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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관객, 국가 폭력 직관적으로 이해하더라 <1991, 봄> 권경원 감독
2019년 6월 5일 수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2018년 10월 개봉한 다큐멘터리 <1991, 봄>이 지난 5월 반년에 걸친 인디스페이스 장기 상영을 마쳤다. 87년 체제가 구축된 이후인 1991년에도 끊이지 않았던 대학생들의 분신을 다룬 <1991, 봄>은 그동안 국내 관객은 물론 체코, 일본, 이탈리아의 관객과 소통했다. 서로 다른 시간과 경험에 새겨진 국가 폭력의 기억이 <1991, 봄>을 통해 다시 이야기되는 순간을 지켜본 권경원 감독을 만났다.

지난해 10월 개봉한 <1991, 봄>이 206일간의 인디스페이스 장기 상영을 마쳤다. 그동안 5,900여 명의 관객이 극장을 찾았다.
말하자면 시대착오적인 개봉이었다.(웃음) 영화는 계속해서 올드미디어가 되어가고, 관객을 극장으로 부르는 일도 이제는 조금 오래된 홍보전략이다. 그런데도 개봉 이후 꽤 많은 분이 어떻게 하면 이 영화를 볼 수 있을지를 문의해 주셨다. 개인 페이스북 말고는 특별한 홍보 창구도 없던 상황에서 공중파를 포함한 많은 언론이 인터뷰를 요청하고 관심을 가져준 덕도 있을 것이다.

장우진 감독의 <춘천, 춘천>(2016)도 인디스페이스에서 오랜 기간 상영했다. 상영관을 확보하기 쉽지 않은 독립영화가 충분한 시간 동안 관객을 만날 수 있도록 돕는 취지일 것이다.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독립영화가 있다면 오래도록 상영관을 확보해줘야 한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1991, 봄>은 개봉 당시 3~40개 정도의 상영관 정도만 확보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이곳, 저곳 열심히 홍보하러 돌아다니는 내 모습을 배급사인 인디플러그에서 좋게 봐준 것 같다. 지난해 12월 말 인디스페이스 오픈런 상영(기자주: 종료 시점을 정하지 않고 상영하는 것)이 결정됐다. <1991, 봄>이 독립영화 개봉 사례의 좋은 기록으로 남기를 바란다.
 인디스페이스 종영 인디토크
인디스페이스 종영 인디토크

여러 명의 관객이 상영관을 통으로 빌리는 ‘대관 상영’이나 영화가 관객을 직접 찾아가 현장 상황에 적합한 형태로 작품을 보여주는 ‘공동체 상영’ 등 다양한 방식으로 관객을 만났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상영이나 관객이 있다면.
영화 개봉 전인 작년 10월 주체코 한국대사관의 초청을 받았다. 아마 ‘프라하의 봄’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그들에게도 <1991, 봄> 속에 등장하는 분신 정국과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친러시아 성향이던 당시 체코 정권은 (민주화를 저지하려는) 소련군의 침공에도 가만히 있었고 결국 ‘얀 팔라흐’라는 20대 초반의 대학생이 분신했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과 젊은 체코 사람들을 주축으로 ‘얀 팔라흐’를 추모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던 차에 때마침 내가 자신들의 역사와 비슷한 내용을 영화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흔치 않은 경험이다.
생각보다 유럽에서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이탈리아에서 열린 우디네극동영화제에 초청받았을 때도 비슷했다. 우호적이라고 해야 할까. 알고 보니 그 나라에서도 (국가 폭력에 의해) 의문사한 젊은이가 있었다. 외국인들은 <1991, 봄>의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이해했다. 한국이 그저 유교적 국가관을 가진 조용한 나라가 아니라 민주화를 위해 어떤 일들이 꾸준하게 일어났던 곳이라는 점을 알게 됐을 것이다. 어떤 관객은 나에게 “You have guts” 이라고 하더라. 아마 “당신, 깡이 있다”는 의미였던 것 같다.(웃음) 지난 3월 우리나라로 치면 ‘민변’정도에 해당하는 일본의 자유법조인에서 인디스페이스를 찾아 영화를 관람하기도 했다. 외국 관객과 만난 경험은 대체로 인상 깊게 남아있다.

영화를 만들고 관객에게 선보인 시간 동안 아쉬움을 느낀 대목도 있었을 텐데.
생계 문제를 해결하며 영화를 제작하고 배급했던지라, 전업 연출가나 전업 작가로서 작품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 점이 가장 아쉽다. 이전에 노동 운동을 했거나, 자신이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고 말하는 분들은 <1987>(2017)은 단체관람 하면서 이 영화는 안 보시더라.(웃음) 하지만 나처럼 풀벌레 같은 사람도 이렇게 영화를 할 수 있다는 사례를 남겼다는 점에서는 좋다. 꼭 봉준호 감독 같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어디서 우는지 모를 풀벌레 같은 사람들도 자기 울음소리를 낼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프라하 상영
프라하 상영

 프라하 상영
프라하 상영

앞으로의 작업 계획이 궁금하다.
아직은 <1991, 봄>의 뒷바라지를 해야 한다. 일본어, 불어 자막으로 번역을 진행 중이다. 복이 많은 건지, 번역을 감수하는 과정에서 많은 젊은 친구들이 함께 애써줬다. 오는 7일부터 9일까지 인천 추억극장 미림에서도 ‘인천에서 요코하마까지’라는 주제로 영화를 상영한다. 그때도 일본 관객을 만날 것 같다. 그 후로는 뭘 하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다니겠지. 나는 이미 글도 쓰고 다큐멘터리도 만들 수 있는 무지막지한 사람이 됐으니 말이다.(웃음)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은.
얼마 전 수정과를 만들기 위해 집에서 생강과 계피를 달였다. 봄바람이 살살 들어오는 집 안에 생강과 계피 냄새가 퍼지는데 참 좋더라. 무언가로부터 쫓기지 않고, 무언가를 달일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생겼다는 생각이 들어 기뻤다.

사진 제공_ 권경원 감독


2019년 6월 5일 수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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