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비정규직 특수요원> 강예원
2017년 3월 17일 금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강예원의 인생은 늘 불안하고 두렵다. 하지만 그게 꼭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다. “사람이 어떻게 행복한 감정만 가지고 살아요?”라고 되묻는 그녀의 대답에 퍼뜩,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던 정호승 시인의 시구가 떠오른다. 비정규직의 애환을 코믹하게 녹여낸 작품에 마음이 동한 것도 그래서다. 누구에게든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삶, 강예원은 그 불안과 두려움까지 기꺼이 담아내고 표현해내는 배우가 되고 싶다.

곧 탄핵 선고를 앞둔 9일 오전 11시다. 가장 ‘핫’한 시간에 인터뷰를 진행한다.(웃음)
그러게 말이다. 그래서 일부러 일찍 출발했다. 인터뷰 장소인 삼청동 부근으로 진입하니 탄핵에 반대하는 인파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 결국 돌아서 왔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웃음)

여러모로 사람들의 이목이 극장가로 쏠리기 어려운 시절이다.
아휴. 억울하다는 생각도 할 때가 있지만 탓해서 뭐 하겠나. 될 사람은 되겠지.(웃음)

그래서 이번 영화, 잘 될 것 같나.(웃음)
뭐라고 해야 할까.(웃음) 모든 게 만족스러울 순 없다. 어떻게 그러겠나. 나는 굉장히 냉정한 편이다. 내 작품이라고 해서 좋은 쪽으로 착각하지는 않는다. 좀 삐딱하게 보는 습관이 있다. 그건 전작인 <트릭>(2016)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빠르게 치고 나가는 편집 덕에 지루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다행이다. 하지만 내 연기를 보고 내가 언제쯤 만족의 미소를 지을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웃음)

만족의 기준점이 높은 편인가 보다.
그런 것 같다. 스스로에 대한 잣대가 빡빡한 편이다. 내가 좀 바라는 게 많다.(웃음)
그럼 당신의 기준에 부응한 작품은 어떤 것인가.
송새벽씨와 함께 찍은 <내 연애의 기억>(2013)이다. 그렇다고 다 만족했다는 건 아니고 주어진 예산과 상황에 비해 뿌듯했다는 의미다. 하루도 안 쉬고 한 달 만에 찍었다. 시나리오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거의 재능기부 수준으로 촬영했다. 송새벽씨도 내가 같이 연기하자고 제안하는 바람에 안 해도 될 고생을 했다.(웃음)

이민기와 함께 출연한 <퀵>(2011)도 꽤 괜찮은 성적을 냈다.
그 때는 100억이라는 예산으로 촬영을 했으니 상대적으로 조건이 좋은 편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투자를 받아 놓고도 BEP(손익분기점)를 넘지 못하면 배우로서 얼굴 들고 다닐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대인사를 4주나 다녔다.(웃음) 그때도 나 때문에 (김)인권 오빠와 (이)민기씨가 상당히 고생했다.(웃음) 그래도 덕분에 그해 여름시장에서 경쟁하던 <고지전> <7광구>를 모두 이겼다. 굉장히 뿌듯했다.

이번 작품을 촬영하는 동안 슬프고 외로운 감정을 느낀 순간도 있다고.
사람이 아닌 개를 상대로 연기를 해야 하는 장면이 있었다. 시나리오에는 그저 ‘멍멍’이라는 말만 써있었다.(웃음) 그 소리를 내고는 “내가 반려견 커뮤니케이션 자격증이 있거든” 하고 넘어가면 끝나는 장면이었다. 한데 배우 입장에서는 어떤 장면이든 그 장면을 연기하는 이유가 있어야한다. 그렇게 짧게 지나가면 관객이 웃음 포인트를 못 잡을 것 같더라. 촬영 내내 그 장면을 어떻게 연기할지 고민했다. 결국 내가 암컷 개를 흉내 내면서 앞에 있는 수컷 개를 꼬시는 설정을 준비해갔다. 내가 길게 연기할 테니 감독님이 쓸 부분은 쓰시라는 심정으로.(웃음)

관객 입장에서는 상당히 코믹한 포인트다.
하지만 그 장면을 만들어내는데 우여곡절이 있었다. 디테일한 디렉션이 없는 장면이다 보니 어떻게 연기해야 하는지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더라. 주변에서는 멍석 깔아놓고 나에게 맡기는 분위기였다. 연기를 잘 하지 못하면 다 내 탓이 되는 상황처럼 느껴져서 정말 도망치고 싶더라.(웃음) 그 장면을 다 찍고 나니 연기가 너무 힘들고, 현장에 있으면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에 (한)채아랑도 그런 얘기를 한참 나눴다.

연기에 대해 조언해줄 수 있는 선배가 필요했던 것 같다.
나도 선생님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웃음) 사실 개와 함께 해야 하는 연기는 누가 가르쳐주기도 참 애매하다는 건 안다. 그러니 현장에 함께 있던 배우들도 나에게 조언을 해주기 어려웠을 거다.
대개 영화 홍보 인터뷰에서는 현장이 상당히 즐거웠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곤 하는데 당신은 좀 다르다.(웃음)
내가 거짓말을 못 한다.(웃음)

<비정규직 특수요원>은 장르는 코미디지만 비정규직이라는 소재로 접근한 만큼 ‘웃픈’ 느낌도 주는 작품이다.
비정규직이 겪는 공포감과 불안감을 나는 너무나 공감한다. 내 동생도 비정규직을 경험했고, 배우라는 직업 역시 비정규직과 비슷한 데가 있다. 그런 감정에 상당히 익숙하다. 하지만, 그게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어째서인가.
음. 불안과 공포 역시 내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 중에 하나다. 사람이 어떻게 마냥 행복할 수가 있을까? 사람 감정이라는 게 한가지가 아니지 않나. 솔직히 아무 걱정 없이 그저 행복하기만 한 사람을 보면 좀…(웃음)

괜히 못마땅한 느낌이 드는가.(웃음)
(하하하) 내가 마냥 밝은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지 슬픔을 경험해본 듯한 느낌이 드는 사람에게 끌린다.
누구나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을 것이다.
한채아, 김성은과 꽃꽂이 수업을 할 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너무나 활짝 핀 장미꽃으로 수업을 진행하는데, 처음 한 두 번은 참았지만 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더라. 선생님께 내가 원하는 꽃으로 하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난 좀 자연스럽거나, 아니면 약간 시든 꽃이 취향에 맞는다고 말이다. 주변에서 다들 이상하게 보더라.(웃음) 어쨌든 그다음부터는 나만 다른 꽃으로 수업을 했다.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시구도 있지 않은가.(웃음)
그 말 좀 꼭 써줘라.(웃음) 사람들은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4차원이라고들 한다.

대화의 전체 맥락을 들어보면 전혀 4차원 같지 않다.(웃음) 기사나 방송이 당신의 발언 맥락을 잘라낸 상태로 전달하기 때문일 거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출연하는 예능 ‘언니들의 슬램덩크’는 정말 고맙다. 시청률을 위해서 출연진을 이용하거나, 자극적인 장면만 편집해서 출연진을 ‘뽑아 먹으려고’ 들지 않는다. 만약 그런 프로그램이었다면 정말 싫었을 거다. 그런데 ‘언니들의 슬램덩크’는 내 일상을 끊김 없이 그대로 전해줘서 정말 좋다. 방송을 보면 나도 모르는 또 다른 내 모습을 보는 재미도 있다. 내가 저런 행동을 했어? 하면서.(웃음) 그리고 담당PD인 박인석 PD는 정말 좋은 사람이다. 차태현 오빠도 인정하더라.

영화 촬영은 외롭고 힘들다고 하더니!(웃음)
응? 맞아 그랬지.(웃음) 정말 뭘 모를 때, 그러니까 <해운대>(2009) 찍던 시절 정도 빼고는 한 번도 룰루랄라 해본 적이 없다. 그때는 세네 커플이 함께 이야기를 끌고 나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선배들에게 의지하면서 촬영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러기가 힘드니까 말이다. 이제는 한 작품을 할 때마다 책임감이 너무 막중하게 느껴진다. 하나의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서 소요되는 몇 달의 시간 동안 연기 흐름이 이어져야 한다는 게 쉽지 않다. 괴롭다.(웃음) 영화에서는 바로 다음씬으로 이어지는 장면이지만 현실의 나는 한 달 뒤, 두 달 뒤에 연기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한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역할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오죽하면 이번 작품 끝나고 개인적으로 아는 배우 선배들한테 연락을 드렸다. 박중훈 선배, 설경구 선배, 차태현 오빠 등등…(웃음) 영화 찍는 거 있으면 나도 좀 불러달라고 말이다. 나도 선배들한테 업혀 가고싶다.(웃음) 대형 배급사 직원들에게도 부탁했다. 그런데 작품은 크지만 배역이 너무 작으면 나에게 권하는 게 예의가 아니라고 하더라. 아니, 내가 괜찮다구! 내가 하겠다니까!(하하하) 1년에 3~4편을 찍는 한이 있어도 선배들과 할 수 있는 작품은 좋다. 내가 주제 파악을 잘하는 편이라 이런 부탁을 하는 건 전혀 자존심 상하지 않는다.(웃음)

이미 2009년부터 매년 작든 크든 한 작품 이상은 꼭 찍지 않았나.(웃음)
맞다. 뭔가를 찍지 않은 해가 없다. 그러다 보니 원래 굉장히 수더분하던 내가 아주 예민해졌다. 영화 한 편 촬영을 끝마칠 때마다 정신이 ‘얇아’지는 느낌이다.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욕심이 많아서 쉬지를 못한다. 되게 피곤한 스타일이다.(웃음) 누가 억지로 시키는 것도 아닌데 내가 나를 못살게 군다. 이렇게 열심히 걸어가다 보면 나한테도 해가 뜨겠지?

응? 아직도 해가 안 떴다고 생각하나?(하하하)
그렇다. 그냥 버틴 거라고 생각한다. 욕심을 내서 집요하게 연기해온 덕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가만히 앉아만 있는데 누군가가 일거리를 만들어주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물론 때마다 도움을 주신 분들도 당연히 많다. 그렇게 일을 하다 보면, 또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끈이 연결된다. 물론 경험이 쌓이면서 작품 한 편을 내 힘으로 끌고 나갈 수 있는 힘도 조금씩 생겨나는 걸 느낀다. 고통스럽긴 하지만, 그런 고통조차 없는 작업이라면 뭔가 잘못된 거라고 생각한다.

스스로에게 상당히 엄격한 것 같다.(웃음)
하지만 난 나를 너무나 사랑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림을 그리고, 가구를 만들면서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욕심이 많으니까 채찍질을 많이 하는 거다. 그런 성미는 타고난 것 같다.

버티는 만큼, 더 좋은 기회가 찾아올 거다.
그런 기회 좀 잡아주면 안 되나?

내가? 난 아무 힘이 없다.(웃음)
아니다. 난 기자를 믿는다.(웃음) 좀 다른 이야기지만, 나는 지금까지 기자들에게 배신당해본 적이 없다. 전작인 <트릭>(2016)을 인터뷰할 때, 이야기 끝에 속상한 기분이 들어 눈물을 보인 적이 있다. 그런데 나중에 찾아보니 그 인터뷰 자리에 있던 그 어떤 기자도 내가 울었다는 사실을 기사로 내보내지 않았더라. 다들 나를 지켜줬다.

대화를 나눠보니 당신을 ‘배신’까지 하기는 참 어려울 것 같다. 이야기에서 진심이 느껴진다.(웃음)
인터뷰는 어쩔 수 없이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하는 자리라서 힘도 들지만, 기자들과의 만남 자체는 즐겁다. 이런 자리 역시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하는 가장 마지막 단계라고 생각한다.

살면서 당신에게 힘이 된 말이 있나.
그때그때 바뀌지만 요즘은 ‘통과의례’라는 말로 힘을 받는다. 배우는 언론의 주목을 받을 때도 있지만 전혀 주목받지 못할 때도 있다. 다만 그런 시간 역시 성장하기 위해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라고 생각하면 힘이 된다.

그 과정을 거쳐 도착하고 싶은 최종 목적지가 있다면.
모르겠다 그건. 인생은 계획대로 안 된다.(웃음) 계획대로 다 되면 재미도 없을 것 같다. 배우로서 보다 다양한 작품을 선택할 수 있는 안정적인 입지를 다지고 싶다는 욕심은 다 채워지지 않았는데, 반대로 예능 출연이라는 생각하지도 못한 기회를 얻기도 했지 않나.(웃음)

요즘 행복한 순간은.
따뜻한 햇살 안에서 하늘을 바라볼 때. 내 초등학교 동창이 10년동안 은행을 다니다가 얼마 전에 일을 때려치웠다. 하늘을 못 봐서 너무 괴롭다고 하더라. 그 용기에 박수를 쳤다. 근데, 내가 그 친구 따라가나?(웃음)

2017년 3월 17일 금요일 | 글_박꽃 기자(pgot@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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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영화사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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