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CGV 에서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을 보았다. 객석이 깔끔하고 경사진 의자 배치가 영화 관람하기가 편안하고 시야 확보가 좋았다. 일단 영화는 자리가 좋아야 한다는 것에는 여론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영화가 소박한 것이 저예산 영화라고 들었는데, 스크린의 압도적 스펙터클함이나 빵빵한 사운드는 없었지만, 무안스런 웃음 속에 현대인의 실상을 솔직하게 그려낸 솔직한 영화라는 느낌을 받았다. (나중에 이 영화가 코미디 영화란 소릴 들었는데, 보는 나는 코미디처럼 받아들이지 않고 본 것 같다.)
제목에 '미스 리틀 선샤인'은 어린이 미인 대회 명칭이다. 영화의 주요 공간은 미인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길에 있었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그들의 여정은 실상 불안하고 고통스러워 보이는 불행의 연속으로 보이지만 제목처럼 보는 이에게는 선샤인하다. 그래서 뒷끝이 나쁘지 않을 것이다.
현대사회가 핵가족 사회라고 하고, 우리나라도 IMF 등을 거치면서 많은 가정이 붕괴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런 극단의 경험은 가까이 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먼나라 얘기일 것이다. 아마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 영화가 필요한 더 많은 사람들이 영화관 근처에도 가보지 못할 것이다.
서로 바쁘고 각자가 힘들지만 스스로는 항상 열심인 사람들, 하지만 세상은 정말 내 뜻대로 되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보라!, 가족이 있다. 가족은 특별하다. 가족이 아닌 남들과는 미련없는 헤어짐이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가족과는 그것이 마음대로 안된다. 가족은 현대 사회를 지탱하는 최후의 보류인 것이다.
마약을 하는 할아버지, 절대 불패를 강의하지만 그 스스로가 패자인 아버지, 그런 남편을 둔 어머니, 가족과 말을 하지 않는 아들, 그리고 외모에 집착하는 딸, 그리고 동성애자로 질투심과 좌절로 자살을 시도한 삼촌이 영화에 등장한다.
서로에게 불평하고 만족하지 못한 가족, 바쁜 생활 속에서 서로에게 냉소적이다. 형식적인 교감은 결국 대화 자체를 부정한다. 서로 마음이 열리지 않은 상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화라는 것은 없다.
조금만 비틀어 보면 혹시, 우리의 모습이 투영되어 보이지 않는지..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솔직한 영화로 보인다.
웃다가 눈물이 났는데, 나도 이 눈물이 어떤 눈물인지 모르겠다. 펼쳐지는 영상은 웃겨 보이지만 그 내용은 우리의 숨은 정서를 건드리고 있다.
그렇게 막무가내에 비이성적인것 같았던 할아어지가 아들의 실패에 '넌 시도했으니 낙오자는 아니야'라며 진심어린 위로의 말을 건낼 때, 그리고 패배자가 될까 두려워 하는 손주 딸에게 '진짜 패배자는 패배할 것이 두려워 시도를 하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너는 내일 그 시도를 하지 않니? 그러니 넌 패배자가 아니야.' 라고 말할 때, 그래도 가족은 틀리다 라는 생각과 함께 마음속 깊이 가족사랑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문제가 많아 보여도 가족은 사랑이다. (가족간에 너무 소통이 부족함을 느낀다, 이것이 습관이 되버리면, 소통의 벽을 깨버리기가 너무 어려워진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냥 그렇게 알면서도 그 상황을 유지 하는지 모르겠다.)
고등학교에 안 가겠다고 버티는 드웨인, 세상은 다 엉터리다. '학교, 대학, 직장' 나는 빨리 18살이 되고 싶어요. 어른이 되고 싶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때 삼촌이 정확히 생각은 안나지만 프로스트의 말을 인용해 고통의 시간도 지나고 나면 나중에 그 시절을 사랑한다고 말했다는 말을 해준다.
지나고 보면 고통을 느꼈다는 것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다. 아무 느낌도 없는 시간이 의미있는 시간일까? 고통을 즐기라고 말한다. 어쩔 수 없으면 고통을 즐겨라.
이 가족은 엉망 진창인것 같아도 어느 누구하나 포기한 사람은 없다.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가족의 사랑이 함께 하면 그 노력은 제길을 찾아간다. (소통만 되면 이 가족은 어느 가족보다 성공적인 가족이 될 것이다.)
가족이 있다. 가족은 최후의 보류다. 믿어 주고 아껴주는 것 ... 극한의 상황이 오더라도 그래서 가족은 지켜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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