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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렬의 영화컬럼
사람이 파리냐? | 2001년 9월 20일 목요일 | 정성렬 이메일

<화이널 디시전 / Executive Decision>이란 영화를 기억하는지. 항공기를 납치해 자폭 테러를 저지르려는 악당을 상대로 한판 승부를 벌이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로 액션영화 팬들에 의해 짭짤한 수익을 올렸던 작품이다. '커트 러셀'이 주연으로 나서고 '스티븐 시걸'이 조연으로 등장하는 이 영화는 당연히 슈퍼 히어로가 등장하고 악당들은 모두 선의의 심판을 받으면서 겉보기엔 그럴싸한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지난 주 화요일 <화이널 디시전> 같이, 영화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사건이 현실로 나타났다. 현재 세계적인 테러리스트로 알려진 '빈 라덴'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테러로 인해 뉴욕 쌍둥이 빌딩이 폭파되었으며 미 국방성 역시도 일부 파괴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 방법 또한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비행기 납치를 이용해 가미가제식의 자폭 테러란 사실이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미국은 즉각 사건의 조사에 돌입했으며 실질적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상태다. 현재 구조작업이 벌어지고 있는 뉴욕의 중심 가(街)는 마치 전후의 폐허를 방불케 하며 과연 저곳에 국제 무역센터가 존재했었던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참혹하기만 하다. 이번 테러로 인해 지금까지 확인된 사망자 수는 200여명에 달하며 실종자 역시 5500명에 육박한다는 보고는 이번 사건이 얼마나 끔찍했는지를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사건의 진행과정을 텔레비전 뉴스와 함께 했던 필자는 무역센터가 무너지는 광경과 그 건물 안에서 죽어가던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숨막히게 돌아가던 상황들이 여전히 생생한 모습으로 눈앞에 그려진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선 사람들의 절망과 공포 그리고 안타까움이 매체를 통해 전해져 왔다.

하지만 필자가 더욱 놀랐던 것은 '영화 같다' 혹은 '멋있는 장면이었다'를 연발하며 상황의 심각성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주위 사람들의 태도였다. 그들에게는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일까? 폐허로 변해버린 도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을까.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성수대교가 붕괴한지 얼마나 지났다고 그 때 그 참상을 깨끗이 잊어 버렸단 말인가.

<다이하드> <터뷸런스>등의 영화를 통해 테러리즘이 여러 번 언급되었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 영화의 공통점은 사건의 정황과 결과를 두고 단지 문제를 해결했던 '영웅'에게만 포커스를 맞추는 통에 진정 아무런 죄도 없이 무참히 죽어가야만 했던 이들에 대한 슬픔이나 안타까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엄청난 물질적 손실과 함께 그 이상의 인적 피해가 발생했음에도 언제나 주인공들은 웃으면서 혹은 키스를 하면서 극을 맺곤 한다. 모든 것은 문제해결의 중심에 선 '슈퍼 히어로'를 둘러싸고 아주 그럴싸한 모양새로 해피엔딩을 이끌어 내며 관객들은 아무런 생각도 없이 영화 속 주인공을 칭송하는데 동참한다.

혹시 일본에서 일어났던 엽기적인 초등학생 살인 사건을 기억하는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의 머리를 잘라 교문 앞에다 상자로 포장해 담아 두었던 사건 말이다. 살인을 저질렀던 아이는 친구의 머리를 잘랐지만, 다음날이 되면 게임이나 영화에서처럼 다시금 정상적인 모습으로 돌아와 학교에서 만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그 같은 만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살인을 저지른 아이에게서는 죄책감 같은 것을 느낄 수가 없었다고 하며 친구를 죽였다는 사실보다 현실과 게임(혹은 영화)과의 괴리감으로 인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이번 부천 국제 환타스틱 영화제에 공개되면서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던 일본영화 <배틀로얄>은 중학교 3학년 또래의 아이들 40여명이 살기 위해 서로를 죽이는 영화로 그 잔인함이란 이루 말 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처음 한 사람이 죽어 나갈 때 느껴졌던 공포 혹은 잔혹함이 그 수를 더해 갈수록 둔해져 많은 관객들이 후에 아이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기보다는 마치 살인 게임을 즐기다 나온 것처럼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여 필자를 놀라게 한 적이 있다.

영화적인 환타지와 현실과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어리석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사람이란 것이 자꾸만 반복적으로 비슷한 상황을 접하게 되면 처음에 느꼈던 감정들이 후에 훨씬 무뎌지고 퇴색하게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최근 논란이 되었던 '영화의 영향으로 저질러진 살인 사건들'을 접하면서 영화의 영향이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영화는 확실히 현실에 영향을 끼친다. 그것이 좋은 방향이든 혹은 그렇지 않은 방향이든 사람들은 매체를 통해 움직임을 결정하게 되곤 한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폭력에 아무런 조치 없이 노출되어 있다. 특히 섹스보다는 폭력에 관대한 한국의 심의기관에 의해 <무사>같은 영화들도 '15세 이상 관람가'라는 황당한 등급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다이하드>류의 영화를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거나 나름대로 즐거움을 찾는 것에 대해서 나쁘다고 하고 싶지는 않다. 매번 <봄날은 간다> <천국의 아이들>처럼 예쁘고 착하기만 한 영화를 본다는 것은 필자도 원치 않는 일이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폭력에 다수 노출된 이들은 그 폭력이 얼마나 끔찍한가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면역성'을 지니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자명하다. 이번 테러사건처럼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도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영화 속 폭력의 수위는 나날이 높아지기만 하고 관객들은 더욱더 자극적인 무언가를 요구하게 된다. 현실과 환상의 모호한 경계 속에서 헤매다 보면 나도 모르게 폭력의 중심에 서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리는, 악을 응징하는 액션영화도 좋지만 그 이면에서 고통 받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가 한편쯤 나왔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8 )
mckkw
배틀로얄.. 진짜 어이없는...   
2007-09-18 14:14
kpop20
잘 읽었어요   
2007-05-25 22:52
soaring2
그러게요 글 쓰시는게 정곡을 찌르는거 같아요~   
2005-02-13 21:18
moomsh
막쓰러져 ㅋㅋㅋ   
2005-02-07 23:35
moomsh
사람이 파리처럼 느껴지는건 성룡이나 이연걸영화가 짱임 ㅋ   
2005-02-07 23:35
moomsh
이기사 쓰는분 정말 멋짐 ㅠㅠㅎㅎㅎ   
2005-02-07 23:35
moomsh
사람이 파리냐.. 제목죽이네 ㅋ   
2005-02-07 23:34
cko27
ㅋㅋ맞아요 사람이 파리도 아니고. 눈에보이면 찰싹하고 죽이는것 같에.ㅎㅎ; 좋은 영화도 많이 나오고있죠   
2005-02-07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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