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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얕봤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elflady09 2006-09-23 오후 8:53:08 1336   [7]

 

 

 


 ‘멜로, 코믹 = 비디오용’ 은 나의 오랜 지론이었다. 얼마 전 보았던 영화 <도마뱀>이 나에게 엄청난

배신감을 안겨주면서 나의 이러한 지론은 더욱더 확고해져갔다.

 

 

 

 사실 작년부터 이 영화의 개봉을 기다리고 있었다. 언론에서 다루기 전부터 강동원, 이나영 주연

으로 세 번 자살을 시도한 여자와 세 번의 살인을 한 남자 이야기가 영화화 된다는 것, 그것이 공

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을 원작으로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캐스팅도 그런대로 괜찮아

보였고 스토리도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오랜 기다림 끝에 공개된 예고편을 보고 나는 실망 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영화도 별 수 없는 전형적 최루성 멜로겠거니 생각했다. 포스터에 쓰인 진부한 문

구 ―사형수 이 남자, 내 마음속에 들어오려 합니다 ― 를 보고는 코웃음을 쳤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울고불고 하겠구나, 하면서.

 

 

 

 우행시를 보게 된 건 순전히 할인 이벤트 때문이었다. 2000원 할인이벤트를 하길래 덜컥 조조로

예매했다.

 

 그리고, 하루 종일― 나는 그들의 잔영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었다.

 

 

 

 대부분의 멜로 영화는 특수성을 전제한다. 시한부의 여주인공과 금지된 사랑으로 대표되는,

현실과 한참 동떨어진 이러한 특수성은 멜로 영화의 전형이 되었다. 모든 멜로가 천편일률로 특수

성을 띄고, 흔해진 특수성은 영화 내에서 특수한 구실을 하지 못한 채 전형성으로 전락해버리는

것이다. 우행시의 인물 설정도 멜로 영화의 특수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유정과 윤수― 자살 중독인 여자와 사형수의 이야기가 아주 일상적인 것

처럼 여겨졌다. 가슴 저리게 애틋하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냉소적이지도 않았다. 어디서나 볼

법한, 마치 나 자신이나 내 이웃에게 일어날 법한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 영화는 솔직

하고 소박하게 그려내고 있다. 나는 그 평범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아픔을 진정으로 공감하며 이

해 할 수 있었다.

 

 

 

 세 번 자살에 실패한 여자와 세 명의 사람을 죽인 남자. 이 특별한 사람들을, 이 특별한 이야기를

평범하게 만드는 것은 감독의 힘이었다. 송해성 감독은 멜로의 전형적 특수함을 평범함으로, 그

평범함을 다시 특별함으로 승화 시키는 경이로움을 보여준다.

 

 

 

 유정과 윤수는 영화가 거의 결말에 근접할 때까지 사랑한다는 말, 죽지 말라는 말을 단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기존의 멜로 영화처럼 중반부부터 ‘죽지 말아라, 사랑한다’ 는 진부한 말을

수도 없이 해대며 눈물을 흘리거나, ‘나는 곧 죽을 테니 서로를 위해서 우린 헤어지는 게 낫겠다.’

라는 식의 자기 희생형 대사도 없다. 과잉된 감정을 배제하여, 자칫 유치한 신파가 될 수 있는 영

화를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게 그려낸 점에서도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이 돋보인다. 이나영과 강동

원의 절제된 연기도 어느 때보다 빛을 발했다.

 

 

 

 유혈이 낭자한 살인 현장과, 방금 사람을 죽인 윤수의 뒷모습- 그리고 쇼팽의 이별곡. 전혀 어울

리지 않을 것 같은 이 모습은, 영화의 첫 장면에서 묘한 조화를 이루며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것

이 주는 뉘앙스와 시너지 효과 또한 강력하다. 이 외에도 유정과 윤수의 불안한 심리를 대변하는

듯 희미하게 흔들리는 앵글, 면회실 유리창에 비치는 유정과 윤수의 잔영 등, 섬세하고 감각적인

감독의 손길에 나는 감탄 할 수밖에 없었다. 감독의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된

다.

 

 

 

 이나영, 강동원의 연기도 한층 성숙해진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두 배우 모두 캐릭터와 겉도는 것

처럼 보였다. 유정이 “나한테 왜 자꾸 그런 자식 만나라는 건데” 라고 소리치는 부분은 너무 건조

하고 힘없게 비춰졌고, 박할머니가 윤수를 용서하는 부분에서도 가슴 찡하게 하는 무언가가 부족

했다. 하지만 점차 이야기가 무르익을수록 배역에 완전히 적응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서로

를 사랑하기에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과정을, 두 배우는 아주 자연스럽

게 표현해내고 있었다. 조연들의 연기도 훌륭했는데, 특히 아역 배우들의 연기가 인상 깊었다. 강

동원의 동생역으로 나온 아역 배우는 어찌나 연기를 잘 하던지 여느 성인 연기자 못지않다는 생각

을 했다.

 

 

 

‘감독이 누구든 멜로는 다 거기서 거기지’ , ‘이나영은 항상 비슷한 역할만 하는 것 같아’ , ‘강동원

이 맡기엔 벅찬 역할이야’ , ‘예고편 보니까 완전 신파던데.’

 

.......난 그들을 얕봤다.

 

그들은 내가 생각 했던 것보다 훨씬 훌륭했다. 이해, 신뢰, 사랑, 용서, 죽음……. 어려운 소재에

심도 있는 접근도 시도했다. (그 시도가 산만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아주 익숙한 낯설음으로,

아주 오래된 가치의 새로움을, 영화는 말하고 있었다.

진심을 다해 연출한 송해성 감독, 진심으로 연기한 두 배우. 그들의 진심이 특별하며 평범한, 그래

서 다시 특별한 이야기,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을 만들어낸 것이다.

 

 

 

처음에 나는 이 영화가 슬프다고 생각했다. 윤수가 죽어서,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해서

참 슬프다, 라고. 그리고 오늘, 다시 찾은 영화관에서 나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행복한 감동.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 다는 것... 그 찬란한 기적을― 사랑하기엔 아직 어린 나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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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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