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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나쁜남자>나쁜 놈이긴 한데... 나쁜 남자
killdr 2002-01-08 오전 2:50:22 1880   [35]
  나쁜남자 한기(조재현)와 그의 희생양이 되는 착한(?)여자 선화(서원)의 이야기 <나쁜남자>는 부산 영화제에서 소개된데 이어, 김기덕 감독을 3회연속 베를린 영화제 본선으로 진출시킨, 그리고 전라의 여인의 선정적 뒷모습을 보인 포스터때문에도 많은 관심을 불러모으고 있는 작품이다. 굳이 이런 요소들을 제외하고라도, 감독 <김기덕>이라는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그 작품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이제 당연한 듯 되어버린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본인만의 생각이 아닐것이다.

  이 나쁜남자는, 길거리에서 처음본 여대생에게 강제로 키스한다음, 그 여자를 창녀로 만들어버리는 이야기이다. 그 아이디어 자체도 놀랍지만, 그런 두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과 그 둘 사이의 관계가 매듭지어지는 결말은 상식을 완전히 뒤엎어 버리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창녀'라는 소재 자체가 가지는 선정성을 뛰어넘어 영화를 본 사람들을 깊은 생각속에 빠지게 하는, 그런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서 관객들에게 <나쁜남자 한기는 과연 나쁜남자인가?> <착한 여자 선화는 왜 자신을 파멸시킨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통해 인간 본성과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영화는 참으로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는 영화다. 일단 다른 시선은 제쳐두고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본다면, 이 영화만큼 남성 우월주의를 보이는 영화도 없을 것이다. 첫눈에 반해 길거리에서 키스하고, 그리고 뺨을 맞자 치밀한 계략으로 창녀로 만들어버리는 이야기. 그 줄거리만으로도 이렇게 여성을 비하하는 영화는 없을 것이다. 일부 영화평들도 이런 관점에서 비판적 시각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를 그런 시각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봐야할 것 같다. 김기덕 감독 본인의 생각을 직접 들어본 적 없으니 뭐라 말할 입장은 아니겠지만, 본인의 생각에 이러한 여성의 수동적인 설정은 이 영화의 주제를 위해 쓰여진 하나의 소재일 뿐이지, 그것을 남성의 우월적 자세라든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정리되면서 다시 한번더 나올것이다.

  먼저, '나쁜남자' 한기를 보자. 한기는 예쁜 여대생 선화(아마 善化-선의 화신 혹은 상징정도? 이런 의미로 보인다)를 창녀로 만들어 그녀 인생을 망쳐버린다. 그렇게 본다면 그는 분명히 나쁜 인간이다. 거기에 전과까지 있는, 창녀촌을 배경으로 돈을 뜯는 건달이다. 삼류 인생중에서도 가장 못된 놈이 한기일 것이다.
  
  그런 그를 무조건 나쁜 남자라고만 할 수는 없을것 같다. 하지만. 아주 악독한 놈이라, 자신이 사랑하는 선화가 다른 남자에게 몸을 버렸을때 지나가는 술주정꾼을 알루미늄 야구 방망이로 두들겨 패는 놈이다.
  그러나, 자기 밑의 동생(부하) 정태의 아버지가 간암으로 수술비를 마련못하자 그 돈을 대신 마련해 주는 사람이다. 살인을 저지른 부하를 대신해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사형선고를 받는다. 좋아하는 선화를 놓아주고 그에게 반항하는 부하 명수를 팬다. 선화를 좋아하던 명수는 뒤에서 한기를 칼로 찌르고 도망가는데, 한기는 명수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가 찌르고 버리고 간 칼을 흙을 파서 감춰준다.
  과연 이런 그를 무한정 나쁜남자로만 볼 수 있을까?

  선화를 보자. 선화는 과연 착하고 예쁜 여대생이었을까?
  절대 아니다. 남녀가 관계하는 그림을 그린 명화집의 한 페이지를 서점에서 뜯어내고, 그녀를 협박하기 위해 일부러 놓아두고 간 지갑을 그녀는 과감하게(?) 들고 도망간다. 소매치기 당한 사람이 쫓아올때도 그녀는 도망치는 모습을 보인다. 큰돈이 들어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멀리하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은 착한 여자의 대표로 보기는 힘든것 같다.

  즉, 이 둘은 그렇게 나쁜 놈만이기를, 혹은 착한 여자이기만을 강요받은 캐릭터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과 악의 양면성을 가진 인물인것이다. 다만 한기는 삶이 더 어두운 쪽에, 선화는 더 밝은 쪽에 있는 것으로 나와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나중에 자신을 파멸로 몰고간 한기를 사랑하게 되는 선화의 마음이 이해가 될 수 있는 밑바탕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도 일단 나중으로 접어두자.

  이 영화의 그 다음 설정이자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바로 자신의 인생을 망쳐버린 <나쁜 남자>한기를 어느새 사랑하고 있는 선화의 마음의 변화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영화 나쁜남자'는 그러한 선화의 마음을 잘 보여주지 않는다. 그 변화하는 마음을 겨우겨우 놓치지 않을 정도로만 가느다란 끈이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있듯 보여만 줄 뿐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충격적인 결론(미리 알고 보지 않는다면 말이다)에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대로라면, 자신의 인생을 망쳐버린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지 의문이 아닐수 없다. 그리고 가장 비참하고 추악한 방법으로 망쳐버린 것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여자로서 창녀로 전락시킨다는 것. 그것만큼 더 인생을 망쳐버릴 수 있는것이 또 있을까? 그렇게 되어버린 선화는, 자신의 평생의 원수 한기를 사랑하게 된다. 왜 그랬을까?

  한기는 늘 선화를 지켜본다. 창녀촌에 데리고 올때부터 그녀의 처녀성을 건드리지 않는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하고 첫경험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을때도 그 남자를 만나게 해 주었다. (당황한 남자가 그녀와의 관계를 거부해서 결국은 '손님'에게 순결을 내어주지만) 사창가를 탈출했을때도 그녀를 죽어라 패거나 어떻게 한것이 아니라 어느 바다가에 데려가준다. 술에 잔뜩 취해서 선화의 방에 들어갔을때도 그는 그녀를 건드리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그녀를 지켜준것이다. 자신의 손에서부터.

  아마, 거울 너머로 자신의 잠자는 모습, 손님을 받는 모습, 옷걸이의 못이 휘어져 짜증내는 모습조차 그것을 지켜보는 한기의 시선을 이미 선화는 알고 있었다. 이미 정상적인 여자로서의 삶이 아닌 바닥으로 추락되어져버린 삶을 살아가는, 아직도 스스로 창녀이기를 거부하던 선화를 지켜보는 한기의 시선을 이미 알았으리라.
  그리고, 이젠 닳고닳은 창녀가 되어, 손님을 스스로 잡아끄는 수준까지 되었을때, 다른 조폭들에게 심한 관계를 당해야 해서 창녀들도 피하는 상황에서도 한기는 그녀를 지켜주었다.

  괘변일까? 창녀로 만들어버린 다음에 지켜주는 것이 무슨 지켜주는 것이냐고 물어볼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선화의 입장에서 보자. 대학생이 아닌 창녀가 다 되어버린 선화, 그런 그녀에게도 지켜져야 할 무엇인가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호객행위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만 있던 그녀가 스스로 호객행위를 할만큼 삶을 받아들였을때, 이제 그녀는 예쁘고 착한 대학생 선화가 아니라 정말 창녀 선화로서의 삶을 결정해버린 것이다. 창녀가 되어버린 선화에게는 더이상 건달이나 깡패, 자신을 망쳐버린 남자 한기가 아니라, 자신을 늘 바라봐주는, 자신의 곁에서 아무말없이 지켜봐주는 남자로서의 한기가 다가온 것이다.
  그래서 사형을 언도받은 한기를 면회갔다 돌아올때 놔주겠다던 제의를 뿌리치고 다시 사창가로 돌아오는 길을 택한 것이다.

  반면에, 사창가의 깡패 한기는 어떻게 변해가는가? 손님에게 순결을 잃어야했고 좌절하고 고통받는 그녀를 창너머로 바라보기만 하던 그는 거울에 얼굴을 대고 흐느끼는 선화의 허상에 얼굴을 부비는 모습을 보인다. 달수파의 공격으로 가슴을 찔려 병원에 실려갔다올때도, 면회와서 죽지 말라고 악을 써대는 선화의 모습에서, 그리고 면회창에 뚫린 구멍을 통해 피우는 담배연기속에서 삶의 의지를 찾은 것이 아닐까?

  영화속에서는 착한 사람도, 나쁜 사람도 없다. 그냥 상대적으로 착한 사람과 그 사람보다 못된 남자가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정상적인 관계속에서의 감정이 아니라, 포기하거나(선화의 입장) 아니면 희망을 찾는(한기의 입장) 비정상적인 관계속에서의 사랑이 만들어져 가는것이다.

  그들이 함께 갔던 바다가에서 봤던 바다에 빠져들어 자살하는 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자. 사진을 찢어놓고 바다에 뛰어든 그 여자. 그 여자가 버린 사진속의 주인공은 한기와 선화였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바다를 매개로, 아직까지 한기에 대한 이중적인 마음에 방황하는 선화는 죽어버리고 그를 선택한 선화만이 남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선화는 한기와 함께 사창가를 나올때까지 그 사진속에 찢겨진 주인공들의 얼굴이 자신과 한기라는 것을 반쯤은 인정하지 못한채로 자신의 거울에 붙여놓는다. 그 비어있는 얼굴들이 있어야할 공간을 통해 보여지는 선화, 한기의 얼굴과 시선은 같은 것-둘이 함께 있고 싶어하는 마음-을 원하면서도 서로 인정하지 못하는 두 사람의 마음이라고 볼 수 있을것 같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 꼭 남녀간의 아름답고 예쁘고 서로를 아껴주는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만은 아니다. 미운정이란 말. 그말의 의미를 뛰어넘는 미운사랑이라고 하면 맞을까? 더이상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인연의 끈으로 이어졌기에 포기하고 하게되는 사랑이란 의미. 아마, 이 영화에서의 사랑의 의미는 이런것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영화의 결론은 두 사람이 행복하게 잘 사는 장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한기는 이동식 사창가(?)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쭈그리고 앉아서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몸을 파는 시간을 담배피우면서 보내고, 몸팔기가 끝난다음에 그 남자 옆에 같이 쭈그리고 앉아 같이 담배를 피우는 여자의 모습이 나올수 있는 것이다. 관계후 사용한 휴지를 정리하는 한기의 모습까지도.

  이런 삶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아마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이것은 여자인 선화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물론 남자인 한기가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것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보면, 괘변이라는것을 알지만,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당하는 여자인 선화의 능동적 선택으로 그들의 삶의 방식을 결정해버리는 것이 된다.

  이 영화 <나쁜 남자>는 그렇게 쉬운 영화는 아니다. 여성의 삶과 사랑, 남자의 삶과 사랑, 파멸, 희망, 용서, 포기, 이 모든것들을 다 말하고 있다. 100분의 영화에 그런 모든것들을 담아내고 사람마다 다른 답을 내게 만들어낸 감독의 역량이 놀랍지 않을수 없다. 거기에 너무 난해하거나 지루해질 수 있는 영화를 뒷받친 배우 조재현의 연기는 놀랍다는 말 외에는 적당한 표현이 없을듯 싶다.

  베를린 영화제 본선 진출작으로서 그 어느것 하나 흠잡을 수 없을것 같다. 다만, 너무나 피상적인 서술 방식때문에 관객들에게 얼마나 다가갈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 영화가 영화제 진출작이라고 해서 지루하거나 한 것은 아니다. 지루하지 않게 이끌어간 이야기 전개의 힘도 칭찬받을 만한 영화인것 같다. 이 영화의 흥행을 기대해본다.

(총 0명 참여)
jhee65
나쁜 놈이긴 한데...   
2010-08-31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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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남자(2001, Bad Guy)
제작사 : 엘제이 필름 / 배급사 : CJ 엔터테인먼트
공식홈페이지 : http://www.badgu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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