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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수다회] 존재를 알리는, 딱 그 정도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2021년 9월 9일 목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 박꽃 기자]

[목요수다회]는 무비스트 기자들이 같은 영화를 보고 한 자리에 모여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입니다. 관람 후 나눈 대화인 만큼 스포일러가 잔뜩 포함돼 있으니 관람 전 독자는 열람에 주의해주세요!



딱 중국 영화 같은데 정작 중국에서 상영 금지?

박꽃 :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마블 최초의 아시아인 히어로 무비죠. 그런데 보고 나면 이게 마블 영화인지 중국에서 만든 크리쳐 영화인지 좀 헷갈린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후반부의 용 CG 액션신은 주인공 ‘샹치’(시무 리우)와 아버지 ‘웬우’(양조위)가 탈로 마을에서 벌이는 대결의 클라이맥스이기도 하고, 워낙 분량도 길잖아요. 그런데 신선함보다는 이미 너무 익숙한 소재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아시아 사람이라서 용이라는 크리쳐 하면 중국부터 떠오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요. 어떤 액션 장면을 구현해도 별 감흥이 없던데, 서양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떨지 궁금하더라고요.

박은영 : <에라곤>(2006) 같은 작품에 등장하는 서양의 드래곤과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에 나오는 날개 없는 동양의 용은 확실히 생김새부터 다르죠. 언급한 액션신을 보면서 저도 지금 <청사>(1993)나 <백사대전>(2011) 같은 류의 중국 무협물을 보는 건가? 싶은 기분이더라고요.(웃음) 좀 덜어냈으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로 그 시퀀스 자체가 너무 길기도 했고요.

이금용 : 분량이 너무 길었다는 데 동의해요. 그리고 용이 맹활약을 펼치면서 상대적으로 주인공 ‘샹치’의 주목도가 떨어져 보이는 감도 있었어요. 용의 등장으로 오히려 ‘샹치’라는 히어로의 시작을 보여주는 작품으로서의 매력이 반감된 것 아닌가 싶어요. 꽃 선배 말처럼 동양권에서는 용 비주얼도 너무 익숙한 축에 속하고, 할리우드 영화를 본다는 느낌의 재미도 덜했다고 할까요. 아무래도 ‘마블 영화처럼 느껴지지 않았다’는 표현이 적절한 것 같아요.


박꽃 : 물론 ‘완전히 재미없다’ 까지는 아니었어요. 명색이 마블인걸요. 다만 <캡틴 마블>(2019)이나 <블랙 팬서>(2018)처럼 마블이 최근 몇 년 사이 내놓은 싱글 히어로 무비를 떠올려보면, 전에 본 적 없는 새로운 액션에 환호했던 기억이 선연하거든요. ‘캡틴 마블’(브리 라슨)이 눈을 번쩍이면서 하늘을 화려하게 유영한다든가, ‘블랙 팬서’(채드윅 보스만)가 보라색 수트를 입고 공중 공간을 자유롭게 휘저으며 ‘킬몽거’(마이클 B.조던)와 대결을 한다든가 하는 장면이요. 그런 것처럼 오! 소리가 날 만큼 새로웠던 액션 신을 기대했던 거죠.

박은영 : 아프리카 부족 문화와 그들 정서를 근간으로 한 <블랙팬서>가 우리에게는 충분히 새로웠죠. 이런 액션도 가능하구나 싶었던 거구요. 흑인 히어로를 앞세웠다는 점에서도 동일 인종 관객이 열광했고요. 그런데 ‘샹치’라는 동양인 히어로를 앞세운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이 과연 동양인에게 어떤 뿌듯함을 안길까요?(웃음) 식상하다는 느낌이 들어버린다면 아마 어렵겠죠. 그렇다고 중국 시장에서 개봉해서 압도적인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요. 상영 금지 처분을 내렸으니까요.

박꽃 : 중국 사람들은 애당초 최초의 마블 코믹스에 등장했던 ‘샹치’라는 캐릭터에 별 호감이 없는 것 같아요. 무술을 익혀서 무능한 아버지에 맞선다는 설정 자체가 현재 중국 정서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가봐요. 극 중 양조위가 맡은 ‘웬우’ 캐릭터의 또 다른 이름이 ‘만다린’이잖아요. 이 자가 자기 아들을 죽이려고 하니(웃음) 아버지의 역할을 강조하는 동양식 사상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긴 해요. 물론 미국에 사는 중국인 하면 일단 무술 고수일 것처럼 묘사하고 보는 것 자체가 이미 오리엔탈리즘 시각이라는 문제도 있긴 하고요.


이금용 : 마블 코믹스를 보면 ‘만다린’ 캐릭터는 내시 수염 같은 걸 길게 기르고 있어요. 서양인이 봤던 옛날 중국인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캐릭터화한 거죠.

박꽃 : 미국인이 중국인을 놀려 먹으려고 만든 캐릭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막상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을 보면 그런 선입견은 싹 없어질 법한데 말이죠. ‘웬우’역을 맡은 양조위가 얼마나 멋있는지 알고 나면 감탄할지도 모를 일인데요.(웃음) 오죽하면 이건 양조위의 영화라는 평까지 있으니까요.

박은영 : 한편으로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이 개인의 자유를 너무 강조해서 중국 당국의 불편함을 샀을 거라는 주장도 있어요. 전체주의를 강조하는 공산당과 시진핑의 정책 방향성과는 별로 맞지 않을 거라는 거죠. 그래서인지 마블 페이즈4 작품 중 중국에서 상영 금지 처분을 내린 게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과 <이터널즈> 두 편이에요. <이터널즈>는 연출을 맡은 클로이 자오 감독의 성향을 문제 삼은 거로 보여요.

박꽃 : 그럴 수 있겠네요. ‘케이티’는 미국인 3세대로 나오잖아요. 극 중에도 완전히 중국인 가치관을 지닌 할머니, 중국인과 미국인 가치관을 섞어 놓은 듯한 엄마, 그리고 완전히 미국인 가치관을 향유하는 ‘케이티’가 등장하죠. 그런 주인공이 활약하는 콘텐츠가 중국에 수입됐을 때 문화적으로 굳이 이득 될 게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양조위, 양자경, 아콰피나 어떻게 활용했나

박꽃: 양조위에 대한 호평도 이곳저곳에서 나오고 있어요. 양조위가 GQ와 인터뷰한 내용을 좀 찾아봤더니 ‘웬우’ 캐릭터를 수락한 이유를 언급한 대목이 있더라고요. 솔직히 말하면 히어로라는 존재는 자기에게 잘 와 닿지 않지만, 실패한 비정한 아버지라는 인물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는 요지로 이야기했더라고요. 그의 연기 결과물을 돌이켜 보면 꽤 잘 어울리는 대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박은영: 양조위 개인에 대한 관객의 신뢰도 작용하는 것 같아요. 일종의 리스펙트라고 할까요. 그간 문제의식이 또렷한 근사한 영화에 많이 출연하기도 했고, 연기 외에도 여러 가지 개인사적, 사회적 면모를 보여줘 왔기 때문에 호감도가 굉장히 높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 개인적으로는 양조위가 출연했던 다른 작품을 떠올려 본다면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에서 그보다 훨씬 더 뛰어나게 멋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가 히어로물에 출연했다는 것 그 자체가 하나의 이슈가 되는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이금용: 해외 리뷰를 살펴보면 역시 국내에서 양조위에 대한 언급이 더 많고 비중도 큰 것 같아요. 양조위 영화에 익숙한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인지라, 은영 선배 말처럼 관객 반응에 그를 향한 일종의 리스펙트가 섞여 있는 것 같아요. ‘샹치’ 역을 맡은 시무 리우 캐릭터의 매력이 예상보다 크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돋보이는 면도 있는 것 같고요.

박꽃: 전 양조위의 눈빛이 정말 좋더라고요. 굉장히 깊은 눈빛을 지녔잖아요. 이 영화에서는 죽은 아내의 환청이 들려서 그를 구해주러 달려간다는 설정인데, 금용 씨가 영화 리뷰에 쓴 “멜로 장인”이라는 표현이 무척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사랑하는 여자를 되찾기 위해 맹렬하게 돌진한다는 포인트가 양조위 특유의 매력과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또, 양조위와 함께 언급할 만한 배우 중 한 명은 양자경이 될 텐데요.


이금용: 최근 들어 할리우드 영화에서 양자경을 자주 본 것 같아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2018) <리스타트>(2019) <건파우드 밀크셰이크>(2021) 등이요. 뒤의 두 작품에서는 액션이 나오는데 총도 쓰고 칼도 들죠. 그러다가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에서 전통 동양 무술 같은 걸 보여주니까, 너무 잘 어울리는 건 알겠지만 좀 뻔했다고 할까요. 예상 가능한 비주얼이라는 거죠. 마블 영화가 아닌 중국 무협 영화 같다는 느낌이 더 강해지는데 한몫한 것 같아요.

박은영: 동의해요. 양자경은 그저 무난한 존재감이었어요. 특별히 ‘좋다’고 느낄 만한 지점은 없었던 것 같아요.

박꽃: 전 아콰피나가 연기한 ‘케이티’가 가장 촌스럽고 지나치게 기능적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자유분방하던 인물이 탈로에 간 뒤로부터는 중국 예복을 곱게 차려입고 주변에서 시키는 대로 활쏘기를 연습하고 있다고…?(웃음) 잘 납득이 안 되는 거죠. ‘케이티’를 절대 제자로 받아주지 않을 것처럼 대접하고 몇 번 출연하지도 않았던 스승이 전쟁 상황이 되니 갑자기 “죽지 마라”는 대사를 건네면서, ‘케이티’와 대단히 뜨거운 연대를 나눈 사이처럼 말하는 것도 너무 오글대고요.(웃음)


이금용: ‘케이티’라는 캐릭터는 딱 탈로에 가기 전까지만 매력적이었던 것 같아요. 사실 여느 히어로 영화에든 한 명씩 있는 전형적인 캐릭터잖아요. 주인공과 친한 친구 사이고, 좀 수다스럽기도 하고, 중요한 순간에는 온 마음을 다 바쳐서 히어로를 서포트해주는 그런 역할이요. 그럼에도 아콰피나 특유의 재치 있는 매력이 드러나서 좋았는데, ‘팔로’로 넘어가면서부터는 모든 사람이 갑자기 사명감을 띠게 되는 건지, 어딘지 좀 이상해져서…(웃음) 기존에 보여줬던 배우의 매력마저 묻혀버린 것 같아요. 후반부로 갈수록 더 그랬고요.

박꽃: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 ‘케이티’가 빌런 크리쳐의 목 부분에 화살을 쏘는 것도 그래요. 활쏘기 연습을 하는 장면이 몇 번 연출도 안 된 상황에서 갑자기 명중하듯 쏴버리니, ‘갑자기 이렇게 잘한다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거죠.(웃음) 탈로에서의 ‘케이티’는 그저 이야기를 진척시키는 데 써먹는 캐릭터인 듯한 느낌이 강했어요. 마지막 장면에서 ‘웡’(베네딕트 웡)이 나타나 ‘샹치’와 ‘케이티’를 동시에 데려가는데, 과연 아콰피나가 앞으로 계속 활을 쏘게 된다는 건지…(웃음)

박은영: 저도 궁금하네요. ‘호크 아이’(제레미 레너)와 같이 활이라도 쏘는 건가요.(웃음) 어쨌든 히어로의 무대에 진입하면 말재주로만 활약할 수는 없을 테고, 뭔가 슈퍼 파워가 생겨야 할 텐데 뭐가 됐든 궁금해지기는 해요.


액션 보는 재미 확실, 그래서 흥행은?

박꽃: 데스틴 다니엘 크레톤 감독은 영화 액션 설계를 위해 성룡과 함께 여러 작품의 무술을 짠 앤디 창(Andy Cheng)과 함께 작업했다는데요. 영화 시작 부분에서 ‘샹치’가 자기 목걸이를 가져가러 온 유럽 암살자들에 맞서 버스 안에서 신나게 액션을 펼치는 그 시퀀스 기억하시죠? 그때 ‘샹치’가 입고 있던 자켓을 벗어서 상대를 제압하는데 이게 <성룡의 홍번구>(1995)에 나온 성룡 액션의 영향을 받은 거라고 하네요. 동양 액션물을 즐겨 왔던 관객이라면 이런 맥락에서 이런저런 즐길 거리가 꽤 많다는 리뷰가 나오는 이유일 거예요.

박은영: 건물 외벽을 타고 다니는 액션도 독특했어요. 중국 무협색이 짙은 액션을 선보이는 ‘샹치’와 그의 동생 ‘샤링’(장멍얼)이 주로 활약하는데, 나무로 안전 구조물을 쳐 놓은 고층 건물의 외벽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액션이 꽤 신선하더라고요. 사실 <블랙 위도우>(2021)에서도 창문을 타고 쫙 내려가는 느낌의 장면이 나오긴 했지만 색다른 기술이 결합돼서 그런지 또 다른 감흥이 있었던 것 같아요.


박꽃: ‘웬우’역의 양조위와 그의 아내 ‘리’역을 맡은 진법랍이 처음 만났을 때 벌이는 액션 신도 기억에 남아요. 양조위는 강하고 거친 액션으로 접근하지만 진법랍은 마치 무용하듯이 유려한 몸짓으로 다가서면서 서로 반대되는 지점을 보여줘요.

이금용: 전 그 시퀀스에서는 슬로우 모션이 너무 많이 나온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랑하는 사이가 처음 만나 눈빛을 교환하고 감정을 주고받는 과정이기도 하니 어떤 느낌을 표방한 건지는 알겠지만 좀 웃기다(?)는 느낌이…(웃음) 중국 무협 영화에 익숙한 세대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거나 어떤 재미를 유발할 수도 있겠지만, 워낙 빠르게 진행되는 액션물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는 뜬금없이 튀는 장면 아닐까 싶어요.

박은영: 거의 선녀들이 날아다니는 듯한 느낌이었죠.(웃음)

박꽃: 데스틴 다니엘 크레톤 감독이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설명하더라고요. ‘샹치’는 어머니나 아버지 한쪽을 택한 게 아니라 두 가지 모두를 취해서 자기 색깔을 완성한다고요. 양조위와 진법랍의 상반되는 액션 시퀀스를 통해 양쪽 모두의 기술을 취한 게 ‘샹치’라는 걸 보여준 거죠. 전반적으로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무술이나 액션 면에서는 오락적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도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다른 면에서 여러 아쉬움이 남을 뿐이죠.


박은영: 흥행 성적은 어떨까요? <블랙 위도우>가 300만 명에 조금 못 미쳤고 <모가디슈>가 그 수치를 뛰어넘어 330만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요.

박꽃: 북미에서는 노동절 연휴에 개봉하면서 9,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어요.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를 떨쳐낸 듯한 좋은 성적인데요. 다만 국내에서는 그 정도까지는 흥행하지 못할 것 같아요. 북미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무언가였을지 몰라도,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아시아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소재 전개가 될 것 같거든요. 200만 명을 동원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이금용: <블랙 위도우>는 마블 페이즈4의 첫 문을 여는 작품이라 관객들의 기다림이 컸던 것 같아요. 그런데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마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도 ‘제목도 처음 들어본다’는 반응이 꽤 되는 것 같아요. 이런 점도 흥행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합니다.

박꽃: 마동석이 출연하는 <이터널스> 소식이 꾸준히 전해지는 상황이니, 과연 ‘샹치’와 ‘케이티’가 앞으로 <이터널스> 멤버들과 만나서 무엇을 어떻게 해 나갈 것인지도 중요한 부분이 되겠죠. 그게 곧 마블 페이즈4 세계관을 형성하는 요소일테니까요. 그런 점에서 보면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이 국내에서 크게 흥행하지는 못하더라도 ‘샹치’라는 캐릭터의 존재를 알리는 역할 그 자체로 필요한 역할은 다 하는 것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2021년 9월 9일 목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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