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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도 모르는 존재의 위대함 스트레인저 댄 픽션
kharismania 2006-11-16 오전 3:37:54 1355   [9]

 가끔 비현실적인 현실을 꿈꾸는 일이 있다. 마치 우리가 사는 세계가 모두 다 누군가의 조작이라면 혹은 누군가의 조종의 결과물이라면. 세계까지 광범위하게 폭을 넓히지 않더라도 나 자신이 누군가의 각본에 의해 설계되는 귀속적 삶의 주인공이라면. 그렇다면 과연 그 운명의 길목을 설계하는 자는 누구일까. 어쩌면 그 물음표의 공백을 채우는 건 신이라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영화라는 것은 인간을 신으로 만들어주는 산물일지도 모른다. 시나리오라는 운명을 짊어진 배우들로 인해 만들어지는 하나의 세계. 물론 그 세계가 완전치 못하다 할지라도 그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영화를 제작하는 인간의 능력이다.

 

 이 영화는 영화라는 허구의 장르, 즉 픽션 그 자체안에 내부적 픽션을 삽입한다. 그럼으로써 내부적인 픽션의 외피를 두른 외부적 픽션은 상대적으로 논픽션과 같은 장치적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픽션과 논픽션이 각자의 영역에 교점을 이루는 순간 그 상황 자체가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의 구분을 허물어뜨린다.

 

 일단 이 영화는 지극히 현실적인 삶을 기반으로 한다. 그런면에서 이 영화가 취하는 허구는 이야기적인 상상력의 측면에서 한정된다. 국세청에서 일하는 해롤드(윌 페렐 역)나 베이커인 안나(매기 질렌할 역)나 유명한 소설 작가인 에이펠(엠마 톰슨 역)이나 다들 우리의 현실안에 자리잡은 지극히 평범한 인물들이다. -적어도 반지를 버리러 원정대를 꾸릴 필요도 없고 광선검을 휘두르는 제다이가 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런 평범한 일상의 환경이 비현실의 공간으로 자리잡을 때 튕겨져나오는 충격은 상당하다. 익숙한 환경에서 펼쳐지는 특별함은 그만큼 주위를 둘러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국세청 직원 해롤드는 자신의 삶을 톱니바퀴처럼 맞추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일어나는 시간부터 양치질을 하는 횟수와 출근길 도보를 걷는 발걸음 수까지 하나의 착오도 없이 횟수를 맞추는 그의 삶은 마치 방학시간표처럼 한치의 오차도 없다. 그 오차없는 삶은 제3자의 목소리로 해설이 된다. 마치 중계라도 하듯 그의 일상은 한 여성의 목소리로 주석이 붙여진다. 어느 날 양치질을 하던 해롤드는 어디로부턴가 들려오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다. 해설자와 주인공이 소통해버리는 것이다. 물론 이는 지극히 관객의 입장이며 극중에서는 주인공에게 들려오는 환청과도 같은 작용이다. 하지만 이는 상당히 모순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쉽게 말하자면 소설의 시점에서 전지적 작가 시점의 화자가 극의 1인칭인 주인공과 교감을 하는 황당한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의 황당함은 영화의 잘못됨을 지적하는 불만성 발언이 아닌 상황적인 묘사적 표현으로 활용됨.- 물론 그 소통의 방향성은 일방통행이다. 그리고 그 상황 자체가 이 영화의 제목 그 자체이며 이 영화의 의도를 머금은 행위목적인 셈이다.

 

 어쨌든 환청과도 같은 화자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해롤드의 삶은 변화하기 시작한다. 태엽처럼 순조롭게(?) 맞춰지던 일상은 잃어가는 평점심만큼이나 리듬을 상실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화자는 그런 상황조차도 설명조로 일관한다. 영향력의 방향은 화자에서 주인공으로 화살표를 그리나 화자의 태도는 해설자로써의 위치를 고수한다. 이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흥미로운 방식의 전개일 수 밖에 없다. -일찌기 이런 상황을 본적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영화가 관객과 취하던 약속과도 같은 암묵적 합의를 스스로 망가뜨리기 떄문이다.

 

 사실 영화속에서 인물의 행위를 관찰하는 것은 관객이며 그런 행위를 설명하는 행위조차도 관객의 관찰안에 포함된다. 다만 그 행위를 취하는 대상이 어떤 모션을 취하고 있느냐의 간극적 문제는 암묵적으로 동의를 얻는 것이다.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늘어놓는 화자의 위치는 지정학적으로 스크린 안에 위치하지만 그 영향이 미치는 것은 스크린 밖의 관객이다. 결국 행위의 장소는 영화속의 공간이지만 행위의 영향력은 영화밖의 공간에 한정된다. 화자의 위치는 작품밖으로 소통되며 작품안에서는 단절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합의를 스스로 파기한다. 그리고 그 깨져버린 법칙이 이 영화의 이야기자체에 독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리고 그 영향력은 이 영화가 뻗어나가고자하는 의도적인 행위적 형태다. 물론 극 중에서의 상황적 의도가 아닌 이 작품 자체의 기획적 의도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속에 등장하는 세인물의 관계가 보여주는 관계도다. 해롤드는 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극속의 허구적 인물이다. 그리고 에이펠은 그 허구적 인물을 창조하고 그 인물을 통해 허구적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작가이며 줄스 교수(더스틴 호프만 역)는 그 완성된 작품을 평가하는 비평자이다. 세사람의 관계가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은 사뭇 다르다. 일단 작가로써의 에이펠은 자신의 작품을 써내려가는 과정속에서 생성되는 고뇌로 산고를 치른다. 이미 자신의 작품에서 8명의 인물을 죽인 경력이 다분한 그녀는 이번에도 한명의 인물의 완벽한 사형을 위해 고민한다. 스스로를 고층빌딩에서 떨어뜨리기도 하고 교각위에서 차와 함께 강으로 전복시키기도 한다. 에이펠의 소설에 따라 운명이 점철되는 해롤드는 사실 극속의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현실과는 무관한 운명이다. 하지만 영화는 소설속의 허구적인물을 (영화라는) 현실안으로 끌어들여 그 입장을 표명하려 한다. 어쩄든 소설속의 인물로써는 작가란 신과도 같은 존재다.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는 이이기 때문이다. 물론 존재하지 않는 입장이라면 그것이 어떤 결말로 나아가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작품이니까. 하지만 그것이 허구가 아닌 현실과의 연관성을 지닌다면 그것은 상황이 다르다. 마치 이 영화처럼. 해롤드는 현실이자 에이펠의 작품속 인물이다. 그는 하나의 소모물이지만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자 하는 것과 같다. -실제로 살아있는 주인공이라니!- 단순히 작품속의 인물은 작품을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소모품이 아닌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헌신하는 일등공신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해롤드가 차지하는 방점은 이 영화의 이야기선을 이끄는 1인칭 인물임과 동시에 모든 허구적 작품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대변하는 캐릭터일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줄스 교수는 작품의 가치를 위해서라면 작품이 실제로 한 사람의 삶을 앗아갈지라도 그작품의 완성을 위해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고 할 정도로 작품에 대한 애착을 지닌 비평가다. 작품의 완성을 위해 결말의 비극을 혼자 짊어져야 하는 해롤드의 모습은 걸출한 작품을 얻어내기위해 산고와도 같은 고통을 견뎌내야 하는 작가들의 고단한 노력을 우회적으로 암시하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런 고통을 감수하고라도 좋은 작품을 얻어내는 것이 그들의 소명과도 같다고 그는 말한다. 거시적인 관점으로 해롤드의 죽음보다도 걸출한 문학작품의 완성이 더욱 좋은 결과물이라고 말하는 그의 입장은 전승적인 가치의 고결함이 현세의 짧은 윤리적 가치보다도 우선시될 수 있다는 의미로 귀결되고 이는 작품 그 자체의 작가적 완벽함을 추구하는 비평가의 성향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의 행위적 목적이 닿고자 하는 감상적 목적지는 인간이라는 동물의 사회적 유기성으로 해석된다. 에이펠의 집필이 해롤드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거대한 맥락적 영향력과도 같은 소통에서부터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 작품의 결말에 영향력을 끼치는 세밀한 순간까지처럼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의 연관있는 삶의 다양한 파장을 느끼며 살아간다. 나비효과처럼 우리의 행위는 저마다 연관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작은 행위에서 비롯되는 우주적 파장의 영향력을 이 영화는 신비롭게 묘사한다. 이 세상을 구성하는 많은 이들의 존재는 그 자체로도 합당한 이유를 지니며 타인의 존재가 자신의 존재를 지탱하는 유기체와 같은 연관관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비현실적인 구성력의 탁월함도 대단하지만 그만큼 영화의 감성이 흡족한 것은 해롤드라는 인물이 변해가는 양상의 바람직함이다. 지극히 평면적인 삶을 살아가던 해롤드의 삶이 환청-그의 입장에서 보자면-으로 인해 삶이라는 지각위에 울리는 진도를 느끼고 안나와의 만남으로 인해 확실한 지각변동을 체험하게 된다. 그의 지루할 정도로 빈틈없는 리듬의 균형이 부서지는 순간 태엽인형같던 삶이 생동감을 얻는다. 그는 자신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는 노골적인 해설과 같이. -물론 이는 에이펠의 작품속 화자의 발언이지만- 그리고 그 바람직한 변화는 관객에게 감성적 만족감을 얹혀줌과 동시에 영화가 나아가려하는 결말에 대한 우려로 작용하는 것이다. 동시에 이는 관객에게 극적인 긴장감마저도 유발하는 다양성을 습득한다.

 

 '몬스터볼', '네버랜드를 찾아서'와 같은 작품으로 평단과 관객의 찬사를 얻은 마크 포스터 감독의 신작으로써 그의 이야기적 재능을 재확인시켜주는 것만 같다. 마치 미셸 공드리의 작품을 보는 것만 같이 이 영화속의 시공간은 현실과 비현실을 가로지른다. 그리고 그 모호한 경계선이 영화의 독특한 매력을 배가시킨다. 또한 윌 패렐을 비롯해 매기 질렌할과 더스틴 호프만, 엠마 톰슨 등의 화려한 라인업은 그 명성만큼이나 안정된 연기를 보여주며 내외적으로 영화의 질을 한단계 높인다.

 

 아주 작고 소소한 행위라 할지라도 그 행위가 후회되는 순간이 있다. 내가 그 순간 팔을 들지 않았다면 지금 이 순간이 달라져있지 않을까하는. 부질없는 생각일지 모르지만 어쩌면 그것은 그만큼 자신의 작은 행위조차 세상이라는 우주에 미약한 의미로 점철될 수 있다는 발상적 근거가 되지 않을까. 그것은 결국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존엄성의 발견과도 같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또다른 주변 사람들을 지니고 그렇게 뻗어나가다 보면 결국 우리는 세상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서로에게 작지만 지나칠 수 없는 영향력을 끼치고 살아가는 것이다. 비록 이 영화처럼 비현실적인 삶을 대면할 수는 없겠지만 이미 우리는 그렇게 기적과도 같은 영향력을 지닌채 살아가고 있다. 그 어떤 허구적 작품으로도 쉽게 증명할 수 없게 말이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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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인저 댄 픽션(2006, Stranger Than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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