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맨>(2000)에서 각기 다른 가치관을 가진 초능력자들이 대립각을 펼치는 것처럼 이 영화 역시 초능력자들의 이해관계에 따른 대립구도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리고 영화의 대립구도는 주인공인 닉(크리스 에반스)과 캐시(다코타 패닝)와 키라(카밀라 벨) 그리고 이들을 도와주는 협력 관계의 초능력자들, 초능력을 이용해 세상을 지배하려 함과 동시에 이들에 불응하는 초능력자들을 격리하거나 제거하는 비밀단체 디비전, 그리고 예지능력자인 캐시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예지능력자와 소음으로 물체를 파괴하는 능력을 가진 블리더로 구성된 홍콩의 초능력 일가, 이렇게 세 집단의 알력 구도로 이뤄진다.
이들이 초능력을 가지게 되는 동기에 대해선 영화 속에서 제시되진 않지만 한 가지 명백한 점이 있다. 그것은 <커버넌트>(2006)처럼 몇몇 초능력자들은 대를 이은 초능력의 세습이 가능하다는 점이며 이는 닉과 캐시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 초능력자들의 각기 다른 초능력은 엑스맨의 돌연변이들과는 또다른 차원의 다양한 초능력을 스크린 속에서 시각적 뷔페로 관객들에게 펼쳐놓는다. 대표적 악역 캐릭터인 헨리가 타인의 기억을 조작할 때 눈 전체가 까맣게 변하는 설정은 미드 <엑스 파일>(1993)의 검은 눈 외계인을 컨닝한 듯하다. 홍콩인 블리더 부자(父子)의 초능력은 <쿵푸 허슬>(2004)에서 돼지촌 주인아줌마의 사자후와 유사하다.
영화는 초능력자 닉과 캐시가 선한 영역에 속해있음을 주지시키기 위해 디비전의 악행을 두각 시키는 방법을 택한다. 10여년 전 닉의 부친이 디비전의 핵심요원 헨리에게 살해 당하는 영화 초반부 시퀀스와, 캐시의 모친이 디비전의 감금 상태 가운데 약물에 찌들어 지내는 설정을 통해서 말이다. 극중 미성년자인 캐시가 술에 취해야 예지력이 향상된다는 설정은, 그간 다코타 패닝이 아역배우로서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한 이미지 메이킹을 위함인지 그간의 배역에 비해 다소 파격적인 설정이다.
캐시보다 상위 레벨을 가진 홍콩인 워쳐의 예지력을 교란시키기기 위해 영화 후반부에서 닉이 캐시와 키라 그리고 그들의 동료들에게 제시하는 트릭은 캐시의 모친에게도 빚을 지는 포석이지만, 결정론적 인과론에 의지하여 미래를 내다보는 홍콩인 워쳐의 예지력에 불확실성을 첨가함으로 닉과 캐시가 어떤 결정을 하던 간에 그 결과는 홍콩인 워쳐의 예지력을 피해갈 수 없다는 인과론적 결정론의 붕괴를 시퀀스 안에 내포하고 있다. 스포일러의 위험으로 자세한 언급은 못하지만 후반부 닉이 설정한 이 트릭을 관객이 집중해서 관람하지 못한다면 이해의 밀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다분히 높다.
관객들의 눈이 즐거울 다양한 초능력 퍼레이드라는 매력적인 소재에 비해 플롯은 비교적 단순하고 각 캐릭터들의 동기 유발화는 주인공을 주축으로 단순하게 연출된다. 수많은 초능력자로 구성된 디비전의 추적자들이 미국에서 홍콩으로 날아와야 할 만큼 키라가 그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존재인지에 대한 설명도 부족할 따름. 관객의 집중을 유도해야 할 영화의 찰진 매력은 내러티브가 아니라 특수효과에 빚짐과 더불어 특수효과마저도 영화 후반부에 비약적으로 집중된다.
2009년 3월 11일 수요일 | 글_박정환 객원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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