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은 여전하고, 청산은 아직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 박기복 감독, 김꽃비
2018년 5월 16일 수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5.18 이야기를 꼭 한번은 하고 싶었던 박기복 감독이 오랜 시간 끝에 완성한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관객을 찾았다. 5.18 광주를 경험한 후 37년째 고통받고 있는 엄마와 그런 엄마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했던 딸의 성장 영화이기도 하다고 소개하며 박기복 감독은 5.18의 아픔과 청산은 끝나지 않았음을, 여전히 진행 중임을 강조한다. 야만과 짐승의 시간이었던 80년대를 그만의 화법과 다양한 시도로 그려낸다.

김꽃비는 20대 초 우연히 머물렀던 광주에서 5.18 관련 아픔을 목도했고,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자행했던 말도 안 되는 학살에 경악했었다. 더 많은 사람이 진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마음 그대로 5.18이 제대로 청산될 수 있도록 국민이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에 함께했다.



# <임을 위한 행진곡> & 박기복

오랜 시간에 걸쳐 <임을 위한 행진곡>을 완성했다. 연출 계기는.
화순과 광주에서 생활하다가 좀 늦은 나이인 20대 후반에 서울에 올라왔었다. 당시 놀랐던 게 서울 사람들은 5월 광주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거였다. 아예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게다가 당시를 경험한 내 이야기를 믿지 않고, 한편으론 논리의 비약도 심했었다.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만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포스터 속 인물들이 눈과 귀를 가리고 있는 이유인 것 같다.
맞다. 사람들이 자신이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다 보면 역사적으로 왜곡될 수밖에 없다. 또, 광주에서는 마치 불문율처럼 5월의 상처를 끄집어내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 점이 안타까웠다. 물론 현재는 광주의 거룩한 정신이 전국민적으로 확산됐고 이에 큰 힘을 발휘한 게 영화라고 본다. 지금껏 광주를 소재로 했던 <꽃잎>(1996), <화려한 휴가>(2007), <택시운전사>(2017) 등이 큰 역할을 해줬던 거다. 그런데 기존작들은 주로 계엄군과 시민군, 5.18 그날에 초점을 맞췄었다. 난 꼭 그 날이 아니라 짐승의 시간이었던 80년대 독재 시대를 그리고 싶었다. 80년대는 할 수만 있다면 잊어버리고 싶을 만큼 야만과 암흑의 시대였다. 하지만, 그런 참혹했던 역사가 있었기에 오늘날의 민주화가 가능했었다. 그 시기를 반면교사로 삼아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당신이 경험했던 5월 18일은.
당시 집이 화순이라 광주로 통학했었다. 그날도 광주에 갔었는데, 갈 때만 해도 평소와 다른 점을 못 느꼈었다. 그런데 잠깐 시장에 들러 볼일 보고 돌아가는 길에 깜짝 놀랐던 게 그 짧은 시간 안에 군인들이 쫙 깔렸더라. 대학생 젊은 남녀가 병원 계단 앞에 쓰러져 있고, 총을 멘 계엄군 7~8명이 곤봉을 들고 버스를 세우라고 쫓아왔었다. 사태를 짐작한 버스 기사가 안 쉬고 곧장 화순까지 갔다. 만약 검문당했더라면 젊은이들은 무조건 잡혀갔을 거다. 당시 계엄군은 진압 매뉴얼처럼 무조건 곤봉으로 머리를 가격하곤 했었다. 영화 속에 곤봉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그렇게 집에 오니 계속 흉흉한 소문이 들려왔다. 광주에 나갔던 자녀가 돌아오지 못한 집은 난리가 나고, 버스가 끊겨 밤에 산을 타고 걸어온 사람도 있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광주를 경험한 엄마(김부선)의 기억을 현재의 딸(김꽃비)이 따라가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다뤘던 기존의 작품들은 대부분 5월의 광주를 얘기한다. ‘광주’라는 공간적 배경과 ‘5월’이라는 시간적 배경, 즉 한정된 공간과 시간이라는 면에서 닫힌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열린 공간을 활용해 좀 더 지평을 넓히고 싶었다. 그렇기에 극 중 철호 형제(김효명, 전수현)가 부산 출신임에도 동생 ‘철수’(전수현)가 광주 운동권의 핵심으로 활동하고, 2017년을 사는 딸의 시선을 통해 1980년의 시간을 돌아보고자 했다.

열린 공간을 활용했다는 의미를 좀 더 설명한다면.
말 그대로 시간과 공간을 한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전에 5.18과 부마항쟁은 쌍둥이처럼 닮았다고 한 적이 있다. 5.18 광주민주화항쟁은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니다. 그 이전부터 독재를 향한 격렬한 저항이 있었고, 그게 터진 거라고 봐야 한다. 부마항쟁(기자 주: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에서 박정희 유신체제에 항거한 민주화 운동)과 5.18의 시차는 불과 6개월 정도이다. 영화 속에 부마항쟁을 구체적으로 다룰 수가 없으니 부산 출신인 광주 운동권의 핵심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영호남을 동시에 아우르고자 했다. 영호남이 상생해야 대한민국이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 부분을 염두에 두고 기획했었다.

기존 5.18을 소재로 했던 작품들과 여러 면에서 차별화를 시도한 것 같다.
영화는 새로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전 것을 그대로 답습한다면 굳이 만들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다양한 시도를 했다. 일단 시간과 공간을 확장했고, 계엄군이 시민군으로 위장해서 정보를 수집하고 그 사실을 브리핑하는 장면에서 발포자로 전두환을 적시했다. 사실 그 장면에서 “5월은 참 좋은 계절이야”이라는 그의 대사가 원래는 ‘학살하기 좋은’ 이었는데 좀 수위를 낮춘 거다. 흔히 접했던 실내 고문실을 야외 고물상으로 배경을 바꿨다. 또, 마지막 영혼결혼식을 상징하는 부분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웨딩 음악으로 사용해서 앞서갔던 여러 열사를 기리고자 했다. 약간 편곡해서 원래보다 좀 더 유쾌하게 분위기를 바꿔 슬픈 게 아니라 다소 판타지 같은 느낌을 주고자 했다.

‘판타지’ 같은 느낌이라는 건 이야기 자체의 무게에 눌리지 않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극 중 딸 ‘희수’(김꽃비)의 직업이 개그맨이고, 그녀가 진행하는 인기 코너가 ‘백조’가 아닌 ‘오리’의 호수인 것도 같은 맥락인 것 같다.
몸개그가 삽입되면 좋을 듯해서 백조가 아닌 오리로 설정했는데, 한편으론 루저의 승리를 보여주고도 싶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연출하면서 기존 작품과 차별화 외에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현재 제작되는 한국 영화는 규모 면에서 양극화가 심하다. 어떻게 보면 기형적인 구조라 할 수 있는데,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는 법이 무엇일지 생각해봤다. 바로, 적은 예산의 작은 영화이지만 큰 이야기를 하자였다. 역사를 담은 이야기를 그리다 보면 아무래도 제작비가 커지게 되는데, 그 점을 깨고 싶었다. 스케일에서 부족한 부분은 복합 구조와 여러 미션을 삽입하여 보충하고자 했다.

미션이라 하면 아마도 극 중 ‘밥통’(전기 밥솥)을 비롯한 여러 상징을 의미하는 거로 보인다.
(웃음) 어떤 분이 도대체 ‘밥통’이 무슨 의미냐고 물어보더라. 극 중 딸을 위해 밥통 가득 밥을 해놓고 엄마(김부선)가 떠난다. ‘밥통’은 우리 작품의 키워드라 보면 된다. 밥은 곧 먹고 사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부차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소수에 의한 부의 독점이 심화되고 있지 않나. 불평등에 맞서 평등을 촉구하는 개념이라 보면 된다. 극 중 ‘밥통’, ‘국밥집’ 등도 다 같은 연장선에 있는 것들이다.

함께한 배우 캐스팅과 호흡은.
캐스팅에 앞서 함께할 배우가 평소 인권과 사회정의에 관심 있기를 바랐다. 딸 ‘희수’를 맡은 김꽃비는 알다시피 사회적으로 목소리 내는 데 주저하지 않는 소신 있는 배우라 적역이었다. 처음 미팅 시 네 가지 정도 질문을 적어 와서 묻는데, 작품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고 역시 개념 배우다 싶었다.

광주를 겪은 후 37년째 고통받고 있는 엄마인 현재 ‘명희’는 배우 김부선에게 부탁했다. (그녀를 향해)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지만, 자신의 기득권을 던지고 불합리에 맞섰는데, 그건 보통 사람이 하기 힘든 일이기에 나는 그의 기본적인 정의로움을 믿는다.

80년대 운동권 학생인 ‘철수’(전수현)와 ‘(과거) 명희’(김채희)는 다소 아이돌 같은 외모를 갖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수현과 김채희는 스타일과 연기 면에서 모두 만족스러웠다. 특히, 전수현의 경우는 외할아버지가 5.18 유공자이기에 광주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더 보탤 것 같이 평소 그의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면 충분할 거로 생각했다.



# <임을 위한 행진곡> & 김꽃비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기다렸던 작품이라고 표현했는데....
20대 초반에 무전여행을 했었는데 광주에 머문 적이 있었다. 어떻게 하다 광주 민주화 묘지를 방문하게 됐다. 사실 그전까지는 5.18에 대해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지, 그토록 참담했던 역사적 항쟁인지 실감을 못 했었다. 그곳에 위치한 기념관에 자세한 설명은 물론 묘비 하나하나에 고인의 사연이 적혀있는데, 읽으면서 너무 눈물이 났었다. 어린이부터 임산부까지 안타깝게 돌아가신 분들이 많았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국가의 민간인 학살 아닌가. 이후 인식의 변화가 많았다.

5.18을 소재로 한 <택시운전사>가 작년에 큰 사랑을 받았었다. 같은 소재임에도 <임을 위한 행진곡>은 스토리와 결이 많이 다르다.
대부분이 80년 광주를 조명한다면, 우리 영화는 지금까지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더 좋았다. 혹자는 같은 소재의 영화가 또 나왔구나 하고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5.18의 아픔은 계속되고 있고, 그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다. 자꾸 작품으로 만들어져서 환기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려면 다양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극 중 울컥했던,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는다면.
워낙 그런 장면이 많아서 하나를 꼽기 힘든데.... 엄마(김부선)에게 ‘희수’(김꽃비)가 모진 말을 하는 장면이 있다. “5.18 당시 죽었더라면 열사라도 됐지, 살아서 미친 여자가 되는 게 아니라” 이 말이 너무 가슴 아팠다.

감독님과의 호흡은.
평소 인권에 관심이 많다. 그렇기에 작품 속에 무의식적으로 녹아있는 차별, 혐오, 희화하는 표현이나 행동을 경계하고 있다. 그런 부분에 대해 감독님께 이야길 했더니, 감독님께서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인권 영화라며 내 생각에 동의한다고 하셨다. 문제가 될 법만한 부분을 얘기한다면 기꺼이 수정하겠으니 말해달라 하셨는데, 그런 점이 너무 좋았다.

당신의 제안으로 수정된 부분을 예를 든다면.(웃음)
몇몇 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희수’가 엄마에게 “우울할 때는 오리춤을 추세요” 라는 대사다. 극 중 개그맨인 ‘희수’가 진행하는 인기 코너인 ‘오리의 호수’의 오리처럼 춤을 추라고 권유하는 장면이다. 원래는 “우울할 때는 약을 먹지 말고오리춤을 추세요”였었다. 흔히 사람들이 정신적인 문제를 의지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병원 진료를 꺼리고 약을 안 먹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약을 먹지 말고”라고 한다면 이게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래서 흐름에 큰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 부분을 빼면 어떨지 건의하자 흔쾌히 받아 주셨다.

<임을 위한 행진곡> 예비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우리 영화는 엄마의 아픔을 이해한 딸의 성장 영화이기도 하다. 보시고 자신을 돌아보고, 5.18 광주민주화항쟁의 의미를 환기하는 시간이 되셨으면 한다.

2018년 5월 16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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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_홍보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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