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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터클의 서사적구조. 진주만
sundog 2001-07-07 오후 4:30:05 699   [2]
스펙터클한 액션장면에도 서사구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만

약에 알고 계시다면 다행입니다만, 모르시더라도 밥먹고 살아가는데는 지장

없으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이글을 읽으시는 당신

이 영화감독이거나, 또는 영화감독 지망생이라면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필

요가 있습니다. 스펙터클한 액션씬에도 분명히 기-승-전-결의 서사구조가

갖추어져야 한다는 걸.

영화 [진주만]의 '진주만 공습' 씬은 서사구조를 무시한 액션연출이 어떠

한 결과를 가져다 주는지를 아주 명백하게 보여줍니다. 사실 저 자신도 제

가 영화사상 가장 스펙터클한 액션장면 중의 하나인 이 씬에서 졸 것이라는

것은 예상 못했습니다! 벤 에플렉과 조쉬 허트넷이 전투기에 올라탈 때부터

졸리기 시작하더군요. 다른 것도 아니고 바로 '진주만 공습'씬을 보기위해

영화를 본건데, 하필 그장면이 졸리다니요. 너무 억울해서-표값이 아까운

나머지 억지로 눈을 뜨고 봤지만, 10분여 정도는 졸음과 싸워야 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토록 스펙터클한 전투씬 앞에서 저의 눈이 감기게 만들었

을까요. 그 이유를 분석하기전에, 우선 이 영화가 그렇게도 닮고 싶어했다

는 [타이타닉]-그 중에서도 하이라이트인 침몰장면을 얘기해 봅시다.

타이타닉이 침몰하는 광경은 초반부터 그렇게 스펙터클하지는 않습니다. 그

저 분주히 움직이는 선원들과 급히 대피 준비를 하는 승객들의 모습을 보여

주지요. 그리고 배에 서서히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는 모습, 서로 먼저 구명

보트에 오르려고 하는 아비규환의 모습, 배가 흔들림에 따라 위태롭게 흔들

리는 구명보트의 모습, 서서히 기울어져가는 배의 모습들을 천천히 보여줍

니다. 거대한 타이타닉이 스크린 속에서 점점 기울어지는 각도가 커져감에

따라 관객들의 긴장-감정의 곡선 또한 가파르게 기울어져 가다가, 마침내

배가 수직으로 우뚝 서는 순간 최고점에 도달하게 됩니다. 영화는 잠시 여

기서 멈춰 밑으로 떨어지는 승객들의 모습들을 보여주면서 미처 따라오지

못한 관객들이 최고조의 흥분에 도달할 여유를 준 연후에, 주저하지 않고

그 여세를 몰아 배가 반으로 동강나서 수면에 부딪힌 후 다시 수직으로 꽂

꽂히 서서 물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관객은 숨쉴 여유도

찾기전에 박동수가 급격하게 증가한 자신의 심장을 진정시킬 여유부터 찾게

되지요. 이렇게 관객을 긴장과 스펙터클로 끌어들이는 연출 덕분에 1시간

20여분에 달하는 침몰장면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을수 있었던 겁니다.

그렇다면 [진주만]은 어떤가요. 예고편에도 나왔던 포탄투하 장면이나 군함

들이 침몰하는 장면, 주인공들이 벌이는 공중전 장면들은 확실히 스펙터클

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몇몇 씬은 타이타닉이 동강나는 장면보다도 더 스펙

터클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인상적이지는 못합니다. 아니, 전혀 인상적이지

못하지요. 조금도요.

좀 더 솔직해 지자면, '진주만 공습'씬 전체가 스펙터클합니다. [타이타닉]

이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 그 외의 어떤 영화보다도 더 말이지요. 그리고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도대체 이 영화에서는 스펙터클의 상승곡선이라

는 것을 볼 수가 없습니다. 처음부터 최대치를 달리지요. 결국 처음부터 관

객들이-관객들의 긴장감이 따라올 기회를 주지 않기 때문에, 관객들은 아무

런 긴장감 없이 감각적인 화면이 빚어내는 스펙터클한 화면에만 흥분하게

됩니다. 그러나 긴장감이 결여된 흥분은, 감정적인 반응이 아닌 육체적인

반응에 불과한 것이지요. 타이타닉이 침몰장면이 관객의 아드레날린을 조금

씩 증가시켜 우리가 충분히 적응하고 따라갈 수 있는 여유를 주고 자연스레

최고치까지 끌어올린 것과는 달리, 진주만 공습장면은 처음부터 아드레날린

을 최고치로 자극하여 관객이 따라갈 수조차 없게 하지요. 아드레날린이 최

고치로 분비되는 상황이 40여분이나 지속되니, 몸이 피곤해지지 않을 도리

가 있을까요. 게다가 그 덕분에, 위에서 지적한 대로 이 영화에서는 딱히

집어 얘기할 만한 장면이 없습니다. 전체적인 임팩트가 너무 큰 탓이지요.

그 유명한 포탄투하 장면도, 예고편에 나와서 관객들에게 미리 깊은 인상을

주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유명해지지는 않았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뭐 좋게

말하자면, 그만큼 멋진 장면이 많다는 얘기가 되기도 하지만요.

영화의 스토리구조인 삼각관계야 물론 흔해빠진 것이긴 합니다만, 따지고보

면 [타이타닉] 또한 그 흔한 스토리로 역대 최고 흥행작에 오른 데다가 아

카데미상까지 받았으니 별로 흉 될만한 것은 아닙니다. 스토리의 독창성보

다 더 중요한 것은, 스토리를 얼마나 잘 이끌어 나가느냐하는 것이지요. 일

견 이 영화는 처음에는 잘 해나가는 듯 싶습니다. 그러나 정작 가장 세심하

게 연출했어야 할 살아돌아온 레이프가 대니와 에블린과 갈등을 빚는 부분

에서, 마이클 베이는 자신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에블린은 그렇게 쉽게 레

이프에게 돌아가지 말고 좀 더 두 남자 사이에서 고민을 해야 했습니다. 그

리고 두 남자의 갈등은 진주만 공습 이전에 최고치에 도달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마이클 베이는 아주 유치한 짓을 했습니다. 두 남자 주인공

에게 싸움을 시킨 것이지요. 그렇게밖에 두 남자 주인공의 갈등이 최고치에

달했다는 것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을까요? 아니, 무조건 치고박고만 하면

두 사람의 감정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는 것을 보여준답니까? 마이클

베이는 스펙터클을 연출하는데는 능하지만 여전히 드라마 연출에서는 미숙

합니다. 덧붙이자면, 대니는 차라리 진주만 공습때 죽어야 했습니다. 진주

만 공습 뒤의 장면들은 전부 쓰레기 이지요.

어쩌면 이 모든 결점들이, 그가 뮤직비디오 감독이었다는 전력에서 기인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감각적인 화면 연출에는 강하지만 서사적인 구

조를 만드는데는 미숙합니다. 40여분에 달하는 진주만 공습 장면이 내내 멋

진 장면으로만 채워져 막상 깊은 인상을 주는 장면이 하나도 없는 것은, 4

분내내 멋지고 감각적인 장면으로만 채워넣는 뮤직비디오를 연출하는 감각

으로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스펙터클하고 감각적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타이타닉]이나 [라이언일병 구

하기] 처럼 장엄하고 장대한 광경을 보여주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스크린과 브라운관의 사이즈의 차이에도 적응하지 못한 걸까요.

우리는 언제쯤 진짜 '영화' 감독이 된 마이클 베이를 볼 수 있을까요? 그가

이번 실패를 거울 삼아, 다음번에는 서사구조를 제대로 갖춘 영화를 만들기

를 바랍니다.


















(총 0명 참여)
pecker119
감사해요.   
2010-07-03 08:23
1


진주만(2001, Pearl Harbor)
제작사 : Jerry Bruckheimer Films, Touchstone Pictures / 배급사 : 브에나비스타 인터내셔널 코리아
수입사 : 브에나비스타 인터내셔널 코리아 / 공식홈페이지 : http://studio.go.com/movies/pearlharbor/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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