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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수 있는만큼 보여주는 영화 브이 포 벤데타
kharismania 2006-03-16 오후 11:53:03 2124   [9]
1980년대를 회상하면 그다지 떠올리고 싶지 않은 불미스러운 역사와 마주치게 된다. 유신과 독재 그리고 항쟁과 진압, 은폐와 왜곡으로 점철되는 통금사이렌이 울리던 격동의 시대는 지난 기억에 머물러있는 선명한 아픔이자 오늘날에 기리는 영광의 상처이다.

 

 사실 이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것은 불과 30년전의 우리 현대사와의 조우였다. 자유가 통제되고 제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언론과 사상검열, 왜곡되고 과장된 위기의식 고조를 빌미삼아 위장된 국수주의를 바탕으로 강행된 독재정치 그리고 그 뒷편에 자리잡은 개인적인 권력욕과 굴절된 파시즘, 이 모든게 불과 30년전 우리네 현주소였다. 그리고 이 영화는 마치 그러한 우리네 과거를 통채로 들어다 미래로 옮겨놓은 것만 같다.

 

 영화의 시작에서 보여지는 실례는 이 영화의 허구를 현실로 잠입시킨다. 1605년 영국 의사당을 폭파시키려다 실패하고 교수형에 처해진 '가이 포크스'란 인물을 시작부터 내세운채 영화가 지니는 이야기의 뼈대를 '가이 포크스'의 가면안으로 개인을 숨긴 '브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강렬하게 드러낸다. 그럼으로써 이 영화의 판타지적인 상상은 현실성위에 놓인 사회적 문제제기로써의 가능성을 야기한다.

 

 사실 이 영화는 의외로 차분하다. 셰익스피어의 '맥베드'와 '헨리 5세'등의 문학작품으로 부터 대사를 인용하고 '몬테크리스토 백작'으로부터 이미지를 차용하는 등의 고상함을 보여주며 시대적인 사명감이 결부된 비판적 진술이 철학적이면서도 상징적인 표현으로 구술된다. 화려한 액션을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호흡이 장황한 진지함과의 원치 않던 만남이 하품으로 맺어질 가능성이 있다.

 

 사실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는 브이(휴고 위빙 역)를 가린 가면은 개인적 복수심을 억제시키고 대의적인 명분을 심어주는 상징성으로 두드러진다. 브이의 신념은 본인의 개인적 원한에서 비롯된 복수심으로부터 출발하지만 개인의 불행은 국가적 제도의 기만에서 비롯되었다는 대의적인 행동양식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개인을 가린 가면은 개인적인 반항적 소지를 집단적인 항쟁으로 몸집을 부풀린다. 말 그대로 개인적 영웅담이 아닌 민중을 대변하는 이미지로의 저변확대를 꾀하는 셈이다.

 

 또한 이 영화는 조지오웰의 소설인 '1984년'의 통제된 사회의 불편한 안정과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인 '20세기 소년'의 음모론이, 그리고 '커트 위머' 감독의 '이퀼리브리엄'에서 보여지는 철저하게 감시되고 통제당하는 개인을 다룬 디스토피아적 미래에 대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내부적인 위기를 조장하여 지지를 얻어가는 일련의 음모론은 지속되는 공포심이 기반이 되어야 하며 그러한 기반을 빌미로 한 통제을 통해 얻은 전체의 평화는 안정되어 보이지만 내면에 잠재된 억눌림으로 인한 불만의 축적은 폭발을 기다리는 도화선과 같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DC코믹스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동명타이틀의 영웅을 스크린으로 옮긴 이 영화는 원작의 어두운 감성을 고스란히 옮기며 영웅의 사적인 고뇌보다는 사회에 대한 고찰을 끌어내는 개인적인 비범함을 보여준다. 물론 개인적인 회한은 엿보이지만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순간적인 찰나에 불과하다. 그리고 결말부에서 드러나는 로맨스적 감성은 가면으로 무장한 영웅의 내면에 숨겨진 개인적 비극을 드러냄으로써 영화의 비장감을 소폭 상승시키는 촉매와 같은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매트릭스와 일치하진 않으나 비슷한 눈높이를 지니고 있다. 물론 매트릭스가 보여주었던 스타일리쉬함과는 적당한 거리를 두지만 매트릭스가 보여주었던 개인의 자각에서 비롯되는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손을 잡는다. 매트릭스라는 가상현실안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신의 존재감을 깨닫고 진짜 삶을 찾게 되는 네오(키아누 리브스 역)의 캐릭터는 구원자라는 의미에서는 브이에 가깝고 캐릭터의 해탈이라는 의미에서는 이비(나탈리 포트만 역)에 가깝다. 또한 브이는 구원자이자 자각으로 이끄는 중계자라는 점에서 모피어스와도 가깝다. 무엇보다도 개인의 자각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두 영화는 동일한 선을 그리지만 매트릭스가 인간 존재자체의 본질적인 깨달음을 이야기한다면 브이 포 벤데타는 인간 존재로부터 파생되는 사회적인 존립에 대한 깨달음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두 영화는 평행선을 그린다. 거울속의 나와 거울을 보는 나는 같지만 동일시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사회라는 것은 개인이라는 열세를 극복하기 위한 취지에서 비롯된 공동체이다. 하지만 수의 우위는 힘의 가중이라는 장점을 얻지만 조합되지 못하는 다양성이 두드러지면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는 약점이 있다. 그래서 사회는 질서의 유지를 위해 규범을 만들어내고 법을 완성한다. 그러나 모두의 평안을 위한 법은 때론 억압의 수단으로, 혹은 사욕을 위한 왜곡된 인용으로 이용되며 본질적인 가치를 빗겨나가곤 한다. 이 영화는 그러한 체제의 조악함안에서 훼손되어가는 개인을 부르짖으며 체제의 과격한 전복을 꿈꾼다. 아나키즘(부정부주의)에는 못 미치지만 작은 정부론보다는 나아간다. 또한 한 개인을 통한 민중의식의 고취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설파한다. 그리고 그 개인조차도 개인성을 죽이고 민중적인 열망을 내재한 선구자적 기질의 페르소나로 무장하고 있으니 이 영화의 주제는 다분히 사심가득한 지론보다는 거대하다. 또한 지독한 파시즘으로 상징되는 극단적인 전체주의 사회에 대한 혐오가 영화의 저변에 깔려있다.

 

 또한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테러리즘에 가까운 가학적인 형태의 응징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과연 폭력으로 인해 고취되는 정의는 인정받을 수 있는가. 정의라는 이름으로 폭력에 면죄부가 부여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이 영화를 통해 재고된다. 물론 이 영화의 응징은 결과론적인 측면에서는 통쾌하지만 방법론적인 측면에서는 암담하다. 이는 정의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테러리즘의 한계에 대한 질시이며 공감할 수 없는 국한적 대의에서 파생되는 테러리즘의 도용에 대한 우려이다. 어쩄든 이 영화는 과격한 방식을 통한 강렬한 메세지의 각인은 성공하겠지만 방식에서의 접근은 한번쯤 되물어볼 여지가 있다.

 

 어쩄든 초반에 보여지는 형사재판소의 폭파장면과 영국의 상징인 빅밴과 국회의사당의 폭파장면은 볼거리이자 일방향적 전체성으로 경직된 사회에 대한 참담한 조롱이다. 사회라는 하나의 거대한 집단성을 상징하는 건물을 파괴함은 집단이라는 안주감에 빠진채 부정에 대항할 명분을 잊고서 몰락한 개인성을 외면하는 대중의 무의식을 일깨우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무엇보다도 위에서 언급된 브이라는 캐릭터는 이 영화의 독특함에 일조하고 강렬한 영화의 메세지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무엇보다도 쉽게 결론지을 수 없는 입체적인 캐릭터가 보여주는 설법은 논리적이면서도 선동적이다. 또한 기존의 영웅들이 벗어나지 못하는 개인적 고뇌와 이유없는 의무감에서 탈피해서 확실한 자기 신념을 보여주는 캐릭터라는 점에서도 상당히 독특하다. 또한 이비라는 캐릭터는 우매한 군중의 이미지를 대표한다. 그리고 그녀의 각성은 신민에서 시민으로, 즉 자유에 눈뜨게 되는 진정한 자아로의 발전을 의미한다. 또한 브이의 극중 대사 중 이비의 시대가 온다는 말은 권력의 힘이 대중으로 넘어오는 살아있는 시민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언급한다.   

 

 사실 국가라는 것은 우리가 둘러싸고 있는 공동체의 가장 큰 범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물론 가장 구체적인 형태에서의 의미안에서- 우리는 이러한 국가의 존재로부터 개인의 존립성을 인정받지만 불필요한 압제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불합리에 귀기울이는 것에 무심하다. 이 영화는 우리의 무신경한 상실감에 눈뜨게 해준다. 국가권력으로부터 혹은 집단적인 힘의 논리로부터 쉽게 양보하곤 하는 개인성의 자멸에 대한 종식을 꾀한다. 그리고 그러한 자각은 신념에서 비롯될 수 있음을, 그리고 그러한 신념은 결국 행동으로 승화되어 나가야 함을 역설한다.

 

 어쩄든 이 영화는 상당히 깊은 철학과 진리를 고취하고자 하는 의욕이 다분하다. 다만 그러한 의욕은 관객에게 쉽게 다가서기엔 어려워보인다. 이 영화는 말 그대로 아는만큼 볼 수 있는 영화다. 쉽게 영화를 즐기려 드는 사람보다는 영화의 진지함에 흥미를 느끼며 정독하는 이들에게 만족감을 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국가라는 집단에 대한 반발이 민중전체로 연결되는 것은 국가라는 하나의 공동체에 대한 붕괴에 대한 선동이 아닌 전체속에서 무시되는 개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강한 어필이라고 보는 편이 옳겠다.

 

 괴테는 '모든 것은 쉬워지기 전에는 어렵다.'고 했다.

 

 우리의 과거는 오늘까지 오기에 쉽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는 자유를 만끽하며 개개인의 복지에 전념할 수 있는 다양성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과연 오늘날도 우린 진정 자유로울 수 있는가. 매스미디어로부터 나오는 정보의 진실성을 파악하기 전에 영향받으며 국가의 정책의 당위성을 묻기 전에 무심해지는 오늘날 우리 사회는 진정 개인의 권리를 염두에 두고 있는가. 눈에 보이는 알력보다도 눈에 보이지 않는 음모가 더욱 무섭다. 이 영화는 개개인 스스로가 포기하는 가치에 대한 신념을 강하게 웅변한다. 모든 것은 본인의 의지로부터 출발하고 그러한 의지는 시대를 바꾸는 힘의 원천이 된다는 것. 모든 것은 고민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행동하지 않는 사고는 머리속에서 사장되니까. 그것이 이 영화에서 엿보여지는 담대한 본론적 기질이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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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in1371
그런데 테러리즘에 가까운 가학적인 응징에 논란에 여지가 있다고 하셨는데요.. 건물은 상징적인 의미일뿐 인명살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는 않잖아요? 마지막 엔딩에서 수많은 군중들이 군대와 싸우지않고 지나간점에서도 보이듯이 말이에요(사실 이장면에서 싸울줄알고 움찔했음)
전 그런면에서 정의를 앞세워서 더 큰폭력으로 응징하는 헐리우드식 영웅들과는 차별을 두고싶은데.. "테러리즘"은 중동문제를 다루는 서구언론에서 보이듯이 상대적인 개념이 아닌가 해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2006-03-17 15:10
arin1371
정말 잘 정리해 주셨네요 많이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2006-03-17 14:55
claraz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더욱 깊은 의미를 부여해 주는 지음의 존재는 크나큰 축복입니다. 카리스마니아 님의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2006-03-17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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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 포 벤데타(2006, V for Vende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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