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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폭력써클
kharismania 2006-10-17 오후 2:46:09 997   [2]
우정과 의리라는 명분이 그토록 진실되게 느껴졌을 때를 떠올리자면 학창시절로 회귀하면 될 것만 같다. 그 시절처럼 친구란 단어가 친근하고 가족보다도 익숙하던 시절이 있었을까. 영화 '친구'에서처럼 함께 있으면 무서울 것이 없었던 시절, 그것은 어쩌면 숫자로써의 안도감이자 아직 성숙되지 못한 비자립성 불안감에서 따라오는 의지적 본능이 집단적 결속을 부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한 그 시절만큼 주먹질에 제약이 따르지 않던 시절도 없다. 애들은 싸우면서 큰다는 말처럼 학창시절의 싸움은 추억으로 미화된다. 신체의 성장에 비해 미처 다 자라지 못한 내면적 불안감이 상대에 대한 가학적 욕구로 발전되는 것은 어쩌면 그 시절만의 특권이자 불가피한 사항이 될수도 있다. 어쩌면 그것은 폭력성에 대한 취득이자 조폭성의 발견이 될 수도 있다. 물론 그것이 남자들만의 세계에서 거쳐져야 하는 통과의례로 여겨진다면 곤란할지라도 전혀 부정할 수만은 없다.

 

 영화의 시작은 수감되서 취조중인 상호(정경호 역)의 모습으로 출발한다. 이미 무언가가 벌어진 뒤의 회상과 추적의 이미지. 과연 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조직명은 타이거. 조직의 목적은 축구. 그런데 어째서 상호는 형사의 취조를 받고 심하게 다친 피해자의 가해자인 양 앉아 있는 것일까.

 

 상호는 중학교 동창인 창배(이행석 역), 재구(이태성 역)와 함꼐 제일고로 진학한다. 상호와 창배가 축구시합중 주먹다짐을 하게 되는 경철(김혜성 역)과 홍규(조진웅 역)는 알고보니 재구의 친구였고 그로인해 돈독한 친구사이가 된다. 다들 공통적인 관심사는 축구인 탓에 그들은 홍규와 경철의 친구인 상식(고규필 역)까지 합세시켜 축구모임을 만든다. 타이거라는 이름으로.

 

 시작은 축구모임이었다. 그런데 이 건전한 모임은 어째서 폭력써클이라는 제목의 영화처럼 타락의 전조를 보이는 것인가. 그들이 폭력성에 눈뜨며 자발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다만 주변의 상황이 그들의 목적을 변질시키고 그런 흐름에 휩쓸려가는 그들의 모습이 묘사된다. 그들의 건전했던 축구모임이 오해를 넘어 진짜 폭력써클처럼 와전되어가는 과정은 흥미진진하고 그런 과정안에 불가피한 돌진성을 부여하는 과격함도 놀랍다.

 

 학교라는 울타리는 세상의 보호막임과 동시에 일종의 가리개다. 사회라는 거친 세상의 파문을 막아주시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학교 내부에서 펼쳐지는 폭력성의 사정을 감추기도 한다. 누가 왕따를 당하건 혹은 구타와 폭력이 남발되건 외부에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은폐와 밀집의 공간성이기도 하다. 일단은 학생이라 할지라도 그곳에 모인 아이들은 연령대에 맞는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라 자신들만의 법칙으로 서열의 균형을 맞춘다. 그리고 그 균형의 기준이 되는 것은 힘이라는 법칙이 우세하다. 아무래도 사회적 권력과 지위에 길들여지지 않은 어린 학생들은 물리적인 힘의 압력에 약할 수 밖에 없으니까.

 

 상호는 불의를 참지 못하고 의리를 중시한다. 그리고 불의에 맞서거나 의리를 지키는 방식은 결과적으로 힘으로 인한 알력의 행사다. 상호는 그렇게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폭력으로 귀결되는 행위적 결과에 발을 담근다. 하나의 인물이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인생의 방향으로 거침없이 달려가야만 하는 과정에 대한 관찰 그 자체가 어쩌면 이 영화의 특별한 모양새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소 간과되는 것이 있다. 과연 폭력으로 점철되는 영화속의 극단적인 현실이 불안정한 청소년기의 사내들을 대변할만한 것인가. 그리고 축구로 인해 모인 아이들이 폭력으로 뻗어가는 과정에 외면적 상황 이상의 대변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가.

 

 일단 영화는 이미 확정된 결말을 제공하고 그 결말의 전모를 플래쉬백한다. 공개된 결말로 인해 궁금해지는 것은 과정이다. 그리고 영화는 그 과정의 진행상황 그 자체에 비중을 둔다. 육사생도를 꿈꾸는 상호는 학교라는 공간에서는 모범생이지만 한편으로는 친구들에게는 의리있는 멤버이다. 그리고 그는 친구들과 달리 술과 담배를 멀리한다. 하지만 타이거라는 축구모임이후로 패거리를 이루며 몰려다니는 순간 순수한 의도의 모임은 엇나가기 시작한다. 자신들의 내부결속은 다져지지만 그 결속에 끼지 못하는 이들은 외부인이 된다. 결과적으로 단단해진 결속력은 타인과의 소통에 장해가 된다. 그것은 집단적 연대를 통해 숫자로써의 우세를 힘으로 승화시키는 조폭성과도 연관이 된다. 그리고 그들의 잠재된 조폭성을 일깨우는 것은 주변일대를 휘어잡고 있는 동고의 불량배 한종석(연제욱 역)이다.

 

 한종석이 좋아하는 수희(장희진 역)와 상호가 가까워진 탓에 눈에 가시였던 타이거는 종석의 패거리인 TNT로부터 린치를 당한다. 외부의 적이 확실해진 상황에서 방법은 둘이다. 써클의 본취지와 무관하게 흘러가는 써클을 와해시키느냐 혹은 써클의 본취지와는 상관없는 폭력써클의 길을 걷느냐. 하지만 전자의 길을 선택하기에는 상황은 극도로 열악해지고 걷잡을 수 없게 커진다. 그렇게 번져가는 상황안에서 관찰되는 것은 상호의 개인적, 혹은 타이거에 속한 멤버들의 분노로 점철된 복수행위에 대한 근거뿐이다. 중요한 건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에 대한 폭넓은 이미지가 아니다.

 

 한편으로 떠오르는 것은 폭력이라는 방식의 소통이다. 남성들의 세계에서 꿈틀대는 폭력적 방식으로의 우위가림에 대한 암묵적 욕구는 떄론 그들만의 연대감으로 미화되고 포장되기도 한다. 친구가 맞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것은 의리로 미화되고 상호의 결전을 말리는 수희에게는 남자들의 문제라는 수컷의 자존심으로 포장된다. 결과적으로는 폭력적 행위에 대한 그럴듯한 이유일 뿐이다. 그리고 그 행위에 대한 보답은 그 행위에 참가했던 이들의 참담한 현실뿐이다.

 

 질풍노도의 시기를걷는 청소년의 방황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상황이 뻗어나가는 모습은 그들을 대변한다고 하기에는 비약적이다. 성장기에 겪는 일시적인 정서적 혼란과 그로 인한 고통으로 정의내리기에는 겉도는 형상이다. 그 시절을 지나는 연령대에 걸맞는 고민이라기보다는 상황자체에서 튕겨져 나오는 갈등구조에 연연한다. 물론 간혹 우정과 사랑이라는 하나의 장르적 고민이 등장하지만 그 역시도 깊게 파고 들지 못하고 스쳐지나듯 전시된다. 결과적으로 모든 상황의 흐름이 폭력적 결말을 위한 여정적 근거를 마련한다.

 

 결국 이 영화는 영화라는 외면적 흐름만이 방치될 뿐 그 흐름안에서 부유하는 내면적인 고민의 공감대는 마련하지 못하는 것이다. 관객이 보는 것은 타이거의 멤버들이 나락으로 추락해가는 과정뿐이지 그 멤버들이 추락해가야만 하는 과정의 근원적 설득력은 볼 수가 없다.

 

 영화의 결말부는 참혹함이다. 마치 폭력이라는 행위의 귀속적 형태에 대한 경고장만큼 끔찍하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 비하면 조금은 날것의 느낌이 약하지만 그 결과적인 참담함은 비례해보인다. 결국 핏빛정서로 마감되는 한 폭력써클의 비극담은 감정적인 개입은 실패하고 상황의 나열로 인한 시놉시스적 흥미만이 유발된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상황적 일변도만이 영화의 정서를 지배할 뿐이다. 물론 그 정서가 결여된 상황만을 즐긴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좀 더 세밀하고 세심한 내면적 시선이 부족함은 아쉬운 부분이다.

 

 어쩄든 육사생도를 꿈꾸던 상호가 술을 마시고 종래에는 담배를 피우며 결국 살인자로 복역하는 것은 축구동호회일뿐이었던 타이거를 만드는것에서 출발한다. 마치 눈덩이처럼 일파만파로 부풀어버린 이야기의 파국적 형태는 눈여겨볼만한 부분이다. 또한 그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아이들을 연기한 배우들 역시 그럴듯한 연기를 펼친다. 특히 악역 한종석을 연기한 연제욱은 섬뜩할 정도의 연기를 보여준다.

 

 어쩄든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폭력써클의 일원이 되었다. 엔딩 크레딧과 함께 펼쳐지는 그들만의 리그가 애석한 건 그래서이다. 어쩌면 젊음의 혈기왕성함을 억누르지 못한 아이들의 행각이라고 치부할 수 없음은 극적인 동기가 몰아가는 상황적 개연성이 충분하긴 하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폭력을 미화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보복적인 행위의 산물이거나 마땅한 응징의 형태를 띤다해도 결국 가해자로써의 폭력성으로 점철된다는 것은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하는 산물이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을 위해 영화가 극중 인물들을 망가뜨려버렸다면 젊음이라는 세대적 공감대속의 진중한 성찰을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뜬구름같은 교훈일뿐이다. 재구의 뒤늦은 편지처럼 폭력적 방식의 소통은 결국 상황이 주는 끔찍한 이미지를 나열할 따름이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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