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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부작용에 철퇴를 가하다.-그 불편함과 필요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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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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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는 내내 다른 작품들이 많이 오버랩되었습니다. 김기덕감독의 <섬>,<사마리아> 이문열씨 <사람의 아들>, 일드<사채꾼 우지시마>, 영화<화차>, <특수본>, <해바라기> 첫번때 봤을때는 복수와 속죄라는 측면만 보였는데,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5부작을 보고 두번째에 보니 느낌이 사뭇 폭넓게 다가오더군요. 일단 전체적인 포맷은 <사마리아>랑 비슷하다는 느낌.
[강도의 캐릭터] 원래 김기덕감독님 작품이 종교적 색채를 넣긴하시던데, 행동은 <섬>의 낚시꾼, 사상은 <사람의 아들>의 아하스페르츠, 악행은 <사채꾼 우지시마>에 비견된다.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함축된 인물이라고 본다. 자본주의라는 정글에서 태어나 홀로 자라난 짐승 '강도' 살아있는 가축을 구해다가 직접 잡아 먹으며 성욕의 해결을 매매(권력)도, 강1간(폭력)도 아닌 그저 몽정으로 해결한다. 강도에게 잔인하게 폭행을 당하는 이들은 그를 악마라며 불에 타 죽을것이라는 등의 분노의 찬 저주를 뱉어 내지만, 강도는 죄책감을 모른다. 그것은 돈앞에서 수단을 가리지 않는, 또한 그런 모습에 적응해 버려 전혀 죄인지 모르고 사는 우리들의 초상이다. 채무자를 건물에서 떨어뜨릴때 죽으면 보험금이 복잡해 진다는 말을 하고, 떨어뜨린뒤 고통스러워 하는 채무자의 다리를 마저 부러뜨리며 빚에 보험금을 맞춘다. 강도는 권위와 권력을 앞세워 협박과 모욕앞에 공포에 떠는 상대를 보며 즐기거나, 어떤 결핍을 해소하려는 전형적인 악인(싸이코패쓰)의 모습이 아니라, 그저 순수하게 돈이 목적인것을 보여준다. 허나 돈에 대한 탐욕은 없이 본능적으로 그렇게 자라온 짐승의 모습이다. 강도는 딱 자본주의 부작용의 결정체인것.
[강도의 깨달음] 미선의 등장으로 서서히 따뜻함(새로운 가치)을 알아가는 강도의 질문, "돈이 뭐예요?" 미선에게 빰을 맞고 자기방으로 돌아가며, "엄마 내가 혹시 뭐 잘못했어?"
[강도(우리)의 원죄] 손이 잘리기전 곧 태어날 자신의 아이얘기를 하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 채무자를 강도는 그냥 두고 나온다. 허나 그 채무자는 강도가 나가자 마자 스스로 자신의 손을 자른다. 그것은 채무자를 쫓아다니며 위압하고 괴롭히는 강도만의 문제나 책임이 아닌, 사회시스템 자체에 대한 지적인것. (출산율,양육비,교육비 등등) "자네 나한테 죄책감 가지지 말어" 청계천을 하늘에서 본적이 있냐는 아저씨 또한 스스로 건물 옥상에서 투신한다. 천민자본주의라는 인큐베이터에서 태어나 생태적으로 돈을 받기 위해 잔인하게 폭력을 휘둘렀던 짐승 강도(우리들)만의 잘못보다는 그런 현실을 낳은 시스템의 잘못이다라는 말을 한것 아닐까... 그것을 노골적으로 보여준 미선(조민수)의 대답 "돈은 모든것의 시작이자 끝이지."
[분노한 미선의 복수와 눈물] 미선은 그 '돈의 끝'을 보고싶어한다. 자본주의라는 원죄를 갖고 태어난 사회의 책임과 속죄를 강도에게 지워준다. 강도에게 복수를 하며 강도 또한 불쌍하다는 말. 그것은 변질된 자본주의 시스템을 뜯어고치려면 이 원죄를 갖고 태어난 자본주의 사생아를 스스로 죽게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비탄해 하는것이다. 미선(조민수)은 강도에게만 분노하지 않는다. 사채업자를 찾아가 빰을 날리고 전화로 자신의 위험을 강도에게 알린뒤 다시 들어가 자물쇠가 달린 쇠사슬로 사채업자를 후려갈긴다. 죄인지 모르고 저질렀던 강도에겐 동정이 생겼지만 "내가 돈받아오라고 했지 병1신 만들라고 했냐?"라며 책임을 회피했던, 시스템의 꼭대기인 인간(탐욕스러운)에게는 그러한 감정이 전혀 없다.
[강도의 속죄] 죽은 미선의 진짜 아들이 입고 있는 스웨터를 벗겨 자신이 입은후, 미선의 진짜 아들과 미선옆에 강도는 나란히 눕는다. 자신의 엄마가 아니라는걸 알고 나서도 미선을 안으며 누운 것은 그의 아들로 남고 싶다는것. 이젠 자본주의가 낳은 짐승이 아닌 인간이 낳은 아들로써 속죄하겠다는것이다. 강도는 속죄의 뜻으로 채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쇠사슬과, 탐욕으로 얼룩진 인간(사채업자)을 때려잡은 자물쇠에 묶여 자신때문에 하루하루 고통에 신음하며 살아가던 피해자의 차에 매달린채, 생계를 위해 새벽같이 돈을 벌러 나가는 출근길을 자신의 피로 물들인다.
우리가 지금까지 당연한줄로만 알았던 사회시스템을 뜯어 고치는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피, 즉 속죄없이는 그 끔찍한 하루하루를 반복할수 밖에 없다는것으로 끝을 낸다.
마치며...
김기덕감독의 영화는 시각적/청각적으로 굉장히 불편합니다. 날카로운 뭔가가 사각사각 긁어파내듯이 스켈링/신경치료받는 느낌입니다. 병원문을 나선 후에도 시리고 피나 나듯이 말이죠. 다만, 중요한 지점은 ... 성경에서 예수께서 '의원은 병자에게 쓸데 있다.' 라고 하신 것 처럼 ... 사람이라는 인격체 내부의 본성들이 <악어>의 용패나 <나쁜남자>의 한기와 다르지 않다는 걸 인정할 때, 비로소 치료가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였준다는 겁니다. 수정 자본주의가 필요한 이 시점에, 한편으로 굉장히 불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필요한 걸 언급하신게 아닌가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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