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과 낙관 그리고 눈물 <여배우는 오늘도> 문소리
2017년 9월 15일 금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배우 문소리, 감독 되다. 물론 주인공은 문소리 자신이다. 연기는 잘하지만 어느덧 ‘중견’ 반열에 올라 제 매력을 고민해야하는 배우, 그중에서도 ‘여자’이기에 고민할 일이 더 많은 문소리가 내놓은 이야기 <여배우는 오늘도>다. 어느 정도는 모두 짐작하고 있다. 이 사회에서 여자로, 특히 여자 배우로 살아야 하는 일의 고충을. 그러나 영화는 지저분하고 모욕적이었던 경험을 고발하는 불편한 체험이 아니다. 우울하게 느껴질 수 있는 처지를 웃음으로, 짜증 나고 답답할 수 있는 상황을 낙관으로 표출한 즐거운 작품이다. 마무리는 동료 영화인에 대한 사랑과 자기반성이 녹아 든 뜨거운 눈물이다.

<여배우는 오늘도>는 18년간 배우로 살아온 당신이 직접 연출을 맡은 작품이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적은 예산으로 ‘쪼물락 쪼물락’ 만들었다. 투자사가 따로 있었던 것도 아니고 큰 배급사와 함께 개봉한 것도 아니다. 영화판에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들끼리 힘을 모았다. 우리가 만나서 만날 맥주나 먹고 남의 영화 이야기나 하다가 헤어질 순 없지 않냐며 말이다.

단편 <여배우는 오늘도>(2014) <여배우>(2014) <최고의 감독>(2015)을 하나로 모은 작품이다.
다 만들고 나니 배급에 종사하는 친구가 저예산 영화 개봉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출품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더라. 처음에는 말렸지만 결국에는 낄낄거리고 시시덕거리며 개봉 과정에 재미나게 참여했다. 포스터 시안을 만드는 단계에도 참여했다. 운동장 레이스 트랙 위에서 드레스를 입고 있는 지금의 포스터가 그렇게 나왔다. 배우로 임할 때와 달리 개봉과 홍보를 많이 공부하게 되더라. 한국 영화산업의 몰랐던 부분까지 속속들이 말이다.(웃음)

시사 당시 기자들 사이에서 상당히 반응이 좋았다. 흔치 않은 일이다.
기자들이 리액션이 큰 사람들이 아닌데…(웃음) 아무래도 배우와 감독을 많이 만나고, 영화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좀 더 잘 아는 사람들이라 공감대가 컸던 것 같다. 같은 업계라고 할 수 있으니까. 여자 기자들은 유독 흐뭇한 표정으로 앉아있더라.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공감하고 웃었던 것 아닐까 싶다.
어느덧 중견 배우에 접어든 ‘여배우’이자 누군가의 딸, 아내, 엄마인 문소리가 주인공인 이야기다. 그런데 정작 당신의 실화는 아닌 것 같더라.
온전히 내 얘기를 할 생각이라면 사실 친구나 남편과 하면 된다고 본다. 진짜 그런 이야기를 할 작정이면 정도가 훨씬 심한 것도 많다.(웃음) 내가 살아오면서 느낀 고민과 나와 다른 직업을 가진 여성의 고민이 비슷한 지점이 있으니, 그걸 함께 나눠보자는 거였다. ‘여배우’의 삶에도 당신과 비슷한 고민이 있으니 말이다.

한데 제목에 쓰인 ‘여배우’는 ‘여의사’, ‘여기자’ 같은 단어와 함께 대표적인 성차별적 단어로 꼽히기도 한다. 그럼에도 사용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여배우’라고 불리는 삶을 사는 이들이 있다. 그게 현실이다. ‘여배우’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오늘 뭘 하는지 한 번 같이 보자는 거다. 영화에는 이 시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 반, 그가 배우라는 일을 하기 때문에 겪는 고민 반을 담았다. 물론 나 역시 평소 내 소개를 할 때는 당연히 ‘배우 문소리’라고 한다. ‘여배웁니다’ 같은 말은 쓰지 않는다.(웃음) 영화를 보면 제목이 내포한 의미를 아실 것이다.

제목에 서술어가 빠져있는 점도 흥미롭다. ‘여배우는 오늘도 ~다’ 같은 식이니 보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제발 서술어가 한두 개에 그쳤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담긴 제목이다. 여배우는 오늘도 연기해요, 홍보해요, 아름다워요, 사랑받아요… 이런 정도의 서술어만으로 인생이 설명되는 거라면 참 간단할 텐데… 그 자리에 들어가야 할 서술어가 너무나 여러 개다. 때로는 양립할 수 없는 서술어가 함께 존재해야 한다. 그런 아이러니를 표현한 제목이다.

여성으로서, 배우로서 살아가야 하는 삶의 모순이 직접 쓴 시나리오에 잘 담겼다고 본다. 집필하며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유머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유머는 인생에서 철학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여러 사람을 다 같이 웃기려면 그만큼 여러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더라. 나와 유머 코드가 딱 맞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고, 조금씩 모두 다르지 않나. 웃자고 한 소리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내가 널 이해하고 너도 날 이해할 때, 우리가 서로의 마음을 안다고 느낄 때 나올 수 있는 웃음을 만들기 위해 여러 입장을 고려했다.
동료 영화인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에피소드도 기억에 남는다. 무명 감독의 장례식장 술자리에서 배우 윤상화와 주거니 받거니 연기를 펼치는 롱테이크가 인상적이다.
윤상화씨가 맡은 역할을 캐스팅하기 위해 대학로 연극판에 전화를 쫙 돌렸다. 40대나 50대 남자배우 중에 술버릇 안 좋을 것 같고 인상 더러운 분 구한다고.(하하하) 윤상화씨는 실제로는 술을 한 잔도 못하지만, 얼마 전 아버지 장례식을 치루면서 동료 연극배우들의 찬란한 주사를 다 지켜봤다고 하더라. 그래서 (주정부리는) 역할을 부탁했다. 조감독에게는 우리가 대사를 안 해도 절대 컷 사인을 내지 말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어째서인가.
말이 없는 둘 사이의 분위기에 찐득하게 두 배우의 역사가 붙어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롱테이크는 어쩌면 좀 거만해 보일 수도 있는 기법이라 고민이 많았지만, 한 번 그렇게 밀어 붙여보고 싶었다. <미녀는 괴로워>(2006)와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를 제작한 ‘천만 제작자’ 원동연 대표가 농담조로 그러더라. 신인 여자 배우가 옆에서 울고 있는데도 카메라를 한 번 안 비춰주고 롱테이크로 가냐고. 미동이 없는 것 같아도 카메라를 조금 움직였다고 대답했더니 더 깊게 (줌을) 들어갔어야지! 하더라. 미안해요, 상업적이지 못해서.(웃음)

1막, 2막, 3막으로 나뉘어있다. 가장 힘들었던 촬영을 꼽는다면.
아무래도 2막이 가장 힘들었다. 인물과 장소가 많고 촬영 회차도 길었다. 비는 오는 데 자꾸 옮겨 다녀야 하니 스탭들이 힘들었다. 후반 편집 작업할 땐 2막이 제일 보기 싫었다. 그래도 개봉 이후 다시 보니 사람이 많이 나와서 보는 재미는 좀 있더라.(웃음)

영화 톤이 전반적으로 담백하고 간결하다. 당신 역시 내내 수수하고, 평범한 모습 그대로 연기한다.
데뷔할 때부터 평범함이 나의 큰 재산이었다. 26살 때까지 정말로 평범하게 살아왔고, 또 생긴 것도 평범한 편이다. 그런 지점들이 내 연기에 담겨있고, 그 연기로 한국영화계에 받아들여졌고 평가받았다.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때로는 다른 사람 앞에 나서야 할 때도 있지만,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늘 그런 평범함을 지향하는 편이다. 물론 평범하다는 것 또한 굉장히 주관적인 판단이긴 하지만 말이다. 사실 이창동 감독님이 워낙 세뇌를 시켜놓아서…(웃음)
어떤 세뇌인가.
평범하다는 건 잘못된 게 아니고, 틀린 것도 아니다. 너의 큰 재산이니 절대 버리면 안 된다. 다른 배우의 삶을 쫓아가지 말고 너의 삶을 살면 된다… 이런 말이었다. 참 고마운 세뇌다.(웃음) 그 가르침을 배신하지 않고 따르는 중이다. 딸에게도 마찬가지다. 네가 노력해서 얻은 건 충분히 칭찬하겠지만 네가 유명인의 딸이라는 것 자체로 특별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단호하군.(웃음)
물론 나에게는 존재 그 자체로 너무나 특별하고 사랑스러운 딸이다.(웃음) 사실 내 친구들은 대개 선생님이거나, 9급 공무원이다. 법원 서기직을 맡고 있기도 하고… 그 친구들에 비하면 난 특별히 돈을 많이 벌었고, 특별히 큰 집에 사는 편이다. 하지만 다른 배우에 비하면 특별히 돈을 못 번 편일 수도 있고, 작품 수도 적을지 모른다. 사회 전체를 보고 스스로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판단하기가 참 어렵다. 하지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회한 가득한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
얼마나 울어야 될까, 어떤 마음일까 고심한 신이다. 영화 이야기로 보면 돌아가신 감독님에 대한 애도를 표현한 신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자기반성이 담겼다. 나도 그동안 창작자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공격적으로 대한 적이 많다. 물불 안 가릴 때도 있었다.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그렇게까지 날이 설 필요가 없었는데 무엇이 두려워서 그렇게 날카로웠던가 하는 반성이다. 사실은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두려움…
내가 뭔가를 손해 보고 있는 것 같고, 잃을 것 같은 이기적인 마음 때문이었다. 어쨌든 나는 동료와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가야 하는 사람이다. 그들의 마음을 다 헤아려줬다면 그 과정 자체로 행복했을 수 있었을 것 같다. 남들이 대단한 작품이라고 칭찬해주고, 흥행이 잘 돼서 행복한 건 며칠이다. 서로를 좋아하고, 위해주면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한다.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내 인생에서 엄청 많은 시간을 차지한다. (우는 장면은) 사실 당신들을 되게 좋아했고 사랑했다는 고백일 수도 있다.
오랜 시간 영화계에 몸담았으니, 희로애락이 교차하는 순간도 많았을 것이다.
오르내림이 있었지. 그런 게 없는 배우는 없을 것이다. 배우뿐만 아니라 다른 직업도 그렇다. 파도가 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사람에 따라서 파도가 크게 치기도 하고, 잔잔하게 치기도 한다. 나는 워낙 첫 작품부터 대차게 시작을 해서 한 번 큰 물결이 일었고 지금은 잔물결이 오래가는 중이다.(웃음)

상업영화를 연출할 생각도 있는지.
지금 있는 욕심만으로도 가랑이가 찢어진다.(웃음) 감독님들이 제안하는 작품을 촬영하고,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우리 애도 키워야 한다. 살면서 여유가 생기고 진짜 재미난 얘기가 빛나게 솟아오르는 때가 온다면 모를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평생 배우로 살다가 감독도 되어봤으니, 앞으로 연기 생활에 도움이 될 듯도 싶다.
가끔은 도움이 별로 안 되는 것 같기도 하다.(웃음) 현장에서 배우로서 이런저런 제안을 할 수 있지 않나.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촬영 현장에서 유카타 하나만 입고 벚나무에 매달려 있는 장면을 찍어야 했다. 안에 입고 있던 두툼한 하네스(일종의 안전띠)가 밖으로 드러나길래, 긴 머리를 풀어서 가리자고 했다. 그랬더니 박찬욱 감독님이 “오~ 문감독 연출하더니 좋은 제안을 했어(웃음)” 하면서 짓궂게 놀리더라. 최근에는 장률 감독님과 작업했는데 박해일에게 자꾸 “문감독 말을 들어야지~” 하시더라. 감독님들, 제발 그러지 말아 주세요.(웃음)

재미있는 에피소드다.(웃음)
그럴 때 연출한 걸 후회한다.(웃음) 괜히 연출해서 여러 사람에게 부담을 주고 있나? 싶기도 하다. 물론 연출을 해보니 그들의 입장이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종종 우주에서 제일 불쌍한 존재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 잘 해드리려고 한다.
남편인 장준환 감독이 당신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건네기도 하던가.
(조곤조곤하게) 배우는 자세로 한 번 만들어보세요. 하는 식이다.(웃음) 각자의 영화관이 매우 다르다는 걸 알고 있다. 나는 사람을 대할 때 상당히 대범해 보이고, 장준환 감독은 섬세해 보이지만 영화에서는 정반대다. 장준환 감독이 쓴 시나리오대로 연출하려면 제작비가 어마어마하게 들어간다. 모험심과 탐험심이 대단해서 깜짝 놀란다.(웃음) <여배우는 오늘도>는 최종 편집이 거의 끝났을 때 모니터링을 부탁했다. 수정할 여지는 남아 있지만 거의 마지막일 때 말이다.

그가 준비 중인 신작 <1987>에 잠시 출연한다고 들었다.
그렇긴 하지만 여러분이 찾아낼 수는 없을 거다.(웃음)

배우로서의 목표가 있다면.
오래 연기하고 싶다. 그래야 뭐든 할 수 있다. 어릴 땐 건방졌다. 오래 연기한 배우 중에 그렇게 멋있는 배우가 없다고 생각했다. 진짜 뭘 모르던 철없는 시절이었다. 영화에 자주 언급되는 메릴 스트립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존경하고, 훌륭한데 그렇게 호감은 아니라는 말도 했었다. 지금은 매~우 존경한다.(웃음) 그 나이에도 그렇게 다양한 장르에서 여러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니, 두말할 여지가 없다. 무릎을 꿇는 심정이다. 영화제에서 만나면 ‘언니’소리가 나올 것 같다.(웃음)

(웃음)
언젠가 여우주연상을 받던 자리에서 사회자가 ‘여배우는 영화의 꽃’이라는 표현을 했는데, 좋은 의미로 한 말인데도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 수상소감을 말하면서 꽃이 아니라 줄기, 뿌리, 거름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핏덩이가 말이다.(웃음) 철없을 때 울컥해서 한 말인데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영화계를 발전하게 만들 거름 같은, 든든한 존재가 되고 싶다.

최근 가장 행복한 순간은.
오랫동안 두 가지였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글 때와 책을 볼 때.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책을 보면 두 배로 행복하겠다.(웃음)
아니, 보통 따로 한다.(웃음) 딸에게 나중에 보여주려고 편지를 많이 써뒀는데, 거기에도 써뒀다. 엄마가 나중에 정신이 없어지더라도 따뜻한 물이 담긴 욕조와 책만큼은 늘 가까이하게 해달라고. 좀 부탁한다고.(하하하) 그때가 가장 마음의 평안을 얻는 시간이다. 복잡한 생각이 사라진다.

2017년 9월 15일 금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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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 메타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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