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동이 트는 아침에 길게 뻗는 가로수를 누비며~" 어찌된 일인지 우리의 어린시절을 눈물과 감동으로 점철시켰던 '파트라슈'는 이 영화에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의 오프닝과 함께 뜨는 자막 "이 영화에 출연한 개들은 안전하게 관리"되었다는 당부의 말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학대받 고 고생하는 '개'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어두운 지하실에 갖히는가 하면 목이 졸리고, 심지어는 아파트 옥상에서 내던져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파트라슈'가 없다고 섭섭해 할 건 없다. 오히려 '파트라슈'보다 넓은 의미를 확보한 다양한 개들이 등장하니까. 개들이 학대당하는 모습은 가슴아프지만, 아이러닉하게도 관객은 그 과정에서 다양한 웃음을 경험하게 된다. 비웃음에서 쓴웃음, 냉소, 폭소, 그리고 따뜻한 미소까지.
영화는 한사람의 뒤통수에서 출발한다. 반짝이는 햇빛과 청명한 하늘이 무색할 정도로 나른하고 권태로운 목소리의 주인공, 그는 아내가 벌어오는 돈 에 의지해 살아가는 백수다. 그런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개짖는 소리. 어느날 그가 개를 납치하면서 벌어지는 소동이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줄거리이다.
개성이 톡톡 튈 정도로 살아 있는 인물의 캐릭터들도 칭찬해 마땅하다. 배우들은 놀라우리만치 인물과 하나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는 개들마저도. 특히 노숙자 '그림자 사나이'의 캐릭터는 그야말로 '압권'이다(그의 연기는 정말 연기였을까?). 지난해 [산전수전]을 홍보하며 내걸었던 '캐릭터 코미디'라는 기묘한 장르명이 아직도 살아 있다면, 이 영화에 붙여주어도 좋을 것이다.
감독은 백수에 가까운 시간강사와 아파트 관리소 경리가 벌이는 한판의 추적극을 통해 '개'에 관한 성찰을 던진다. 아니, 그보다는 '개'를 통한 일상과 삶의 성찰이라고 해야 옳겠다. 키득대며 웃는 동안 관객은 개와 인간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섬세한 시선들과 마주하게 되니까. 그러나 '삶에 관한 성찰' 운운했다고 영화가 무거울 것이라는 오해는 마시라. 웃음과 의미 사이에서 완벽하게 줄타기를 해낸 영화의 완성도에 감탄할 준비만 하면 된다.
영화의 두 주인공 백수강사와 관리실 경리는 우여곡절 끝에 원하던 바를 이룬다. 어찌보면 평이한 해피엔딩인데, 사뭇 다르기만한 두 사람은 표정은 의미심장하게까지 느껴진다. 물론 남겨진 둘의 일상 중 어느쪽이 더 '지리멸렬'할 것인지는 선뜻 판단할 수 없겠지만, 창문을 닫으며 제도안으로 완 전히 편입하는 것이 직장을 잃고 오르는 산행길보다 신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정도는 예측할 수 있다. 어쩌면 영화의 마지막, 관객을 향해 비추어지는 랜턴의 불빛은 감독이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길을 갈 것인가에 대한. 물론 해답은 관객이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