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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과 소통하는 대중영화” <소년들> 정지영 감독
2023년 11월 13일 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제 영화를 상업영화라고 하기에는 좀 억울한 면이 있습니다.” 올해 데뷔 40주년을 맞은 정지영 감독은 “그간 꽤 흥행했는데도 불구하고, 한 번도 제대로 투자를 받아보지 못했다”면서 투자자의 시선에서 그만큼 덜 상업적인 작품인 것 같다고 말한다. 그래서 감독은 상업영화 대신 대중영화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예술과 돈을 좇기보다 대중과의 소통이 그 작품의 큰 방향성인 까닭이다. 사회와 그 속에 사는 인간에 늘 관심이 간다는 감독. 현재 어떻게 살고 있으며 또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그 관심이 실화극으로 이어진다는 감독을 만났다.

# 그간 방송 매체를 통해 익히 알려졌고, 이미 재심을 통해 무죄 확정된 사건을 다시금 꺼내든 이유

“원래는 약촌오거리 사건을 극화하려고 박준영 재심 변호사에게 연락했어요. 다른 감독이 이미 준비 중이었고, 나라슈퍼 사건을 살펴보니 이야기가 더 깊고 넓다고 생각했습니다.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사회, 각자도생의 시대가 과연 옳은가. 이런 문제는 반드시 한 번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이야기를 끌고 갈 주인공이 없어서 약촌오거리 사건에 등장하는 ‘황준철’ 반장(설경구) 캐릭터를 빌려왔죠. 관객이 쉽게 따라갈 수 있도록 이야기를 구성했어요.”

제목은 ‘소년들’이지만, 극을 이끄는 인물은 이들의 사건을 재조사하다가 징계를 먹은 수사반장 황준철이다. ‘못 배우고 가난하고 소외된’ 소년들을 주목하고 이 사건을 환기하는 동시에, 황준철을 고발인으로 내세워 고발영화 같은 뉘앙스를 전하고자 하는 두 가지 의도를 담았다.

‘사건의 요체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극화하는 것’, 정 감독이 그간 <부러진 화살>과 <블랙 머니> 같은 실제 사건을 스크린에 옮기면서 대중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택한 노선이다. <소년들> ‘황준철’ 캐릭터의 등장이 그 예라 하겠다. 다만 이번에는 좀 더 사건 당사자의 심정에서 극을 바라봤다. 살인자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형기를 마친 소년들은 재심 법정에 어떤 마음으로 섰을지 또 과연 무슨 말을 할지 지켜봤다.

“사실 ‘나는 살인범이 아니다’라는 말을 어떤 식으로 옮길지 고민했어요. 막막하더군요. 그래서 세 배우에게 어떻게 행동할 것 같냐고 물어본 후, 그들의 연기를 끝까지 지켜봤습니다. 뭉클한 한편, 오바한다는 느낌도 있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오버’는 관객이나 관객의 입장에서 그런 거더군요. 당사자인 소년들에게는 너무나 절실하고 절박한 외침인 거예요. 10여 년간 억눌리고 쌓여온 분노가 터진 거니까요.” 그렇게 실화의 힘이 느껴지는 재심 법정 씬이 완성됐다.

실제 사건과 실존 인물이 존재하는 실화를 다루는 작업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40년 업력을 다져온 감독도 예외는 아니다.

“실존 인물들에게 피해가 가면 안 된다, 제일 조심하는 부분이자 원칙입니다. 이번에도 소년들의 허락하에 만들었지만, 다시 상처를 들쳐내 또 다른 상처를 입히는 건 아닌지 우려했는데요. 다행히 세 소년 중 한 명이 전주국제영화제 시사회에 참석했고, ‘감사합니다’라고 쓴 꽃다발을 전해줬어요. 고맙고 뭉클했죠.”

# 잘못했으면 인정하고 바로잡으면 된다

1999년 전북 삼례의 작은 슈퍼에서 강도치사 사건이 발생하고, 범인으로 지목된 세 소년의 자백으로 일사천리 마무리된다. 이듬해 반장으로 부임한 황준철은 진범을 자청하는 남자의 제보로 사건을 재수사하지만, 경찰과 검찰 관련자들의 압력과 압박에 부닥친다. 이때 황준철이 던진 ‘수사가 잘못됐으면, 인정하고! 진범을 잡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대사는 감독의 생각을 대변한다.

“경찰이나 검찰 관계자들은 자기들이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조직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개인의 삶이 조직의 안위를 위해 망가지는 게 맞을까요. 그들은 나름의 정의를 실현한 건지 모르겠지만, 불의는 불의예요. 옳지 않은 방향으로 나쁘게 사용되는 공권력이라면, 끊임없이 비판하고 견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꼰대력 제로라는 정지영 감독

‘황준철’로 분한 설경구는 2000년 과거와 2016년 현재를 오가며 진실을 바로잡고자 노력하지만, 그 과정에서 상처받고 좌절하며 끝내는 정의를 향해 용기내는 평범한 우리네의 얼굴을 선보인다. ‘영화계의 큰 어른’인 정지영 감독과의 작업이 매우 영광이라고 밝힌 바 있는 그는 정 감독에 대해 ‘꼰대 모습이 없는 분, 그렇게 늙고 싶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꼰대’라는 수식어를 피해가기 어려운 요즘, 꼰대력 제로라는 정지영 감독의 비결은 무얼까.

“설 배우가 그렇게 기쁜 말을 했다고요?”(웃음) “철이 덜 들면 됩니다. 제가 좀 철이 덜 든 것 같아요. 우리 나이대가 되면 사람이 좀 무게감도 있고 그런 것 같은데, 전…. 아무튼 마음이 젊어서인 것 같네요!”

“현장은 즐거워야 한다는 게 제 모토입니다. 과도한 긴장감은 오히려 작품의 완성도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요. 물론 자체로 무거운 영화를 찍을 때는 마냥 화기애애할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즐거웠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 유행을 쫓기보다 ‘잘하는’ 영화를 만들기를

영화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주로 책을 읽고 산책하며 보내고, 길게 시간이 나면 여행을 간다는 정 감독. 데뷔 40주년을 맞은 그에게 영화란 어떤 의미이고 존재일까.

“원래 과거를 안 돌아보는 편인데, 이번에는 40주년 행사를 하다 보니 돌아보게 됐네요. (웃음) 돌아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영화를 통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말이에요.”

자칭 허무주의자라는 감독, “전 영화를 통해 비전을 제시하는 것 같아요. <부러진 화살>의 경우 재판에는 패소하지만, 주인공(안성기)이 승리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어요. 이렇듯 억울하고 부당하고 비극적인 이야기를 그리면서도 마지막에 포기하지 않는 어떤 것, 다시 말해 비전을 찾아온 것 같습니다.” 영화를 통해 허무를 극복해 온 것 같다는 정지영 감독이다.

한국영화의 부침과 변화의 물결 속에서 한결같이 작업 활동을 이어온 감독은 최근 한국 영화의 부진과 이에 대한 해법으로 어떤 견해를 지니고 있을까.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산업이 지속되려면 다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모든 영화가 트렌드를 따라간다면 관객은 금방 싫증 내고 말 거예요. ‘지금 잘되는’ 영화를 하기보다 ‘자기가 잘하는 영화’를 찍는 게 중요합니다. 다양성이 살아난다면 한국영화도 같이 살아날 거로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차기작에 대해 물었다.

“관객이 외면하지 않을 때까지 작업하려 해요. 시대가 바뀌면서 변화하는 감성과 트렌드를 의식하지 않는 건 아니에요. 흐름에 맞추어 테크닉에 변화를 줄 수는 있겠지만, 다만 콘텐츠 자체는 바꾸지 못할 것 같아요.” 요즘 관객은 판타지를 선호하는 데 판타지는 못할 것 같다고 웃는 감독. 다음 작품으로 제주 4.3 항쟁과 백범 김구를 다루는 영화를 준비 중이다.


사진제공. CJ ENM

2023년 11월 13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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