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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맛이 눈에 보이는 영화 월래스와 그로밋: 거대토끼의 저주
jimmani 2005-11-03 오전 12:07:17 1195   [5]

대략 7년쯤 전에 이 대견한 콤비를 만났을 때의 산뜻한 느낌을 아직 기억한다. 꺼벙한 듯 보이지만 창의력 하나만큼은 특출난 대머리 중년남 월래스와, 그의 옆에서 제대로 짖지조차 않아도 눈빛으로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다 되는 충견 그로밋의 활약. 부담 백배의 전자바지로 한바탕 소동도 벌이고, 보기에만 매우 귀여운 펭귄 도둑과 한판 승부도 벌이고, 치즈로 만들어진 달나라로 가 원없이 치즈도 먹는 등, 그들의 모험담은 그저 이마를 탁 치면서 '맙소사!'를 연발케 할 만큼 창의력 대장스러운 구석이 듬뿍 보였다. 거기다 분명 손으로 빚은 찰흙으로 일일이 손으로 움직여 만들었다면서 보여주는 그 스피디한 속도감까지(<전자바지 소동> 편에서 펭귄과 그로밋이 기차를 타고 벌이는 추격전은 압권이었다)... 분명이 내가 당시 그전까지 봐온 디즈니식 셀 애니메이션과는 차원이 다른 재미를 보여주었다.

그랬던 그들이, 이번엔 드림웍스의 든든한 지원을 등에 없고 85분까지 장편 에피소드를 들고 찾아왔다. '거대토끼의 저주'라는 포스 잔뜩 풍기는 부제까지 달고서. <치킨 런>이 흥행에 확실하게 성공하면서 드림웍스의 신뢰 또한 확실히 얻었는지, 아드만 스튜디오는 이 명석한 콤비를 더욱 스펙터클해진 환경과 더욱 풍부한 이야깃거리 속에 모셔두었다. 헐리웃 제작사의 손길이 가서 너무 헐리웃스럽게 변해버린 건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잠시, 아드만 스튜디오는 드림웍스가 멍석을 깔아주니 더욱 신명나게 자신들의 재주를 맘껏 보여주었다.

야채를 사랑하는 영국의 작은 마을, 이곳엔 수시로 야채를 해치러 나타나는 토끼들을 말끔히 처리해주는 '인도주의(절대 죽이지 않는다) 토끼전문 박멸'로 마을 사람들의 신뢰를 한몸에 받고 있는 월래스(피터 샐리스)와 그로밋이 있다. 이들은 기발한 발명장치를 통해 사건발생 즉시 현장에 출동하는 신속정확체계를 구축해 토끼박멸업계에서 단연 선두자리를 지켜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발한 발명장치를 꾸준히 그런데 마을의 가장 큰 행사인 500년 전통의 '토팅턴 배 슈퍼 야채 선발대회'를 앞두고 마을 사람들이 애지중지 키우던 야채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다. 거기다 그런 소행을 저지르는 용의자로 추정되는 것은 그냥 토끼도 아니고 거대한 덩치를 지닌 '거대토끼'. 월래스의 짝사랑 상대 토팅턴 부인(헬레나 본햄 카터)이 주최하는 슈퍼 야채 선발대회를 앞두고, 그 거대토끼가 대회를 쑥대밭으로 만들게 놔둘 수는 없는 일, 월래스와 그로밋은 다시금 기사도 정신을 발휘해 사건 해결에 나선다. 그런데 그런 그들 앞에는 역시나 토팅턴 부인을 흠모하는 살상제일주의 사냥꾼 빅터(랄프 파인즈)가 있고, 설상가상 거대토끼의 거대한 비밀이 밝혀지면서 사건은 미궁으로 빠지는데...

클레이 애니메이션이 우리에게 주는 흔치 않은 재미는 분명 2005년에 나온 따끈따끈한 신작인데, 보고 있으면 마치 예전에 묵혀놓은 비디오테입을 꺼내 다시 틀어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구수함, 정겨움을 준다는 것이다. 요즘 애니메이션들의 완성도의 절대적 척도가 돼 가는 듯한 털의 세밀한 묘사, 피부나 질감의 꼼꼼한 묘사같은 것을 이런 클레이 애니메이션에선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아드만 스튜디오가 만든 애니메이션들만 하더라도, 웬만큼 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사람이 웃는 표정을 지을 때에는 너나 할 것없이 입모양이 비엔나소시지 모양으로 변해서 캐릭터 별 웃는 모습의 차이라든가 하는 점이 없다. 찰흙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들은 뭉툭뭉툭한 것이 뭔가 세밀하거나 완벽하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보이고.

그런데 이렇게 뭔가 허술해 보인다면 허술해 보일 구석이 존재하는 건, 이 애니메이션이 어디까지나 컴퓨터그래픽같은 첨단 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은, 온전히 사람의 손 만으로 만들어냈다는 것이다.(물론 후반에 폭발 신같은 장면은 컴퓨터의 도움을 좀 받았을 것이지만). 월래스나 그로밋 등 등장 캐릭터들의 모습이 클로즈업 될 때 잘 보면, 캐릭터의 얼굴이나 몸에서 사람의 지문 자국이 그대로 보인다. 그것들이 보일 때부터 난 절로 미소가 머금어졌다. 제작진들이 이 캐릭터들들 정성스레 빗고, 손으로 움직여가며 작업한 흔적이 눈에 그대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 어떤 기계적 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사람의 손이 저렇게 정성들여 지문을 묻혀가면서 저토록 미세하고 자연스런 움직임을 만들어낸다는 것 자체가 놀랍고 대견스러웠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사람들 웃는 모습이 그게 그거다 싶은 점들은 그저 트집에 지나지 않는다(어쩌면 일부러 정한 일종의 컨셉일지도 모르지). 우리는 제작진들이 일주일을 꼬박 밤을 새가며 만들어낸 5초 남짓의 순간들을 바로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이고, 그렇게 정성을 들였다는 증거 또한 캐릭터들의 피부와 옷에 그대로 보인다.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이렇게 시각적으로 보이는 자연스런 움직임 만으로도 칭찬거리인데, 이 영화는 거기에다 대책없이 웃겨주는 유머와 이보다 더 창의력 대장일 수 없는 발랄한 스토리라인, 거기에 나름의 풍자 정신까지 갖춰서 어디 하나 나무랄 데 없는 걸작 애니메이션으로 맛깔스러운 자태를 뽐냈다. 일단 캐릭터가 주는 웃음. 앞에서 말했듯 이 영화의 캐릭터 묘사는 사실성과는 거리가 매우 먼 지극히 애니메이션스러운 묘사지만, 그런 만큼 개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시끄럽게 한번 짓지도 않은 채 눈빛으로 모든 감정을 표현하는 그로밋은 그 모습 그대로 캐릭터상품으로 내놓아도 손색없을 만큼 사랑스러운 캐릭터다. 거기에 무료하면 뜨개질하고, 책이나 신문 읽는 건 일도 아닌 견공의 모습, 깜짝깜짝 놀랄 때면 그 큰 눈망울을 굴리며 주책스럽지만 명민한 행동도 보여주는 모습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거기에 이번 영화에서는 토끼들을 보는 재미도 꽤 있다. 일반 토끼들과는 달리 돼지코를 하고 있는 조그만 토끼들은, 분명 영화 속에서 야채들을 해치는 성가신 존재지만 당장 데려가 애완동물로 키워도 손색없을 절정의 귀여움을 보여준다. 그렇게 야채밭을 다 망가뜨리고도 막상 월래스와 그로밋에게 잡히면 단체로 몰려들어 멀뚱멀뚱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며 애교스런 눈빛을 날리지 않는가!! 얘네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엔딩 크레딧에 가서도 단체로 깜찍함을 마구 쏘아날리며 덤블링을 보여준다.

두번째로 넘쳐나는 창의력. 이전에 나온 단편들을 통해 치즈로 뒤덮인 달나라, 거대한 전자 바지 등 상상력이 넘치는 소재들을 연이어 보여줬던 이 콤비는 이번에도 역시나 창의력이 빛을 발하는 발명품들을 들고 우리들을 찾아왔다. 달콤한 치즈향으로 시작되는 월래스와 그로밋의 출동 체계, 지우고 싶은 본능을 지워버린다는 독특한 발상의 월래스의 새 발명품 등 '맙소사!'를 외치게 만드는 기발한 발명품들을 즐기는 재미도 쏠쏠하다.
창의력은 비단 발명품에서 그치지 않는다. 절묘한 타이밍에서 기존 영화들을 패러디하면서 예상치 못한 웃음을 안겨주기도 한다. 보름달이 뜨자 거대토끼가 용틀임(?)을 하는 장면은 흡사 늑대인간이 등장하는 영화를 보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여기서는 용틀임을 하는 게 무시무시한 늑대가 아니라 복실복실한 토끼다!! 날카로운 이빨 대신 깜찍한 토끼 이빨이 툭 튀어나오고, 길고 날쌘 늑대 꼬리 대신 뭉툭하고 둥근 토끼 꼬리가 툭! 하고 튀어나오는 모습은 정말 영화를 전복하는 재미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을 제대로 전해준다. 그저 토토로같은 토끼로 변할 뿐인데, 그렇게 무섭게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자체가 웃음보를 잔뜩 자극하는 것이다. 이후에도 거대토끼는 토팅턴 부인을 잡고는 <킹콩>에서의 고층 빌딩 꼭대기 인질극을 벌이는 등, 예상치 못한 패러디의 재미는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세번째로 이 영화는 손이 많이 가는 아날로그적 애니메이션임에도 그에 결코 꿀리지 않는 시각적 스펙터클도 갖추고 있다. 일전에 단편에서 저게 '정말 손으로 만든거야?'라는 의심이 가게 만든 장난감 기차 추격신을 선보인 만큼 그렇게 새삼스럽게 놀랄 일도 아니겠지만, 그래도 새롭게 만들어낸 스펙터클 추격전은 다시금 우리를 놀라게 한다. 특히나 공을 들였다는 월래스와 그로밋의 출동 차량으로 벌이는 자동차 추격전은 기본이고, 후반부 클라이맥스에서 벌어지는 비행기 추격전은 이제는 공중전까지 섭렵했구나 싶은 기술적 발전에 그저 놀라움만 안겨줄 뿐이었다. 거창한 기계적 기술 없이 사람 손으로 만들어도 이렇게 박진감 넘치고 스케일 큰 장면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제대로 보여줬다.

마지막으로 영화는 나름대로 비판적 메시지도 곁들였다. 거대토끼가 날뛰고, 거대한 야채를 보물처럼 여기며 애지중지하는 사람들의 세태를 통해, 생물을 그저 있는대로 놔두지 않고 자기 욕심만큼 조작하려 애쓰는 인간들의 세태를 적당히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거대토끼의 실체를 알고 나면, 이러한 풍자적 메시지가 더 적극적으로 그 효력을 발휘한다.

이렇게 <월래스와 그로밋 : 거대토끼의 저주>는 그저 손으로 자연스런 움직임만 보여주는 시각적 놀라움 뿐 아니라, 스토리, 창의력, 유머, 메시지 등 다방면에서 출중한 재능을 과시한 애니메이션이다. 요즘 앞다퉈서 고난도 컴퓨터 기술을 통해서 보다 사실적으로, 보다 실물과 똑같이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애니메이션이 현실인데, 이 영화는 그렇게 사실에 가깝게 애쓰려 하지 않고도 얼마나 사실적이고, 스릴넘치고, 웃기고 행복한 애니메이션이 탄생할 수 있는가를 시시콜콜 변명 없이 결과물로 보란듯이 내놓았다. 이렇게 사람 손이 바쁘게 오간 정성이 가득한 환경 속에서, 월래스와 그로밋의 재치와 찰떡호흡은 더욱 빛을 발했고 말이다. 이렇게 사람 손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고, 그게 또 훤히 눈에 보이는 애니메이션, 결코 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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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래스와 그로밋: 거대토끼의 저주(2005, Wallace & Gromit Movie : The Curse of the Wererabbit)
제작사 : DreamWorks SKG / 배급사 : CJ 엔터테인먼트
수입사 : CJ 엔터테인먼트 / 공식홈페이지 : http://www.wg2005.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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