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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로부터 찾아낸 오늘의 울림 <벌새> 김보라 감독
2019년 9월 9일 월요일 | 민용준 영화 저널리스트 이메일

[무비스트=민용준 영화 저널리스트]

떠올릴 수 있다는 건, 지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상실도, 성장도 시간을 건너온 자에게만 허락된 것이다. 어떤 시절에 대한 추억도, 연민도, 기쁨도, 통증도, 그 시절을 지나온 자의 몫이다. 만남도, 이별도, 과오도, 성취도, 존경과 사랑도, 그 시절을 돌아볼 수 있는 자에게 남겨진 시절이자 기억이자 역사일 것이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렇게 무언가를 남겨둔 어제를 떠올리며 내일을 기약한다. 끊임없이 어제로 떠밀려가는 오늘을 건너 내일로 간다.

<벌새>는 1994년을 살아가는 중학생 은희에 관한 이야기다. 은희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로부터 한발 물러서서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하고, 간혹 한 발을 내밀어 다가가 보기도 한다.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관계를 향한 호감과 시대에 의한 의구심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나간다. 때론 지리멸렬하게 지겹고 버겁지만, 때론 희희낙락하게 들뜨고 신나는 매일이 예측할 수 없게 떠밀려오고, 떠밀려간다. 도돌이표처럼 돌아오는 일상 속에도 매일의 온도차를 느끼며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별일 같은 하루를 지나가며 거듭되는 오늘을 맞이한다.

누군가의 이야기이지만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 <벌새>는 그렇게 객석에 앉은 우리 모두의 품으로 날아드는 영화다. 1994년의 은희가 지나온 세월과 마주한 세계는 누군가가 지나왔던 시절이기도 하고, 이미 지나간 풍경이기도 하다.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 건너온 시절과 누군가는 지나온 세계를 만나며 어제를 살피고, 오늘을 짚는다. <벌새>는 그렇게 한 시대의 공기를 재현하고, 그 시절의 마음을 응시함으로써 전하는 현재진행형의 울림이다. 이토록 거대하고 고요하며 끝내 명료한 첫 번째 울림 <벌새>를 완성해낸 김보라 감독에게 많은 것을 물었다. 명확한 의미가 낭랑한 목소리로 전해졌다.



<벌새>로 국내와 해외의 다양한 영화제에서 수상을 이어가며 개봉 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좀 실감이 나던가.
올해 해외 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스무 번 가까이 비행기를 탔고, 대부분 혼자 다녀왔다. 상을 타는 건 좋은 일이지만 아무래도 매번 혼자 받으러 다니다 보니 대단한 관심을 받는다고 느끼진 못했다. 게다가 비행기 안에서도 계속 일을 해야 했다. 이미 차기작 준비에 들어간 상황인데, <벌새>의 단행본도 준비하고, 개봉 준비까지 더해지면서 너무 바빠진 탓에 주목받는다는 것을 실감할 겨를이 없었다. 계속 해외를 오가며 일만 하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벌새>가 개봉하게 되니 남다른 의미가 생기는 거 같다. 관객들의 반응도 궁금했고.

<벌새>는 처음부터 염두에 뒀던 제목인가?
맞다.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다. 꿀을 찾아 먼 길을 나는 벌새처럼 사람들이 제각각 삶의 여정을 사랑하고 희망을 놓지 않으며 살아가자는 영화의 메시지에 어울리는 제목이라 생각했다.

2011년에 발표한 단편 <리코더 시험>이 <벌새>의 모티프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두 영화에서는 김은희라는 동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벌새>는 <리코더 시험>의 연작이라 생각하고 시작한 작품이다. <리코더 시험>를 본 이들 중에서 은희가 어떻게 컸는지, 어떻게 살고 있을지, 은희의 미래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 물음이 좋았고, 그게 <벌새>를 만드는 강한 동기가 됐다. 그래서 주인공 이름도 바꾸지 않았다. 다만 <벌새>가 <리코더 시험>과 같은 영화처럼 보이는 건 싫어서 동일한 배우를 쓸 생각을 하진 않았다. 주연 캐릭터의 연령대 자체도 많이 다르니까.

<리코더 시험>에서 은희의 아버지 역할을 맡았던 정인기 씨가 <벌새>에서도 은희의 아버지로 등장하기 때문에 두 영화가 연작의 느낌으로 다가올 때도 있는 거 같다.
그렇게 보여도 좋을 거 같다.

<벌새>는 1994년이라는 연대 자체가 주인공인 작품 같기도 한데 주연을 맡은 박지후 씨에게 1994년은 조금 생소한 시절이 아니었을까? 어린 배우에게 1994년을 이해시키는 과정이 필요했을 거 같다.
그 친구가 인터뷰에서 말하길, 은희를 굉장히 평범한 아이라 생각하고 연기했다더라. 나 역시 은희가 평범한 아이로 보이길 원했다. 여기서 평범하다는 건 매력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은희가 겪는 일들이 대단히 특수한 경험이 아니라는 의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일이라는 거다. 사랑받고 싶거나 사랑하고자 하는 열망, 거절당해서 느끼는 속상함, 잘하고 싶은 마음 혹은 질투, 자기 자신이 싫어지는 순간의 마음처럼 모두가 느낄 만한 감정을 은희도 느끼고 겪는다. 1994년이라는 시대 배경의 특수성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지후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다. 촬영 당시 지후도 은희처럼 중학생이었기 때문에 중학생으로서 느끼는 감정을 녹여내고자 했다. 중학교 시절을 지나온 사람 대부분은 끈적한 우정의 기억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단짝 친구를 좋아하지만 싸우기도 하고, 없으면 죽고 못 살 것 같은 그런 기억. 지후도 그런 단짝 친구와 나눈 경험에서 비롯된 연기를 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자신 안에 있는 것과 만나는 과정을 통해 캐릭터를 만들고자 서로 노력했다.

<벌새>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은희는 문을 열어 달라며 애타게 엄마를 부르고 울분을 터트린다. 뭔가 심각한 일이 일어난 걸까 싶었는데 그저 집을 잘못 찾아서 벌어진 해프닝임을 곧 알게 된다. 서사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 장면은 아니지만 이상한 긴장감을 발생시키는 효과가 있는 장면이다. 영화의 시작을 그렇게 선택한 배경이 궁금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이어지는 극 초반부는 좀 샤방샤방하게 전개된다. 애들끼리 막 귀엽게 놀면서. 그러다가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되고, 막판에 다다르면 ‘이게 이런 영화였구나’라고 와 닿는 서사 구조를 구상했다. 큰 그림이 퍼즐처럼 맞춰지는 구조. 그런데 극 초반부만 놓고 보면 과거를 따뜻하게 그리는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보일 거 같았다. 그래서 그런 오프닝 시퀀스를 미리 심어 놓으면 뭔가 있을 거 같다는 예감을 쥔 상태로 그 이후의 과정을 보게 될 거라 생각했다. 사회적인 공기를 느낄 수 있는 영화라는 암시를 주고 싶기도 했고. 캐릭터의 여정으로 봤을 때 시작과 끝에서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집을 찾지 못하는 불안한 얼굴에서 시작해 인생의 한 챕터를 지나온 듯한 느낌을 주는 담담한 얼굴로 끝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적절해 보였다. 게다가 집을 찾아가는 여정 자체로서 상징적인 장면이 될 거라고도 생각했고.

<벌새>가 성수대교 붕괴를 다룬 영화라는 것이 일찍부터 알려져서 좀 무거운 분위기의 영화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도입부가 예사롭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원래 성수대교 붕괴를 빨리 보여주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나는 뒤로 미뤄야 한다고 생각했다. 디테일한 일상의 순간들을 쌓아야 성수대교가 붕괴되는 순간이 어떤 놀라움으로 다가올 거라 생각했다. 붕괴되고 난 이후가 아닌 그 직전까지 이어지던 일상들이 어떻게 균열하는지를 보여주는 게 내게는 더 중요하게 느껴졌고 결국 지금과 같은 서사 구조를 선택했다.

일찍이 감독의 자전적인 경험들을 녹인 이야기라는 것이 알려지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자전적이라는 부분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거나, 받게 될 거 같다.
얼마나 자전적인 경험이 반영된 것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자전적인 영화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동시에 자전적인 영화라고 말할 수도 없겠더라. 그래서 ‘예스’와 ‘노’가 동시에 있다고 말하곤 했는데, 경험에서 비롯된 사실적인 감정들이 반영되긴 했지만 많은 부분들이 작가로서 만들어낸 허구이니까. 결과적으로 <벌새>는 치밀하게 직조된 이야기 구조를 가진 픽션이다. 후반 작업 과정에서 수많은 수정을 거친 결과물이다. 그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은 의견을 구하면서 공통적인 기억에 해당한다고 느껴지는 사건은 비중을 더 키우고, 공감대가 떨어진다고 느껴지는 사건들은 삭제하거나 축소하는 과정이 있었다.

사적인 경험을 녹여서 영화를 만든 감독 입장에서는 그런 경험에 공감하는 관객들을 보는 흥미나 재미가 있지 않을까 궁금하다.
맞다. 사실 오프닝 시퀀스도 개인적인 사연이 녹아 있는 장면인데, 어릴 때 수학 과외를 해줬던 친오빠 친구가 있었다. 지금도 친하게 지내는 편인데 그 오빠가 군 복무 시절 휴가를 나와서 집에 와 문을 두드리니까 원래 집에 없던 강아지 소리가 나서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가족이 자신을 버리고 떠났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더라. 알고 보니 자신이 군대에 있는 사이 강아지를 입양한 것뿐이었다. 그래서 뒤늦게 그런 생각을 한 게 좀 놀라웠다고 하더라. 나도 되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한편으론 사람들이 그런 불안을 갖고 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문을 열었는데 내 집이 아닐 수도 있다는 공포감? 한편으론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 중에서 집을 잘못 찾아갔다는 사연도 많더라. 윗집이나 아랫집을 잘못 찾아갔다는 식으로. 그런 공감대를 파악하고 영화의 편집에 반영하는 과정에서 느낀 흥미가 있었다.

은희의 부모님처럼 실제로 부모님께서 대치동에서 떡집을 운영하셨다고 들었는데.
그건 사실이다.

<벌새>에 가족과 연관된 사실을 반영하는 것에 대해 이해를 구하는 과정이 있었을까?
한번 물어본 적은 있다. 이렇게 가족 간의 경험에서 영감을 받아 영화를 만들어도 괜찮겠냐고. 그러니까 아빠가 영화로 만들어지는 순간 그건 영화라고, 가족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두의 이야기가 되는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아빠가 예술가 같다고, 좀 멋지다고 생각했다.(웃음) 아무튼 가족으로부터는 많은 응원과 지지를 받았다. 심지어 은희 역에 누가 괜찮을지 가족에게 의견을 구하면서 지후의 오디션 영상을 같이 보기도 했다. 사실 우리 가족도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고, <벌새>는 그런 기억들을 녹여 만든 영화 같다. 어쩌면 가족끼리 서로 화해하고 깊이 이해하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물이었던 것 같고. 개인적으로는 <벌새>를 만들면서 더더욱 그럴 수 있었던 거 같다.

아무래도 은희 역을 맡을 배우를 발견하고 선택하기까지 적지 않은 고민이 있었을 거 같은데 박지후 씨를 선택한 기준이 궁금하다.
맑은 이미지를 갖고 있으면서도 욕심도 있어 보이고, 서늘하면서도 예민해 보이기도 하고, 은희는 그런 다양한 얼굴을 가진 아이이길 바랬다. 허무함과 외로움을 느낄 수 있고, 어린 나이라 그걸 언어로 표현하지 못할 뿐인, 복잡한 결을 가진 아이를 찾았다. 가장 지양했던 건 귀엽고 착해 보이기만 하는, 전형적인 아이 같은 이미지였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아이들은 밝고 명랑하게만 보이는데 실제로 아이들은 우울하다는 게 뭔지 잘 아는 거 같다. 형언할 수 없었을 뿐, 그 어린 나이에도 허무나 고독, 공포, 우울을 경험했던 거 같다. 그래서 은희가 그런 감정들을 관통하는 아이로 보이기를 바랐다. 은희가 영지 선생님(김새벽)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갈 때 이 아이의 표정에서 굉장히 많은 감정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질 수 있길 바랬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과 얘기를 나누고 돌아오는 기쁨도 있지만 이 아름다운 시간이 끝날 수 있다는 막연한 불안도 서려있길 원했다. 너무 예쁘고 아름다운 게 생기면, 그걸 잃을 수 있는 미래에 대한 슬픔이 갑자기 밀려오기도 하는 법이니까. 은희가 그런 얼굴을 보여주길 바랬는데, 지후가 그 장면에서 정말 좋은 연기를 보여줘서 다행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허무나 고독, 공포, 우울을 경험한다는 사실은 본인의 과거를 통해 길어 올린 성찰 같기도 하다. 유년시절의 자신은 어떤 아이였다고 기억하나?
세계의 질서라는 게 거짓말 같다는 생각을 깊게 했던 거 같다. 부모님 직업에 따라, 아파트 평수에 따라,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끼리 서로 계급을 나누듯이 부모님 직업을 따지고, 아파트 평수를 가리는 게 어린 내 입장에서 봐도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나 보다. 왜 사람들이 똑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면서 죽어갈까, 이렇게 살다가 죽을 수는 없다, 이런 고민들이 어릴 때 쓴 일기에 적혀 있었다.

어떻게 보면 어른이 된다고 해서 더 많은 것을 깨닫고, 더 잘 아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감정을 감추는 데 익숙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세련된 방법으로 감추는 법을 알게 된 거지. 아이들은 훨씬 투명하고.

그렇기 때문에 은희 눈에는 부모님이 이상해 보일 수밖에 없을 거 같다. 지난밤에는 피를 볼 정도로 격하게 싸우던 부모님이 다음날 아침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함께 TV를 보며 웃고 있으니까. 하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그게 그렇게 이상하게만 보이는 것 같진 않다. 묘한 연민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관객들은 은희의 부모님을 이해하길 원했다. 은희의 관점으로는 그렇게 싸우고 난 다음날 아침에 부모님이 TV를 보는 모습을 보고 은희는 ‘왜 저래?’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관객들은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다. 전혀 다르지만 어우러질 수 있는 시선들, 그런 걸 원했다. 그런 상반된 관점을 균형 있게 제시하는 게 어려웠지만 그만큼 중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 연령대의 관객들이 <벌새>의 가족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더라.
일단 20대 관객들도 많이 공감해준 거 같다. 94년생이라는 관객 분도 너무 자기 얘기 같다고 하더라. 사람의 삶이라는 게 시대에 따라 많이 변하는 것 같지만 거기서 거기인 것도 있다. 가족만이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연기하듯 거짓말해야만 하는 순간이 있지 않나. 그런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을 거다. 지금 이 세계의 질서를 무너뜨릴 자신이 없으면 당장의 평화를 위해, 주변 사람들을 위해 당분간 휴전을 하고 연기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는 걸 모두가 아는 거지. 그런 면에서 정서적인 공감대가 커지지 않았을까 싶다.
은희와 지숙이(박서윤)에게 오빠의 손찌검은 일상과 같다. 고함치거나 윽박을 지르고, 으름장을 놓는 남자들의 세계에서 소녀들은 주눅이 들고, 두려움을 느낀다. 그런 면에서 <벌새>는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관습 속에 자리한 은희의 가정을 비롯해 남성적인 폭력이 지배하는 사회적인 관습이 일상화된 풍경을 직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구체적으로 은희와 지숙이가 오빠에게 당하는 폭력을 보여주면서도 그런 폭력을 방조하는 분위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학교나 직장을 비롯한 사회의 구석까지 여전히 군대 문화가 지배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데 1994년은 더 했을 거다. 군사독재가 끝났지만 그 후유증을 앓고 있었던, 폭력적인 분위기가 여전히 감돌 수밖에 없는 시대였다. 물리적인 폭력이 언어적인 폭력으로 전환되는 시기이기도 했고. 서울대에 가야 한다고 열창하게 만드는 교실의 폭력이 이상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그렇다고 지금은 아닌가 하면 그렇지도 않을 거다. 과거에 비해 학교나 가정에서 벌어지던 관습적인 폭력이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폭력 자체는 새로운 양태로 옮겨간 거 같다.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주로 소수자들을 향한 혐오들도 그중 하나일 거고. <벌새>는 인간을 인간답지 못하게 만드는 그런 폭력과 거짓에 대해서도 말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정치적이거나 전면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아니지만 일상적으로 그려내는 영화. 그리고 그런 시대에서 인간적인 본질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려는 영지 선생님 같은 사람을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고.

하지만 <벌새>는 누군가를 악당으로 몰아가거나 규정하진 않는다. 밥상머리에서 윽박지르던 가부장 아버지는 수술을 앞둔 딸 옆에서 울음을 터트리기도 하고, 은희에게 폭력을 행사하던 오빠는 가족을 상실할 뻔했다는 긴장감에 뒤늦게 오열한다. 그런 면에서는 폭력을 휘두르는 가부장제의 남자들 역시 일종의 피해자라는 관점이 발견되는 것 같다. 그 질서가 단순히 선악으로 명확하게 구별될 수 없는, 복잡한 단면들이 뒤엉킨 결과라는 것을 얘기하는 인상이랄까.
가부장제 질서 안에서 가장 억압받는 건 분명 여자들이지만 가해의 주체가 되는 남자들도 승자는 아닌 거 같다. 인간다운 본질을 지켜가며 그 질서를 유지하는 것 같진 않으니까. 결국 모두가 지는 게임이다. 그래서 억압된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마련된 가해의 주체이자 스스로 피해자인 것조차 모르는 이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얼마나 억눌려 있는지, 왜 이런 울음을 터트리는 건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어떤 면에서 그 울음은 위험한 수술을 받게 된 딸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자기 연민으로 가득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장면은 애틋하면서도 우스꽝스럽다. 동시에 아버지라는 사람이 생각보다 연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도 하고. 만약 이게 온전히 타인의 이야기를 그리듯이 시작했다면 남자 캐릭터를 더 서늘하게 그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 역시 가부장적인 분위기로부터 점점 벗어나는 집안에서 자라면서 남자 가족 구성원에 대해 좀 더 이해하게 됐다. 그들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그들을 좀 더 인간적으로 바라보고 깊게 이해하게 되면서 그런 신들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허구적으로 재현하는 셈이니까. 다만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연민을 투영한 것이거나 합리화된 결과로 보이지 않도록 노력해야 했다. 그게 작가로서 가장 어려운 지점이기도 했고. 마치 폭력에 면죄부를 주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오히려 남자 캐릭터를 악마처럼 그리면 감독으로서 실패하는 거라 생각했다. 너무 쉬운 방식이기도 하고. 사람들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게 가장 어려우니까. 그렇다고 폭력을 정당화하겠다는 인상을 줘선 안되니까 영지의 입을 빌려 폭력이 나쁘다는 걸 얘기하려 했다.

영지가 은희에게 때리면 참지 말고, 절대 맞지 말라는 말을 할 때 그것이 어쩌면 관객에게 거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폭력을 막을 수 있는 사회적 제도의 뒷받침도 중요하지만 개개인이 폭력에 저항하는 것도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영지가 은희 대신 싸워주겠다는 게 아니라 은희에게 스스로 선택하고 저항하라는 얘기를 한다는 게 내게는 중요하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영지가 은희 대신 고발해주는 설정도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캐릭터에게 어울리는 행동처럼 느껴지지 않았고, 그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은희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은희에게 숙제처럼 남겨두고 떠나는 듯한 엔딩을 선택하게 됐고.

침샘의 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은희는 무의식 중에 떨어져 나간 혹에 애착을 드러내기도 하고, 멀리 등을 돌리고 선 엄마를 반갑게 불러보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엄마로 되레 인해 애가 탄다. 이 두 장면은 꿈인지, 현실인지, 그 경계가 모호해 보이기도 하는데 은희의 나이에 어울리는 심리적인 불안과 갈망이 동시에 느껴지는 신이라 상징적으로 배치된 장면처럼 보인다.
<벌새>에서 은희가 겪는 갈등은 근원적인 분리감과 연관돼 있다. 그런 면에서 엄마를 부르는 장면은 오프닝 시퀀스와 연결되는 부분이기도 한데 엄마와 연결되고 싶지만 제대로 연결됐다고 느껴지지 못하는 데서 오는 텅 빈 느낌이 영화의 전반에 흐르길 바랬다. 그리고 오프닝 시퀀스와 함께 그런 느낌을 주는 데 있어서 주축이 되는 신이 바로 엄마를 부르는 그 장면이다. 공공장소에서 가족 구성원을 만났을 때 낯설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집안에서 보는 엄마와 밖에서 보는 엄마는 조금 달라 보인다. 우리에게 익숙한 엄마라는 가면을 쓰고 역할을 수행하는 게 아닌 엄마의 민낯을 보는 순간이니까. 그래서 은희가 계속 엄마를 부르는 순간에 엄마가, 엄마로서가 아닌 개인의 세계를 관통하고 있다면 은희는 그 세계를 이해할 수 없을 거다. 그리고 그 시절의 엄마들은 정말 바빴다. 초인적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해낸다. 그래서 가끔 그 시절의 엄마들이 어딘가 정신이 나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너무 많은 일에 시달리니까. 어쩌면 지금의 엄마들도 여전히 그럴 수도 있고. 그런 장면을 통해 인간이 가진 심연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혹을 찾는다는 건 자신의 몸에서 떨어져 나간 것에 대한 상실감을 느끼는 거다. 은희에게는 계속 버려지고 떠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아쉬움, 그리움이 있는 아이이기 때문에 자기 몸에서 벗어난 것에 대해 당연히 묻게 될 거라 생각했다. 사랑니를 뺀 뒤 그걸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처럼. 어리지만 아주 근원적인 느낌을 주고 싶기도 했다. 동시에 은희는 사람들이 보잘것없다고 여기는 것에 대한 연민을 갖는 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떨어져 나간 혹에 대해 안부를 묻는 장면이 이 아이를 드러내는 방식일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청소년기에 실제로 은희와 비슷한 증상으로 수술을 했다고 들었다. 그런 정서들 역시 그 시절의 경험의 결과가 반영된 걸까?
내가 그런 감정을 아예 갖지 못했다면 이렇게 연결될 수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내 개인적인 경험들이 반영된 것보단 영화적 필요에 의해 직조된 바가 더 많은 것 같다. 작가는 자신이 미세하게 느낀 부분들을 작품 안에서 크게 확장해 말할 수도 있는 거니까.

<벌새>는 차분하면서도 유려한 영상미가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인물과 풍경을 올곧이 응시하면서도 시종일관 감정적인 온도를 적정하게 유지한다.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그림이 배우와 공간을 통해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전해지는 즐거움도 상당했을 거 같다.
현장에서 소름 끼치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생각했던 그림이 영화로 펼쳐지는 게 너무 좋았고, 이게 정말 어떻게 보일 수 있을까 싶었던 신들이 잘 구현돼서 너무 좋았다. 현장에서도 정말 괜찮다고 느껴지는 몇몇 신이 있었는데 성수대교에 찾아가는 신도 정말 기분 좋게 촬영했다. 실제 성수대교 지부를 찾아가서 촬영했고, 새벽에 찍어서 그 장면이 파랗게 나왔는데 다리가 무너져 있는 게 아님에도 그런 걸 본 적 있는 것 같다는 이상한 기시감을 느꼈다. 은희가 춤추는 장면은 어떻게 나올지 예상이 안됐는데 지후가 잘 연기해준 덕분에 원하는 것 이상의 결과가 나왔고, 은희가 유리(설혜인)랑 노래방에 가서 노래 부르는 장면도 생각했던 것보다 아름답게 느껴져서 좋았다.

시나리오 작업 단계에서 구상한 그림이 실제 촬영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얼마나 바뀌었는지 궁금하다.
영화의 대부분은 시나리오와 흡사하게 가려한다 해도 당연히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바뀌거나 변주되는 부분들이 생긴다. 그게 현장의 묘미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마술 같기도 하고. 그러나 대사는 최대한 절제해서 썼기 때문에 정말 필요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이상 애드리브 없이 시나리오와 거의 동일하게 갔다. 그리고 스토리보드도 다 그려서 거의 비슷하게 촬영했다. 물론 현장 상황에 맞게 바꾼 부분도 없지 않다. 이를테면 지금의 공간에서는 무빙을 시도해봐도 좋겠다 싶으면 그렇게 했다. 하지만 결국 시나리오와 스토리보드로 구상한 기본적인 구조들은 거의 다 비슷하게 갔다.

노래방에서 은희는 원준희의 ‘사랑은 유리 같은 것’을 부르고, 집에서 춤을 출 때는 들려지는 노래는 윤복희의 ‘여러분’이다. ‘여러분’은 아빠가 춤 연습할 때 틀어 놓던 음악이니까 정황상 이해는 되는데, 둘 다 1994년 당시에 유행하던 음악은 아니었기 때문에 은희가 부르고, 듣는 음악으로서 두 곡을 선택한 감독의 입장이 궁금했다.
아빠가 춤췄던 노래에 맞춰 은희가 춤을 춘다는 건 편집기사님의 아이디어였는데, 붙여 놓고 보니 정말 어울렸다. 가사도 상황에 잘 맞고,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사랑은 유리 같은 것’은 개인적으로 1994년도에 너무 좋아했던 곡이다. 워낙 히트한 노래라 당시 중학생들도 노래방에 가서 많이 불렀다. 그 당시 힙합 장르의 음악들이 많이 유행하던 시기이기도 했지만 옛날 음악도 함께 많이 듣던 시대였다. 그 당시에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 같은 노래도 너무 좋아했는데, 그런 음악을 중학생들도 많이 듣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새로운 유행가인 ‘칵테일 사랑’ 같은 노래도 나오니까.(웃음)

은희가 과격하게 춤을 출 때 초인종이 울려서 아래층에서 항의하러 온 건가 싶었다. 그런데 소포가 왔고, 뒤늦게 그 소포의 정체를 알고 나니 잠시 의아하기도 했다. 왜 소포가 저렇게 늦게 도착한 걸까. 그러다 1994년에는 지금처럼 택배가 빨리 오지 않는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됐다. 1994년에 대한 시차 적응이 좀 늦게 이뤄진 기분이었다고 할까. 그래서 뒤늦게 1994년을 체험하고 있다는 기분을 더 명확하게 느끼게 됐고. 시나리오를 쓰고 완성된 영화를 본다는 것이 감독 입장에서도 1994년을 다시 한번 복기하고 체험하게 되는 과정처럼 다가오지 않았을까 궁금했다.
그랬던 거 같다. 나는 <벌새>가 사람들에게 편지처럼 배달되길 바랬다. 실제로 이 영화가 과거에 정리하지 못한 감정들이 담긴 편지를 뒤늦게 받은 것 같은 느낌이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고. 생각해보면 우리는 너무 고속 성장하는 시대를 지나왔고, 그만큼 배달되지 못한 편지 같은 감정과 기분이 너무 많이 쌓여 있는 나라가 아닐까 생각했다. 전국민적인 씻김굿 같은 게 필요할 정도로 너무 많은 상처가 남아있다고 느껴진다. 불과 100년 만에 너무 많은 일을 겪었다. 그래서 이 영화가 1994년을 통과해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에게 편지처럼 배달되길 바랬다. 내 입장에서도 현장에서 그 당시의 일들이 기시감처럼 살아나는 순간이 있었고, 그런 의미에서는 내게도 1993년을 재경험하게 만드는 과정이었다는 게 정확하게 와 닿긴 한다. 물론 내 기억이 모든 면에서 정확하진 않겠지만 영화를 통해 그 시대를 다시 재조명함으로써 내가 충분히 경험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뒤늦게 마주하게 되고 풀지 못했던 퍼즐들도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제대로 하지 못했던 화해와 이별, 애도를 뒤늦게 정리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사실 <벌새>를 만들며 좀 힘들기도 했다. 뒤늦게 그런 편지를 계속 받고, 지난 감정을 곱씹으며 경험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내 안의 은희들과 함께 많이 울었다. 사실 처음에 시나리오를 쓸 때는 내가 영지의 입장에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은희를 더 많이 만나게 됐던 거 같다. 내 안에 정리되지 못했던 감정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많이 힘들기도 했지만 새롭게 깨닫게 되는 의미로 다가오는 시간이기도 했고.
<벌새>에서는 가족끼리 밥을 먹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레코더 시험>에서도 가족들의 식사 장면이 한 차례 등장하기도 하는데, 생각해보면 그때만 해도 가족끼리 모여서 식사를 하는 게 당연한 일상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식사 장면이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인상이라 감독 입장에서 그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는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느껴진다.
은희네 가족이 겉으로 보면 문제가 많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음식이라는 게 사실 어머니의 엄청난 노동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렇게 만든 음식을 가족이 함께 먹는다는 행위 자체가 말이 필요 없는 연대감을 느끼게 해 준다고 생각한다. 먹는 행위 자체가 허기를 달래는 것이고, 음식을 나눠 먹는 행위가 공동체로서 유대감을 느끼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 모든 것이 가족 식사 신으로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편에서는 가족 식사 신이 자주 반복되니까 빼자는 의견도 있었는데 나는 가족들이 모여 있는 식사 신에서 이뤄지는 별개의 드라마를 무시할 수 없다고도 생각했다. 예를 들어 수술을 앞둔 은희에게 오빠가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하니까 아빠가 핀잔을 주고, 언니도 한 소리 거든다. 엄마도 그날만큼은 은희 숟가락에 고기반찬을 얹어주고. 그런 가족의 모습을 한 장면 안에서 보여줄 수 있다. 단순히 가족끼리 공동으로 식사를 한다는 의미 이상으로, 다섯 사람의 인간 군상을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공간적 장치로 활용하고자 했다. 사실 지금도 우리 가족들은 함께 자주 식사를 하고 그 순간을 즐기는 편이라 어쩌면 그런 개인적인 경험이 반영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가족 식사 장면의 반복적인 등장은 영화의 서사에 일종의 리듬감을 만들어주는 요소로서도 유효하다. 그러면서도 동일한 장면처럼 보이는 그 신 안에서 발견되는 변주를 보는 재미도 주어진다. 동일한 장면을 보는 것 같지만 미묘하게 공기가 바뀌는 느낌이랄까.
나름대로 수학적인 계산을 하는 것처럼 직조하듯 영화를 완성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신 하나하나마다 인덱스카드로 만들어서 배열을 바꿔보며 흐름을 살폈다. 이전 신이 강하면 뒤에는 상대적으로 약한 신을 배치하는 식으로. 작곡가가 리듬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신과 신 사이마다, 시퀀스와 시퀀스 사이마다 내적 리듬을 만들어내고자 노력했다. 겉으로 확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고, 많은 서사와 캐릭터와 스토리 라인이 있기 때문에 그 과정이 좀 오래 걸렸지만 그만큼 정교한 흐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그 과정을 정확하게 거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족 식사 신 외에도 병원에 가는 신도 몇 차례 반복되는데 그 과정에서도 편집이나 촬영 방식에 조금씩 변주를 가미하려 노력했다. 처음에는 병원을 부감 숏으로 보여주는데 이후에는 밖에서 롱샷으로 보여준다던가, 동일한 공간도 어떻게 달리 재현할 수 있는지, 그러면서도 서사적으로 한 템포 쉴 수 있는 지점으로서 역할은 유지하고. 그래서 이런 걸 알아 봐주는 게 개인적으로는 반가운 일이다.

<벌새>에서는 1994년을 환기시키는 세 개의 사건이 등장한다. 94년 미국 월드컵, 김일성의 죽음, 성수대교 붕괴. 이 세 사건을 선택한 기준이 궁금했다.
<벌새>는 해외의 관객들도 공감할 수 있는 영화가 되길 원했다. 그래서 전 세계적인 뉴스로 통할만한 사건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했고, 리서치를 통해 한국과 연관된 사건 중에서 세계적인 뉴스가 된 이슈를 추렸다. 그게 바로 미국 월드컵과 김일성 죽음 그리고 성수대교 붕괴였다. 이 세 사건이 발생한 순서를 기준으로 서사의 기본 구조를 만들었다.

<벌새>에서는 시점을 알려주는 자막이 두 번 등장한다. 극 초반에 등장하는 ‘1994년’, 그리고 극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1994년 10월 21일’. 그리고 두 번째 자막 이후에 찢어진 철거민 현수막이 등장하면서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징후가 느껴지고 결국 성수대교가 붕괴되는 순간으로 이어진다. 그 이후에 빈 교실과 복도의 이미지가 등장할 때 왠지 단원고와 세월호 참사가 떠올랐다. 혹시 세월호 참사가 이 영화를 제작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궁금했다.
그건 아니다. <벌새>은 이미 2012년에 시놉시스가 나왔고, 시나리오 초고도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기 전에 완성됐다. 수학여행 신도 2013년 초고에 있던 장면이었고. <벌새>를 보고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은 거 같은데 아무래도 우연의 일치 같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 때 나 역시 20년 전의 그 일들이 떠올랐다. 지후도 세월호 참사에 대입해서 성수대교 참사를 이해했다고 하더라. 어쩌면 지후나 지후 또래의 아이들은 세월호 참사를 경험해봤기 때문에 검색해봐야 알 법한 성수대교 참사에 공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역사가 돌고 도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94 미국 월드컵과 김일성의 죽음이 시대를 대변하는 미장센으로서의 역사라 할 수 있다면 성수대교 붕괴는 서사적으로 중요한 캐릭터로서의 역사라 할 수 있을 거다. 그런데 성수대교가 붕괴된 다음 해인 1995년에 삼풍백화점 붕괴가 발생했다. 어떤 면에서는 성수대교 붕괴보다 파장이 더 큰 사건이기도 했는데 성수대교 붕괴를 대체할 만한 후보로 고려하진 않았을까?
삼풍백화점은 내가 영화로 다루기엔 너무 스케일이 크다고 느껴진다. 성수대교 붕괴가 중요한 전환점 같았다. 시대에 경종을 울리고 공동의 미몽에서 깨어나게 만든 사건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여파가 남은 상태에서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면서 국가적으로 정신을 각성하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은희는 집 안팎에서 조금씩 정서적 붕괴를 경험한다. 크게는 철거민들의 현실을 깨닫게 되고, 서울대 가자고 외치게 만드는 학교에서 폭력성을 경험하면서. 그러다 성수대교가 붕괴하면서 이미 일상에서 일어나고 있던 크고 작은 붕괴를 물리적으로 체감하게 됐다고 생각했다. 다리의 물리적인 붕괴가 일상에 계속 균열을 내는 어떤 폭력들을 바라보게 만들고, 그럼으로써 일상의 붕괴와 다리의 붕괴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고 느낀다. 지숙이로부터 ‘너는 네 생각만 한다’는 말을 들을 때에도 마음 안에 일종의 붕괴가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 직후에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로 연결된다. 그전까지 어떤 식으로 일상이 붕괴되고 있는지 영화가 주력해서 보여주다가 다리가 무너지는 그 순간에 탁 여태껏 쌓여온 붕괴가 확 폭발하듯 다가오는 이야기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

<벌새>에는 1994년의 은희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세 개의 죽음도 등장한다. 늦은 시간에 갑작스럽게 찾아왔던 외삼촌의 죽음, 김일성이라는 시대적 인물의 죽음, 은희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어느 존재의 죽음이 바로 그것들인데 그 모든 죽음에 대한 은희의 인식은 각기 다르다. 세 죽음은 각각 사소하게 전시되거나 비범하게 주입되지만 저마다 역할이 있는 캐릭터 같다는 인상도 느껴진다. 은희보다도 관객들에게 무언가를 전하고자 마련된 죽음처럼 보인다고 할까.
지금은 호외라는 게 없지만 김일성이 죽었을 당시엔 호외로 뿌려질 만큼 대단한 일이었고, 실제로 모두에게 충격을 준 사건이었던 거 같다. 병원의 환자들처럼 김일성은 정말 죽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던 거 같고. 그래서 정말 ‘저 사람이 죽었나? 저렇게 신화적인 인물이?’라며 놀랐던 거 같다. 분명 그 시대를 상징하는 사건이라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김일성이 죽었을 때 신기했던 건 북한 사람들이 목놓아 우는 모습이었다. 그만큼 체제에 심각하게 세뇌됐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게는 실제로 크게 슬퍼한다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왕국 같은 저곳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그 눈물에 왠지 매료되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자리한 북한은 계속 자신들만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데 우리는 많은 것들이 서구화되고 굉장히 많은 체제의 변화를 겪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고 느껴졌다. 그런 빠른 변화 속에서 결국 일상의 붕괴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가 생겼고. 어쨌든 <벌새>에서 가장 중요한 죽음은 결국 마지막에 등장하는 영지의 죽음일 수밖에 없다. 영웅 서사의 구조에서는 늘 현자 같은 존재가 등장해서 영웅적인 존재에게 가르침을 주고, 가르침이 끝나면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런 의미에서 영지는 은희에게 가르침을 전수한 뒤 사라져야 하는 존재였다. 은희의 마음속에서 계속 살아있는 존재로 만들 수 있는, 상징적인 죽음이 필요했다. 그리고 은희의 외삼촌은 가부장제 안에서 이득을 본 사람이다. 자매들의 희생을 통해 고등교육을 받았으니까. 그런데 그에 대한 죄의식을 가진 인물이기도 했다. 혜택을 받은 사람이 정작 무너져 있다. 그래서 가부장제의 혜택을 받은 외삼촌이 자기 때문에 교육 기회를 누리지 못한 여동생에게 찾아와 죄의식을 털어놓는 일이 이 거대한 세계의 균열과 맞물려 있다고 생각했다. 관객 입장에서는 사소하게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결국 가부장제에서의 승자는 그 누구도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외삼촌을 통해 말하고 싶었다. 그 순간에 은희도 남자 친구에게 삐삐를 치고, 외삼촌의 죽음을 너무 일상적으로 받아들이지만 나중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에는 외삼촌을 잃은 엄마의 마음에 공감하게 된다. 그래서 뒤늦게 엄마에게 외삼촌이 죽었을 때의 기분을 물어보는 것이고. 그때 엄마는 슬프다가 아니라 이상하다고 답한다. 그렇게 이상하고 알 수 없는 것들이 <벌새>라는 영화 전반에 흐르고 있다. 성수대교가 무너진 것을 두고도 어떻게 그렇게 큰 다리가 무너질 수 있냐고 하는 것처럼 거기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결코 논리적일 수 없는 이상한 흐름밖에 없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었던, 굉장히 낯설고 납득할 수 없는 재난이 일상 속에서 찾아오는 심정적인 재난 사이에서 뒤섞여 벌어지는데 우리는 그것들을 얼마나 제대로 이야기했는가 생각한 결과가 <벌새>를 만드는 과정이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에는 좀처럼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어서 미뤄둔 감정들을 뒤늦게 온 편지처럼 받아보고 다시 경험해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리코더 연습>의 은희 엄마도, <벌새>의 은희 엄마도 고단한 표정으로 TV를 본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거창한 행사를 무미건조하게 그냥 보고 있다. 국가적 행사의 활기를 선전하는 TV 속 풍경과 대비된 엄마의 피로감 같은 것이 전달된다.
한국의 엄마들은 굉장히 많은 일을 한다. 요즘에는 사회활동을 하는 여자들도 많아졌고 맞벌이를 하는 가정도 많아졌지만 여전히 가사활동은 여자의 몫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정신이 없을 수밖에 없다. 너무 많은 일들을 한꺼번에 처리하다 보면 지치기 마련이고, 그런 모습이 지극히 현실적인 거다. 지금 시대에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정말 정신이 없는 거 같고.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늘 지쳐 있는 듯한 엄마의 얼굴은 전반적으로 인식하는 엄마의 이미지처럼 느껴지는 경향이 있는 거 같다. <벌새>를 봐도 아빠는 춤이라도 추며 비상구라도 찾아가는데, 엄마는 집에 있지 않으면 항상 떡집에 있다. 아빠는 없어도 엄마는 늘 있다. 그렇게 가부장제 사회 안에서 늘 과도하게 일할 수밖에 없는 엄마의 고단한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다. CF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생기 넘친 표정을 짓는 엄마들은 그저 세팅된 모습일 뿐이고, 진짜 엄마들의 삶은 그저 허무할 수밖에 없는 시대였다는 걸, 가사노동에 지쳐 잠들고, 가끔은 그 잠도 모자라고, 그런 보편적인 현실 안에서 살아가던 엄마를 그리고 싶었다.

그런 면에서 <리코더 시험>과 <벌새>가 TV 뉴스를 통해 88 서울 올림픽과 94 미국 월드컵을 보여줄 때 두 작품이 동일한 세계의 흐름 속에 놓인 어떤 이들의 시점을 이어가고 있다고 느껴진다.
나는 개인과 국가 그리고 정치적인 행사들은 늘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서로 영향은 주고받지만 결국은 괴리감이 너무 큰 것이고. 예를 들어 88 서울 올림픽 당시 빈민촌에 사는 사람들을 다 이주시키지 않았나. 국가적인 이벤트라는 게 개인의 삶과 얼마나 괴리감이 큰 허구와 망상인지를 영화로 보여주고 싶었다. <리코더 시험>의 은희에게 리코더 시험은 올림픽 같은 이벤트인데 그 누구도 신경 써주지 않는다. 그 와중에 국가에서는 진짜 올림픽이 열리고, 김수녕 선수가 금메달을 딴 걸 라디오에서 치하하고, 이런 병렬적인 연결이 보여주는 괴리감을 관객이 느끼길 바랬다. 그래서 <벌새>에서는 이런 부분이 더 전면적으로 보이도록 만들었고.

<리코더 시험>과 <벌새>는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준 사회적 사건을 지표로 세워 둠으로써 시대적 사건과 개인의 일상 사이의 거리감을 인식하게 만드는 동시에 한 시대를 떠올리게 만드는 거대한 사건 속에 자리했던 개개인의 심리를 떠올리게 만드는 거 같다. 타자화된 시선으로 관찰하면서도 내부자의 입장으로 관여하는 입장처럼 보이는 영화라고 할까.
<리코더 시험>을 포함해 내가 만든 단편영화 네 편을 도와준 배급사 ‘인디스토리’의 관계자 분이 <리코더 시험>을 보더니 어떻게 갑자기 영화 스타일이 이렇게 바뀐 거냐고 물어보더라. 영화학과를 졸업하고, 페미니즘이나 인권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그러다 외국으로 대학원 진학을 하면서 타국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경험을 하면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한국사회를 바라보게 됐다. 그래서 더 사랑하게 됐고, 더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거 같다. 유학 당시에는 좀 힘들기도 했지만 내가 살아온 나라를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최초의 계기가 됐고, 그 결과가 <리코더 시험>과 <벌새>를 만드는 과정으로 이어졌다. 작가로서의 세계관이 바뀐 시기가 됐다고 할까. 유학을 하며 느낀 건 다양한 국가와 각기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라 해도 인간으로서 원하는 원형적인, 본질적인 감정은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에 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반대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은 더 강해진 거 같고, 동시에 한국사회를 들여다보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된 거 같다.

<리코더 시험> 이전에 만든 단편 <빨간 구두 아가씨>에서도 자살문제나 젠더 감수성과 같은 사회적 문제에 대한 인식이 드러난다. 사회적 문제에 대한 관심은 <리코더 시험>과 <벌새> 이전에도 적지 않았던 것 같은데.
초등학생 시절에 쓴 일기를 우연히 본 적 있는데 공개적으로 시험 등수를 부르며 수치심을 주는 것에 대한 불만이 적혀 있었다. 사람이란 게 변하지 않는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웃음) 고등학생 때에 반장으로 여자아이가 선출되니까 선생님이 강제로 남자아이를 반장에 임명한 적이 있었다. 그때 여자와 남자의 대우가 다르다는 걸 느꼈고, 여자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처음 만든 단편영화도 아이들의 사회적 정체성을 다룬 작품이었다. 아이가 은행에서 통장으로 돈을 인출하려 하는데 주민등록증이 없어서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벌어지는 어떤 사건을 판타지적으로 접근한 영화였다. 사회적인 관심은 없지 않았던 거 같다. 드러내는 방식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지.
<벌새>는 1994년 자체가 주인공인 영화이기도 한데, 그만큼 그 시절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공간을 찾아내는 것도 중요했을 거 같다. 세트가 아닌 실제 로케이션 촬영을 진행한 걸로 아는데, 은희의 집을 비롯한 공간들은 어떻게 찾고 만든 것인지 궁금하다.
은희네 집은 원래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빈 집이었다. 제작부 친구가 우연히 찾아냈고, 겨우 빌렸다. 원래 한 달만 세를 주지 않는다는데 어렵게 부탁해서 한 달치 세를 미리 주고 빌렸다. 그런 걸 ‘깔세’라고 한다는 것도, 덕분에 처음 알았다. 집안의 모든 건 미술감독이 직접 꾸민 거다. 소품실에서 구해온 것들도 있지만 미술감독님이 본가에서 직접 가져온 것도 많았다. 나무 질감이 많은 가구나 소품을 빌려오고, 형광등을 오래된 느낌의 백열등 조명을 구해와 교체하고, 안방의 옷장이나 TV 받침대도 그 시절에 유행했던 은색 재질 것들로 마련하고, 90년대가 연상되는 인테리어를 만들기 위해 애썼다. 게다가 나중에 공사를 해서 베란다를 없앤 집이라 세트팀에서 가벽을 세우고 타일을 깔아서 베란다도 다시 만들었다. 그 당시에는 아파트 베란다에 화분을 많이 두던 시대라 아파트 단지 내에서 실제로 화분을 빌려와 놓기도 했고. 좀 더 사소한 부분이지만 베란다 한쪽에 훌라후프도 놓여있다. 그때 훌라후프 없는 집이 없었거든.(웃음) 소파에 하얀 패브릭 재질의 천을 깔아 놓기도 하고, 미술감독님이 크고 작은 디테일들을 잘 살려줬다. 미술팀이 정말 많이 고생했지.

원경으로 보이는 아파트 외관은 은마아파트가 아닌 거 같던데.
대치동 미도아파트 뒷길에서 찍었다. 일단 은마아파트는 외관 촬영 허가를 못 받기도 했지만 롱샷으로 아파트 외관을 잡았을 때 주차장이 걸리지 않게 찍을 수 있는 거리감이 확보 되질 않더라. 오래된 아파트라 실외 주차장에 차가 많았는데 다 너무 요즘 차들이라. 그런데 미도아파트 뒷길에 유일하게 차가 세워져 있지 않은 공터가 있어서 딱 좋았다. 그래서 내부와 복도는 은마아파트에서 찍고, 지완이와 은희, 유리가 마주치는 장면은 미도아파트에서, 지완이랑 은희가 데이트하는 장면은 개포동 주공아파트에서 찍었다. 게다가 주공아파트 앞에 영화에서 쓰기 괜찮은 한문학원을 발견해서 그곳도 섭외해서 찍고. 덕분에 영화 배경과 동일한 개포동에서 촬영을 할 수 있게 돼서 좀 신기했다.

엔드크레딧에 나오는 청하서당이 바로 그 학원이었던 건가?
맞다. 연출팀에서 로케이션 헌팅 갔다가 이 건물에 뭔가 있을 것 같다며 오래된 상가건물 2층을 올라갔다가 우연히 한문학원을 발견하게 됐다.

그럼 영화에 등장하는 새서울의원도 실제로 운영되는 곳이었을까?
맞다. 진짜 있는 병원이다. 영화 준비 기간이 길어지면서 좀 쉬엄쉬엄 돌아다니며 영화에서 쓸만한 공간을 발견하면 들어가 보곤 했는데 새서울의원은 망원동 살 때 타고 다니던 7012번 버스가 지나가던 정류장 이름으로도 존재하는 곳이다. 새서울의원 정류장이라고. 오래된 병원처럼 보여서 내부도 그럴 것 같아 들어가 보니 <벌새>에서 본 그대로였다. 실제로 촬영할 때에는 미술감독님이 화면에 걸릴 법한 것 몇 가지만 치우고 그대로 찍었다. 병원을 운영하는 원장 선생님도 영화 속 원장 선생님처럼 따뜻한 느낌이 있는 분이셨는데 나름의 자부심을 갖고 오랫동안 병원을 유지하고 계셨다. 게다가 50대가 넘어 보이는 나이 드신 간호사 분도 계셨는데 외모만 봐도 두 분의 포스가 엄청났다.(웃음) 은희랑 지숙이가 가는 콜라텍은 홍대 명월관에서 찍었는데 조명도 레트로 느낌이 나고, 90년대 느낌을 살린 클럽이라 그대로 찍을 수 있었다. 재미있는 게 사장님 성함이 김은희였는데, 흔쾌히 장소를 빌려주셔서 촬영이 용이했다. 다시 생각해봐도 장소를 찾는 과정에서 정말 재미있는 일이 많았던 거 같다.

은희가 두어 번 정도 어머니가 해준 감자전을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마다 굉장히 허겁지겁 먹는다. 그렇게 급할 이유도 없는데, 어떤 심리적인 강박이 느껴진다고 할까.
일부러 그렇게 먹어 달라고 했다. 지후는 원래 그렇게 먹는 아이가 아니라, 좀 힘들었을 거다.(웃음) 은희는 외로움으로 허기진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음식을 먹을 때, 그런 허기가 보였으면 좋겠더라. 심리적인 허기를 꾸역꾸역 음식을 밀어 넣는 몸짓으로 보여줄 수 있을 거 같았다.

학기 초에 날라리로 꼽히기도 하지만 교실에 있는 모습을 보면 특별히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도 아니고, 조용하고 얌전한 학생처럼 보인다. 학교 안에서는 누군가와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처럼 보인다고 할까.
은희가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게 정상이라 생각했다. 서울대에 못 가면 안된다는 식의 비정상적인 사고를 주입하는 학교에서. 학창 시절에 공부를 잘했던 친구에게 들었던 이야기인데 학교에서 서울대연고대 반이란 식으로 소위 공부 잘하는 애들만 모아 놓고 공부를 시키는 반을 따로 운영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반에만 에어컨이 있었다더라. 그 친구는 그게 너무 불편했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그렇게 기형적인 세계에서 잘도 지내왔구나, 싶었다. 어떻게 보면 그런 학교에 잘 적응한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닌가 싶고. 그래서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던 아이들은 어쩌면 그런 것들이 잘못됐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소위 날라리라고 불리던 아이들을 그렇게 간단하게 규정해선 안 되는 거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은희는 연애도 하고, 노래방도 가고, 그래서 날라리라고 찍히는데 지금 와서 보면 잘못된 것도 아닌데 그때에는 잘못된 것이라 강요당하며 살았는지 의아할 수밖에 없다.

은희가 지숙이와 함께 도둑질을 하다 주인한테 붙잡힌 이후의 상황은 은희에게 두고두고 상처가 될 만한 일처럼 보인다. 그리고 은희가 아버지에게 느꼈을 모종의 감정만큼이나 아버지의 마음도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덕분에 은희는 두 가지 배신을 한꺼번에 당한다. 아빠로부터, 친구로부터. 그 시대의 아빠들은 대부분 자식을 엄하게 키우는 게 교육적이라 생각했던 거 같다. 하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버림받은 느낌이 들 수밖에 없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은희를 이런 상황으로 내모는 게 중요했던 건 영지 선생님을 찾아가서 처음으로 연대하는 순간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은희가 울만큼 극적인 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은희는 쉽게 우는 아이가 아니니까 정말 이 아이를 울릴 만큼 큰일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면서 아빠만으론 부족하니까 지숙이에게도 배신감을 느끼게 만들자고 생각하게 됐다.

스토리의 개연성을 만들기 위해 캐릭터를 가학적으로 다스린 선택처럼 느껴지는데, 감독 입장에서도 좀 고민이 되는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맞다. 은희에게 좀 미안했다. 그런데 예전에 이런 얘기를 들었다. 작가가 작품을 잘 쓰기 위해서는 주인공을 괴롭혀야 한다고, 끔찍한 곤경에 처하도록 몰아야 한다고, 그럴수록 관객들은 캐릭터에 더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고. 어떤 작가가 했던 이야기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나 역시 작가로서 은희를 몰아세워야 하는 부분이 많았다. 캐릭터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래야만 관객들의 공감대를 끌어올릴 수 있으니까, 어떻게 하면 은희를 좀 더 구석으로 밀어붙일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한 건 사실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영지의 존재를 그만큼 믿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맞다. 은희가 내몰릴 때 영지가 좋은 완충제가 될 거라 생각했다.

은희가 영지 선생님에게 줄 선물로 장식장에 꽂힌 책을 고를 때 왜 스탕달의 <적과 흑>을 선택했는지 궁금했다.
사실 내가 어릴 때 정말 좋아했던 책이라 선택했다. 너무 어릴 때 읽어서 작품이 그린 정치상황을 정확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캐릭터의 내면을 그리는 방식에 흥미를 느꼈다. 그리고 주인공인 줄리엥 소렐은 내면에 수많은 목소리를 가진 인물이다. 은희로서는 그런 캐릭터에 공감할 거라 생각했다. 동시에 영지 선생님에게 잘 보이고 싶었으니까 자신이 그런 걸 이해하고 있다고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거 같고.

은희가 관객에게 1994년도를 환기시키고 체험하게 만드는 입구라면, 영지는 오히려 지금의 나 자신을 살펴보게 만드는 출구 같다. 물론 어린 관객들은 잘 모를 수 있겠지만 어느 정도 어른이 됐다고 여길 수 있는 연령대의 관객에게 영지는 내가 지금 어떤 어른이 됐는지, 어떤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되묻게 만드는 존재처럼 보인다. 선명한 질문을 던지면서도 아이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어른스러움이 느껴지는 인물이라 이런 인물을 구상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실제로 중학생 때 다녔던 한문학원 선생님이 영지의 모델이었다. 영지처럼 학생들에게 우롱차를 끓여주곤 했는데 그리 상냥한 편은 아니었지만 학생들을 인간적으로 대한다고 느껴지는 선생님이었고 그만큼 좋은 모델이 됐다. 보통 사제관계를 다루는 영화에서는 굉장히 멋진 말을 해주는 선생님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고 담담하고 담백하게 가고자 노력했다. 어떤 면에서는 너무 이상적이거나 비현실적인 캐릭터로 보일 수도 있었는데 김새벽 배우가 특유의 담담한 목소리로 연기를 너무 잘해줘서 현실에 착지하고 있는 인물로 보일 수 있었던 거 같다.

영지는 폭력에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폭력에 예민하다는 게 당연한 말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과거에 뭔가 강한 폭력에 맞닥뜨려 본 사람처럼 보인다고 할까? 그래서 영지의 과거가 더더욱 궁금하기도 했고.
뭐가 됐든 그런 경험이 있는 인물처럼 보이는 것도 괜찮을 거 같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그런 사람임을 보여주는 건 한편으로 너무 쉬운 선택 같았고. 오히려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이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과 연대할 수 있다면 그게 더욱 아름답게 느껴질 수도 있는 법이니까. 세월호 참사 당시에 다들 그런 경험이 있어서 피해자 가족에게 공감한 건 아니지 않나. 그냥 인간이니까 다 공감할 수 있었던 거지. 꼭 뭔가를 경험해봐야만 아는 것만은 아닐 거다. 그래서 영지가 그런 경험이 없는 부잣집 공주님처럼 자랐다고 해도 인간이니까, 인간의 고통을 경험하지 않았음에도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참된 인간이라면. 그래서 영지가 과거에 어떤 경험이 있었는지를 밝히는 게 이 인물을 이해하는 필수조건은 아니라고 봤다. 물론 공통된 서사가 있다면 공감대는 더 커질 수 있겠지만 오히려 공통된 서사가 있을 때 사람은 더 비정해질 수도 있는 법이고. 예를 들어 가난을 경험해본 사람이 더 악랄한 건물주가 될 수도 있고. 경험과 공감이 꼭 일치하는 것만은 아닌 거 같다.
감독으로서 자신이 만든 영화가 사랑받는다는 기분을 느끼는 것도 굉장히 좋은 경험으로 남을 거 같다.
최근에 ‘벌새단’이라는 서포터를 모집해서 시사를 했는데 영화를 본 관객들이 색색의 도화지에 손편지를 써줬다. 그때 정말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영화제에서 상을 타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지만 그것만큼 행복하진 않았던 거 같다. 내가 만든 영화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었는데, 그 편지를 읽으면서 우리가 <벌새>를 통해 어떤 우정을 나눴다는 생각이 들고, 다짐으로 다가와서 정말 많이 울었다. 너무 기뻐서 잠이 안 올 정도였다. 앞으로도 이런 걸 놓치고 가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진실하게 말하면 사람들이 진실하게 대답해준다는 걸 느꼈다는 감격을. 정말 너무 행복한 경험이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손편지를 좋아한다. 손편지에는 어떤 정서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손으로 사각사각 글씨를 쓸 때 영혼이 깃드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여전히 손편지를 쓴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을 줄 때 손편지도 준다. 그래서 나도 손편지를 받는 걸 좋아한다.

정성스럽게 쓴 편지의 답장을 받은 기분이었겠다.
맞다. 그래서 너무 행복했다. 이건 꼭 기사에 써 달라.(웃음)

어쩌면 <벌새>를 통해 감독으로서 계속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결심을 다지는 계기가 되진 않았을까?
일단 지금 같은 상황에서 영화를 하지 않을 거라 말할 수는 없을 거 같다.(웃음) 그런데 <벌새>를 만드는 과정 안에서 확실히 마음가짐이 달라진 거 같다. 희망이 생기긴 했다. 내 입장에서는 여전히 부족한 면들이 많이 보이지만 <벌새>를 완성하기 위해 스스로 어렵게 꾸려오는 과정에서 느낀 기쁨이 있었고, 완성된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았고, 그 덕분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전환점을 만난 거 같긴 하다. 사실 도망가고 싶을 때도 많았다. 너무 힘드니까. 아마 독립영화를 찍는다고 분류되는 감독이라면 누구라도 다 다양한 기관에 제작지원 신청을 해봤을 텐데 그런 과정이 정말 힘들다. 계속 떨어지는 경험을 해야 하고, 그 자체로 너무 지친다. 한번 떨어지면 1년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고. 그래서 그런 과정을 넘어서 계속하겠다는 말을 하는 게 너무 어려울 때도 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 과정들을 넘어서 이런 결과를 만나게 되니까 의미 있는 일을 해낸 것 같다는 기쁨이 말할 수 없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벌새> 이후의 행보가 궁금하다.
아직은 정확히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만 계속해서 조명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내 방식대로 풀어나가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지는 거 같다. 남들이 다 하는 얘기를 내가 할 필요는 없으니까 지금까지 잘 다뤄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역사나 전쟁을 여성의 관점으로 그리면 지금까지 봐왔던 영화들과 전혀 다른 걸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지치지 않고 좋은 얘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진_장성용(studio beewave / studio greenbee)

2019년 9월 9일 월요일 | 글_민용준 영화 저널리스트(mingun@nate.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 (www.facebook.com/imov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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