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 단순하지만, 그다지 맛은 없다....
영화 <식객>은 18권까지 나온 허영만의 원작 만화을 성찬과 봉주의 대결을 중심으로 압축했으며, 만화의 여러 에피소드들이 영화 요소요소에 스며 들어 있다. 원작 만화가 스토리 전개보다는 매 권마다 하나씩의 요리 정보를 제공하는 데 좀 더 주력하고 있다면, 영화는 요리에 대한 정보는 거의 제공되지 않으며, 대령숙수의 칼을 보관하는 일본인 등의 기본 설정을 통해 한일 과거사 문제 등 민족적 색채를 좀 더 강조하고 있다.
<식객>은 원작의 힘을 빌려 기본적인 재미는 제공하고 있다. 특히 스토리보다는 영상에서의 재미가 더 느껴졌는데, 분할컷이라든가 만화와 동일하게 한 장면은 꽤나 인상적이었으며, 신인 여배우인 이하나의 개성도 뚜렷해 보였다. 이하나는 비슷한 연령대의 다른 여배우들에 비해 튼튼하고 씩씩한 캐릭터로는 거의 독보적 자리를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또 이 영화의 특징 중 하나는 매우 쉽다는 점이다. 쉽다는 게 장점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대체 관객이 조금이라도 생각할 거리를 주지 않는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하는 대목이 생길 때마다 어김없이 플래시 백 화면이 등장한다. 현재의 화면보다는 거칠게 느껴지는 화면으로 꾸며진 플래시 백은 너무 자주 등장함으로서 극 진행을 영화 스스로가 자꾸 끊어 버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년에 한 영화인이 어떤 글에서 '플래시 백을 자제합시다'라는 주장을 했을 때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이 영화를 보니 정말 그 주장이 가슴에 와 닿음을 느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기본적인 재미는 있지만, 많은 단점이 존재하며, 특히 배우들의 캐릭터나 연기는 전체적으로 수준 이하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두 주역인 성찬역의 김강우와 봉주역의 임원희부터 왠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연기에 대한 적극성이나 열의도 그다지 묻어나지 않는 듯 하고. 그럼에도 아무래도 주인공인만큼 그럭저럭 넘어가고 있는 반면, 특히나 조연들의 캐릭터나 연기는 매우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
여러 영화에서 인상적인 코미디 연기를 보여준 바 있는 김상호가 맡은 배역(봉주의 조수)은 이 영화가 대체 뭘 하려고 하는 것인지 의아함을 주기에 충분했다. 단순히 김상호가 맡은 역이라서 비중이 늘어났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에피소드의 연속. 사실 성찬의 조수역도 급조된 듯한 느낌이고, 아내에게 도망다니면서도 그렇게까지 열성인 이유가 도저히 납득 불가능이다. 성찬이 만든 복요리를 먹었다가 자칫 죽을 뻔했던 요리 심사위원들은 나올 때마다 나를 웃겼다. 어이가 없어서. 무슨 떼로 몰려다니는 코믹 브라더스들도 아니고. 동일한 캐릭터를 뭐하러 3명씩이나 만들어서 눈에 훤히 보이는 어색하고 오버스런 연기를 계속해야 했는지 의문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3명의 심사위원들은 성찬이 만든 소고기탕의 시식을 거부하는데, 그 이유나 말투가 하나같이 똑같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심사위원인 이상 맛봐야 하는 건 당연지사.
이와 결부지어 생각해보면, 영화는 전체적으로 섬세하지 못하다고 느껴진다. 우선 봉주가 심사위원들에게 돈 봉투를 건네는 장면을 보면, 기자들도 지나다니는 통로에서 그것도 한 꺼번에 불러서 돈봉투를 준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다. 그리고 마지막 심사 장면에서도 분명 일본인은 심사위원 중의 한명일 뿐인데, 그 한명의 극찬으로 대결의 승패가 끝나 버린다. 나머지 세 명의 심사위원들은 분명 봉주의 탕에 손을 들어줬으며, 성찬의 탕은 맛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리고 거대한 식당을 운영하던 봉주가 단지 그 대결에서 패배했다는 이유로 쫄딱 망했다는 설정도 너무 과하다. 이 영화가 애당초 코미디 장르 영화로 기획 제작되었다면 장르적 특성상 허용될 수 있는 부분이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좀 더 세밀하고 자제되었어야 했다.
영화는 하나의 과제가 주어지면 과제 해결과정에서 위기가 닥치고 그 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그럼으로서 점점 더 높은 수준의 과제로 올라가는 방식인데, 그 과정이 잔재미는 주고 있지만, 위기에 따른 긴장감은 약하다. 그러다보니, 관객에게 성찬과 봉주의 점수는 별 의미가 없어진다. 아니 영화를 보다보면 점수를 매긴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할 정도다. 긴장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건 앞에서 얘기했던 너무 쉽고 단순하게 짜여졌다는 점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대체 뛰어난 요리사가 어떻게 황복의 제독처리에 실패했을까? 좋은 숯의 장인을 설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의 궁금증이 생길 때마다 바로 바로 플래시백으로 해결해주니 관객으로서 특별히 긴장감을 가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영화 전체적으로 나를 가장 감동시켰던 장면은 영화 초반 시골집에서의 요리 장면이었다. 대결이 아닌 손님을 대접하기 위한 특별나지 않은 평범한 음식은 정말이지 식욕을 당기게 만들었다. 그런데 대결 장면으로 넘어가면서 더 이상 식욕이 당기지 않았다. 역시 음식이란 손맛인가.... "좋은 맛은 혀가 아니라 가슴을 움직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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