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품위있고 우아하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ldk209 2013-12-27 오후 5:34:09 669   [2]

 

품위있고 우아하다... ★★★★☆

 

겉으로만 보면 부유하고 화목하며 흠잡을 데 없는 가정을 이루고 있는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와 미도리(오노 마치코) 부부, 그리고 아들 케이타(케이타).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처럼 경쟁심이 강하지 않다는 소소한 불만을 가지고 있고, 아들은 아버지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냈으면 하고 내심 바라고 있다. 불만과 바램의 미묘한 교차. 그러던 어느 날 병원으로부터 아이가 바뀌었다는 연락을 받게 된다. 바뀐 아이를 키운 부부와 자신의 친자인 류세이를 만나면서 료타는 케이타와 류세이를 두고 마음의 갈등을 일으킨다.

 

병원에서 바뀐 아이라는 설정만 보면 한국의 소위 막장(죄송합니다) 드라마가 떠오르지 않을 재간이 없다. 게다가 한 집안은 일본의 부유한 중산층이고, 다른 집안은 조그만 전파상을 하는 서민이라는 부의 격차는 이런 의심을 확신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러나 감독이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아무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 <진짜일지도 몰라 기적> 등 가족을 테마로 만든 그의 영화들은 날카로운 비수처럼 가슴을 파고들기도 하고, 따뜻하게 안아주기도 하지만, 쉽게 관객을 흔들 수 있는 감정의 과잉을 통해 심성을 자극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의 영화는 담담한 연출로 끝내 저 가슴 깊은 곳에 지워지지 않을 슬픔의 흔적을 남겨 놓는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역시 마찬가지다.

 

과연 아버지를 아버지이게끔 하는 건 대체 무엇일까? 료타는 자신의 친자인 류세이가 키워준 아버지 유다이(릴리 프랭키)와 똑같이 빨대를 질겅질겅 씹어 놓은 풍경을 유심히 바라본다. 그게 마음에 걸렸던 것일까? 같이 살게 된 첫날, 료타는 류세이에게 ‘빨대를 씹지 말 것’을 미션으로 내준다. 케이타의 학교 행사에 따라 간 유다이는 케이타를 보며 “저 얼굴을 보고 류세이라는 이름을 지어 줬는데, 이젠 어딜 봐도 케이타네요”라고 씁쓸한 듯 되뇐다. 병원 관계자들은 아이가 바뀐 경우 키운 시간에 관계없이 100% 원래 친자로 다시 바꾼다며,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 빨리 아이를 바꿀 것을 종용한다. 그런데 정말 그게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 내린 결정일까? 혹시 어른들의 고민 해결을 위한 근거로서의 의미가 더 큰 거 아닐까.

 

다시 한 번 질문해보자. 아버지를 아버지이게끔 하는 건 대체 무엇일까? 영화는 단지 피, 혈육 관계가 이어졌다고 해서 아버지라는 지위가 만들어지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아이들과 시간을 내서 같이 지내야 된다는 유다이의 조언에 료타는 “나는 회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유다이가 다시 얘기한다. “아빠도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죠”. 그러니깐 아버지라는 자격은 태생의 문제보다는 같이 지낸 시간, 둘의 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자격이라는 게 바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얘기인 것이다.

 

영화는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조용하고 담담하게, 시종일관 감정적 분출 한 번 없이 이 고뇌의 상황을 지켜본다. 테마음악인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잔잔한 피아노 선율은 따뜻하게 등을 쓰다듬어 주는 듯하고, 케이타가 찍은 사진이 뒤늦게 발견될 때 울컥하던 마음이, 아버지의 미션을 묵묵히 감내해왔던 케이타가 배신감에 아빠에게서 도망칠 때 그만 끝내 눈물을 쏟아 내게 만든다. 품위있고 우아하게 사람을 울리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2013년 막판에 찾아온 소중한 선물이다.

 

※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는 남자’란 표현 참 좋다.


(총 0명 참여)
1


공지 티켓나눔터 이용 중지 예정 안내! movist 14.06.05
공지 [중요] 모든 게시물에 대한 저작권 관련 안내 movist 07.08.03
공지 영화예매권을 향한 무한 도전! 응모방식 및 당첨자 확인 movist 11.08.17
94567 [로렌스 애..] 어쨌든(anyway[s]) 사랑이란. (1) ermmorl 13.12.30 586 2
94566 [변호인] 상식이 통하는 세상에서 살고 싶었던 송변의 외침! (1) jasun202 13.12.29 25911 4
94565 [용의자] 용의자인지 목격자인지 영화를 보고 말하라 ! (1) greenboo153 13.12.28 693 2
94564 [우리는 마..] 우리는 마샬-실화로써의 감동을 잘 살려내다 sch1109 13.12.28 785 0
94563 [노브레싱] 노브레싱-확실히 서인국의 연기는 볼만했다 sch1109 13.12.28 945 0
94562 [엔더스 게임] 엔더스 게임:) 게임을 통한 훈련!! clover116 13.12.27 8251 1
현재 [그렇게 아..] 품위있고 우아하다... ldk209 13.12.27 669 2
94560 [그렇게 아..] 내가 알고있는 아버지, 그리고 내가 가게 될 아버지의 모습 ermmorl 13.12.27 8294 1
94559 [용의자] 몰입도 최고의 진화한 한국영화가 보고 싶다 wkgml 13.12.27 681 1
94558 [변호인] 시대의 암울함을 따뜻함으로... p444444 13.12.26 1407 0
94557 [용의자] 진일보 한 대한민국 액션 영화!! fornnest 13.12.26 599 0
94556 [소녀] 소녀-섬뜩하면서도 서늘한 느낌의 이야기 아니 이미지를 보여주다 sch1109 13.12.26 705 0
94555 [엔더스 게임] 결국 그 어떠한 중압감도 털어버리지 못한 좋은 이야기. ermmorl 13.12.24 714 0
94554 [변호인] 다큐가 아니라구! cho1579 13.12.24 6868 2
94553 [배우는 배..] 배우는 배우다-배우 이준의 가능성을 만나다 sch1109 13.12.24 1072 0
94552 [엔더스 게임] 연습을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 cgs2020 13.12.23 618 0
94551 [호빗: 스..] 흩어진 퍼즐 조각, 그리고 완성작의 사이. ermmorl 13.12.23 980 0
94550 [변호인] 재치있는 위트와 감동을 선사하는 영화!! fornnest 13.12.22 1344 1
94549 [스워드피쉬] 스워드피쉬-킬링타임용으로 볼만한듯 sch1109 13.12.22 886 0
94548 [톱스타] 톱스타-감독이 하고싶은 얘기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수있었다 sch1109 13.12.22 808 0
94547 [변호인] 엉엉 울다 나왔네요. aumma7 13.12.21 1633 1
94546 [공범] 공범-설정과 배우들의 연기는 괜찮았지만.. sch1109 13.12.20 869 0
94544 [엔더스 게임] 엔더스 게임: 우주에서 벌어진 세대간의 갈등 novio21 13.12.19 8620 4
94543 [프라미스드..] 결국 약속된 땅은 없었다 ermmorl 13.12.19 789 0
94542 [호빗: 스..] 장황하고 늘어지고... ldk209 13.12.19 760 1
94541 [호빗: 스..] 캐릭터들의 향연을 한눈으로 감상할 수 있게 하는 영화!! fornnest 13.12.19 603 0
94540 [프라미스드..] 선한 의도가 선한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ldk209 13.12.18 587 0
94539 [영 앤 뷰..] 젊음과 아름다움을 모두 갖게 된 그녀의 이야기. ermmorl 13.12.18 495 0
94538 [다이노소어..] 현장 체험 학습을 하고 있는듯한 영화 fornnest 13.12.18 514 0
94536 [크로노스] 크로노스-젊음에 대한 집착 그리고 죽음이라는 것 sch1109 13.12.18 687 0
94535 [올 이즈 ..] 올 이즈 로스트-적막하지만 현실적인 무언가를 잘 담아내다 sch1109 13.12.18 660 0
94534 [열한시] [열한 시]를 보고: 만들 수 없었던 열한시의 기적 novio21 13.12.17 823 0

이전으로이전으로31 | 32 | 33 | 34 | 35 | 36 | 37 | 38 | 39 | 40 | 41 | 42 | 43 | 44 | 45다음으로 다음으로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