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도 있지” 몇 번 되뇌면 평온이 온다 <협상> 현빈
2018년 9월 27일 목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남한 형사와 북한 엘리트 요원과의 합동 수사를 그렸던 <공조>에서 북한 최정예요원 ‘임철령’으로 매서운 눈빛 발사하고, 조희팔 사기 사건을 모티브로 한 <꾼>에서는 판을 짜는 영리한 사기꾼 ‘황지성’으로 쑥스러운 듯한 보조개 미소 날리던 현빈. 이번 <협상>에서는 악질 인질범 ‘민태구’로 꽃무늬 셔츠 차려입고 긴 머리로 특유의 단정함을 날리고 거친 입담을 뽐낸다. 하지만 껄렁껄렁 이죽거리는 그의 모습에서도 촉촉한 눈동자는 감춰지지 않는다. 최악의 인질범 ‘민태구’의 흉포한 행동 이면에 있을 무언가를 자꾸 상상하게 한다. 바로 이렇게 호기심을 유발하고 지속시키는 것이 이번 악역 캐릭터를 구축하며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라고 현빈은 말한다. 유사한 장르 속 비슷한 역할이라고 느낄 수 있지만, 캐릭터와 캐릭터 사이 존재하는 작은 차이를 자신만의 연기로 차별화하는 게 좋다는 현빈. 추석 대목에 관객을 찾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고 동시에 책임감도 느낀다고 한다. 비단 <협상>이 잘되는 것뿐만 아니라 영화의 전체 관객수와 추석 극장가의 파이가 커졌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현빈. 쉽게 동요하지 않고 좀처럼 들끓지 않는 평정의 마음이 느껴진다.

<협상>에서 인질범 ‘민태구’(현빈)로 악역에 도전했다. 작품에 끌린 점은.
일단 협상이라는 소재가 신선했고, ‘이원 촬영’이라는 촬영 방식에 호기심이 생겼다. 관객에게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외화의 경우 협상 혹은 협상가라는 소재가 꽤 있었기에 그리 새롭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협상>이 지닌 차별점이 있다면.
국내 영화에선 거의 없었지 않나. 유사한 소재인 <더 테러 라이브>(2013)의 경우 테러범이 모습을 직접 드러내지 않고, 협상가 역시 뒤에 존재했었다. ‘이원 촬영’으로 카메라 앵글 자체가 다른 점 역시 우리 영화의 특징이다.

‘이원 촬영’이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방식이라 효과에 대해 의구심은 없었는지.
이종석 감독님이 <국제 시장>(2014) 조연출 당시 이미 시험해 본 적이 있다고 들었다. 나도 처음이라 그 방식에 낯설었지만 우리 영화에 어울릴 것 같더라.

극 중 협상가 ‘하채윤’(손예진)과 인질범 ‘민태구’(현빈)는 줄곧 화상 통화로 협상을 진행한다. 모니터를 보고 혼자 연기한 건 알겠는데, 정확하게 ‘이원 촬영’이란 어떤 방식인가.
예를 들면 나는 2층에서 상대 배우는 3층에서 동시에 각자 연기를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통상적으로 한 사람이 촬영한 후 이어서 상대 배우가 촬영하는, 즉 순차 촬영이 일반적인 방식이다. <협상>의 경우 두 배우가 동시에 촬영한 것이 특징이다.

아, 그럼 빈 모니터를 보고 연기하는 게 아니라 모니터 속에 실시간으로 상대 배우가 비춰지는 건가? 실제 화상 통화하는 것처럼?
맞다. 상대가 아예 안 보이는 것보다는 낫지만, 컴퓨터 모니터 화면이 작고 인이어를 낀 상태로 대사해야 해서 촬영 초반에는 이질감이 들었었다. 점차 익숙해졌지만 말이다.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순간이 많아서 디테일한 표정 연기가 필요했겠더라.
여러 대의 카메라가 설치된 공간에서 모니터를 보고 연기했는데, 컴퓨터 위에도 카메라가 부착돼 있었다. 다른 앵글보다 그 카메라에만 신경 썼던 것 같다. 모니터로 상대를 보고 연기하는 게, 마치 1인극 하는 것 같았다. 오롯이 내 공간에서 혼자 노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혼자 노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겠다.(웃음)
작고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대부분 세트 촬영으로 진행했다. 세트 촬영이 날씨나 시간 제약이 덜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장시간 촬영하면 너무 답답하다. 또, 좁고 어두운 공간에 계속 혼자 있자니 외롭더라. 그래서인지 야외 밥차에서 햇볕 쪼이며 밥 먹는 점심시간이 정말 행복했었다.

이원 촬영하며 힘들었던 점이나 연기적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연기를 끝내고 나면 늘 아쉽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연기 방향에 대해 몇 가지 생각해서 가는데 다 시도해 볼 순 없다. 촬영 스케줄이 짜여 있고 스태프의 업무 시간이 한정돼 있으니 말이다. 생각했었지만, 못 해본 연기에 대해 아쉬움이 남는 것 같다. 이원 촬영의 경우, 좀 전에 말했던 어색함과 이질감은 점차 익숙해졌었다. 그런데 극 중 많이 편집됐지만 ‘민태구’가 나오는 장면 자체가 롱테이크가 많았는데 중간에 살짝 틀려도 컷 없이 계속 가는 식이었다. 연극 같다고 느꼈던 이유도 그 때문인데, 좋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힘든 부분도 있었다.

최악의 인질범인 ‘민태구’(현빈)가 태국에서 첫 등장하는데, 그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웃음) 꽃무늬 하와이언 셔츠에 맨발에 조리, 다소 긴 머리 등등 의상 콘셉트는. 실제 태국 로케이션인가.
태국 로케이션이다. 의상에 대해 제작진들과 많이 얘기했었다.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모습을 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고, 비즈니스맨인 ‘민태구’(현빈)와 인질범 ‘민태구’ 사이에 구분을 두고자 했다. CEO로 일하는 순간은 슈트를 그렇지 않은 경우는 껄렁껄렁 자유로운 모습을 보이려 했다.

악역에 도전하며 캐릭터 구축에 중점을 둔 부분은.
협상이 진행되면서 점차 ‘하채윤’(손예진)이 협상 상대인 ‘민태구’(현빈)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껴야 하는데, 줄기차게 나쁜 놈으로만 나온다면 과연 연민이 생길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나름 이것저것 시도해 봤다. 냉혹한 인질범이지만 종종 웃기도 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내비치기도 하는 등 ‘태구’라는 인물이 지닌 속성 안에서 변화를 주려 했다. 때론 협상 상대인 국정원 직원의 말투를 따라 하기도 하며 다면적인 모습을 보이려 했다. 무엇보다 ‘민태구’라는 인질범의 정체와 그가 하고 싶은 말에 대해 관객이 호기심을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그 점은 성공이라고 본다. 영화 보는 내내 ‘민태구’의 행동에 ‘왜’라는 호기심이 들었으니 말이다.
다행이다. 이건 좀 딴 얘기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왜’라는 질문이다. 연기하려면 타당성과 명분이 있어야 하거든. 항상 극 중 인물의 행동과 대사에 대해 자문하며 연기하곤 한다. 이번 <협상>의 경우 ‘민태구’가 철저하게 판을 짰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에 대해 여러 차례 생각했었다.

극 중 ‘민태구’가 욕도 아주 많이 사용한다. 이런 거친 모습은 처음인 것 같은데 해보니 어떻든가.
어색해 보이지 않으려고 연습 많이 했다.(웃음) 평소 사용하지 않는 말을 자유롭게? 써도 되고 나름 연기적으로는 재미있었는데, 사실 고민 좀 했다. 여자에게 욕하는 부분도 꽤 있어서 과연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이지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민태구’ 캐릭터상 뺄 수 없는 모습이라 열심히 했지만, 한편으론 그런 모습을 보여줘서 죄송하다.

이종석 감독은 악질 인질범으로 왜 당신을 캐스팅했을까.
그건 감독님께 질문을!(웃음) 내가 듣기론 의외성이라고 하더라. 감독님이 현빈에게 이런 모습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하더라.

극 중 ‘민태구’(현빈)가 협상 상대인 ‘하채윤’(손예진) 상대로 화내고 빈정대지만, 한편으론 신뢰감을 보이는 등 감정이 좀 묘하다. ‘태구’의 진심은 뭘까.
욕하고 빈정대는 것은 진심 반 과시 반이었을 거다. ‘하채윤’에게 처음부터 진심으로 얘기해 보자고 했는데, 이를 지키지 않은 그녀에 대한 분노와 ‘민태구’와 ‘하채윤’ 두 사람의 협상 과정을 뒤에서 지켜보는 자들에 대한 경고가 뒤섞였다고 본다.

상대역인 손예진 배우와 줄곧 모니터를 통해 연기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대면 연기를 한다. 주연 남녀가 이렇게 실제로 부딪치지 않는 경우도 드물 것 같다.
1년 전에 촬영한 거라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대체로 시간 순서에 따라 촬영했었다. 대면하는 장면이 아마 거의 마지막 촬영이라 시원하면서도 한편으론 아쉬웠었다.

상대역인 손예진 배우가 말하길 ‘빈씨’는 차분하고 고요한 사람이라고 하던데, 당신이 본 손예진 배우는.
비슷하다. ‘손배우’는 겉으로는 고요하고 차분한데 안에는 용광로처럼 끓는 것 같은 사람? 흥도 많을 것 같다. 이번에 작업하면서 다음에는 적으로 말고 로코 등 다른 장르에서 또 보자고 얘기했었다.

극의 내용에 대해 세세하게 질문하고 싶은 부분이 꽤 있으나 질문 자체가 곧 스포일러가 되다 보니 난감하다. (웃음) 개인적인 질문 좀 하겠다. 평소 화를 정말 안 낸다고 소문이 자자하다.
어떻게 화를 아예 안 낼까! 알게 모르게 내는데 다만 크게 화내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화나는 순간에 그럴 수 있지 몇 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가라앉는다. 이게 꽤 효과 좋다. 나중에 화날 때 한번 해보길.

추석 극장가에 이른바 빅 3, <안시성>과 <명당> 그리고 <협상>이 대기 중이다. 특히 <안시성>의 조인성 배우와는 재작년 <더 킹>과 <공조> 이후 또 맞대결이다.
(조) 인성 형이랑 내가 아니라 그냥 NEW와 CJ가 붙는다고 해줘라. 추석 대목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극장가에선 큰 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시기에 관객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기분 좋고 영광스러운 일이고 그만큼 책임감도 크다. 우리 영화가 잘 되길 바라는 건 당연하고, 박스 자체가 커져서 세 영화가 모두 잘 되길 바란다.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싶다. 영화라는 게 딱 하나의 평으로 통일되지 않는 것 같다. 만족하는 분도 불만족스러운 분도 계실 것이고 이에 따라 칭찬을 듣기도 욕을 먹기도 한다. 치열하게 최선을 다해 촬영했으니, 영화 보고 기분 좋게 나가시면 좋겠다. 타이틀롤을 맡은 배우로서 책임감을 느끼는 부분이기도 하다.

<협상>의 흥행 기대는 어느 정도인가.
딱 어떻게 짚어 말하기 힘들고 떨리면서 기대 중이다. 다만 내가 처음 시나리오 봤을 때 느낌, 즉 하고 싶었던 이유가 똑같은 크기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조>(2016) 와 <꾼>(2017)에 이어 이번 <협상> 곧 개봉할 <창궐>까지 장르는 다르지만 상업 영화에서도 좀 더 상업적인, 즉 오락에 치중한 작품들에 줄곧 출연했다 볼 수 있다. 리스크를 안기보다 안정적으로 가고자 함인가.
리스크가 적을 것 같아서 선택한 건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대중적이고 오락적인 영화에서 결과가 안 좋으면 더 부담이 커진다. 오락적 요소가 있는 작품을 선택하는 건 (관객이) 영화 보는 동안 편하고 즐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즐거운 시간을 선사하는 것이 영상매체와 연기자의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닌데 언제부터인가 사회적으로 복잡한 사건 사고가 잦으니 관객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평소 작품 선택 기준은.
시나리오를 가장 중요하게 본다. 만약 하고 싶지 않은데 여러 여건에 떠밀려 참여한다면 몇 달간 지속되는 작업을 못 버틸 것 같다. 마음이 끌리는 작품과 그 속의 캐릭터를 어떻게 하면 잘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소중하다. 또, 내가 할 수 있는 한 조금씩 다른 걸 시도하는 중이다. <창궐>도 그렇고, 증강현실을 다룬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도 마찬가지다.

<꾼>의 장창원 감독에 이어 이종석 감독 역시 <협상>이 입봉작이다. 신인 감독들과 합이 잘 맞나 보다. (웃음)
신인 감독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양한 작품을 해온 연륜 있는 감독님들이야 업력이 높고 당연히 장점이 많겠지만, 인지도가 낮거나 신인 감독 중에 다양한 아이디어와 상상력을 가진 분이 많을 거로 생각한다. <꾼>과 <협상> 모두 입봉 감독님이면서 각본을 직접 썼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작품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분들이시다. 또, 시나리오에 의문점이 있으면 물어보고, 계속 글을 써온 입장에서 고착화된 시선이 보이면 내가 의견을 내기도 하는데, 잘 들어 주신다. 신인 감독님과 작업하는 게 나름대로 즐거움이 있다.

다음 활동 계획은.
일단 다음달 <창궐>이 개봉하고 그 한달 후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으로 찾아뵐 것 같다. 차기 영화는 아직 결정 안 했는데, 지금까지 했던 역할과 다르다면 일단 오케이다. 큰 맥락으로 볼 때 설정과 캐릭터가 비슷할 수 있겠지만, 좀 더 깊이 파고들면 다른 면이 있는 역할이 많이 있을 것이고, 그런 차이를 나만의 연기로 잘 표현하고 싶다.

최근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요즘 드라마 촬영과 <협상> 개봉 준비하느라 정말 정신이 없다. 바빠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데… 딱히 기억나는 게 없다. 그렇다고 불행하다는 건 아니다!


2018년 9월 27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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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_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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