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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만남이 아닌 완벽한 공생 해변의 여인
kharismania 2006-08-26 오전 4:08:34 1270   [3]

작년 초 연애계를 뜨겁게 달구던 뉴스는 고현정의 컴백에 관한 이야기였다. 과거 '모래시계'로 주가가 상한가였던 그녀가 택한 것은 다음 차기작품이 아닌 재벌가와의 결혼이었다. 그렇게 훌쩍 사라져버리고 은둔하다시피 지내던 그녀는 난데없이 이혼이라는 소식을 전했고 이는 이윽고 그녀의 연기를 다시 볼 수 있으리라는 모종의 기대감을 품게 했다. 그리고 작년 초 드디어 낭설같이 떠돌던 풍문이 사실이 되면서 그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었고 그녀는 드라마 '봄날'로 화제성만큼이나 뒷받침되는 연기력으로 지난 세월동안의 공백을 잊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이번에는 스크린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그리고 그 영화가 홍상수감독의 영화라는것.-홍상수라니!- 이는 그녀가 단순히 스타성에 힘입어 자리를 유지하고자 하는 연애인이 아닌 연기를 하고자 하는 연기자로써의 자세를 재측정할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일단 이 영화에 대해 논하자면 이작품은 홍상수의 영화다. 다만 이 영화가 예전 홍상수의 영화에 비해 주목받는다면 그것은 엄연히 고현정 때문이다. -부연할 필요도 없이!- 마치 영화라는 바다안으로 홍상수라는 배위에 고현정이 탑승한 채 밀려오는 것이 아닌 홍상수라는 배를 고현정이 직접 키를 잡고 운행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것 -단지 외관상의 상황적 이미지만을 살펴보자면 말이다.-도 이상한 일은 아닌것만 같다.

 

 물론 홍상수가 고현정을 위해 영화를 헌납했을리는 없다. 사실 국내에서 작가주의적인 감독 중 하나의 예로 들법한 그의 네임밸류는 고현정의 첫작품이라는 홍보효과보다도 큰 내실적 의미가 있다. 중요한 건 홍상수이지 고현정이 아니니까.

 

 그의 영화는 항상 소박하면서도 무미건조하고 지독하게 일상적이다. 오히려 다른 영화에서는 간과하고 지나가는 일상의 평범함이 그의 영화에서는 뚜렷하게 투영된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독특하다. 우리가 굳히 주목하지 않는 순간들, 그냥 쉽게 지나쳐버리는 순간들이 그의 영화에서는 유용하게 써먹어지고 그의 영화를 특별하게 수놓는다. 오히려 지독하게 무덤덤한 순간들의 나열이 관객에게 특별한 화법으로 어필되어 그의 영화를 각인시켜주는 중요한 기반으로 활용된다. 그의 영화는 섹스하는 순간까지도 권태롭고 일상적이다.

 

 물론 이 영화도 그런 전작들과 궤를 달리하지 않는다. 하지만 예전 그의 영화들과 무언가 은밀한 차이를 느낀다면 마초주의가 강하던 그의 전작들 -물론 최근작에 이르러서 많이 희석되고 있으나- 과 비교하자면 이 영화는 다분히 여성적인 강도가 세다. 아니, 어쩌면 이 영화는 거의 여성적이다. 예전 그의 영화가 남성 인물들의 감성과 시선을 중심으로 이야기의 흐름을 주도했지만 이번 작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남성 인물은 거의 위축되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은 여성이다. 아마도 이는 고현정이라는 배우를 십분 활용하고자하는 감독의 의지이자 일종의 압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이 영화의 발목을 잡지 않는다. 오히려 홍상수의 재발견이랄까. 그의 또다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를 고현정이라는 배우가 열어준 것만 같은 인상이다.

 

 홍상수의 영화는 거의 항상 남자의 입장을 대변했다. 여성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 '오!수정'마저도 결과적으로 수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그녀 주변 남자들의 이야기였다. 그의 영화에서 여자들의 거의 겉돌거나 주변부에 서 있을뿐 중심축에 서 있는 것은 남성이였다. 어쩌면 그래서 남성의 성적 욕구의 실현, 즉 섹스는 그의 영화에 빠질 수 없는 코드였는지도 모르겠다. 남자들은 그 순간의 욕구해소에 대한 갈망이 때론 권력욕보다도 절실한 것이니까.

 

 그런데 이 영화는 획 자체가 틀리다. 시작부터 끝부분까지 등장하는 것은 중래(김승우 역)다. 그러나 그가 이야기를 이끄는 핵심축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문숙(고현정 역)이고 그녀를 보좌하는 것은 선희(송선미 역)다. 다만 중래는 그녀들이 엮이게 된 중매자 역할이다. 그리고 그녀들의 감정을 끌어내는 기폭제 역할일 뿐이다. 그의 이야기는 이 영화의 구조적 필요성에 따른 위치선점일 뿐 그 이상의 진중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게다가 창욱(김태우 역)은 초중반에 들어서면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

 

 문숙과 선희의 교감은 의아하면서도 여성적인 동질감의 성립이라는 측면에서 수긍된다. 사실 일반적인 상식에서 벗어날 수도 있는 두 사람의 교감은 순수하게 여성이라는 하나의 울타리 안에서 이해하고자 할 때 받아들여져야 하는 측면이다. 어쩌면 진보적 성향의 페미니즘적일 수도 있지만 굳히 젠더정치학의 수사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성적 연대감이라는 측면에서 그들은 다분히 자연스러운 동지적 연대행위를 꾀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중래라는 캐릭터는 남성의 전부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홍상수의 영화중 남성의 속물근성을 가장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사실 감독의 영화는 항상 남녀의 만남이 등장했고 그 남녀의 만남에서 남성들은 항상 사랑이라는 감정을 끌어들여 욕정채우기에 급급했다. 그리고 그 감정의 공백으로 밀려드는 허무함이 영화의 여운처럼 떠밀려오곤 했다. 중래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문숙에게 사랑을 읊조리지만 그녀를 가진 뒤 태도가 돌변한다. 그리고 항상 그렇듯이 그럴듯한 가치관을 설파하며 대범한 척하고 잰 체하며 남자로써의 위엄을 세우려 한다. 이전 영화까지는 그래도 그는 남성들의 그런 근성을 자연스러운 감정의 발현처럼 표현했으나 이 영화에서는 그런 근성에 창피함을 덧씌운다. 남자다움에 대한 고민보다는 남자들이란에 대한 눈총이 확장된다. 남자이기떄문이라는 변명보다는 남자로써의 비속함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에 따라 여성들의 감정적인 결속력은 강화되고 그들의 현격한 이해심과 포용력이 눈에 띄게 강조된다.

 

 또한 이번 작품은 그의 예전작품에 비해 상당히 편안(?)하다. 동승한 남녀를 무안하게 하던 적나라한 성행위도 없고 -물론 그것때문에 홍상수의 영화를 즐겨왔던(?) 이들에게는 섭섭한 소식이겠지만.- 무덤덤하던 그의 영화에 위트가 가미되고 유머가 곁들여졌다.

 

 하지만 확실히 홍상수의 영화이니만큼 끔찍하게 현실적이다. 멜로 영화의 환타지처럼 아름다운 사랑의 유영도 헤어짐이라는 순간의 슬픔의 증폭도 없다. 남녀의 하룻밤조차도 지나고 나면 그렇게 변변치않은 일이 되고 뜨거웠던 감정조차도 지속되지 못하면 무신경해진다. 헤어짐은 만남만큼이나 순간적이고 그 끝에 남는 애잔함조차도 다가오는 일상적인 사건에 대한 애착보다도 무색하다.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감정이라지만 어쩌면 사랑이라는 감정은 세상에서 가장 무책임한 감정일지도 모른다. 남성과 여성의 만남과 교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것은 다분히 평범한 일일지도 모른다. 마치 정해져버린 공식처럼 그 만남이 동일반복의 어법처럼 무미건조한 일상적 행위 중의 하나로만 치부될 수 있는 일이라면 그 감정이 지니는 절실함은 시간이 흐를수록 거짓에 가까운 변명처럼 퇴색된다. 그래서 어쩌면 사랑은 무책임하다. 그렇게 퇴색되는 감정을 절실하게 갈구하는 순간이 오니까. 하지만 무책임하면서도 우리는 만남을 갈구한다. 남자와 여자는 완벽하지 못하기에 서로를 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둘이 아닌 하나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그런 만남은 감정의 지속성에서 가식적일지 몰라도 필요한 반복학습이다. 적어도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적 대척점이라는 현실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행위를 되풀이 할 수 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기에 이는 지극한 평범함으로 표현되어도 마땅한 것이다.

 

 홍상수가 여성을 말하는 것은 이 작품이 처음이다. 어쩌면 그것은 고현정의 힘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물론 그녀가 홍상수를 바꾼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홍상수가 그녀를 염두에 두었다면 이야기가 된다. 그가 여자를 말하기에 자신을 만족시켜줄만한 이미지의 모델을 찾지 못해서가 아닐까. 이렇게 홍상수와 고현정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의 만남은 완벽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한다. 고현정은 홍상수의 재발견을 돕고 홍상수는 고현정의 힘을 실감하게 한다. 잘못된 만남의 오해가 완벽한 공생으로 재확인되는 순간이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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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여인(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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