많이 해서 온 친구들이 대부분일 테고, 평생의 목표나 꿈으로 배우만 생각하고 살아온 사람들도 많았을 테니까요.
그런 생각은 없었어요. 이미 마음을 먹었을 때부터 평생 이거 하나 잘하면 내 인생은 성공한 삶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회사도 정리했고 제대로 한 번 해보고 싶었어요. 물론 예고 출신 친구도 있고 예쁜 친구도 너무 많죠. 하지만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진 않았어요.
대학 다닐 때는 계속 학업에 열중한건가요?
심하게 열중했죠(웃음). 계속 공연을 하니까 밤새 연습하고 아침에 또 수업 듣고, 거의 그 생활이었죠.

그런 과정 속에서 잘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왔나요?
굉장히 힘들죠. 체력적으로도 금전적으로도 힘들고 연기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고 잘하기가 쉽지 않아요. 연기는 남에게 보여주는 거라서 내가 스스로 못한다고 생각할 때에도 해야 하잖아요. 자신감도 떨어지고 그걸 이겨내야 하니까 굉장히 고통스럽고 힘들었어요. 그래도 다른 생각을 해본적은 없었어요. 어떻게든 연기를 잘해보고 싶었어요.

지금껏 출연한 연극 중에서 대표작이라고 생각이 드는 작품은 어떤 게 있을까요?
조재현 선배님의 연극열전에서 최근에 한 ‘오월엔 결혼할 거야’라는 작품이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사실 2009년에 연기를 안 하려고 다른 나라로 비자를 받아서 나가다가 인도에 잠시 여행하려고 들렸는데 예상보다 오래있었어요. 그 곳에서 다시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많이 들었고, 연기를 다시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래서 다 접고 한국으로 들어오자마자 오디션을 보고 참여한 작품이었는데 장기공연이었어요. 그동안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는 것 같아서 장기공연을 선호하지 않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장기공연을 하고 재공연을 하고 계속 반복하는데도 할 때마다 처음 하는 기분으로 새로웠던 것 같아요. 연기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많이 가질 수 있었고, 신나고 재밌었어요. 결과적으로 그 작품에서 조재현 선배님과 인연이 된, 많은 좋은 영향을 준 작품이에요.

인도에 다녀온 이후로 연기하는데 있어 달라진 부분이 있을 거잖아요.
굉장히 많이 달라졌어요.

주변에서 봤을 때도 달라짐이 느껴질 정도의 큰 변화였나요?
네. 가기 전이랑 갔다 온 후랑 사람이 풍기는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얼굴이 달라지거나 그런 건 아닌데(웃음).

그렇겠죠. 인도에서 수술하고 온 건 아닐 테니(웃음).
제대로 씻지도 못했는데요(웃음).

연기를 그만두고 다른 나라로 갈 마음을 먹었다는 건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겠죠.
학교 들어가서 그때까지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다른 거 생각 안하고 많은 것들을 포기했죠. 열심히 하고 싶어서요. 그런데 막상 졸업해서 사회에 나갔는데, 내가 정말 큰 것을 바란 건 아닌데, 스타가 되겠다거나 연예인이 되겠다거나 생각한 적도 없고 큰 돈을 벌겠다고 생각한 것도 아닌데, 내가 쏟은 노력과 시간과 돈에 비해 돌아오는 것들이 충족시켜주는 게 너무 없다는 회의감이 굉장히 컸어요. 그런 생각이 계속 쌓이다보니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는지를 사실 잊어버렸던 것 같아요. 그냥 이걸 배웠으니까 한다는 식으로 평생 할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렇게 제대로 못할 바에는 안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때까지 본인의 연기에 대한 관객, 동료, 선생님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괜찮았어요. 지금도 잘한다고 생각은 절대 안하거든요. 저와 작품을 같이 한 분들은 꼭 다시 한 번 하자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그런 부분에 대한 자신은 있었어요.

충족시켜주는 것들이 전무한 상황에서 연기에 대한 평마저 좋지 않았다면 지칠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래도 그 부분이 힘든 것들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지는 않았을까요?
그럼요. 하지만 결정적 계기는 대학원에 다니면서 공연을 했는데, 제가 생각했을 때 좋지 않았어요. 학업과 연기 둘 다 욕심을 내다보니 둘 다 힘들었던 것 같아요. 공연을 하다보면 매체 쪽에서 가끔 연락이 오는데, 다른 요인들에 의해 좌절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연극은 연기만 잘 하면, 이미지만 괜찮으면 진행이 되는데 다른 매체들은 꼭 그렇지만은 않더라고요. 굳이 다른 매체에서 활동하려고 열심히 찾고 그러진 않았지만, 좋은 기회들이 왔을 때 저를 설레게 만들었다가 결국 좌절되는 경우들, 그런 것들이 한꺼번에 다 겹쳤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갇혀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시키는 대로, 하라는 대로 연기만 열심히 했고 졸업한 후에도 그렇게만 살았거든요. 좀 더 다양한 시각을 가질 필요도 있었고 다른 것들에 대해 생각해봐야할 것도 같았고 여러 가지 복합적인 생각이 들어서 외국에 나가 보기로 결심한 거였어요.
<콘돌은 날아간다>는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됐다고 들었어요.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목적이 크게 있었던 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디션을 봤네요.
조재현 선배님께 전화가 왔어요. 내가 영화를 하는데 오디션을 하고 있으니 너도 생각 있으면 보라고. 시놉을 봤는데 너무 하고 싶었어요. 그냥 이건 내 거라는 생각이,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그때부터 확실하게 들었어요. 너무 설레었어요. 살면서 정말 그런 큰 설렘은 처음이었어요. 나를 끊임없이 설레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것들 때문에 저는 살아가는 의미가 있거든요. 그래서 오디션 정말 열심히 임했어요. 사실 오디션을 잘 못 보는 배우에요. 많이 본 적도 없고, 오디션이 제일 힘들어요(웃음). 그걸 알기 때문에 굉장히 준비를 많이 해갔어요. 긴장하면 실력 발휘를 못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준비했던 것 같아요.

전에 다른 영화 오디션을 본 적은 있었나요?
거의 없었어요. 이번 영화도 어떻게 보면 졸랐어요(웃음). 누가 보라고 한 적도 없고 프로필을 돌린 적도 없고 어떻게 하는지를 몰랐어요.

<콘돌은 날아간다> 오디션은 어떻게 준비했나요?
대사를 주셨어요.

극중 대사로요?
아니요. 전혀 다른 대사요. A4 반 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인데 정말 준비를 많이 했고, 오디션을 정말 잘 봤어요(웃음).

캐릭터 설정을 어떻게 하고 갔나요?
캐릭터 설정보다는 대사에 맞게 진정성 있게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그 부분은 기본적으로 제가 갖고 있는 생각이지만, 이번에는 특히 더 신경 썼어요. 감정신도 대사가 길었기 때문에 단조로워질 수 있어서 계산을 철저하게 했어요. 분석을 하나하나 다해서 그 분석에 맞게 내 감정이 자연스럽게 이끌려 나올 수 있게 끊임없이 연습을 많이 했어요.

만장일치로 배정화를 선택했다던데요.
오디션을 정말 잘 봤거든요(웃음). 처음부터 이 작품은 내거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오디션을 보고 내가 당연히 됐어(웃음), 생각했죠. 근데 사실 처음에는 제가 안됐어요. 연기적인 부분에서는 잘한다고 칭찬 많이 해주셨는데 생각하는 이미지와 다르다고 해서 처음에는 안됐다고 연락이 왔어요.

극중 캐릭터에 비해 너무 예뻐서 그랬을 거예요(웃음).
아니에요(웃음). 처음에는 지금 영화와 다른 내용이었어요. 기본적인 모토와 신부와 여자의 이야기는 비슷한데 다른 이야기였어요. 그 이미지와 제가 맞지 않았나봐요.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라고 말은 했지만 밑도 끝도 없이 다시 나에게 올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그 기간이 한 달 넘게 있었는데 미팅도 몇 번 더 했고 부산도 내려갔고 결국 내 것이 된 거죠.

시나리오가 바뀌면서 캐스팅이 된 건가요, 아니면 캐스팅이 되고 나서 시나리오가 바뀐 건가요?
후자였어요. 감독님과 같이 부산 내려가서 촬영 한 달 전부터 작업을 했어요.

캐릭터 설정부터 많은 이야기를 나눴겠어요.
그렇죠. 저는 처음이니까 더욱 준비를 많이 했죠. 서로 걱정을 많이 했죠(웃음). 감독님은 감독님 나름대로 제가 첫 영화니 얼마나 걱정을 많이 했겠어요(웃음).

어쨌든 감독님 선택이잖아요(웃음).
저도 그렇게 얘기했어요. 그것도 감독님 능력이라고(웃음). 그래서 사전작업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저도 어떤 상실의 아픔을 겪은 적이 있기 때문에 제 경우를 많이 얘기했어요. 연미가 죽은 후 계단에 앉아서 전화기를 보다가 전화 거는 모습 같은 건 실제 제 경험이거든요.
가족이나 지인을 떠나보낸 경험이 있나보네요.
아빠가 돌아가신지 10년이 됐어요. 가장 가까운 사람을 상실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때 내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를 계속 이야기했죠. 메일로도 엄청 많이 보냈고요. 그런 부분에서 감독님도 처음이지만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좀 하셨던 것 같아요. 그런 경험들로 인해 저도 연기하는데 있어 확신을 가지고 할 수 있었어요. 의심하지 않고 처음부터 밀고 나가는 힘이 있었던 것 같아요. 감독님, 촬영감독님이 도와주시고 저에게 확신을 주셨던 거죠.

표정과 시선처리, 걸음걸이 등으로 감정을 드러내야하는 연기가 대부분이라 쉽지 않았을 거예요.
쉽지 않았죠. 자칫 잘못해서 그런 척하는 연기가 돼버리면 다 깨지는 거잖아요. 대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몰입하고 있지 않으면 안됐어요. 한숨소리 하나, 시선 하나에도 감정이 뚝뚝 묻어나오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촬영이 없는 날도 그 감정에서 깨어나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계속 생각을 하려했고요. 만들어지지 않고 자연스레 나올 수 있게 연기하고 싶었어요.

카메라가 고정된 상태에서 진행된 촬영이 많아요. 영화에 대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았을 텐데, 오롯이 배우가 실연을 통해 완성해야하는 혼자만의 힘든 싸움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 연기, 카메라 연기를 처음 제대로 접해봤는데 그렇더라고요. 외롭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감독님과 스탭들이 늘 배려해주는 건 감사하죠.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 안에서 오롯이 내가 혼자 해내야한다는 부담감이 정말 컸어요. 내 역할을 잘 해내지 못하면 여러 사람에게 큰 피해가 간다는 책임감도 부담이 됐고요. 사실 그런 부분이 가장 힘들었어요. 그걸 티내지 않고 담담한 척 혼자 끊임없이 감내하면서 연기를 해야 했어요. 카메라 앞에서 감은 전혀 없고, 연기도 울거나 토하거나 그런 쉽지 않은 것들이고(웃음), 액션 소리와 함께 해내야하니 그런 여러 가지 것들이 복합적으로 쉽지 않더라고요. 이번에 제대로 알았죠(웃음).

혼자 끌고 가는 연기가 많다보니 여러 모로 공부가 됐을 작품이었을 거예요. 영화는 신인이지만 이렇게 감정을 담아내고 끌고 가는 걸 보면 연극에서 다졌던 내공이 보통은 아니었던 거죠.
그만큼 긴장과 준비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수현의 뒷모습을 담은 장면들도 많더라고요.
등 연기? (웃음)

(웃음) 어떻게 연기했을지 궁금하기도 했어요. 마냥 가만있을 수도 없잖아요.
감독님께서 가만히 있으라니까 진짜 가만히 있더라고(웃음) 말씀하셨던 기억이 나네요. 가만히, 멍하니 있는 장면들이 많잖아요. 그 안에서 입체적으로 인물이 보였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냈어요. 가만히 있어도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정서가 흘러간다는 것을 드러내보여서 하나의 완전한 인간으로 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겁을 많이 먹어서(웃음) 그런 여러 고민을 했고, 그런 고민들이 조금 보이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촬영은 순서대로 진행됐나요?
웬만하면 그렇게 해주시려고 노력하셨는데 상황이 그렇지만은 않았죠.

첫 촬영은 어떤 장면이었나요?
배 위에서 토하고 하는 장면이었어요. 추워 죽는 줄 알았어요(웃음).

그 장면은 동생의 시신을 확인한 후 짧게 삽입된 장면인데 어떤 의도였나요?
불가항력, 내 의지와 상관없는 것들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아요.

출근하면서 머리를 묶는 것도 의미 부여가 되는 설정인가요?
뭔가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노력은 끊임없이 하는 거죠.

헤어스타일은 처음부터 그렇게 설정하고 들어간 건가요? 우울해 보이는데 한 몫 한 것 같은데요(웃음).
청승맞아 보인다고 하죠(웃음). 자연스럽게 아무 것도 거의 안했어요.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 정서를 진정성 있게 연기하려고 했지 설정 자체를 대단하게 신경 쓰진 않았던 것 같아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할 때는 머리를 묶어야겠다, 이런 정도? 이 신은 뒤에 붙으니까 좀 더 핼쑥하고 말라야겠다, 이런 정도의 계산이었어요. 정서에 따라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신부님이 집에 왔을 때 연미로 착각해서 끌어안는 신이 있어요. 영화에서 수현이 유일하게 활짝 웃는 신.
감독님이 수현은 이 영화에서 단 한 번도 웃지 않는다, 한번은 웃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셔서 그 신을 만드셨던 것 같아요.

웃지 않다가 갑자기 웃으려니 표현이 잘 되던가요?
역시 힘들었겠죠(웃음). 상상을 많이 하고 그 상황에서 즉흥적으로 나올 수 있게 했던 것 같아요.

그 한 번의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저 여자에게도 웃음이라는 것이 있구나, 활짝 웃을 수 있는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유골을 뿌리고 난 후 포장마차 신에서 대사가 많이 나오더라고요. 대사를 치면서 숨을 규칙적으로 들이마시던데 평소 연기하던 버릇인가요? 아니면 설정인가요?
반반이었던 것 같아요. 그 상황을 생각하고 몰입했을 때 숨쉬기도 힘들고 말하기도 힘들고 술도 한잔 했고 그런 호흡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반은 흐느끼는 느낌으로 그렇게 연기했어요. 일단 제가 생각한 것을 다 하고 나서 감독님이 결정해주셨던 것 같아요. 그렇게 했는데 감독님이 아무말씀 안하셔서 그렇게 했어요(웃음).
파격적인 노출을 떠나서 모텔에서의 롱테이크 신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수현이라는 인물이 힘들어하고 이를 치유해보려는 과정 자체는 납득할 수 있지만, 신부에게 위안을 받는 것을 넘어 섹스를 한다는 결과 자체를 어떻게 관객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을까 고민했을 것 같아요. 본인 스스로도 캐릭터에 동화되고 이해가 됐을 때 연기하기가 더 수월했을 테니까요.
그런 고민이 없었어요. 그렇게 됐어요. 저도 되게 놀랐어요. 다른 신들은 많이 준비하고 생각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이 신은 도대체가 어떻게 준비해야할지, 준비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막연히 두려워만 하고 있다가 그냥 몰입하고 어떻게 되는지 보자, 그런 마음이었어요. 조재현 선배님과 초반에 블로킹 정도만 살짝 맞추고 리허설도 할 수 없으니까 그냥 했던 것 같아요. 하나하나 행동을 맞추지도 않았어요. 예를 들어 키스를 하잖아요. 키스를 하고나서 다음에 어떻게 할지 정하거나 그런 게 전혀 없었어요. 키스를 하고 몸을 떼려는 찰나에 신부님이 덥석 잡으시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다 즉흥적으로 이뤄졌고 그걸 제가 또 받아서 다음 연기를 하게 되더라고요. 호흡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영화 전체의 메시지로 보면 수현은 신부에게 시련과 고뇌를 주기 위한 일종의 장치겠죠. 그런 의미에서 신부의 감정으로 영화를 보면 무리 없이 이해되던 것들이 인터뷰를 준비하고 수현의 감정으로 영화를 보다보니 마냥 자연스럽게 넘어가기에는 의문이 남더라고요. 과연 수현이 선택할 수 있는 다른 행동은 없었을까, 라는 의문.
그건 제 3자 입장에서 수현을 봤을 때 판단하는 부분인 것 같아요. 성적인 차원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옷을 벗고 섹스를 하는 것들이 욕망으로 전혀 생각되지 않았어요. 인간으로서 수현이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것이었던 것 같아요.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라도 해야만 했던 것 같아요.

키스를 하면서도, 옷을 벗고 누우면서도, 섹스를 하면서도 계속 울먹이는 수현의 모습이 뇌리에 많이 남았어요. 그런 울먹임 속에서도 연기가 이어지는 걸보니 계산된 연기는 분명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렇게 되더라고요. 울먹임이라는 건 사전에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나올 줄은 몰랐어요. 계산을 하지도 않았고 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어느 순간 잦아들었다가 어느 순간 다시 나오더라고요. 규칙적이지 않게 내 안에서도 끊임없이 감정이 움직였던 것 같아요. 그 감정에 따라 울음소리가 더 터지듯이 나왔다가 이어지듯 나왔다가 잦아들었다가 그런 부분이 생겼던 것 같아요.

내가 연기하고 있구나, 촬영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은 없었나요?
정말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9분, 그렇게 시간이 많이 간 줄도 몰랐어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조금이라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면 스탭들도 많았으니 부자연스럽거나 몸을 사리는 느낌이 있었을 거예요. 영화를 통틀어 가장 몰입된 순간이었어요. 하고 나서도 그렇게 연기하고 나면 뿌듯하다고 해야 하나, 시원하다고 해야 하나, 그랬던 것 같아요. 컷하고 나서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하겠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다행히 오케이 사인이 나서 한 번에 갈 수 있었어요.

수현의 마지막 신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런 대사를 치잖아요. “이곳의 하늘은 갇혀있네요. 저처럼. 신부는 누구에게 고해하고 용서받나요?”
지금 들으니까 너무 창피하다(웃음).

제가 연기해서 그래요(웃음).
아니요, 무슨 시도 아니고(웃음).

영화의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대사잖아요. 다른 대사들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주였다면 이 대사는 그런 부분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해 전달하려 한 건가요?
그렇죠. 의미를 부여해서 정확하게 전달을 해야 하는데 갑자기 대사가 너무 많아졌어요(웃음). 다 중요한 신이지만, 첫 등장과 마지막 신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주인공이 아니니까 기능적으로 제 역할을 잘해내려면 처음에 임팩트 있게 등장해서 사건을 한 번 일으키고 잘 마무리해서 빠져야 저도 살고 영화도 사는 거니까요. 중요한 대사고 마무리하는 대사라 그런 생각이 있었는데, 전날 대사를 받아서 다음날 아침에 말 안하는 연기하다 갑자기 하려니까 힘들더라고요. 구어체 대사도 아니었고요. 조재현 선배님이 한마디 해주셨는데 확 와 닿았어요.

어떤 말을 해주던가요?
너무 의미를 전달하는데 신경 쓰지 말고 편한 상태에서 말하듯이 해야 될 것 같다는 말씀이었어요. 조재현 선배님은 내가 별 말도 안했네, 하셨지만 그 상황에서 그 한마디가 저에게는 확 와 닿았어요. 정말 편안하게 내가 하고 싶은 말로 다시 한 번 되새기고, 대사가 길어서 좀 나누어 미묘한 뉘앙스 차이를 줘야할 것 같아서 그 부분을 신경 쓰고 했던 것 같아요.

극중 대사 칠 때와 실제 목소리 톤이 많이 달라요.
목소리뿐만 아니라 얼굴도 다르고요(웃음).

목소리 톤은 변화를 줄 수는 있지만 자연스럽게 내뱉고 하는 것들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사람이 달라지면 따라가는 것 같아요. 그런 것도 생각을 했죠. 차분하고 호흡이 절대 뜨지 않고 밑으로 깔고 해야겠다는 생각은 좀 했죠.
쉽지 않은 연기를 결국 해냈어요. 잘 한 부분도 있고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도 있겠지만, 처음 주연으로 스크린 연기를 소화한 소감은 어떤가요?
부산영화제에서 영화를 처음 봤어요. 걱정이 너무 많이 됐죠. 까만 화면에 조재현 이름이 나오고 그 다음에 배정화 이름이 나왔을 때 너무 울컥한 거예요. 부산영화제, 게다가 갈라 섹션에 초대돼서 큰 극장에 꽉 찬 사람들과 함께 음악도 아무것도 없이 큰 스크린에 제 이름이 나오는 걸 보는 순간 너무 감격스럽더라고요. 상상도 못했어요. 내 얼굴이 나오니까 너무 부끄러울 것 같다는 생각, 영화가 어떻게 나왔을지 기대되면서 내 연기는 걱정되는 상황이었거든요. 영화를 보고나서 부끄럽지 않게 당당할 수 있고 내 믿음에 반하지 않는 그런 작품을 만들어주신 것에 대해 너무 너무 감사할 일이죠. 행운이었던 것 같고요.

영화를 보면서 걸렸던 장면 같은 건 없었나요? 아니면 만족스러웠던 장면도 있었을 테고요.
사실 노출 있는 장면은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냥 내 얼굴 나오는 것도 못 봐주겠는데 다 벗고 나오는 걸 어떻게 보고 있지(웃음). 근데 생각보다 괜찮았어요. 내가 눈뜨고 볼 수 있을 만하더라고요(웃음). 저는 일단 영화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계속 저만 보고 있으니까요. 잘했다, 이런 것보다 열심히 했구나, 절실했구나, 이런 게 좀 느껴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영화를 본 분들도 좋은 이야기를 해주시는 것 같고요.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죠. 생각보다 편집도 많이 됐더라고요(웃음). 말씀하신 것처럼 어쨌든 해냈으니까 저에게 수고했다고 얘기해주고 싶었어요.

수고하셨어요(웃음).
고맙습니다(웃음).

이번 작품을 통해 얻은 게 있다면요?
가장 큰 건 영화라는 것, 영화를 하는 사람들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됐어요. 촬영을 스물아홉에서 서른이 되는 시점에 했는데 영화라는 새로운 것이 저를 또 설레게 하고 살아가는 욕심, 꿈을 크게 갖게 해줬어요. 그동안 영화에 대해 영화를 하는 사람들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많았어요. 그래서 굳이 해보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고요. 첫 영화고 어쨌든 무사히 잘 끝냈지만, 다른 분야에서도 다양한 것들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 또 다른 출발점에 섰다는 생각을 하게 해줘서 굉장히 고맙죠.

앞으로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지금 하고 싶은 작품이 하나 있는데 시간이 지나봐야 알 것 같아요. 그리고 공연을 한지가 오래돼서 공연을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칫 잘못하면 제가 다른 생각을, 조금 중심을 잃을 것 같더라고요. 다시 한 번 더 집중하고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필요할 것 같아요. 무대 연기 해본지도 오래돼서 하고 싶기도 하고요. 공연을 다시 한 번 하면서 연기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만약 지금 시점에 좋은 캐릭터의 드라마가 하나 들어오면 할 의향이 있나요?
당연하죠. 매체나 이런 걸 가리지 않고 다양한 것들을 많이 해보고 싶어요. 드라마도 카메라 연기지만 또 다를 테고요. 영화도 또 하고 싶고, 공연도 당연히 하고 싶고, 다양하게 많은 걸 하고 싶어요.

배우로서 생각하는 목표가 있다면요?
나이가 들어도 괜찮으니 언젠가는 안정적으로 연기를 잘할 수 있는 장인이 됐으면 좋겠어요. 기술이잖아요. 전문직이고(웃음) 기술자라고 하는데, 그 기술을 잘 사용해서 돈값을 하는 배우가 돼야겠죠. 아직은 잘할 때도 있지만 못할 때도 있고 많이 들쑥날쑥한 것 같아요. 안정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건 잘 할 수 있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상징적으로 할리우드나 칸도 갔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한국에서 관객이나 관계자 모두에게 인정받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어차피 100살 넘게 살 건데(웃음), 언젠가는 상징적으로 칸이든 할리우드든 갈 수 있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죠.

2013년 6월 5일 수요일 | 글_서정환 기자(무비스트)
2013년 6월 5일 수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

1 )
zoowoojin37
당신은 누규? 첨 보는 인물인데 신선하네. 영화계에 블루칩이 될 인상이네^&^   
2013-06-11 03:0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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