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을 기다려 레드카펫을 밟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설경구
2017년 5월 24일 수요일 | 김수진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 김수진 기자]
설경구가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으로 칸 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는다. 17년 만의 초청이라 누구보다 감회가 특별하다. <박하사탕>(2000)으로 이창동 감독과 참석했을 당시엔 칸 뤼미에르 극장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으로 만족했던 그였다. 그런데 17년 후, 오랫동안 기다렸던 칸의 레드카펫을 드디어 밟게 됐다. 인터뷰 내내 자신의 노력은 한없이 낮추면서 변성현 감독을 비롯한 스태프에게 공을 돌리는 데 바빴던 그는, 그간 묵혀둔 이야기가 많았는지 묻지 않은 이야기까지 털어 놓으며 분위기를 시종일관 압도했다.

영화에 대한 만족도는 어떤가.
언론시사회가 끝난 뒤, 잠깐 동안 (임)시완이랑 멍한 채로 있었다. 영화에 깊이 빠져서라기보다 시완이의 경우에는 완성본보다 편집본이 더 재미있어서 아쉬움에 그랬던 것이고, 난 내 연기를 두고 ‘왜 저랬지’ 라는 생각이 들어 잠깐 얼이 나갔었다. 반면 김희원과 전혜진은 만족스러워 하더라. 아무래도 나랑 임시완만 기대가 컸었나 보다.

아쉬운 부분이 정확하게 무엇이었나
연기를 즐기면서 하지 못 했던 것 같다. 영화 전체를 봐야 하는데 내 연기만 보이더라. 보통 배우들은 자신이 했던 연기를 볼 때 가장 어색해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어색함을 넘어서 아쉬움이 남았다. 역할을 가지고 놀지 못했다는 잠깐의 자책이 들더라.

영화에 대한 평가는 좋았다.
기자 분들이 리뷰를 잘 써줬더라. 감사하다. 철저한 상업영화인데 인간에 대한 깊은 고찰로까지 바라봐줘서 관객 분들의 기대치가 너무 높아지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웃음)

출연을 결정한 이유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는데.
무엇보다 변성현 감독(이하 변 감독)의 캐릭터가 인상 깊었다. 표현하는 방식이 재미있더라. <나의 P.S 파트너>(2012)에서는 ‘배우들을 구겨버리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번 <불한당>에선 ‘빳빳하게 펴고 싶다’는 표현을 하더라. 흥미로웠다. 물론 오로지 이런 이유 때문에 출연을 결정한 것은 아니다. 촬영 전 새벽까지 함께 소주를 마신 적이 있다. 영화 이야기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변 감독만의 매력을 느끼게 됐다. 사실 <나의 P.S 파트너>와 <불한당>을 비교하면 색깔이나 장르가 확연히 다르지 않나. 감독과 이야기를 제대로 나누기 전까지는 ‘이 사람이 왜 갑자기 느와르를 만들고 싶어할까’라는 의문을 가졌다. 그러다 술 한잔 기울이며 이야기를 들어보니 스스로에게 확신이 차있는 사람이더라. 솔직히 시나리오만 읽었을 땐 다소 흔한 소재들 때문에 기시감이 일어나지 않을까 고민을 했었다. 과연 언더커버라는 설정 속에서 어떤 차별성을 둘 수 있을까 궁금했다. 만일 차별성을 드러내는 데 성공한다면 이 작품의 영화적인 재미는 완벽히 보장되는 것 아니겠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에 술자리에서 변 감독이 이렇게 말하더라. ‘인물들의 감정에 집중해서 영화를 만들 거다. 엄연히 말하면 우리 영화는 느와르 장르가 아니다. 나만의 스타일을 확실하게 담을 자신이 있다. 미장센이 두드러진 영화가 될 것이다”고. 그냥 하는 말이 아닌 듯 했다. 확신이 없으면 단언하지 않는 사람이다. 믿음이 생겼기에 모험을 걸었던 거다.

그 믿음이 계속 이어지던가.(웃음)
뭐, 결과를 보니 100점까진 아니지만 나쁘지 않은 듯싶다. 솔직히 말해 다 칸이 살린 거지.(웃음) 내가 변 감독에게 술자리에서 지금 말한 대로 만들지 못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까지 했었다. 물론 우스갯소리로. 영화가 완성이 된 후 변 감독이 내게 와선 ‘가만히 두셔도 될 것 같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하더라.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바로 수긍하진 않았다. 우선 관객 반응까지 보고 판단하겠다고 답해버렸다.(웃음)
‘불한당’이라는 제목은 마음에 들었나.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이상했다.(웃음) 그나마 ‘나쁜 놈들의 세상’이라는 부제가 붙으니 낫더라. 초반에는 낯설었다. 제목만 들으면 좋은 영화 같진 않으니까.(웃음)

출연 결정을 할 때만 해도 칸 영화제 출품 사실을 몰랐겠다.
그렇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는 칸에 출품될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장르 자체가 범죄액션이고 여러모로 소재가 흔했기 때문에 더 그랬다. 초청됐다고 했을 땐, 왜 우리가 칸을 갈까? 싶을 정도였다. 진짜 의외였는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더 반갑고 고마운 것 같다.

작품을 선택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가 있나.
이런 기준이 언제나 맞는 건 아니지만… 작품을 하나하나 찍을수록 바로 이전에 맡았던 캐릭터와 겹치지 않는 인물을 연기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익히 봐왔던 설정들이 큰 걸림돌로 남았다. 근래 교도소 설정의 영화, 드라마가 넘쳐나다 보니 거기에 묻히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더라. 그런데 변 감독의 설득 덕분에 믿음이 생겨 출연을 결정하게 됐다. 자신이 직접 시나리오를 썼기 때문에 더 신뢰가 가기도 했고 말이다.

영화가 독특하게도 브로맨스를 넘어선 사랑이라는 타이틀을 지니고 있다..
변 감독이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멜로물을 보고 영화를 만들었다고 기자간담회 때 말하지 않았나. 난 개인적으로 뒤늦게 그 말을 듣게 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촬영 전에 그런 소릴 들었다면 엄청 고민했을 거다. 물론 사랑까지는 아니고 남자들 간에 미묘한 관계를 염두하고 연기에 임하긴 했었다. 기억나는 일화가 있는데, 촬영 전 김희원이 ‘난 경구 형을 일편단심 짝사랑하는 캐릭터라서 ‘재호’가 작업하라고 명령하면 묻지도 않고 바로 실행할 거다. 또 머리를 쓰다듬으면 행복한 표정을 짓는 컨셉트로 연기를 하겠다’는 말을 했었다. 그 말을 듣고 ‘그럼 난 시완이를 사랑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농담 반 진담 반 속에서 묘하게 삼각관계가 형성되더라. 이상하게 초반에는 어색했는데 중반부터 그런 감정에 스며들게 됐다. ‘재호’가 유일하게 믿고 싶은 한 놈이 있다면 바로 ‘현수’일 것이라는 느낌을 온전히 이해하며 표현했다.
선배로서 ‘현수’ 역의 임시완을 어떤 식으로 이끌며 호흡을 맞췄나..
임시완은 언제나 철저하게 준비해오는 사람이었다. 선배로서 특별히 이끌어줄 게 없더라. 함께 연기 호흡에 대한 고민도 나눈 적이 없었다. 리허설 없이 바로 슛에 들어갈 정도로 잘 맞았기 때문이다. 워낙 열정적인 친구라서 새벽에도 변 감독한테 전화를 걸었다고 하더라. 어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전화해서 수화기를 붙잡고 연기를 하는 친구였다. 놀라운 사실은 그 모습이 예전에 비해선 엄청 나아진 편이라고 하던데. (시완이는) 매일 연기만 생각하는 것 같다.

당신도 30대 때 열정적인 배우였나.
시완이 정도는 아니었다. <송어>(1999)에 출연했던 시기가 시완이 나이쯤이었을 거다. 그전에는 조연이나 단역으로 잠깐 잠깐 스크린에 얼굴을 비춘 정도였다. <송어>에 출연할 때까지는 연기가 재미있었다. 그런데 <박하사탕>(2000)에서 이창동 감독을 만나고 나서 달라졌다. 열정적이고 싶지 않아도 억지로 열심히 하게 됐다고나 할까. 감독님이 날 그렇게 만들었다.(웃음) 내 성격 자체가 적극적이지 못한 편이라서 더 부추겼던 것도 같다. 아! 그러고 보니 열정적이었던 적이 딱 하나 있다. 술 마실 때다. 그렇게 적극적일 수가 없었다.(웃음)

이번 촬영을 하면서도 술을 많이 마셨나.
촬영이 없을 때마다 한 잔씩 마셨다. 시완이가 초반에는 몸을 한창 만들어야 해서 술을 마시지 못했다. 언제쯤 함께 마실 수 있을까 손꼽아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그 친구도 술을 즐기는 편이라서 함께 술자리를 가지면 즐겁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와서, 극중 어떤 장면이 가장 마음에 들었나.
새벽녘 차 안 신이 기억나는데 이 장면뿐만 아니라 우리 영화에는 좋은 그림들이 유독 많다. 그 이유가 콘티 구성단계부터 젊은 스태프들이 열정을 불태웠기 때문이다. 솔직히 변 감독도 본격적인 상업영화 작업은 이번이 두 번째고, 촬영감독도 저예산영화였던 <4등>(2016)에 참여한 경력이 전부인 사람이었다. 각 분야의 젊은 피들이 한데 모였던 거다. 그런 사람들이 모였는데 치열한 게 당연하다. 콘티 회의 때부터 수월하지 않았다. 정말 영화에 대한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구나 생각했다. 그만큼 공을 많이 들인 작품이라고 보면 되겠다. 콘티가 무슨 만화를 보는 것마냥 술술 읽혀져서 신기했다. 스태프들이 보통 칠판을 이용해 콘티 설명을 해주는데 조명까지 들여와 구상하는 모습을 보고 신뢰가 생기지 않을 수 없더라. 결과물을 보니 정성을 담아 찍은 만큼 좋은 그림이 나온 것 같아 다행이다.
극중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는 무엇인지.
‘이렇게 살려고 사는 게 아니라 살려고 이렇게 사는 거야’ 라는 대사가 와 닿았다. ‘재호’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대사다. 언제나 감춰둔 ‘재호’의 속마음을 대변하는 말인 것이다. ‘재호’가 웃음이 잦은 이유도 그런 속마음을 감추기 위해서인데 원래 지문 속에는 ‘웃는다’는 지시문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변 감독이 내게 웃는 건 어떠냐고 권하더라. 이후 계속 웃는 컨셉트로 밀고 나갔다. 너무 웃어서, 한번은 인위적이지 않아? 라고 스태프에게 물은 적도 있는데 다들 그런 모습이 오히려 ‘재호’ 같다고 해줘서 안심했다.

연기할 때 가장 고민됐던 부분은.
‘재호’의 감정을 들키지 않고 연기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그래서 항상 불안하고 불편하게 웃었던 거다. 시종일관 불명확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다 드러나면 실상 재미가 없을 것 같아 더 모호하게 표현하려 애썼다. 기자간담회 때도 나온 말이지만 내 옆모습이 담긴 신을 변 감독이 자주 활용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여러 가지 계산을 하면서 연기에 임했겠다.
이번 캐릭터는 특히 계산적으로 연기를 해야 했다. 그런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나는 신이 극중 ‘재호’가 ‘현수’에게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처음으로 날 죽이려고 한 사람이 내 엄마였다고 ‘재호’가 고백하는데, 난 그게 진심이라기보단 ‘현수’를 낚기 위해 꾸민 이야기라고 판단했다. 그도 그럴게 그런 말을 하고 나서 바로 함께 일해보자고 권하지 않나. 해당 신 촬영을 마치고 나서 시완이에게 방금 나온 ‘재호’의 과거가 진짜 같으냐고 물어봤더니 시완이가 진짜 같다고 답하더라. 난 가짜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는데 말이다. ‘재호’는 아마도 그런 부모님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속에서 거짓말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상상하면서 연기했다.

전반적으로 ‘재호’는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했나.
사실 고아였던 ‘재호’는 어릴 때부터 배신 당하는 것에 익숙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꺾이지 않고 더욱 강해진 캐릭터다. 그렇기 때문에 살기 위해 자신의 보스인 ‘병철’의 뒤통수를 쳐야 했던 것이고 말이다. 언제나 뒤통수 조심하라는 말을 달고 다닌다. ‘현수’에게 거짓말 하는 것도 먼저 배신 당하기 싫어서 그러는 거다. 결론적으로 ‘재호’는 늘 버려져 있었던 사람이다.
캐릭터의 톤앤매너는 어떻게 잡았나.
여느 작품에서든 대부분 감독에게 맡기는 편이다. 내가 어떻게 설정을 하든 최종적으론 반드시 연출자와 조율하게 되는 부분이 생기니까. 이번 작품에서도 감독과 열심히 밀당 하면서 연기했었다.

<역도산>(2004)만큼 이번 영화가 힘들지 않았을까 싶은데.
<역도산>은 징글징글하게 준비한 영화다. 육체적으로 힘들었다. 알겠지만 살도 엄청나게 찌웠어야 했고 일본어까지 배워야 했다. 한 번은 일본에 가서 일본배우들과 리딩을 하는데 나카타니 리키가 내가 무슨 말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해서 충격 받았던 기억이 난다. 순간 끔찍하더라. 한 스태프는 후시 녹음으로 해결하면 된다고 위로하는데 그게 더 악몽 같았다.

이번 영화에서도 몸을 만들어 달라거나 하는 요구사항은 없었나.
변 감독이 특이하게 팔뚝살과 가슴골을 만들어달라고 청하더라. 가슴 근육은 아무래도 수트를 자주 입으니까 핏을 고려해 한 부탁일 거다. 팔뚝살의 경우엔 교도소 시퀀스 중 <록키>(1976)의 한 장면을 오마주한 신이 있는데 그 장면 하나를 위해 키웠어야 했던 거였다.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기도 했는데 팔뚝이 왜소하면 남성적인 파워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변 감독이 설득해서 결국 만들어냈다. 아무래도 변 감독이 <록키>에 대한 로망이 강하게 있었나 보다.(웃음)

<불한당>이 관객들에게 어떤 영화로 남았으면 좋겠나.
영화를 보고 진한 여운이 남았으면 한다. 2시간 즐기고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떠오르는 영화가 되길 바란다. 설마 이런 말한다고 건방져 보이진 않겠지.(웃음)
흥행에 대한 고민은.
흥행됐으면 좋겠지만 큰 욕심을 부리고 싶진 않다. 오히려 평들이 좋아서 기대치가 너무 높아질까 걱정이다.

요즘 영화 외적인 고민은 없나.
내가 늘 스스로 속을 갉아 먹는 스타일이다. 나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물론 연기적인 측면에서. 앞으로 더 고민하면서 열심히 배우 생활해야지 라고 다짐하고 있는 중이다.

차기작 계획은.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라는 작품 준비 중이다.

마지막으로 칸에 가게 된 소회를 듣고 싶다.
17년 전에 가고 두 번째다. 그때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시간이 많이 흘렀다. 이창동 감독님과 칸 뤼미에르 극장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가끔씩 꺼내 본다. 당시 레드카펫은 못 밟았는데 듣기로는 미드나잇 스크리닝과 경쟁 부문만 레드카펫에 오를 수 있다더라. 그런데 드디어 레드카펫을 밟게 됐다. 17년이나 기다려서 말이다!

2017년 5월 24일 수요일 | 글_김수진 기자(sooj610@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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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CJ엔터테인먼트

(총 1명 참여)
csbdream
기대됩니다. 강철중과는 다른 캐릭터겠죠?   
2017-05-24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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