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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도, 여자도 아닌 그저 당신① <소녀와 여자> 김효정 감독
2016년 6월 17일 금요일 | 이지혜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이지혜 기자]
정복자는 보물을 약탈한다. 그리고 약탈된 보물을 지키고자 창고를 세우고 그 문을 단단히 봉쇄해둔다. 다른 정복자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다. 문제는 그 정복지가 ‘여성의 몸’이 될 때다. 남성을 정복자로 규정지은 부계사회의 아프리카에서, 여성의 몸은 정복지가 됐다. 다른 남성에 침탈당할까 봐, 혹은 여성 스스로가 달아날까, 정복자는 사뭇 두려웠다. 그래서 여성의 클리토리스를 잘라 성적 쾌감을 도려내고 그들의 성기를 묶어 순결을 입증했다. 순결이 입증돼야만 어른 여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른바 할례다. 김효정 감독은 아프리카의 사막을 달리며 그녀들의 삶을 봤다. 타인에게 몸이 정복되고, 타인에 의해 소녀와 여자의 정체성을 허락받는 그녀들의 삶이 안타까웠다. <소녀와 여자>는 그 안타까움이 빚어낸, 한국 최초의 아프리카 여성 할례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실제 부족민 인터뷰가 많더라. 통역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졌나?
우리 팀은 나, 촬영감독, 부족 언어를 영어로 통역해주는 케냐 친구, 영어를 한국어로 통역해주는 통역사로 구성돼 있다. 통번역으로 자막을 만들 때는 무척 신중을 기했다. 의미가 오역될까 봐(웃음). 정말 힘들더라.

저예산 독립영화잖나. 통역사에게 인건비를 지급하는 것도 힘들었겠다.
다행히 케냐, 에티오피아에서 온 현지 친구들에게는 인건비를 제대로 지급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한국인 촬영감독이나 번역가에게는 인건비를 거의 주지 못했다. 뜻을 함께 해준고마운 친구들이다. 돈을 벌면 꼭 은혜를 갚아야지(웃음).

우리나라에서 할례를 다룬 영화는 <소녀와 여자>가 최초다.
그렇다. 방송 다큐멘터리가 있긴 했지만 영화로는 처음이다.
왜 아프리카의 여성 할례를 다뤘나?
운명인 것 같다(웃음). 소설 ‘어린 왕자’를 보면서 사막을 동경하던 게 시작이다. 무작정 사막에 가고 싶었다. 그러다 2000년에 <무사>를 촬영하면서 꼬박 한 달을 중국의 사막에서 머물렀다. 그때는 중국의 사막이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사막인 줄 알았지(웃음). 그런데 한국에서 사하라 사막 마라톤을 그린 다큐멘터리를 봤고, 2003년에는 내가 사막을 달리고 있더라. 한 번 완주하고 나니 계속하게 돼서 나중에는 6번의 사막 마라톤에 참여해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웃음).

많은 사람들이 동경하는 이야긴데(웃음). 멋지다.
그런데 그렇게 달리다 보니, 그곳에서 고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 문득 눈에 들어오더라. 그러다 <데저트 플라워>를 봤다.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동안 난 내 자아를 찾을 생각만 했지, 타인의 삶에 귀 기울일 생각은 하지 못했던 거다. 뜻이 맞는 친구들, 아프리카 동호회, 사막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여성 할례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찍기로 마음먹었다.

쉐리 호만 감독의 <데저트 플라워>가 당신의 인생을 바꿔놓은 셈이다.
여성 할례라는 이슈가 있다는 것만 알았지 이렇게 상세하게 알게 된 건 처음이었다.

그런데 당신의 다큐멘터리 <소녀와 여자>에서는 아프리카인들이 행복해 보인다.
기아에 시달리면서, 파리가 얼굴 위에 앉아 있는 아프리카인의 모습을 찍고 싶지 않았다. 물론 힘겹게 사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처럼 밝고 깨끗하고 예쁘게 사는 이들도 많다. 우리가 지금까지 봐 왔던 아프리카가 전부가 아니란 걸 알리고 싶었다.

확실히 피 묻은 모습도 없더라.
이제 피 흐르는, 야만적인 영상의 시대는 끝났다. 한국에서야 여성 할례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희귀하지만 해외에서 여성 할례는 이미 흔한 소재다. 그만큼 관련 영상도 많아서, 유튜브에서도 피를 흘리면서 고통을 참고 있는 사람들의 영상을 찾을 수 있게 됐다. 당시에는 상황을 전달해 대중의 관심을 끄는 게 목적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이젠 할례 문제를 다른 시선에서 볼 때다. 여성 할례, 즉 FGM을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해야 하는 거다.
할례 하는 장면을 직접 보기도 했나?
굳이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물론 돈을 지불하고 억지로 참관할 수도 있었겠지. 그런데 이들의 입장에서 할례는 인생이 걸린 신성한 의식이다.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할례 하는 동안 집 바깥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촬영했다. 영화 오프닝이 그것이다. 소녀가 할례 할 동안 바깥에서 사람들이 기다리다가, 할례를 마치고 소녀가 울면서 나오면 마을 사람들 전체가 춤을 추면서 언덕을 내려온다. 이때 소녀의 다리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다.

알아채지 못했다. 할례 하기 전에 겁을 먹은 표정인 줄 알았는데.
소녀가 걷고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을 거다. 그렇다고 CG로 피를 빨갛게 칠하고 싶지는 않았다. 피를 강조하긴 싫었으니까.

앞서 다른 시선에서 여성 할례를 다루고 싶다고 말했다.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여성 할례 문제에 다가갔나?
사실, 맨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른 채 아프리카에 갔다. 그러다 촬영을 하면서 ‘결국은 교육’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교육 여부에 따라 할례를 보는 부모와 자식의 시선이 달라지거든. 할례 반대자의 경우, 대부분 중등 교육 이상 받은 사람들이다. 반면 할례 찬성자들은 대부분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했다. 나도 공부하지 않고 빨리 시집가서 아이를 낳았으니, 너도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영화에서는 이를 가리켜 ‘모계 복수’라 부르더라. 충격적이었다.
그렇지. “내가 했으니까 너도 해”라는 논리다. 여자는 남자 때문에 할례를 한다고 남자 탓을 하고, 남자는 엄마가 문제라며 여자 탓을 한다. 그런데 사실 이건 전통을 따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지역 풍토 때문이다. 할례를 하지 않으면 가족 전체가 왕따가 되거든. 이들의 입장이 이해되더라. 그래서 양적으로나마 할례 찬성자들에게 영화의 절반 가량을 할애했다.

모두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할례 전통을 고수하는 이유가 뭘까?
이들은 할례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할례 찬성자들은 가정의 화목, 행복을 목표로 둔다. 비록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아프리카의 많은 부족이 일부다처제 사회다. 세 명의 아내가 자녀를 셋만 둔다고 해도 이미 가족 구성원이 남편까지 13명에 달한다. 이때 누군가 남편을 독점하려고 질투한다면 가정의 평화가 깨지지 않나. 그래서 이들은 소녀 때 클리토리스를 잘라 버린다. 클리토리스를 잘라내면 성감을 느끼지 못할 테고, 성적 쾌락을 느끼려 남편을 독점하지도 않게 될 거라는 생각에서다. 아내들이 남편을 두고 싸우지 못하도록 막는 거지.

하하. 성적 쾌감이 독점욕과 사랑의 본질은 아니지 않나. 클리토리스를 잘라낸다고 독점에 대한 본능이 사라질까?
그건 그들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웃음). 다른 이유도 있다. 옛 아프리카 남자들은 몇 달씩 전쟁이나 사냥을 나가야 했다. 그런데 몇 달 만에 사냥을 나갔다 오니 여자들이 성욕에 차 있더라는 거다. 만일 여자들이 성욕에 바람을 피우거나 혹은 다른 부족의 침탈로 겁간을 당하면 가정이 무너진다. 그래서 이들은 결혼을 한 여자라도 할례를 해서 음부를 꿰맸다. 전쟁을 다녀오면 면도칼로 음부를 다시 째고 삽입을 하는 거다.

제 아무리 음부를 꿰맸다고 해도 바람을 피우는 거나 겁간당하는 건 막을 수 없지 않나.
만일 그렇게 되면 여자는 버려진다. 할례 자체가 순결의 의미를 띠고 있거든. 내가 취재한 부족은 클리토리스만 제거하는 부족이었지만 다른 부족은 소음순, 대음순까지 다 자르고 음부를 봉쇄한다더라. 다 자르고 성기를 꿰매면 살이 아물면서 붙지 않나. 그러면 남자가 여자와 첫날밤을 보내면서 그 붙은 살을 째고 삽입을 한다고 했다. 지금도 아프리카 지방에서는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 문제는 할례를 아무리 불법으로 정해도 외국 사람들이 가서 막을 수가 없다는 거다. 우린 결국 지금 여기에 살고 있으니까. 결국 그들 스스로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외국인은 그들이 스스로 깨닫도록 돕는 수밖에 없지.

그러면 결국 교육이 답이라는 건데, 이들은 자녀를 학교에도 안 보내잖나. 학교에 가면 처녀성을 해친다면서.
사실 자녀 교육보다는 부모 교육이 더 절실하다. 또한 여자보다는 남자의 의식 개선이 더 중요하다. 남자가 변해야 여자들이 함께할 수 있다. 부계사회니까.
적어도 여성 할례에서만큼은 남자에게 손해인 건 없잖나. 그들에게 직접 피해가 가지 않는데 어떻게 의식을 개선한다는 건가? 다른 사회 문제가 갖는 딜레마이기도 하다.
순결의식이 개선되지 않는 이상, 그들 사고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가 힘들긴 하지. 나이로비 대도시에서 대학교까지 공부한 친구가 두 명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자기는 아무리 그래도 할례를 한 여자를 원한다고 하더라. 여자라면 당연히 할례를 해야 한다는 거다. 영화에서 보면 학교 수업시간에 남녀가 사랑을 즐길 수 있는 게 섹스라고 가르친다. 남녀의 즐거움을 우선할 것이냐, 순결의 가치를 더 중시할 것이냐의 생각 차이가 관건이다.

아무리 아프리카라고는 하지만 대도시잖나. 서구식 삶의 양식이 지배적인 곳에 살면서도 할례를 강조하나.
아프리카 사람들은 그 밖의 다른 지역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잘 알지 못한다. 특히 아이들은 전 세계 모든 여자가 할례를 하는 줄 안다. 그래서 너네만 할례를 한다고 말해주면 몹시 놀란다.

너희만 할례를 한다고 말하면, 그들이 뭐라고 답하나?
“그럼 넌 여자가 아니잖아”라던데(웃음). 할례를 한 소녀들은 내가 나이가 더 많아도, 날 소녀로 취급한다. 본인이 더 성숙한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성기를 절제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의 여부로 소녀와 여자가 달리 규정된다. 할례를 하지 않아도, 너 자체가 아름다운 여자란 걸 깨닫기 바라는 마음에서 영화를 만들었다.

할례를 권유받기도 했나(웃음)?
그럼! 그때 여자 셋이 갔었거든. 할례 시술자에게 우린 할례를 하지 않았다고 말하니까, 우리 셋이 할례를 하면 시술비를 싸게 받겠다더라. 내가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니까 깜짝 놀라면서,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안 했냐고, 어서 할례를 하고 부족민과 결혼하라던데(웃음).
관광지가 아닌 아프리카의 시골, 그것도 폐쇄적인 부족 마을을 방문했다. 위험한 상황은 없었나?
1차 3개월 촬영 때는 괜찮았고 2차 촬영 차 방문했을 때는 좀 위험했다. 지도자 어른께 취재를 허락받았는데 우리를 못 마땅히 여기는 다른 어른이 우리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촬영 감독 두 명이 칼로 위협당하고 몽둥이로 맞았다. 촬영 감독이 여자인데 머리에 주먹만 한 혹이 생겼더라. 다행히 마을 주민 한 명이 촬영감독이 정신을 잃었을 때 숨겨줘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나 보다.
풀숲에서 나무도 해야 하다 보니 남자들은 모두 긴 칼을 지니고 있다. 그 칼을 흔들면서 위협했다더라. 다행히 살기 넘치는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어른에 동조해 칼로 위협은 하지만 웃으면서 시늉하는 정도였다고 했거든. 정말 다행이었지.

마을로 안 돌아가고 싶다 하진 않았나? 마음이 아프다.
촬영 감독이 오히려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렇게 당하는 상황에서 카메라도 깨지고 촬영도 못했거든. 그 말을 듣는 내가 더 미안하더라. 그 어른의 입장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들 사이에서 할례는 벌써 몇십 년을 이어온 전통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한낱 외국인이 들어와서 할례를 왈가왈부하며 취재한다고 설레발을 치니까, 부정을 탄다고 생각했던 거다. 허락을 한 어른도 다른 사람들과 여러 번, 장시간의 회의 끝에 우리를 허락해준 거라서.

무섭지 않았나?
무섭다는 생각은 안 했다. 우리랑 똑같은 사람들이니까.

우리랑 똑같은 사람도 칼 들고 있으면 무섭다.
칼보다 더 무서운 게 엉뚱한 약초를 먹는 거였다. 우리가 방문한 마을은 약초를 재배하는 마을이었는데 말이 좋아 약초지, 사실 마약성 식물도 많았다. 우리가 맞아서 쓰러져 있을 때 그 약초를 먹이면 정말로 큰일이 날 수도 있잖나. 마침 마을 사람이 촬영 감독을 숨겨준 덕에 화를 면했다. 촬영 감독의 말에 따르면 마치 사냥꾼과 사슴처럼 쫓겼다더라. 그 말을 듣는데 촬영감독에게 너무 미안했다. 정작 촬영감독은 그 장면을 못 건졌다고 아쉬워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닌데도. 치료를 받으러 약국에 가니 분홍색 알약을 몇 개 주고 말더라(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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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17일 금요일 | 글_이지혜 기자 (wisdom@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imovist.com)
사진_이종훈 실장(ULTR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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