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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에서 받은 감정을 관객과 공유하고 싶다 <빛나는 순간> 지현우
2021년 7월 12일 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경훈’(지현우), 해녀를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러 제주도에 내려온 청년 PD 다. 그가 담고 싶은 인물은 ‘진옥’(고두심)으로 동네에서 으뜸가는 최고의 상군 해녀다. 하지만 진옥은 경훈의 촬영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고, 이때부터 경훈은 진옥의 동선을 꿰차고 시도 때도 없이 따라붙는다. 그렇게 다른 세대를 살아온 남녀의 인연이 시작한다. <빛나는 순간>에서 ‘경훈’으로 분한 지현우를 화상으로 만났다. 시나리오에서 받은 감정을 관객과 공유하고 싶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코로나 시기에 촬영하고 개봉까지 감회가 새롭겠다.
개봉하는 것 자체로 감사하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은 후 느낀 감정이 영화를 보고 나서도 느껴져서 매우 만족했다. 개봉 전 제주도에서 촬영지인 ‘삼달리’ 삼촌들(해녀)을 모시고 상영회를 진행했는데 삼촌들이 좋다고, 잘 봤다고 해 주셨다. 영화 속 ‘진옥’(고두심)과 ‘경훈’(지현우)이 나누는 사랑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지 우려했는데 이 부분이 잘 전달된 것 같아 다행이다.

시나리오에서 받은 ‘감정’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 (웃음)
진옥을 단순히 해녀나 할머니가 아닌 한 여성으로 바라보는 점이 좋았다. 어렸을 때부터 물질을 했고, 그 와중에 딸을 잃었고, 지금도 남편을 수발하면서 ‘살다 보면 살아진다’는 마음으로 살아온, 어떻게 보면 자신의 성(性)을 잊고 살았던 인물에게 누군가가 곱다고 얘기하면서 아끼고 사랑한다면 자신도 여성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지 않을까. 자연스럽게 사랑의 감정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거다. 특히 시나리오에 쓰인 “이녁 소랑햄수다”(당신 사랑합니다)라는 진옥의 마지막 대사를 읽은 후 여운이 굉장히 남았었다. 상대에게는 차마 표현하지 못하고, 가슴에 묻어둔 채 다시 물질을 하며 살겠구나 싶은 게, 애잔하고 애달프더라.

진옥을 여자로서 사랑하는 ‘경훈’의 감정을 표현하면서 중점을 둔 지점은.
경훈은 3년 전 제주도에서 여자친구를 사고로 잃은 아픔이 있다. 그에겐 제주도 자체가 트라우마인데 이를 깨기 위해 다큐멘터리 촬영에 나선 거다. 진옥도 어린 딸을 삼킨 바다에 계속 들어가는, 역시 트라우마에 정면으로 맞서는 인물이다. 극 중에서 바다로 들어간 경훈이 나오지 않자, 진옥이 건져내어 인공호흡을 시도하는 장면이 있다. 개인적으로 그 순간 두 사람의 ‘빛나는 순간’이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그 후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마음속 깊은 곳의 아픔을 하나 둘 꺼내고 서로 보듬으며 점차 사랑이 깊어진다. 이런 감정이 흘러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잘 표현하려고 가장 신경 썼다.
 <빛나는 순간>
<빛나는 순간>

연기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지점은.
마지막 이별 장면이다. 감독님께 그 장면은 감정을 쌓은 후 마지막에 촬영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렸었다. 사실 ‘경훈’은 진옥의 ‘해녀는 바다를 떠나서는 못 산다’는 말로부터 이미 이별을 직감하고 있었다. 물질하는 진옥을 보며 슬프면서도 웃어주는 경훈과, 경훈을 향해 숨비 소리(해녀들이 물질할 때, 물밖으로 나오면서 내뿜는 휘파람 소리)로 답하는 진옥, 이 장면이 가장 마음에 남는다.

좋아하는 장면이나 대사를 꼽는다면.
진옥이 경훈에게 ‘괜찮다고, 울고 싶으면 울라고, 울어도 하나도 이상할 것 없다’고 위로하는 장면이다. 시나리오 때부터 이 대사가 와닿았고 좋았었다. 또 진옥이 ‘너는 나 같은 게 왜 좋아’라고 묻자, 경훈이 ‘삼촌한테 뭔가를 봤거든요, 빛나는 순간요’라고 답하는 장면도 좋아한다. 여기서 ‘빛나는 순간’ 대사는 편집됐지만, (웃음) 이 장면에서 바다는 물론 숲속의 풍경도 매우 마음에 남는다. 또 TV에 방영되는 경훈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진옥의 쓸쓸한 뒷모습이 경훈과 있을 때의 ‘빛나는’ 순간에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듯해 (경훈이 아닌) 관객 입장에서 마음 아팠다.

극 중 상반신을 탈의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고, 한층 슬림해진 모습이다. 감량한 건가.
어느 정도는. 제주도에 머물면서 코로나로 인해 따로 운동할 시설이 없어 주로 홈트 위주로 주변을 많이 뛰어다니며 노력했다. 식단 관리는 기본이고, 성산 일출봉도 올라갔었다! (웃음)
 <빛나는 순간>
<빛나는 순간>

제주도 올로케이션으로 촬영했다. 앞으로 제주가 좀 특별한 장소로 기억될 것 같은데 어떤가. 또 새롭게 발견한 제주의 매력이 있다면.
주요 촬영지는 ‘삼달리’였는데 제주도 내에서도 비교적 개발이 덜 돼, 고유의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었다. 제주도의 예전 풍경을 그대로 볼 수 있어서 좋았고, 또 전통과 풍속 등 향토 문화를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좀 들려달라. (웃음)
음…’경훈’이 해녀를 주인공을 하는 다큐멘터리를 찍는 PD라서, 삼촌(해녀)들을 알아야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시간이 될 때마다 삼촌들이 쉬는 곳에 놀러 갔었다. 극 중에도 나오듯이 그곳에 노래방 기계도 있고 해서 함께 노래 부르고 놀며, 쉬며 즐겁게 보냈다. 또 하나는 사실 (고두심) 선생님이나 나나 수영을 그렇게 잘 하는 편이 아니다. 진옥이 경훈의 트라우마를 깨기 위해 바다 수영을 가르치는 장면이 있는데, ‘슛’ 소리가 나자마자 선생님이 그러시더라. ‘각자 살아 남자고!’, 완전 빵 터졌던 기억이 있다.

제주도 삼촌들(해녀)과 시간을 보내며 느낀 점이 있다면.
흔히 해녀라고 하면 억세고 거칠다고 생각하는데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크다고 느꼈다. 거센 바다에 맞서 일하니 성격이 세지고, 파도 소리 때문에 목소리도 자연스럽게 커지고 쉴 수밖에 없겠지만, 사실은 매일을 자연에서 일하니 굉장히 해맑다고 할지 순수한 면모를 지니셨다. 이런 부분을 관객이 느꼈으면 한다.

연기에 대한 고민이 많던 시기에 받은 시나리오라고 밝힌 바 있다. <빛나는 순간>을 작업하며 어떻게 고민은 좀 떨쳤는지.
촬영하는 동안은 고민을 잠시 접고 편하게 작업했다. 제주도라는 공간이 안정감을 줬고, 커다란 나무 같은 선생님 덕분인 것 같다. 또 감독님이 굉장히 섬세하신 분이라서 장면 장면에 대해 대화를 많이 나누며 진행해, 촬영하는 두 달 내내 평온했었다.

당신에게 빛나는 순간은 언제일까.
이 질문 나올 줄 알았다! (웃음) 아마도 신인 때? <올드미스 다이어리> 때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빛나는 순간> 촬영한 동안도, 또 지금 인터뷰하는 이 순간도 빛나는 순간이고 싶은 마음이다.

이번 작품이 어떻게 남을 것 같나.
꾸준히 내 길을 가는 중에 ‘빛나는 순간’이라는 산이 있어 잘 넘어왔다는 생각이다. 주변에 ‘한 번 보라’고 권유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서른일곱의 지현우’가 담겨 있어, 개인적으로는 앨범 같은 작품이다.

‘국민 연하남’ 타이틀로 유명했는데, 어느덧 데뷔 18년 차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어떤 수식어를 붙이기보다 시청자나 관객에게 신뢰감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 신뢰감이란 단숨에 쌓이는 게 아닌 몇 십 년에 걸쳐 겸손하고 꾸준히 노력해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척’ 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연기한다는 걸, 정성이 들어간 연기라는 걸 느끼게 하는 것 아닐까 한다.

그간 꾸준히 활동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뭘까. (웃음)
그냥 흘러 흘러온 것 같고, 정말 힘들 때는 팬이 보낸 손 편지가 도움이 많이 됐었다. 원동력을 굳이 꼽는다면 아무래도 ‘좋아하는 일’이라 가능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부터 이쪽 일을 했기 때문에 다른 일을 생각해 본 적도, 또 해 본적도 없다. 처음 시작할 때 10년 이상은 해보자 마음먹었고, 10년이 지난 후에는 또 10년만 더 해보자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왔는데, 이젠 최소 30년은 해야 조금은 알겠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작품 일정은. 또 도전하고 싶은 장르나 캐릭터가 있다면.
내일부터 드라마 <신사와 아가씨>의 촬영에 들어간다. 하고 싶은 장르나 역할이라 하면, 배우는 알다시피 선택받는 입장이라… 명절에 볼 수 있는 영화를 문득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오락 영화를 많이 못 해 봐서 기회가 닿으면 좋겠다.

밴드 ‘사거리 그오빠’로 꾸준히 음악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밴드는 배우로 활동하기 전부터 해오던 작업이라 팬들이 보기에 배우 지현우보다 인간 지현우에 좀 더 가깝지 않을까 한다. 연기를 할 때, 내가 어느 정도 투영되겠지만 그보다는 작가와 감독이 만든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거리 그오빠’는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작업이라 그만큼 나라는 인간을 더 잘 드러내지 않나 싶다.

마지막 질문! 일상에서 즐기는 취미가 궁금하다. 또 요즘 소소하게 행복한 일은.
마침 요즘 그런 생각을 하던 차다. 취미가 뭔지, 나는 뭘 좋아하는지 또 뭘 할 때 행복한지 등에 대해 말이다. 지금까지는 일에 열중하다 보니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이거든. 우선 여행 등 어디론가 훌쩍 떠나는 것, 걷는 것, 영화나 뮤지컬을 보는 걸 좋아한다. 또 동네 돌아다니며 새로 오픈한 가게 있으면 한 번 들어가 커피 마시면서 책을 읽을 때도 즐겁다.


사진제공. 명필름

2021년 7월 12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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