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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생 로랑의 라무르(2010, L’Amour Fou)
배급사 : 찬란
수입사 : 찬란 /

이브 생 로랑의 라무르 예고편

별로./..이지만,,, 그럭저럭~ ★★★  yu1935 11.06.08
프랑스영화+다큐영화의 졸음콤보를 이겨낸다면 좋은 영화. 그의 남친의 목소리가 잠을 부른다 ★★★☆  sie3o2 11.06.04
완전 기대됩니다. 보고 싶어요 ★★★  imcsj 11.05.31



20세기 불멸의 패션 아이콘을 만나는 유일무이한 체험!
패션과 예술, 인생과 사랑을 넘나드는 이브 생 로랑의 모든 것을 공유한다!


20세기 최고의 패션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의 삶과 사랑 그리고 그가 남긴 모든 것에 관한 이야기! 패션 역사상 전무후무한 천재 디자이너이자 예술가였던 이브 생 로랑, 이니셜 YSL만으로 불멸이 되어버린 그를 만난다. 1957년 21세에 크리스챤 디올 수석 디자이너, 25세 오뜨꾸튀르하우스 ‘이브 생 로랑’ 설립, 1966년 최초로 여성을 위한 팬츠 수트를 선보인 스모킹룩 발표, 47세 생존 디자이너로는 최초로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회고전 개최, 49세 레종 도뇌르 훈장 수훈, 2002년 은퇴 선언, 2008년 사망, 프랑스 전 국민의 애도 속에 장례식 거행. 바로 불멸의 패션 아이콘이 된 유일무이한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의 생애이다.
영화 <이브 생 로랑의 라무르>는 2002년 이브 생 로랑의 은퇴 선언으로 시작한다. 그는 언론의 플래시 세례와 함께 그토록 사랑하던 자신의 직업에 안녕을 고한다. 이어지는 2008년 그의 장례식… 장 폴 고티에, 발렌티노, 비비안 웨스트우드, 존 갈리아노, 겐조, 크리스챤 라크르와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들과 그의 오랜 친구 카트린느 드뇌브 그리고 사르코지 대통령과 카를라 브루니 내외까지 참석해 애도했다. 그야말로 국장 수준이었다. 그들 안에 또 한 사람 피에르 베르제가 있었다. 이브 생 로랑의 오랜 연인이자 친구, 사업 파트너였던 그의 인사말은 담담해서 더욱 애잔하고 감동적이었다.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이브..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인사를…” 그리고 마지막 휴식처인 모로코 마라케시의 마조렐 정원에 잠든 이브 생 로랑.
이브 생 로랑에 대한 추억과 회고 그리고 사랑과 예술을 둘러싼 때로는 아련하고 때로는 쓸쓸하고 때로는 드라마틱한 감동이 살아 숨쉬는 다큐멘터리 <이브 생 로랑의 라무르>. 화려한 패션계에서의 성공과 고뇌, 영광과 죽음까지의 이야기가 20세기 패션 역사를 관통하는 생생한 에피소드와 흥미진진한 뒷얘기들 속에서 펼쳐진다. 영원(永遠)을 사는 남자, 패션계의 제왕에게 바치는 최고의 헌사가 이제 곧 우리 곁을 찾아온다.

패션의 역사를 새로 쓴 20세기 최고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
그가 창조하고 시작한 놀라운 패션 히스토리와 조우하다!


오스카 와일드는 ‘터너 이전에는 런던에 안개가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패션 역사에서 이브 생 로랑을 지칭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표현이기도 하다. 시대를 바꾸고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았던 20세기 패션계의 마지막 전설, 바로 이브 생 로랑이다.
1966년의 패션 역사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여져 있다. ‘이브 생 로랑, 최초로 여성을 위한 팬츠수트 스모킹룩 발표하다’라는 역사적인 한 줄이 포함된 것이다. 물론 이브 생 로랑 이전에도 여자들은 바지를 입었다. 하지만 그의 스모킹룩은 여성의 사회참여 물결과 맞물려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으며 역사의 변화와 함께 했다. 여성들에게 자유를 선사한 패션 혁명가, 천재의 타이밍과 감각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그가 남긴 기록은 그 뿐만이 아니다. 몬드리안룩을 비롯해 마티스와 피카소, 팝 아트의 예술 세계를 색과 패턴의 배합으로 표현한 그의 의상들은 지금 보아도 혁신적이고 대담하다. 건축과 회화, 패션과 음악의 각종 장르를 넘어선 크로스오버 작업에 도전한 것은 이브 생 로랑이 처음이었다. 최근 패션계의 핫 트렌드인 아티스트와의 콜라보레이션의 원조가 바로 이브인 것이다. 또한 세계 각국의 민속의상에서 영감을 얻은 콜렉션을 연이어 발표했고, 최초로 흑인 모델을 오뜨꾸튀르 무대에 올렸으며 패션쇼 피날레에 등장하기 시작한 첫번째 디자이너이다. 그 외에도 오뜨꾸튀르 디자이너로서 최초로 기성복 라인을 런칭했으며 피코트, 사파리 재킷, 점프수트, 트렌치코트 등 지금까지도 사랑 받는 패션 아이템들을 창조한 장본인이다. 1983년 47세의 나이로 생존 디자이너로는 최초로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 회고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해 파리 프티팔레에서는 대규모 이브 생 로랑 회고전이 열려 위대한 거장의 40년 패션사가 아낌 없이 펼쳐졌다.
영화 속 피에르 베르제는 말한다. “진정한 예술가들은 그들의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에 그 시대를 바꾸는 존재가 아닐까요?” 시대의 변화를 본능적으로 꿰뚫어보고 한 발 앞서 창조하는 예술가로서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은 그것이 가능했던 20세기 패션 역사의 정점에 서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기의 경매, 초특급 아트 이벤트! 사랑하는 이에게 바치는 최고의 추모이자 헌사!
때로는 아련하고, 때로는 쓸쓸하고, 때로는 드라마틱한 감동이 살아 숨쉰다!


2008년 이브 생 로랑의 타계 후 그의 오랜 동반자 피에르 베르제는 그들이 평생에 걸쳐 모은 엄청난 규모의 미술품을 경매에 부치기로 한다. 그들의 인연과 사랑과 삶의 모든 것을 마무리하는 가장 호사스럽고 특별한 방식이었다. ‘세기의 경매’로 불리웠던 그들의 콜렉션 경매와 그 모든 것들을 간직하고 있었던 그들의 집, 파리의 아파트와 모로코 마라케시의 마조렐 정원, 노르망디의 샤토 가브리엘에 이르기까지 영화 속 카메라는 집요하게 비추어낸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조금은 바꾸어 놓았던 두 남자의 비밀스런 공간, 마티스와 앤디 워홀의 그림이 무심하게 걸려 있고 브랑쿠시의 조각이 거실 한켠을 장식하고 있는 바로 그곳을… 그리고 2009년 전세계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두 차례에 걸쳐 열렸던 그들의 콜렉션 경매는 전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다. 1차 경매 낙찰액만 3억7천3백50만 유로(한화 약 6천억 원)에 달하는, 단일 경매 사상 최고의 액수를 기록해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경매 수익금은 전액 에이즈 연구 재단에 기부했다. 피에르 베르제는 말한다. “만약 내가 먼저 죽었다면 이브가 이런 경매를 진행했을까요? 아니요, 그는 결코 하지 않았을 거예요. 이 조각과 그림들 없이는 살 수 없었을 테니까요.” 피에르가 아니었다면 할 수 없었을 더없이 멋진 추모이자 마지막 사랑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콜렉션 경매는 단순한 미술품 경매가 아니었다. 엄청난 화제를 뿌렸고 흥행에서도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철저히, 고도로 준비된 ‘초특급 아트 이벤트’였다. 2009년 2월 23일부터 3일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크리스티가 진행한 이 ‘세기의 경매’는 미국, 일본, 중국 등에서도 경매를 보기 위해 모여들었으며 경매 프리뷰에 무려 3만여 명이 관람할 정도로 전시회로서도 큰 화제를 모았다. 단일 경매로는 총 732점의 경매 아이템 및 총 낙찰액이 사상 최고를 기록했으며 개인의 이름으로 진행된 프라이빗 경매로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규모가 큰 빅이벤트였다. 이브 생 로랑은 이 ‘세기의 경매’를 계기로 패션계의 거장인 동시에 마티스, 세잔, 제리코, 앵그르, 드가, 피카소, 앙소르, 뭉크, 브라크, 브랑쿠시, 뒤샹에서부터 앤디 워홀 등등에 이르기까지 개인이 소장할 수 있는 어떤 극점에 다다른 전설의 콜렉터로서도 이름을 남기게 됐다. 그 외에도 국보급 유물과 고가구, 골동품 등도 포함되어 미술관 못지 않은 다양한 소장품들이 천문학적인 가격에 팔려 새 주인을 찾았다. 그 중 마티스의 ‘뻐꾸기 그림이 있는 푸른색과 분홍색의 탁자보’는 3천5백90만 유로(한화 약 5백80억 원)에 미국인 콜렉터에게 팔려 최고가를 기록했으며 아일랜드 디자이너 아일린 그레이의 작품이 ‘용’이 새겨진 의자는 2천1백90만 유로(한화 약 350억)에 팔리며 20세기 가구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게다가 이번 경매에는 150년 전 아편전쟁 당시 프랑스가 중국에서 약탈해간 청나라 황제의 여름 별궁인 원명원의 12지신상 중 쥐와 토끼머리 청동상이 나와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되기도 했다.

2011년 S/S 시즌 패션 핫 키워드 1970년대와 이브 생 로랑의 부활!
시대를 뛰어넘어 돌아온 이브 생 로랑의 패션과 그의 모든 것을 만난다!

2008년 이브 생 로랑의 타계 후 2009년 전세계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개최된 경매, 2010년 파리의 프티팔레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 마지막으로 완성된 영화 <이브 생 로랑의 라무르>까지, 이브 생 로랑은 영원히 살고 있다. 그가 만든 패션과 그가 남긴 예술과 또 그가 창조한 스타일로서 말이다. 그리고 영화의 국내 개봉을 앞둔 2011년 봄, 이브 생 로랑은 다시 한 번 부활했다. 바로 올 S/S 시즌의 패션 키워드로 화려하게 돌아온 것이다.
2011년 S/S 시즌의 가장 눈에 띄는 키워드는 바로 1970년대이다. 앞서 언급했던 지난 해 파리에서 열린 이브 생 로랑의 회고전이 그대로 트렌드에 반영되었다. ‘컬러 쇼크’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색깔의 조화가 런웨이를 장식했는데, 이브 생 로랑의 대표작인 몬드리안 드레스의 컬러 매치가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오렌지, 핑크, 그린, 바이올렛, 블루 등의 트로피컬 컬러부터 눈이 시릴 정도의 강렬한 네온 컬러까지 다양한 컬러 플레이를 시도한 룩들이 거리를 누빌 것으로 보인다. 그외에도 과감한 색감과 화려한 프린트로 이브 생 로랑의 관능을 계승한 집시 드레스와 하이 웨스트 팬츠, 사파리 재킷, 페전트 블라우스 등이 올 시즌 핫 아이템으로 떠오르고 있다.
2011년 봄, 패션 트렌드의 핫 키워드로 떠오른 이브 생 로랑의 부활을 런웨이와 거리에 이어 개봉을 앞둔 영화 <이브 생 로랑의 라무르>로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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