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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에 목매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스릴러가 나올 수 있다.. 블라인드
ldk209 2011-08-11 오후 3:45:22 18565   [2]

 

반전에 목매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스릴러가 나올 수 있다.. ★★★☆

 

스릴러 영화 <블라인드>는 딱히 감춰진 것 없이 모든 걸 펼쳐 보여주는 정공법을 택한다. 그러니깐 뺑소니 사고를 목격(?)한 시각장애인 민수아(김하늘)가 당시 상황과 나름의 예상을 조목조목 잘 설명하는 이유는 경찰대에 재학했었던 과거가 있었기 때문이다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경찰대에 재학했었기 때문에 설명을 잘 하는 것이다로 이어진다. 즉 연역법이 아니라 귀납법.

 

그러므로 <블라인드>는 주인공이 과거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영화치고는 플래시백의 활용장면이 거의 없이 시간의 순서에 따라 하나하나 차곡차곡 설명하고 쌓아나간다. 영화의 처음은 민수아가 왜 시각장애인이 됐는지를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이 장면은 그저 민수아의 시력 상실에 대한 이유만이 아니라 앞에서 말했듯이 민수아의 추리력과 함께 범인과 결투 장면에서의 육체적 능력 및 기섭(유승호)에 대한 감정선을 설명하는 근거도 동시에 제공하는 것이다.

 

시력을 상실한 과정을 보여준 후 영화는 에둘러 돌아가지 않고 일직선으로 나아간다. 민수아 앞에 서는 자동차, 범인(양영조)의 모습과 대략적인 특징들이 묘사되고 뺑소니 사고와 범인의 도주로 이어진다. 정공법을 택했다는 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하면서도 핵심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대단히 치밀한 퍼즐 맞추기와는 거리가 멀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처음 영화가 제시하는 미션은 수아와 기섭의 진술 차이다. 모범택시가 범인이라는 수아의 진술에 대해 직접 두 눈으로 본 기섭은 택시가 아닌 외제 승용차라고 반박한다. 기섭의 의도는 그저 사례금을 타내기 위해서일까? 그런데 사례금을 노린 것 치고는 너무 억울해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후 몇 가지의 미션이 더 등장하지만, 미션이 해결되는 과정이 딱히 정교하지도 않고,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지도 않는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쉽게 해결되며 관객으로선 그저 따라가기만 해도 된다. 이런 부분이 좀 아쉽게 느껴지긴 하지만 단점이라고 지적할 정도까지는 아니다. 오히려 반전의 충격 효과만을 기대하고 얼토당토 않는 과정과 결론을 제시하는 많은 한국 스릴러 영화보다는 <블라인드>의 정공법이 훨씬 더 좋음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대신 <블라인드>는 잔인하진 않지만 섬뜩함과 긴박감을 선사한다. 여자들을 납치해 감금해 놓은 지하실은 자세히 묘사되지는 않지만 스치는 것만으로도 살풍경이고, 특히 영상통화를 이용한 지하철 추격신은 오금이 저리도록 긴박감을 선사하는 동시에 가슴 저릿한 슬픔을 동반하는 이 영화 최고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블라인드>가 최근 상영한 한국 스릴러 영화 중 손에 꼽을 만한 수작이라는 평가에 동의하게 되면서도 <블라인드>의 흘러넘치는 감정의 분출은 좀 자제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이로 인해 직선으로 내달리던 이야기는 가끔 주춤거리고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차라리 몇몇 감정신들을 들어내는 대신 범인의 상황을 좀 더 묘사해주거나 범인을 알아내는 과정을 더 치밀하고 정교하게 다듬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란 생각이다.(사실 영화에서 범인의 등장 비중은 기여에 비해 상당히 낮다고 느껴진다) 물론 이 문제는 <블라인드>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스릴러 영화가 전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다. 잘은 모르겠지만 영화 제작자와 연출자에겐 이러한 감정의 분출을 한국 관객이 원하고 있으며, 이런 게 한국형 스릴러이고, 이런 장면이 있어야 흥행에 성공한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그게 정답인지도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드라마나 스릴러에서의 과도한 감정 분출에 거부감을 느끼는 편이다.(하나 더 들자면 과도한 코믹코드)

 

또 하나, 정공법으로 하나씩 앞으로 나간다는 건, 결론에서의 강렬한 한 방이 부재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돌이켜보면 시각 장애인이 주인공인 스릴러 영화의 경우 대부분 어둠이라는 소재가 사건이 완결되는 중요한 배경이 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민수아 역시 영화에서 “나에겐 낮도 밤과 같다”는 말을 한다. 전체를 암전시킨다는 것은 시각 장애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중요한 차이를 없앤다는 것이고, 이는 평등한 관계가 아닌 오히려 관계의 역전을 의미한다. 모든 게 어두워질 때, 대부분의 감각을 시각에 의존하던 사람이 불리해짐은 분명한 사실이다. 가급적 어둡게 하려는 민수아와 가급적 밝게 하려는 범인의 숨 가쁜 움직임이 그 자체만으로 긴박감을 주는 건 관계의 역전에 대한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블라인드>는 거기서 더 나아가 민수아가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와 현실의 범인에 대한 응징을 연결시키기 위해 장소를 이동해 가며 몇 차례에 걸친 대결장면을 이어나간다. 분명 마지막에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킨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이를 위해 대결의 시간이 지체됨으로서 긴장의 이완을 가져왔다는 건 스릴러의 결론으로선 좋지 않은 선택이다.

 

※ 김하늘은 평가 절하된 배우라고 생각한다. 김하늘을 포함한 배우들의 연기는 전반적으로 좋다. 다만 유승호의 연기는 아무래도 캐릭터 때문인 듯 한데 좀 거슬렸다.(행동의 원인이 잘 설명되지 않는 캐릭터) 연기로 말하자면 맹인안내견을 맡은 달이를 뺄 수 없다. 가히 한국 영화에 출연한 모든 동물 연기자 중 최고의 연기를 뽐낸다.

 

※ 한국 영화에서 고아원 같은 장소가 등장할 때, 그곳 출신이 찾아가면 언제나 아이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우르르 몰려나와 ‘누나, 언니, 오빠, 형’하고 감싸는 장면은 너무 전형적이고 식상하다. 그것도 매번 찾아갈 때마다. 다른 거 안 하고 그 사람 오는 것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 장애인이 등장하는 영화에서 빠지지 않는 장면 중 하나가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몰상식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블라인드> 역시 예외는 아닌데, 영화 초반 횡단보도를 건너려던 민수아에게 자동차 운전자는 온갖 혐오의 말을 쏟아 낸다. 난 이런 장면을 영화에서 접하는 게 너무 불편하다. 기분이 나쁠 정도로 불편하다. 장애인의 사회적 편견에 대한 영화라면 모르겠지만, 딱히 영화 전개에 필요한 장면도 아닌데 굳이 왜 넣는지 모르겠다. 물론 최근 김천시에서 벌어진 서울의 모 초등학교 학부모들의 장애인 비하 발언 사건을 접하면서 이게 바로 진정한 현실의 세계임은 알겠다. 그럼에도 현실이든 영화든 우리 사회가 아직 미개한 사회임을 보여주는 이런 장면을 접하고 싶지는 않다.

 

※ 영화 보고 나와서야 <블라인드> 감독이 <아랑> 감독임을 알게 되었다. 영화 보기 전에 <아랑> 감독임을 알았다면 아마 쉽게 <블라인드>를 보리라 결정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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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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