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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와 오종, 나를 평가하지마! 얼굴 빼고..
그 감독이 알고 싶다 | 2004년 2월 29일 일요일 | 협객 이메일

안면 자태는 배우 같은 감독 오종
안면 자태는 배우 같은 감독 오종
얼마 전 서울 아트시네마 극장에서 프랑수와 오종 영화제가 열렸다.
거장들의 작품, 클래식 무비 그리고 쉽게 접할 수 없는 일본이나 제3국의 영화를 소개하는 게 주목적인 이 극장에서 이례적으로 동일한 감독의 프로그램을 1년에 두 번씩이나 초청해 상영한다는 이유로 회원들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밖으로 나와 조금은 소란스러운 영화제가 되었다.

회원들의 불만은 단순했다. 오종 감독은 분명 주목할 만한 감독이고 그의 작품세계는 쉽사리 이해 할 수 없는 영역이지만, 37살인 그는 혈기왕성하게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젊은 감독이고 또한 앞으로도 그의 작품을 만나볼 기회는 다른 영화들에 비해 많다는 것이었다.

회원들의 불만은 충분히 공감이 간다. 그러나 이 작은 영화제와 회원들간의 소동은 프랑수와 오종이 현재 프랑스 영화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해프닝에 가깝다.

1990년 프랑스 유명 영화 학교를 입학한 오종은 그의 엽기적이고 기괴한 영화와는 달리 정식적인 영화 수업을 밟고 데뷔한 감독이다. 프랑스 영화 시장에서 혜성같이 나타난 듯이 보이지만 그는 꽤 많은 단편들로 차근차근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채워나간 성실한 감독이기도 하다.

영화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논하기를 좋아하는 글쟁이들에게 오종의 영화는 분명 논쟁을 이끌어내기 좋은 안주거리임에는 틀림없다. 그도 그럴 것이 오종은 내놓는 영화마다 엽기로 무장한 동성애, 관음증, 가학/피학성을 주제를 그리니, 짧은 영화 이력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리에게 언제나 흥미를 유발시키는 뉴 시네아스트이다.

허나, 오종은 나이가 어리다. 그러기에, 오종의 젊음은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영화적 결론들을 마침표가 아니라 ..ing로 만들기에 그에 대한 섣부른 판단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에 개봉한 <8명의 여인들>과 샤를로트 램플링이 주연한 <사랑의 추억>(2000년, 95분)만 보더라도 천재의 독선으로 평가 받을 만큼 자기 세계에 대한 강한 주장을 피력했던 전작들과는 달리 관객에게 그는 말을 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그에 대한 해석은 아주 나중으로 밀어지는 게 옳은 일 일지도 모른다.

100년이 넘는 프랑스 영화사의 계보에서 오종은 위치는 색다르다. 프랑스 영화사의 맥락에서 볼 때 오종은 시간의 역사성이라는 흐름에는 속할지는 모르지만 80년대의 누벨 이마쥬라는 자국의 영화 계보의 끝자락을 차지하고 있는 새로운 경향의 젊은 신진 감독은 아니다.

그는 자국의 영화 시장 안에서도 이단아로 불릴 만큼 개성 강한 감독이기에 그를 논할 때 우리는 보편적 섹슈얼리티 정서로 누구에게나 서걱서걱한 느낌을 주는 기발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고 일차적으로 평가한다.

동성애와 육체에 가하는 잔혹한 폭력성 등은 오종 영화의 소재임과 동시에 주제가 된다. 그러나 요즘 들어 제작된 그의 영화들을 보면 그런 주제들이 좀 더 사회와 개인의 관계에서 표출된 욕망을 표현하기 위한 영화적 소재들로 기능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데 이 또한 오종이 점차 관계에서 이루어진 인물들의 부조리를 타당성 있게 그려내고 있음을 방증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솔직히 필자는 프랑수와 오종 감독론이라는 거창한 시선으로 그의 영화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이 글은 앞으로도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오종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하나의 바탕 화면을 형성하고자 하는 바람에서 쓰는 글로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 장르에의 실험, 오종 자신의 ‘성장’

'크리미널 러버'의 두 주인공
'크리미널 러버'의 두 주인공
여러 편의 단편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던 프랑수와 오종은 <썸머드레스>(1996년, 15분)라는 작품으로 자기 영화 세계의 기본적인 정서를 확립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의 전작 단편들에서도 동성애와 제한된 공간에서의 어처구니없는 반전과 유머로 그만의 기발한 상상력을 담아냈지만 단편과는 달리 내러티브의 연속성이 강조되는 장편의 속성을 본다면 <썸머드레스>는 단순한 사건에서 인물들의 내면적인 갈등을 끌어냄으로써 단편에서 다져진 그의 천재성이 영화 형식 안에 안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썸머 드레스>, <어떤 죽음>(1995년, 26분)은 동성애를 다루고 있는데, 이 소재는 성 정체성의 확립 즉, ‘성장’의 모티브를 제공하는 장치로 주제와 긴밀하게 연관되어진다.

특히 이 두개의 단편은 지금까지 오종 영화에서 그려지고 있는 ‘관계’에 의한 인물들의 갈등을 짧은 단편 안에서도 유려하게 그려내고 있는 수작들이다.

<어떤 죽음>과 <썸머 드레스>는 주변의 인물(가족,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파생된 갈등과 우발적인 사건을 코미디, 드라마 장르의 혼합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영화 실력은 이때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썸머 드레스>가 성장이라는 주제를 다소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다면, <진실 혹음 대담>(1994년, 4분)은 또 다른 장르의 혼합으로 인물의 성장을 표현하고 있다.

<진실 혹은 대담>은 이런 그의 초반 영화 작업의 주제와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진실게임을 벌이는 소년 소녀들의 얼굴은 그저 장난 끼가 가득할 뿐이고 카메라도 그들의 모습을 가볍게 잡아 낼 뿐이다. 그러나 게임이라는 명목아래 성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던 이들이 한 소녀의 초경을 상징하는 붉은 피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붉은 피의 잔혹함만큼 공포스럽고 급작스레 끝난다.

오종은 성장을 성 정체성의 확립과 동일 선상에서 바라보고 있는데 그의 이런 시선은 급작스런 카메라의 의식적인 구도 변화를 통해 장르를 이탈하는 새로운 인물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그는 여기서 더 많은 갈등의 암시도 주지 않고 짧은 단편 안에 두 가지 장르의 혼합만으로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의 뒷 얘기에 대한 부조리를 경험하게 한다.

이처럼 영화의 형식 중 물리적 시간적 제약을 많이 받는 단편에서 다양한 장르의 실험을 통해, 인물과 사건을 장르의 틀에 맞추어 동선을 제한 받게 하고서는 마지막에 와서 전혀 다른 영화 형식을 차용하여 사건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인물의 갈등을 단순한 이야기로 전락시키는 효과를 부른다. 이렇듯 오종은 이야기와 영화 형식이 분리되는 거리감을 통해 많은 단편의 주제를 ‘성장’에다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그 주제 안에 ‘성 정체성’의 자각이라는 이야기도 포함시켜 성장을 하나의 고통스럽고 공포스러운 경험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런 식으로 장르와는 별개로 파생되는 내러티브는 오종의 최근작까지 공통적으로 나오는 특징이다.


▶ 우발적 사건에 스며든 거장의 숨결

훔쳐보는 시선의 즐거움을 가르쳐준 영화
훔쳐보는 시선의 즐거움을 가르쳐준 영화
오종은 한 작품에 두개의 장르를 배치하는 영화 기술을 많이 쓰는 감독이다. 단편들에서도 보았듯이 장르의 혼합을 비등하게 담아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발적인 사건이나 새로운 인물의 출현으로 급작스런 장르의 바뀜과 반전을 이끌어 낸다.
오종 감독은 이런 우발적인 사건에 의해 파생되는 새로운 극의 전개를 인물과 사물의 극단적인 클로즈업으로 표현한다.

단편 < X 2000 >(1998년, 5분)에서 남자 주인공이 쓰레기에 모여드는 개미를 관찰하는 씬이 도시 삶의 허무함을 깨닫는 장치로 쓰이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사랑의 추억>에서도 마리(샤를로트 램플링)의 남편인 장이 숲에서 개미 떼를 보고 실종되는 우발적인 사건의 계기가 사물의 클로즈업과 인물의 클로즈업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기술로 어떠한 구체적 이유 없이 자행되고 또 다른 갈등을 이끌어 낸다.

영화 <스위밍 풀>(2003년, 102분)에서 내내 두 여자의 질투와 욕망을 페티시즘 적으로 관찰하던 드라마 구조가 우발적인 살인 사건으로 전환되면서 미스터리 영화로 바뀐다.

미스터리한 극전 전개는 종종 알프래도 히치콕의 영화들과 비교되는데, ‘우발적 사건’으로 극 반전하는 오종의 영화는 히치콕과는 다른 미스터리 구조를 갖는다. 맥거핀 효과를 사용하여 관객의 의표를 찌르며 끌어들이는 히치콕과는 달리 오종은 이처럼 극의 방향 전환을 통하여 관객을 끌어들인다. 물론 이런 오종 영화의 뜬금없는 극 변화는 관객에게 소통불능격인 거리감을 주기도 한다.

결국 미스터리가 풀리는 후반에 와서 맥거핀과 같은 용도로 우발적인 사건이 쓰인다 하더라도 앞부분의 극 전개와 다른 엉뚱한 결말과 인물의 구도는 히치콕적인 냄새는 나지만 영화의 미장센 그 이상의 의미는 없는 소모품으로 전락한다.

다시 말해, 한 작품 안에 기거하는 두개의 장르는 우발적인 사건으로 충돌하여 인물들의 복잡한 심리를 효과적으로 나타내는데 쓰일 뿐이다. 그는 이렇듯 거장 감독의 특징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관계의 의해 파생되는 욕망을 강조하는, 생긴 것만큼이나 미끈한, 꾀를 많이 지닌 감독이다.


▶ 욕망의 육체성 그리고 영화의 진정성을 찾아가는 악동

근작 <8명의 여인들>을 보면 온통 페티시즘적 시각으로 인물을 보지만 그의 건조한 시선에서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는 파격적인 섹슈얼리티(동성애, 근친상간)를 이렇듯 욕망의 단적인 표현인 페티시즘으로 구체화하고 있는데 그의 영화가 논란이 되는 이유는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그가 인물들의 성 정체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소 ‘육체성’에 한정되어 지는데 <크리미널 러버>(1999년, 90분)와 <바다를 보라>(1997년, 52분)에서 단 한순간에 가해지는 폭력으로 인한 육체적 자각은 내면의 심리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다시 말해 심리의 외곽만 치는, 카운터 펀치가 아닌 쨉으로만 기능한다.

이런 육체성에 대한 오종의 접근은 스페인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육체성과는 다른 성격을 지닌다. 물론 키치적인 감각과 악동적인 유머는 오종과 포개어 지는 부분이다.

<크리미널 러버>에서 뤽에게 가해지는 낯선 남자의 성폭행과 대면한 뤽의 자아와 <바다를 보라>에서 타티아나에게 난도질당한 사샤의 음부 상처는 관객으로 하여금 동일한 단절감을 생성시킨다. 페드로 감독의 육체성은 인물들의 심리를 깊게 성찰하여 이루어낸, 영화 이면에 존재하는, 인물들의 관계를 규정짓는 매개물인 반면 오종의 그것(육체성)은 인물간의 소통없이 오직‘성장’과 ‘욕망’만으로 거둬들여 극 안에서 동떨어진 존재물로 남는다

소녀의 나체가 주는 위험성를 표현한 오종의 작품
소녀의 나체가 주는 위험성를 표현한 오종의 작품
그러나 이 두 영화에서 오종의 육체성이 페드로와 같은 삶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일구어진 것이 아니더라도 그가 점차 인물들의 내면의 심리와 사건을 연관시켜 사회의 부조리에 접근하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이 두개의 영화는 오종이 점차 개인의 성장을(오종 자신의 성숙) 넘어 사회로의 의식적인 영화적 시선이 보여지는 과도기적 영화들이라 볼 수 있다.

그런 그의 성숙을 보여주는 뉴저먼시네마의 거장 파스빈더의 원작을 리메이크한 <워터 드랍스 온 버닝 락>(2000년, 82분)은 그에게 파스빈더의 적자라는 또 다른 애칭을 선사하는 영화이다.

연극적인 연출은 <8명의 여인들>에서도 나온 기법이지만 제한된 공간에서 네 명의 인물들이 벌이는 성과 권력에의 이동에 대한 그의 영화적 해석은 영화의 진정성을 내포하여 그에 대한 다른 평가를 매기는 계기가 된다.

이 작품에서 그는 다소 표피적으로 다루었던 동성애와 폭력의 문제를 좁은 공간에서 인물들의 움직임에 많은 제약을 주는 부분으로 작용케 하여 권력의 부조리에 대한 탁월한 해석을 끄집어낸다.

오종은 점차 내면의 갈등을 장르에의 실험으로 드러내는 방법을 벗어나서 동선과 중의적인 언어들로 표현하기에 이르는, 사회적 문제 의식에 대한 영화 작업을 하는 완숙한 감독이 되어가고 있다.


▶ 욕망의 대상인 팜므파탈 여성들

프랑스의 페드로 알모도바르라는 평을 받기도 하는 오종은 근래에 들어와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많이 선보이고 있다.

여성의 육체를 삶의 부조리와 성찰로 표현하는 작법은 페드로 감독과 비슷한 성질의 것으로 인식되지만 오종 영화 안의 여성은 페드로와는 달리 팜므파탈에 가까운 여성이기에 다른 성격을 띤다고 볼 수 있다.

그녀들에게 악의는 없다.
그녀들에게 악의는 없다.
단편을 제외하고는 모든 영화에서 여성은 사건을 일으키는 장본인이 되기도 하면서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인물들의 관계를 중시하는 그의 요즘 영화 경향을 반추해 본다면 여성은 욕망의 구체적인 피조물로 사물화 되는데 <스위밍 풀>에서 줄리(뤼다빈 사니에르)의 육체는 사라(샤를로트 램플링)에게는 욕망을 표출하는 계기가 됨과 동시에 대상이 된다.

인물들간의 상호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갈등은 여성의 육체가 기폭제가 되어 극의 전개에 있어 중요한 계기의 변화를 마련해주는데 <워터 드랍스 온 버닝 락>에서 안나(뤼다빈 사니에르)의 여물지 않은 육체는 인물들의 관계를 한순간에 헝클어 버리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페티시즘적 시선으로 일관하는 그의 영화 안에서 여성의 육체는 동시에 두 가지의 의미를 함축하는 대상으로써의 기능을 하는데, <바다를 보라>의 사샤와 타티아나의 신체적 접촉은 객체들과의 미묘한 갈등, 질투를 유발시키고 또 다른 영화 <크리미널 러버>에서의 알리스는 자신의 육체를 이용하여 모든 인물들의 관계가 이어지게 만들고 또한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 팜므파탈로 그려진다.

허나, 이들 여성은 자신들이 내재하는 욕망을 설명하지 않을 뿐더러 관계로 이루어진 갈등의 매듭도 고의적으로 만들지 않는 사물로써의 존재들이다.
이런 점이 오종이 그려내는 여성상의 특징인데, 자신이 원하는 욕망을 위해 의도된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들이 아닌 단지 육체의 상징성만 갖는 인물들이다.

오종이 표현하는 여성은 그간의 팜므파탈 여성상과는 확연히 다른 성질을 갖는다. 남성의 육체와는 달리 페티시즘을 유발하는 그녀들의 신체가 갈등과 관계의 고리 역할만 할뿐, 그가 스크린 앞에 여성을 내세우는 이유는 달리 어디에도 없다고 볼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8명의 여인들>에서 8명의 여성들은 집안의 유일한 남성을 죽음으로 이끄는 팜므파탈이지만 그녀들이 남성을 배제하는 특별한 이유나 갈등은 드러나지 않는다. 단지 8명의 여자들 스스로 자기 내면에 깔린 질투와 시기를 표현했을 뿐이다.

여성의 육체는 사회의 부조리를 나타내는 소재로 쓰일 뿐 페드로 감독의 영화처럼 깊이 있는 삶의 성찰에 의한 인생을 끌어안는 영화적 시선은 아직 오종의 영화에서는 미비하다고 결론 지을 수 있다.

많은 부분 그의 영화는 거장들의 영향권 내에서 신동의 재기 발랄함을 보여준 듯 하지만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영화들은 또한 어떠한 구속력과 결속력을 거부하는 이단아 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한다.

그는 아직 거장이라 불리기에는 이른 젊은 영화 천재 감독이다. 허나, 오종에게 쏟아지는 관객들의 물음표가 많아 질 수록 그는 영화 천재라는 자신의 허울 안에서 끊임없는 변태(變態)의 과정을 거쳐 날개 짓 하는 하나의 완전한 객체의 나비가 될 것이다. 도발하는 상상력이 인생의 깊이로 이어지는 영화들로 채색되어 질 날이 오종에게 얼마 안 남은 듯하다.

11 )
qsay11tem
자유분방한 감독이네여   
2007-11-27 13:13
mckkw
머리가 좋은 것 같애.   
2007-11-06 13:00
kpop20
배우같은 감독   
2007-05-18 23:07
khjhero
정말...멋지네요^^   
2005-02-15 21:08
cutejewel
감독님진짜멋있어요!   
2005-02-14 18:53
cat703
오우! 감독인가? 배우인가? 멋지네요   
2005-02-14 10:09
imgold
스위밍 풀에 삼성 노트북이 나와서 무척이나 반가웠다는^^;;
  
2005-02-11 17:43
sweetybug
스위밍풀 재미있을것 같다.. 감독님 잘생기셨네..ㅋㅋ   
2005-02-11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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