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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육체노동에 경외감을 느낀다 <언더그라운드> 김정근 감독
2021년 8월 12일 목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버스를 타라>, <그림자들의 섬> 등 노동자 인권 문제에 꾸준히 목소리를 내온 김정근 감독이 부산도시철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명한 <언더그라운드>로 돌아왔다. 매일같이 도심 곳곳을 다니는 지하철과 하루에도 몇 번씩 지하철을 타고 움직이는 사람들. <언더그라운드>는 지하철을 움직이는 많은 사람의 일상을 그리며, 언더그라운드 속 또 다른 언더그라운드에 대해 화두를 던지는 다큐멘터리다. 노사갈등을 넘어 노노갈등을 야기하는 노동의 괴상한 구조들과 무인화에 주목한 김 감독을 화상으로 만났다. 육체노동이 지닌 어떤 빛남에 경외감을 느낀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의 투쟁을 다뤘던 <그림자들의 섬> 당시 부산철도 노동자의 이야기를 준비한다고 했었다. 촬영 시작과 기간은.
<그림자들의 섬>을 개봉한 2016년 당시가 한참 지하철 노동조합에 출근하듯이 다니며 어떤 현장을 어떻게 들어갈지를 파악할 때였다. 기획은 그보다 좀 더 일찍 시작해 2015년 4월부터 사전조사를 시작했다.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사전취재와 인터뷰 진행 등 2019년까지 촬영을 이어갔다.

한진중공업에 이어 부산철도 노동자를 응시하게 된 까닭은. 쇠와 철의 덕후라고 밝힌 바 있는데, 그 영향일까.
조선소 노동자에서 도시철도 노동자로 시선을 옮긴 이유라면 기계의 물성을 손으로 만들고 다루는 데 있어 덕후 기질이랄지, 오타쿠적으로 좋아하는 편이다. 인간과 기계의 대결구도가 흥미롭기도 하다. 사람이 조종하는 무엇에 대한 동경과 경외감이 기본으로 있는 데다 사람이 지을 수 있는 가장 큰 구조물 중 탈 것은 배인데 이를 만드는 사람이 경이로웠다. 또 기차는 쇠로 만들어진 근대의 산물 아닌가. 그래서 배 이후 철도는 내겐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림자들의 섬>과 <언더그라운드>는 노동을 주제로 하되 그 쟁점은 다르다.
기본적으로 쇠와 인간의 대결이라는 측면 외에 <그림자들의 섬>은 정리해고가 노동문제의 쟁점이었다면, 도시철도로 넘어와서는 무인화라는 이슈가 새롭게 떠올랐다. 지하철 내 무인시스템이 갖춰지면서 생기는 괴상한 구조들과 노노관계에 주목했다.

10여년이 넘는 시간 동안 노동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노동 다큐멘터리, 나아가 노동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를 느끼는지.
2011년 초반만 해도 노동자라는 표현 자체가 자유롭게 쓰이지 못했다. 마치 노동자는 운동권의 언어라는 인식이 강해 당시는 (언론에서 등) 근로자라는 표현을 강박적으로 사용했던 것 같다. 이젠 노동자라는 표현이 어느 정도 범용화됐다. 뉴스에서도(대부분이 사고와 관련된 소식이라 안타깝지만) 노동자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는 등 정치적인 폄훼가 약해졌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노동자’라는 단어가 대우를 받는 데 반해 비정규직을 비롯한 여타 노동자의 근무 환경과 조건, 처우가 좋아졌는지는 되물을 수밖에 없겠다. 이건 비단 국내만이 아닌 전 세계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경제가 성장하고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무인화 등을 도입하는 추세인데, 이때 인간의 노동을 어떻게 좀 더 가치있게 다룰지 고민해야 할 거다. 그린뉴딜(기자 주: 환경과 사람이 중심이 되는 지속 가능한 발전)만이 아니라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한다는 이상적인 비전만 바라볼 게 아니라 실제로 인간의 노동을 가치있게 다루도록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

<언더그라운드>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또 무기계약직 등 포지션에 따라 다른 입장이 읽힌다. 노동자 간에 또 다른 계층이 형성됐다고 할 수 있다.
예전에는 사측이라는 빌런과 이에 맞서는 노동자가 주요한 경향과 주제였다면, 이제는 노노갈등이 첨예해졌다. 노동자끼리 서로에게 칼을 겨루는 현 상황에 찹찹함과 암울한 생각이 든다.

내레이션이나 자막을 통한 해설없이 도시철도 노동자가 노동하는 모습이 길게 이어진다. 때때로 인터뷰가 들어가긴 하지만, 한편으론 관객 친화력이 떨어진다는 인상이다.
많은 설명이 있는 방송 다큐나 정보를 많이 포함한 미국식 다큐멘터리에 익숙하면 그렇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관객에게 상세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노동의 현장을 보여주는 것이 주이지, 관객이 그들의 노동을 눈으로 본 후 습득하게 하는 게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노동의 구조와 환경을 강조하고 싶었다. 노동자가 하는 일이 무엇이고, 일의 순서와 흐름이 어떻게 이어지며, 그 안에 내포된 아이러니에 대해 말이다. 고등학교 실습생이 목격한 괴상한 노동의 구조를 관객이 깨닫는 순간 크게 다가갈 거로 생각한다.

괴상한 노동의 구조란.
지하철 내에서 일하는 노동자 간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따라 그 노동강도와 처우, 책임 소재가 다르다. 실습을 나간 고등학생은 한눈에 이를 인식한다. 관객이 노동의 현장을 따라가면서 그 안에 존재하는 구조화된 계급과 이를 깨닫는 순간에 어떤 처연함을 느끼길 바랐다.

<언더그라운드> 속 노동의 흐름을 짚는다면.
열차가 어떻게 순환하고 반복되는가를 보이려 했다. 노동자의 손에 의해 분해되고 조립되는 등 정비과정을 거친 후 열차가 나가고, 플랫폼에서는 청소노동자가 역사 내를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청소한다. 열차는 운행을 마치고 들어와 정박해 있으면 노동자는 열차의 내부를 살피며 보수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마치 하루의 일과처럼 보이는 순환구조로 만들려 했다.

도시철도 노동자가 아닌 특성화 고등학교 학생들로 시작하는 오프닝이 뜻밖이었다. 의도는.
말한 듯이 ‘뜻밖’이라는 의외성을 의도한 것도 있다. 사실 영화를 소개하는 어떤 자료에서도 ‘학생’이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도시철도와 이와 관련한 노동자를 비춘 영화라고 알고 왔는데 고등학생을 등장시켜서 ‘뭐지?’ 하는 느낌이 들도록 살짝 비틀었다고 할까. 또 학생들의 모습을 비추며 끝나는 엔딩과 맞물려, 시작과 끝을 학생들로 장식해 노동의 구조를 다시금 상기시키려 한 것도 있다. 고등학생이 비정규직으로 취업해 어렵게 무기직화 되나 마지막에는 무인화로 일자리에서 내몰리는 구조 말이다.

정비 노동자, 청소 노동자 등 여러 인터뷰이가 등장하는데, 현직에 있으면서 영화에 출연하는 게 꺼려질 수도 있을 텐데 설득의 과정은 어땠나.
힘들었다. 여러 차례 방문해 조르고 맛있는 걸 사가지고 가서 많은 이야기도 나눴다. (웃음) 촬영시작 전에 3~4개월 동안 출근하듯이 들어가 현장을 익히는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영화를 소개하는 ‘당신의 아래, 빛나는 노동의 궤적’이라는 문구, 특히 ‘빛나는’ 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다가온다. 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노동자이지만, 과연 자신의 노동을 빛난다고 생각하는 이가 얼마나 될지, 당신은 어떤가. (웃음)
음, 요사이 영화나 영상에서 육체노동을 다루는 일이 극히 드물어졌다. 콘텐츠에서 다루는 주요 노동은 스타트업이나 IT 계열의 업무 현장이다. 책상에 앉아 문서 작업을 하며 일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개인적으로 육체노동의 빛남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육체노동자가 훨씬 어렵고, 지난하고, 힘들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어떤 경외심을 표현하고 싶었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든 생각은 촬영을 어떤 방식을 했을지였다. 굽이굽이 펼쳐진 선로와 이를 미끄러지듯 유영하는 전동차, 그리고 지하 공간을 비추는 빛의 번쩍임 등 영상이 독보적이더라.
열차 조종석에 타 기관사 옆에서 촬영했는데, 지하라는 공간과 몇몇 곳에 위치한 스포트라이트가 마치 연극무대 같기도 하고 여하튼 놀라운 광경이었다. 따로 조명을 쓰거나 인위적인 장치 없이도 충분히 SF적인 분위기에, 19세기 노동 현장 같은 느낌까지 연출돼 개인적으로도 만족스럽다. 지하철 공사가 긴밀하게 협조해줘서 열차의 움직임, 선로 개보수 현장, 선로를 다니는 전기차에 올라 요소요소 디테일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가 전기차가 마치 화차같이 불을 뿜으면서 오는 장면인데, 이게 선로가 오래돼 그곳에 낀 먼지 등이 마모되면서 불꽃이 튀는 것인데 순간 분진이 엄청나게 날린다. 목은 좀 아팠으나 가까이서 그 현장을 지켜보는 게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라 행복하게 촬영했었다. 한 번은 열차에 깔릴 뻔하기도. (웃음)

저런!
야간에 기지창에서는 열차를 정차시켜 놓고 개보수하거나 아침에 나갈 열차를 일상점검하곤 한다. 한번은 촬영하고 있는데, 철컹철컹하면서 바로 뒤에서 열차가 오고 있더라! 나도 놀라고 기관사도 사람이 선로 한가운데 서 있으니 매우 당황하고 그랬다. 당시는 별 느낌이 없었는데 집에 돌아와 찍은 영상을 보니 열차가 바로 코앞에 있어 생각보다 긴박한 상황이었더라. 잠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잠을 못 자기도 했다.

<언더그라운드>를 처음 기획한 때와 현재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쟁점을 두고 사회적인 인식이 변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해 ‘공정’의 가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젊은 층도 상당하다.
어려운 문제다.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의 정규직 전환도 그렇고, 서울 지하철도 내부에서는 콜센터 직원의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새로운 (젊은 층 중심의) 노동조합이 생기기도 했다. 그들은 정의와 공정을 내세우며 무임승차하지 말라고 주장한다. 능력주의를 강조하는 그들은 시험을 통해 얻은 자격을 자신의 트로피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그 트로피 역시 공정하지 않은 배경에서 획득했다는 사실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출발선이 다른데 그 결과만 놓고 따지는 공정과 정의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또 시험 쳐서 들어온 사람이 일을 더 잘할 거라는 건 너무 단편적인 생각이다. 갓 입사한 이들이 현장에서 오랜 기간 일한 숙련된 노동자보다 과연 월등할까. 내가 힘들게 통과했으니 다른 사람도 나만큼 힘들게 해야 한다는 생각은 척박한 현실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일자리 수가 줄어들고 생활이 각박해지면서 점점 노노의 갈등이 심해지는 형국이다.

당신에게 다큐멘터리 작업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다큐멘터리는 사람들이 많이 거론하거나 이슈가 되는 주제에 매몰되거나 같이 떠드는 방식이 아닌 타자의 시선으로 옮겨가는 지점에서 중요하고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가령 ‘인국공’ 사태 관련한 당사자들을 이기적인 마음으로만 치부하기보다 그를 둘러싼 더 다양한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다른 시선과 목소리로 접근하고 환기하는 게 다큐멘터리의 역할이 아닌가 한다. 이런 역할을 하고 싶고 또 잘하고 싶다.(웃음) 그렇다고 반드시 다큐멘터리만을 고집하는 건 아니다. 지금까지는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와 형식이 맞아서 다큐를 찍었으나 이야기에 따라 극영화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가령, 켄 로치 감독의 극화된 노동영화는 많은 울림을 주지 않나.

준비 중인 작품이 있다면 소개를 부탁한다.
최근엔 이주여성 관련한 짧은 영상 인터뷰를 만들고 있다. 또 <그림자들의 섬>에 출연한 김진숙 지도위원이 올해 초까지 복직투쟁을 하셔서 그분의 삶에 빗댄 관련 이야기를 유튜브로 공개할 예정이다. 다음 작품은 2018년부터 촬영 중인 부산공고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공고>(부제)가 될 것 같다. <언더그라운드>에 나오는 그 친구들이 바로 부산공고 학생들이다. 노사관계, 노노관계를 다루다가 어린 친구를 만나니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키즈 리턴>(1996)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도 들더라. 좌절하더라도 ‘바보야,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 라고 말하는 영화 말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일이 있다면.
5년째 수영을 하고 있는데 아침에 수영장 갈 때 행복하다. 다만, 요즘은 코로나로 인해 바다 수영을 못 해서 아쉽다. 또 심신의 안정을 위해 요가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 시네마달

2021년 8월 12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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