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한지 한참이나 지난 영화 <파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뒤늦게 보게 된 영화였습니다.
영화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없이
감독의 말처럼 '파주'라는 어감이 그냥 좋아서
우연히 얻어걸린 영화. 그렇지만 보는 내내 많은 생각이 들게 한 그런 영화였습니다.
안개가 잦은 도시 파주.
영화는 안개 속에 서 있는 것처럼 처음엔 쉽게 곁을 주지 않았습니다.
파주.
가깝지만 멀었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 살고 있는 내게
파주는
군대 간 첫사랑이 있었던 곳.
자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휴전상태를 상징적으로 말하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 있는 곳.
대학시절 이선균과 같은 수업을 들었던 그 기억에 나는 늘 가깝게 느껴지만 그는 나를 모르기때문에
배우 이선균이 출연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늘 가깝고 멉니다.
영화 속 중식(이선균)의 사랑은 내게 낯설고 먼 것이었지만
하필 요즘 텔레비전 드라마 "파스타"에 나오는 버럭쉐프(이선균)의 사랑은 이상하리만큼 친숙하고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영화 속 여주인공 은모(서우)가 너무 예뻐서였을까요. 아니면 드라마 속 공효진의 모습이 좀 더 친숙해서 였을지요.
중식의 면회를 다녀온 은모가 대학등록금으로 선택한 여행지. '인도'
카레는 친숙하지만 인도는 가 본 적도 없는 내게
내게 영화는 내내 가깝고도 멀게 다가 왔습니다.
영화 속 투쟁의 현장은 용산사태를 생각나게 했고
용산사태에 안타까워하고 눈물은 흘렸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자신의 모습이
스크린을 마주하고 객석에 앉은 모습과 오버랩되었습니다.
바로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들에 나는 관찰자, 방관자인 채로...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내가 관찰자, 방관자인것을 계속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깨어진 창문 틈으로, 반쯤 열려진 문틈으로, 유치장 창살 건너 편으로, 나이트클럽 사장(이경영)의 모습이 포착된 카메라 뷰파인더 건너편으로 당겨졌다 멀어졌다했습니다.
언니를 죽인 가스 폭발 사고가 자신때문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혼자 남는 것이 두려웠던 자신과 시간을 함께 한 형부 중식에게로 향하는 사랑의 마음과
언니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아야겠다는 상충된 마음의 갈등은
은모의 미세하게 흔들리는 눈동자와 무표정 속에서
혼란스러웠던 나의 20대를, 무언가 조급하기만했던 나의 20대를 까닭없이 떠올리게 했습니다.
중식이 보험사기로 수감된 후 은모와 친구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론가 달리고 있을 때 그 옆을 지나던 차 안의 나이트클럽 사장의 미소에 은모가 느낀 불안함.
그것은 언니를 죽게 한 진실을 모르는 은모에게 가출하던 날 거리를 사이렌으로 꽉 채우고 지나가는 불자동차가 주었던 이상한 느낌.
공중전화 부스에서 보험조사원에게 전화를 걸던 순간 지나가는 불자동차가 주었던 뭔지 모를 불안함과 같은 것이었을 겁니다.
중식이 면회를 온 선배에게 은모는 끝까지 진실을 모르는 것이 좋겠다는 말은
어쩌면 진실은 불안함을 넘어서는 아픈 현실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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