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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넌 누구냐!' 그 실체를 밝힌다
2005년 6월 6일 월요일 | 서대원 기자 이메일


호들갑스러우면서도 절도 있는 ‘바또만!’이라는 장내 아나운서의 쩌렁쩌렁한 멘트와 함께 <배트맨 비긴즈>의 감독과 배우들은 무대에 나섰다. 마블 코믹스의 수많은 ‘맨’들이 스크린에서 활개를 치고 있는 동안 기나긴 침묵으로 무수한 억측과 소문만을 양산했던 DC 코믹스의 간판 캐릭터 박쥐인간 ‘배트맨’이 자신의 다섯 번째 이야기를 들고 일본을 찾았다.

일본 도쿄에서 아시아 지역 기자단을 상대로 성대하게 열린 기자회견장에는 감독인 크리스터퍼 놀란, 배트맨 크리스천 베일을 비롯해 모건 프리먼, 리암 니슨, 케이트 홈즈 등이 참석했다.

8년여의 산고를 거쳐 탄생한 <배트맨 비긴즈>가 떼돈을 들어부었음에도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외면을 받으며 그 옛날 명성에 흠집을 남긴 기왕의 배트맨 시리즈를 와신상담 끝에 넘어설지 혹은 새롭게 부활할지 많은 이들은 주목하고 있다.

검은 망토를 휘날리며 그 내막을 드러낼 당 영화의 6월 24일 개봉에 앞서 쟁쟁한 면모를 가진 그네들의 입을 빌려, 재벌 2세에서 사회 안녕을 위해 밤일 나가는 고담시의 파수꾼으로 분한 “배트맨! 넌 누구냐!” 바로 이 점에 모든 심혈을 기울여 탄생한, <배트맨 비긴즈>의 실체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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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이면서도 비주얼적인 면이 멋있는 뛰어난 영화지만 스토리를 풀어가는 가는 데 있어 많은 어려움을 느꼈다. 전작과 차별화된 캐릭터 그리고 새롭게 부활해야 할 배트맨을 어떤 스타일로 화면에 담아내야 할지 무척 고민스러웠다.”

우째 모르겠는가? 그 속 타는 마음을.... 시리즈의 바톤을 이어 받은 여느 감독이 안 그러겠냐만 놀란 감독으로서는 더더욱 그러했으리라 본다.

참담할 정도로 불명예를 안게 된 배트맨 프랜차이즈를 되살리고자 <배트맨 vs 슈퍼맨>과 배트맨의 후사(後事)를 다룬 다섯 번째 배트맨 영화를 기획하는 등 제작사인 워너의 고육책에서 나온 행보만 봐도 그렇다. 뭐 그러다 결국, 양대 프로젝트는 이래저래 지연되면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상태다. 그런 와중 워너는 <메멘트>과 <인썸니아>로 단숨에 세간을 시선을 잡아챈 천재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을 시리즈의 프리퀄에 해당되는 <배트맨 비긴즈>의 감독으로 내정했다.

더불어 영화의 내실에 좀 더 만전을 기하고자 마블 코믹스의 동명만화를 바탕으로 한 블레이드 시리즈의 각본가이자 감독인 데이비드 S. 고이어를 작품에 합류시켰고 물경, 1억 3천만 달러를 투입해 <배트맨 비긴즈>를 6개월에 걸쳐 촬영하고 세상에 내놓게 됐다. 상대적으로 저예산으로 작업해온 그의 이력이나 녹록치 않은 주변 환경을 미루어 짐작하건대 아직 뚜껑을 열기 전이지만 그로서는 퍽이나 감개무량할 것이다.

허나, 팀 버튼의 기괴한 상상력으로 일군 1.2편과 달리 그저 그런 여름용 블록버스터로 전락한 3.4편으로 심기가 불편해진 배트맨 팬들의 마음까지 감개무량하게 되돌릴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문제는 <배트맨 비긴즈>가 어떤 전략과 전술로 전작들과 차별화된 또는 단절된 모습을 선보이느냐다. 놀란 감독이 취한 방법은 구라를 신화로 포장한 슈퍼 히어로 배트맨의 판타지 월드가 아닌 심약함과 동시에 분열증으로 시달리는 브루스 웨인 혹은 배트맨의 내면을 밀도 있게 드러내며 탐사하는 현실에 기반을 둔 그의 인간적 면모다. 죄의식과 불안에 사로 잡혀있는 <메멘토>와 <인썸니아>의 주인공을 떠올리자면 이는 예견된 일이다. 여튼, 놀란 감독이 전한 다음의 말은 이를 잘 뒷받침한다.

“유년 시절, 배트맨은 나의 영웅이었다. 슈퍼맨과 007의 제임스 본드도 좋아하긴 했지만 복잡한 심경을 가진 ‘인간적 영웅’이라는 면에서 배트맨은 내가 가장 좋아했던 캐릭터다”

그러니까 <배트맨 비긴즈>는 배트맨의 실체는 무엇이고 정녕 그는 누구인지 그 탄생 비화와 들춰지지 않았던 야사를 거대한 스케일 속에서 야무지게 보여준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사회 안녕과 정의를 위해 공사다망한 초인 슈퍼맨이나 원더우먼과 함께 배트맨이 DC 코믹스라는 족보에 등재돼 있긴 하지만 당 영화에서만큼은 자기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는 반빙신이거나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지 그 놈의 정체성에 골몰하기 바쁜 헐크, 엑스맨을 배출한 마블 코믹스 쪽 가문에 가까운 캐릭터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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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골이 상접한 말라깽이 <머시니스트>에서 우람하다고까지 할 순 없지만 탄탄한 근육질의 배트맨으로 다시금 등장해 체중조절의 스턴트를 화끈하게 선보인 크리스천 베일은 언뜻 톰 크루즈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와 비스무리한 분위기를 발산하는 사내였더랬다.

마이클 키튼, 발 킬머, 조지 클루니에 이어 4대 배트맨으로 등극한 그는 말한다. “전편의 그들이 쌓아놓은 명성이 있었기에 이 작품에 흔쾌히 출연하게 됐다. 하지만 그들의 연기를 토대로 뭘 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내가 분한 배트맨은 아버지와 상당히 밀접한 관계에 있다. 초인적인 슈퍼 히어로가 아니라 보통의 사람들처럼 고뇌하며 갈등하는 인간적인 면모에 중심을 둔 새로운 배트맨의 모습을 보이고자 노력했다.”

놀란 감독의 이야기와 같은 맥락에 위치한 말이다. 다시 말해 <배트맨 비긴즈>는 전작과 달리 시청각적 쾌감뿐 아니라 드라마틱한 서사까지 아우르며 블록버스터 프랜차이즈라는 그 전형적 범주를 벗어나 그 이상의 것을 스크린에 담은 영화다. 부패로 찌든 고담시의 악을 처단하며 사회 정의 구현에 앞장설 수밖에 없는 배트맨의 불타는 복수심의 근원. 그리고 돈만 많았지 알고 보면 참으로 딱하기 그지없는 그의 기구한 운명을 긍휼히 여겨 참으로 소상히도 영화는 긴장감 넘치게 보듬어 안는다.

한편, 배트맨으로 나선 크리스천 베일은 강박에 쪄들은 신경쇠약증 환자에 다름 아닌 <아메리칸 사이코>와 <머시니스트>의 캐릭터에 이어 당 영화에서도 충분히 설득력 있는 호연을 펼친다. 사실, 따지고 보면 배트맨 역시 그의 이전 캐릭터들과 마찬가지로 외상 깊은 환자이기도 하다.

“배트맨 의상을 입고 있으면 정말 덥다. 그리고 기존의 배트맨 의상이 보여 지는 것에 치중했다면 이번엔 훨씬 가볍고 액션을 직접 시연함에 있어서도 편안하게끔 고안됐다. 결국, 기능적인 면에 중점을 뒀다 볼 수 있다.” 그의 말마따나 이번 영화에 등장하는 배트맨 의상과 배트모빌은 시각적 탁월함보다 더 중요한 점이 부각된다. 기능적인 면이야 배우 입장에서 바라본 것이라 볼 수 있고, 관객인 우리에겐 과연 얘들이 어떻게 배트맨의 수족이 됐는지 말은 말았지만 정작 알 길이 없었던 그 사연을 공개한다.

그간 배트맨 시리즈를 보며 궁금해왔던 비밀과 뒷이야기 그리고 배트맨의 왕년의 성장기 과정을 <배트맨 비긴즈>는 속 시원하게 밝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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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역시나 예상대로 리암 니슨 형님은 영국의 신사다운 풍모를 자랑하는 대 배우였다. 기자회견 당시 인상적인 멘트를 날리거나 일본 방문 동안 훈훈한 미담을 몸소 실천했기에 그런 건 아니고, 보기에 그냥 그렇다는 거다. 그래서인지 리암 니슨이 맡은 배역들 면면을 보자면 죄다 선한 캐릭터다.

특히, 요즘에 와서는 칼싸움물에 빈번하게 등장, 주인공의 심신을 단련시킴은 물론이고 자긍심 고취와 사기 앙양에 애쓰는 스승으로 분해 주가를 올리고 있는 중이다. <배트맨 비긴즈>에서도 아니나 다를까 그는 배트맨이 되기 전 브루스 웨인을 강인하게 훈련시키는 인물 듀커드로 나온다. 허나, 동시에 그는 나쁜 놈이기도 하다.

“난 지금까지 악역을 맡아 본 적이 한번도 없다. 그래서 내 배우생활에 나름 의미가 있을 거라 판단돼 이 영화에 출연하기로 했다.” 놀란 감독은 이에 말을 더한다. “악인으로 보이긴 하지만 원래 듀커드는 선량한 인물이다. 세상을 악으로부터 구원해야 한다는 강한 목적 의식 때문에 그렇지 그는 전작의 악당들과는 다르다”

사실, 배트맨 연작에 있어 나쁜놈 캐릭터들은 특별하다. 기괴한 아우라를 스크린에 흩뿌리며 저마다의 족적을 확실히 남긴 조커(잭 니콜슨), 펭귄맨(데니 드 비토), 리들러(짐 캐리), 캣우먼(미셜 페이퍼) 등은 공교롭게도 주인공인 배트맨의 인기를 위협하며 시리즈를 연장시킨 주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독보적 캐릭터에 다름 아니다. 특히, 살인 예술가를 자처하며 기행을 펼친 조커와 슬픔과 회한으로 점철된 펭귄맨의 존재는 발군이다.

하지만 배트맨의 조력자이자 악역이기도 한 듀커드와 어둠의 사도들을 이끄는 자객단 우두머리 라스 알굴의 와타나베 켄은 종래의 그들과는 다른 지점에 서 있고 다른 표정을 가지고 있는 나쁜 놈들이다.

‘정의는 균형이다’라는 강인한 신념으로 무장한 그들은 조커나 펭귄맨처럼 기기묘묘한 행동을 일삼지도 않고 수다스럽지도 않으며 할 말만 하는 뭔가 있는 듯한 필을 강하게 풍기는 신비스러운 인물로 묘사된다. 또 배트맨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의 비중으로 다뤄졌던 기존의 악당들과 비교하자면 듀커드와 라스 알굴의 역할은 찰나적으로는 가공할지언정 영화 전체로 보자면 그리 크지 않다.

이러한 설정은, <배트맨 비긴즈>가 절절하고도 우울한 배트맨의 성장과정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고 심혈을 기울였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당 영화의 수많은 캐릭터 역시 독야청청 혼자 튀어 보이겠다며 개인기에 의존해 설치지 않고 자신이 취할 것만 취하며 여기에 부합해 관장된다. 결과는 와타나베 켄의 말마따나 설득력 있게 그려졌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배트맨이 가진 어둡고 분열적인 성격을 각 캐릭터와 각본 전반에 잘 녹여냈다. 영화를 만드는 데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지만, 각자의 캐릭터에 배우들이 충분히 몰입할 수 있도록 시간을 줬고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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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제까지 <스타워즈>나 <슈퍼맨>같은 블록버스터 시리즈에 출연한 적이 없다. 그런데 내 친구 알렉 기네스가 <스타워즈4>에 오비완 케노비로 출연하고 엄청난 돈을 버는 걸 봤다. 그래서 혹 나도 큰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출연하게 됐다”(웃음)

이렇듯 널럴한 멘트를 던지며 회견에 임한 모건 프리먼은 리암 니슨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는 정치인으로 나서면 잘 할 거 같은 배우 0순위로 뽑힐 만큼 호인으로 각인된 배우다.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으로 변신하는 데 있어 리암 니슨이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을 도와 줬다면 모건 프리먼은 하드웨어를 지원해준 조력자다. 최첨단 무기와 군수 용품의 연구 개발에 능통한 ‘폭스’로 나오는 그는, 배트맨이 밤일 나가는 데 있어 절대 없어서는 안 될 배트 수트와 배트 모빌이 배트맨의 수족으로 선택되게끔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는 인물이다.

화려함을 강조하며 시각적 측면을 우선시한 전작에 비해 심히 세련됨이 떨어지는 무릎, 정강이, 다리, 팔, 상반신, 머리, 망토 등 토탈 7개의 라텍스 부위로 나눠진 활동성을 중시한 ‘배트수트’와 투박하긴 하지만 탱크에 가까운 외관과 힘을 자랑하는 ‘배트모빌’은 현실에 확고하게 뿌리를 둔 영화로 <배트맨 비긴즈>를 만들겠다는 놀란 감독의 의지의 산물이다.

인기 TV 시리즈 <도슨의 청춘일기>와 연일 타블로이드지의 가십난을 채우며 톰 크루즈의 연인으로 잘 알려진 케이트 홈즈의 다음과 같은 말도 감독의 연출의도를 반영한다. “브루스 웨인의 소꿉친구이자 첫사랑인 레이첼은 신념이 강한 여자다. 또 그에게 도움을 주면서도 상황에 따라 심한 말을 할 수 있는 레이첼은 현실적인 캐릭터이기도 하다.”

신화적 모티프만을 살려 CG와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스크린을 도배하는 게 아니라 서사적 디테일이 풍부하고 리얼리티한 터치가 돋보이는 드라마로 영화를 구현한 놀란 감독의 우직한 연출방식은, 맨몸 격투신으로 설계된 전통적 액션 스타일의 장면을 비롯 화면 곳곳에 묻어나 있다.

초현실적 공간인 팀 버튼의 ‘배트맨’ 연작과 요란스런 배경으로 가득했던 조엘 슈마허의 ‘배트맨’에 비하자면 <배트맨 비긴즈>는 확실히 현실세계에 바탕을 둔 누아르적 분위기를 묵직하게 내비친다.

“배트맨! 넌 누구냐!” 그 진실을 흥미진진하고 진중하게 드러낼 <배트맨 비긴즈>는 이렇게 말해도 저렇게 말해도 결국 볼 만한 영화다. 해서 말인데, 전작땀시 삐친 마음 일단 한번 거두시고 당 영화를 접해봄이 어떨지... 어둠이 짙게 드리워진 학고방 방구석에서 본 필자 살짝쿵 권해본다.

도쿄_서대원 기자
사진제공_워너브라더스코리아

13 )
ffoy
오~ "도쿄_서대원 기자"<- 이 부분 와닿네요 ㅋㅋㅋ
  
2005-06-08 12:04
aids
잘 읽었습니다. 서기자님... 억케 기자 되셨죠? 대략 부럽...   
2005-06-07 22:04
cinei33
크리스천 베일이 연기하는 배트맨 !! 정말 기대됩니다 !!   
2005-06-07 11:11
nasarro
아동용이라니.. 배트맨은 이 시대의 암울한 현실의 씁쓸한 타개책이다.   
2005-06-07 02:13
nexmack
흠.. 기대가 되는데.. 배트맨2 까진 좋았는데 그담부터 아동용으로 변해버린 배트맨.. 좀 제대로 만들려나~   
2005-06-06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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