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독특한 영화세계를 표현해온 김기덕 감독이 또 한차례의 실험작을 선보였다. 그의 7번째 연출작 [나쁜 남자]가 오는 11일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데뷔 후 5년 남짓한 세월이 지났음을 볼 때 그의 왕성한 작품 활동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야기는 사창가 깡패 두목인 한기(조재현)가 우연히 길거리에서 본 여대생 선화(서원)에게 매혹 당해 강제로 키스를 퍼부었다가 심한 모욕을 당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복수심과 소유욕에 불탄 한기는 교묘한 계략으로 빚을 지게 만들어 그를 사창가로 데리고 오고 그 이후에 벌어지는 상황을 그렸다.
이 영화는 '김기덕 표' 영화가 그랬듯이 파격적인 설정과 충격적인 영상으로 관객을 전율케 한다. 한눈에 마음을 빼앗겨버린 여대생을 창녀로 만들고 자신의 운명을 망쳐버린 장본인과 몸을 팔며 살아간다는 이야기의 풀고 맺음은 "과연 있을 수 있는 일 일까?"를 되묻게 하는 상식의 혼란을 가져온다.
기자시사회에서 "사랑보다는 운명을 말하고 싶었다"고 김감독은 설명했지만 공감대 형성여부는 차치하고 영화의 등장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관객들로서는 가치관의 혼란에 빠져들기 싶다.
그로테스크한 김기덕 특유의 폭력미학도 여전하다. 전단지를 빳빳하고 뾰족하게 접어 목을 찌른다든지 커다란 유리조각을 허리춤에 품고 걸어오다가 배를 쑤시는 장면은 소름을 돋게 만든다.
한가지 눈에 띠는 것은 이 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작품을 고집하지 않고 어느 정도 대중성에 부합하려는 노력을 보였다는 점이다. [파란대문]에서 이미지만 그렸던 창녀촌을 전면에 내세운 점 등 여러 요소들이 전작들에 비해 훨씬 높은 흥행 기대감을 갖게 해준다.
일부에서는 김감독 작품가운데 가장 많이 들였다는 7억5천만 원의 순제작비에 부담을 느껴 대중성에 영합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지만 투자한 만큼 작품의 완성도는 높아졌고 줄거리도 비교적 관객이 쉽게 몰입하도록 해준다. 여기에다 폭력성과 선정성이라는 흥행 코드도 적절히 뒤섞여 보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특히 경찰 취조실에 설치된 유리 칸막이(한쪽은 투명하고 한쪽은 거울로 이루어진)를 사이에 두고 진행되는 영화는 김기덕만의 독특한 표현방식에 무릎을 치게 된다.
빨간 비닐 덮개를 씌운 트럭이 해변도로를 달려가며 작은 점으로 변하는 라스트신과 조재현의 단 한마디 대사 "깡패 새끼가 무슨 사랑이야"는 이 영화를 오랫동안 머리에 남게 해주는 요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