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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은 피곤하답니다 - '갱스 오브 뉴욕'을 보고
이해경의 무비레터 | 2003년 3월 21일 금요일 | 이해경 이메일

1) ‘계급, 인종 그리고 종교 전쟁을 단순한 복수극 속에 녹여 담은 영화. 지독한 야심과 함께 장엄하고도 끔찍한 아름다움을 갖춘 작품.’
2) ‘스콜세즈 감독의 의심할 바 없는 연출력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것을 채우려 했던 <갱스 오브 뉴욕>에는 오히려 핵심이 부족하다.’

<갱스 오브 뉴욕>을 놓고 외국의 유명 언론들이 내린 상반된 평가라고 합니다. 제가 직접 뒤져 찾아낸 것도 아니고 해서 언론사와 평자의 이름은 생략했습니다. 이 영화를 보셨나요? 어느 쪽입니까? 저는 2번입니다.

요즘 전세계적으로 편가르기가 횡행하는 터라 흉내를 한번 내봤습니다만, 실은 영화를 본 제 소감이 2번과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바꿔놓고 싶군요. 너무 많은 것을 채우려 했던 <갱스 오브 뉴욕>에는 당연히 핵심이 부족해서, 스콜세즈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연출력을 의심하게 된다… 그 ‘너무 많은 것’을 이루는 요소들이 계급, 인종, 종교, 복수 등이라는 면에서는 1번도 참고할 만합니다. 잘 녹여 담지 못하다 보니 영화가 끔찍하게 길어졌다는 것만 눈감아준다면 말입니다.

미리 좀 알고 영화를 보는 것이 꼭 좋지 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재미있게 보는 데 방해될 때가 있지요. 저는 별다른 사전정보 없이 영화를 보는 편이지만, 누가 만들었고 누가 나오는지조차 모르고 영화를 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감독과 배우들만으로도 설익은 선입견 혹은 섣부른 기대감이 생기게 되고, 그런 것들 없이 영화를 볼 때와는 분명히 다른 느낌을 갖게 되지요.

다니엘 데이 루이스, 카메론 디아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벌써 꽉 차는 캐스팅 아닙니까. 게다가 감독이 마틴 스콜세즈라는 데야… 웬만해선 그들에게 만족하지 않겠다는 못된 심보가 동할 수밖에요. 과연 오프닝은 대단합니다. 특히 아일랜드에서 이주한 중생들의 아귀다툼 같은 생을 발가벗기듯 통째로 잘라 보여주는 장면. 그리고 드디어 싸움은 시작되는데요…


영화는 거기서부터 일찌감치 평범해지고 만다는 느낌입니다. 아버지를 죽였으니 어린 아들은 살려둬야 영화를 계속 찍을 수 있을 테고, 장성한 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복수말고 달리 신통한 게 있을 것 같지 않고, 하지만 복수가 애들 장난일 리 없고, 그 와중에 대개는 원수의 여자를 사랑하게 되는 법이고, 그 여자가 카메론 디아즈쯤 되면 원수건 두목이건 겁날 게 없는 순간이 오게 마련이고, 말하자면 ‘복수는 나의 것’에다 ‘질투는 나의 힘’인 셈이고, 시간이 가다 보면 원수를 사랑하는 것까지는 차마 실천하기 어려워도,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가 워낙 일품이니까 거기에 혹해, 그냥 얘 밑에서 인정받고 꼬붕으로 눌러앉아버려? 그런 인간적인 갈등이 생기는 거야 다른 영화에서도 쉽게 발견되는 공식이고, 권력을 유지하는 비결이 공포 분위기 조성이라고 털어 놓아 봤자 새삼스레 감탄할 한국 관객은 드물지 싶고, 그러니 원수에게 보호받는 안락함을 내레이션으로 고백하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만 탓할 수도 없고…

스토리가 뻔하다고 트집잡을 생각은 없습니다. 진짜 승부는 항상 그 다음부터니까요. 뻔한 얘기를 뻔하지 않게… 역시 디테일에 달려있다 할 수 있겠지요. 인물의 성격이 살아나야 하고 관계의 미묘함이 팽팽한 긴장의 끈을 조여야… 네? 아! 스콜세즈는 아예 포인트를 달리 짚었다구요? 그러니 괜히 혼자서 헛다리짚지 말라는 말씀? 그렇군요. 감독은 영화의 나머지를 다른 굵직굵직한 요소들로 채워놓고 있는 게 맞군요. 이미 언급된 계급, 인종, 종교, 전쟁에다가 권력, 문명, 역사에 이르기까지… 언뜻 봐서는 빠뜨린 게 없습니다. 걸작의 반열에 오르려면 응당 갖춰야 할 필요 조건인 듯도 싶네요.

그래서, 그렇게 지지고 볶아서 한 세상 잘 일궈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19세기 뉴욕이 아니더라도, 사람 사는 세상이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다 그런 것들로 밤과 낮을 이루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묵직한 통찰은 얻지 못하더라도, ‘비열한’ 확인 정도는 본전으로 건지고 나올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틴 스콜세즈라는 이름이 부추기는 욕심이지요. 거장이 되면 그래서 피곤한 거랍니다. 뭔가 보여주지 않으면…

스콜세즈가 벼르고 별러서 마침내 보여주는 뭔가는 이런 겁니다. 영화의 시작을 피로 물들였던 싸움이 막판에 재연될 찰나. 아들이 아버지를 대신하고 있지만 이미 복수의 에너지는 소진한 듯 보이구요. 세상 돌아가는 판세를 읽지 못한 개구리들이 우물 같은 광장에 집결해 어깨에 힘 팍 주고 있습니다.


정작 싸움은 딴 세상에서 먼저 벌어지지요. 그때까지 영화의 배경에서 타 들어가던 도화선이 드디어 뇌관에 닿아 쿵! 가난하다는 죄로 전쟁에 끌려가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다는 분노의 폭발입니다. 윗동네의 부자들은 한가하게 당구나 치고 있었지요.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건 흑인들입니다. 정부는 이 폭동이 왜 일어났는지 아나? 알 게 뭡니까, 진압부터 해야지요. 옛날옛적에 코리아 식으로 말하면 계엄군이 진주해서 자위권을 발동합니다. 이어지는 함포 사격…

감독이 노리는 것은 그런 상황에서 발생하는 아이러니가 아닐까 싶은데요. 소매치기의 고수 카메론 디아즈가 성난 폭도에게 가차없이 털리거든요. 그리고 다시 개구리들의 패싸움 판으로 돌아오면, 자욱한 포연에 가려 앞이 제대로 안 보이네요. 정부의 개입으로 폼나게 싸워보지도 못하고들 나가자빠진 겁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일거양득인가요. 폭동도 진압하고 싸움도 말리고. 그렇게 허탈한 판국인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탈진한 가운데에도, 별로 뜻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 복수를 꼭 마치고 싶을까요? 그건 그렇다 치고, 그 정도 범상한 아이러니를 맛보겠다고 세 시간 가까이 기다린 건 좀…

스콜세즈가 지나치게 뉴욕을 의식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뉴욕의 폐허가 마천루로 바뀌는 결말도 그렇구요, 사라진 쌍둥이 빌딩을 굳이 보여주는 게 어떤 강박관념의 표출 같기도 하고… 뉴욕에 대한 마지막 내레이션은 정말 웃겼다니까요. ‘후손들이 선조의 고생을 알아줄까…’ 뭐 그런 비슷한 내용이었는데, 오죽했으면 웃고는 잊어버려서 정확히 기억도 안 나겠습니까.

영화를 보면서 뉴욕의 역사를 배우는 것도 좋고, 미국 내전의 한 실상을 공부하는 것도 다 좋은데, 그러기에는 영화가 수박 겉핥기로 흘렀고, 저는 그게 불만은 아니지만, 그렇다면 드라마가 살았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오히려 공부도 좀 되고… 참, 영화에 중국인들도 나오는데, 그 사람들 난리 때 어떻게 됐죠? 기억이 안 나는 걸 보니, 다들 무사해서 더 이상 영화에 안 나와도 됐던 걸까요? 아니면 제가 놓친 걸까요? 하긴 중국인까지 챙기려면 감독도 나중에 무지 성가셨을 겁니다. 어휴, 당최 건드려 놓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

3 )
apfl529
좋은 글 감사~   
2009-09-21 18:38
kpop20
갱스오브뉴욕 너무 잔인한 영화   
2007-05-24 15:59
imgold
타이타닉이후 저조했던 디카프리오의 성적을 어느정도 만회한 영화라지만...그래도 아쉬움이 많이 남네요.   
2005-02-02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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