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분명 기억나는, 그 앳된 얼굴 <스플릿> 이다윗
2016년 11월 10일 목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돌아보면, 이다윗의 앳된 얼굴은 분명 관객의 기억 한 쪽 끝을 차지하고 있다. 소녀도 소년도 아닌듯한 미성으로 구슬픈 노래를 불러 선임병의 마음을 울린 <고지전>(2011)의 ‘남성식’, 대통령의 사과를 받겠다며 유명 앵커 귀에 폭탄을 설치한 <더 테러 라이브>(2013)의 범인 ‘박신우’, 비중은 크지 않아도 작품의 밀도를 끌어 올린 독특한 그 역할들이 이다윗의 얼굴을 통해 나왔다. 우스꽝스러운 볼링 폼을 구사하는 <스플릿>의 자폐 청년 ‘영훈’으로 다시 한 번, 관객의 기억 속 한 자리를 차지하려는 이다윗을 만났다.

볼링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자폐 청년 ‘영훈’을 연기했다. 많은 연구가 필요했을 것 같다.
‘영훈’은 의사소통이 안 될 정도로 완전한 자폐 장애인은 아닌데, 그렇다고 정상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캐릭터다. 딱 그 중간쯤에 있다. 캐릭터 연구를 위해 직접 자폐 장애인을 상담하는 선생님을 찾았다. 자폐 장애의 범주가 상당히 넓고, 증상도 다양하더라. 같은 틱 장애여도 움직이는 신체 부위가 다르기도 하고. 결국 감독님과 상의 끝에 그 중에서 몇 가지 특징적인 증상을 추려내 ‘영훈’이라는 캐릭터의 큰 틀을 갖췄다. 촬영 전부터 만남이 상당히 많을 수밖에 없었다.

자폐 연기가 상당히 자연스럽다.
나 스스로 자폐 연기가 어색하다고 느끼면 보는 사람은 더 어색할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다가 두 세 장면 나오고 마는 인물도 아니고, 이야기 처음부터 끝까지 쭉 나오는 캐릭터인데 그때 그때 잠깐 몰입하는 식으로는 제대로 소화될 것 같지가 않더라. 그래서 미리 연구해 둔 증상들이 몸에 익어서 정말 일상적인 수준으로 튀어나올 수 있도록 만들었다. 친구를 만나서도, 길거리를 걸어 다니면서도 실제 자폐 장애인처럼 시선 처리를 하고, 행동을 했다. 내가 뭘 하는지 아는 사람들이야 그러려니 이해해줬지만, 아마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웃음)

특히 엉성하고 우스꽝스러운 볼링 폼이 인상적이었다.
자세는 정말 무지하게 연습했다. 유지태 선배도 원래 볼링을 못 치다가, 선수 연기를 해야 하니까 하루에 세 네 시간씩, 일주일에 다섯번을 연습하면서 최고 점수가 240점까지 나왔다. 근데 나는 선배 실력이 그렇게 되는 동안 옆에서 계속 자세만 연습했다 자세만.(웃음) 말도 안되게 허술한 자세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연습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걸러내 완성시켰다.(웃음)

자폐 장애 가족을 둔 분들이 어떻게 볼 지, 걱정도 좀 됐을 것 같다.
아무래도 어느정도 오락성을 갖춰야 하는 영화이다 보니, 내가 이렇게 연기를 했을 때 너무 희화화 돼서 보이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같이 영화를 만든 스태프들은 캐릭터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졌는지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상관 없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굳이 내 캐릭터를 이해해가면서 보는 게 아니라 그저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거니까. 그래서 조심스러웠던 것도 컸다.

고민이 많아 출연을 망설였을 것 같은데.
그렇긴 한데, 결국 톰 하디 때문에 출연하게 됐다.(웃음)

할리우드 배우 톰 하디 말인가.(웃음) 그게 무슨 뜻인가.
<스플릿> 시나리오를 읽는데 4시간이 걸렸다. 이야기 자체는 너무 재밌는데,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내가 ‘영훈’이라면 어떻게 연기를 해야 되나 생각하다 보니 진도가 안 나가더라. 고민이 너무 커지니까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니구나 싶었다. 못 하겠다고 말 해야겠구나, 하고 자기 전에 영화나 한 편 봐야지 하면서 톰 하디가 나오는 <레전드>(2015)를 틀었다.(웃음) 그런데 영화에 톰 하디와 너무나 닮은 사람이 나와서 정 반대의 연기를 하는 거다. 아니, 할리우드는 어떻게 이렇게 똑같이 생긴 사람을 찾아다가 저렇게 다른 캐릭터를 연기를 시켰지?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 톰 하디가 1인 2역을 소화 한 거였다.(웃음) 난 영화가 끝날 때 까지도 몰랐다. 너무 충격을 받아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보니까,. 심지어 톰 하디가 먼저 감독한테 1인 2역으로 연기해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다고 하더라. 그때 마음 속에서 뭔가 확! 밀려드는 감정이 있었다.

어떤 감정이었나.
톰 하디처럼 연기를 잘 하는 배우도 저렇게 먼저 제안하고, 도전을 하는데 나는 시나리오 한 번 읽어보고 어려운 역할이다 싶으면 도망치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 갑자기 부끄럽고 쪽팔렸다.(웃음) 앞으로도 계속 연기를 할 텐데 이럴 때마다 계속 포기 할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다음날 회사에 과감하게 ‘영훈’역할 하겠다고 말했다.
<고지전>의 ‘남성식’이나 <더 테러 라이브>의 범인 ‘박신우’처럼,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독특한 면모를 보여주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항상 나한테 들어오는 캐릭터는 죽거나, 죽이거나, 피를 보거나 한다. 사연에 한이 있다. 내 얼굴이 한 있게 생겼나보다.(웃음) 사실 <고지전> 출연 전에도 고민을 많이 했다. 유해진 선배와 <적과의 동침>(2011)이라는 영화를 찍을 때 ‘남성식’역이 제안이 들어왔는데, 전쟁터에서 구슬프게 노래를 부르는 역할을 해석하는 게 너무 어려울 것 같아서 출연 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선배가 해준 말씀이 있다. 당신도 새로운 역할을 받을 때마다 매번 어렵다는 거다. 근데 그렇게 부딪히면서 도전 하는 게 연기 아니겠냐고.(웃음) 그 말은 <스플릿>에 출연을 결심한 이번에도 떠올랐던 말이다.

작품을 고를 때 주변의 조언을 많이 참고 하는 편인가보다.
물론 최종 선택에는 내 의견이 가장 크게 반영되지만, 주변과는 항상 많이 상의하는 편이다. 특히 아버지! 영화 보는 걸 무척 좋아하신다. 그래서 시나리오가 들어오면 아버지께 보여드린다. 읽어보시고 말씀 좀 해달라고.(웃음)

<스플릿>을 읽고 나서는 어떤 말씀을 하셨나.
‘영훈’역할이 좀 어려울 것 같긴 하지만, 내 핏줄을 이어 받았는데 이정도는 할 줄 알아야지! 라고 하시더라.(웃음) 우리 집안 사람들이 워낙 끼가 있고, 풍류 즐기기를 좋아한다. 내가 그런 점을 많이 닮아 연기생활을 하고 있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때는 아버지가 너무 쉽게 말씀하시는 것 아닌가 싶긴 했다.(웃음)

<순정>(2015)에서는 도경수, 김소현 등 또래들과 호흡을 맞췄는데 이번에는 유지태, 이정현 등 대선배들과 함께 작업했다.
사실 나에게 익숙한 건 선배들과의 작업이다. <고지전>도 그렇고 같이 연기하는 분들 중에 내 또래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후아유’라는 학교 드라마를 한 편 하고, 친구간의 우정을 주제로 하는 <순정>을 연이어서 하게 되니까 정말 너~무 재밌더라.(웃음) 다 친구들이니까 편하기도 하고, 사적인 고민이 생겨도 같이 얘기할 수 있고, 현장에서도 으쌰으쌰 하기 좋은 분위기였다. 솔직히 말하면, 선배들하고 작업을 하면 그런 종류의 분위기는 거의 없다.(웃음) 아무래도 내가 그들을 무조건 따라가게 되니까. 그 대신에 그만큼 훨씬 든든하다. 각자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순정>에서 함께 한 도경수도 조정석과 함께 찍은 <형>을 곧 개봉한다. 그쪽도 <스플릿>처럼 브로맨스를 선보일텐데.
알고 있다. 서로 재밌겠다, 보고싶다하면서 기대하고 있다. 사실 경수 형한테 이번 <스플릿> 시사회 때 참석하라고 초대를 했는데, 며칠 전에 연락이 왔더라. 그날 SBS 30주년 특별공연 있는 걸 깜빡했다고.(웃음) 그러면서도 나더러는 자기 시사회때 꼭 오라는 거다. 그래서 형, 난 그날 KBS 특별 무대 있어서 못가는데? 라고 대답했다.(하하하)

이번 영화에서 특히 유지태와는 함께 케미를 보여줘야 하는 씬이 많았다.
유지태 선배가 나를 위해 하나하나 판을 다 깔아줬다. 극중에서 ‘철종’(유지태)과 ‘영훈’의 소통이 일방적이지 않나. 그러다 보니 선배가 나한테 실컷 이것 저것 물어봐 가면서 전반적인 상황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내가 ‘네!’, ‘아니!’ 이정도로 반응 하는 식이었다.(웃음) 난 대답만 했는데 웃음을 줄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더라. 유지태 선배도 맨날 농담처럼 자기 혼자 원맨쇼 하고 다닌다고 말하곤 했다.(웃음)

그와 많은 상의를 했을 것 같다.
아무래도 유지태 선배가 나한테 제안을 많이 하고, 또 이끌어주는 쪽이었다. ‘철종’과 ‘영훈’ 둘이서 술을 마신다든가, 둘의 관계가 차곡차곡 쌓여가야 하는 부분을 촬영 할 때에는 “우리 잘 찍어야 돼. 이 씬은 되게 중요한 씬이야” 라고 말씀 하시고.(웃음) 그러면서 대사를 좀 더 속도감 있게 탁 탁 치고 나가면 재밌지 않겠냐고 물으시기도 하고. 난 주로 아, 예 알겠습니다. 하는 쪽이었다. 거의 리드 당했다.(웃음) 그래도 무지 든든하더라. 만약 유지태 선배를 사석에서 마주쳤다면 인사만 한 번 드리고 선뜻 다가가지는 못했을 거다. 항상 자상하고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어도 알 수 없는 포스가 느껴지는 분이니까. 그런데 영화에서는 나와 함께 호흡을 맞추는 아군, 내 편이라고 생각했으니까.(웃음)
극 중에서 둘 사이의 관계가 생각한 만큼 잘 쌓인 것 같나.
그런 것 같다. ‘영훈’이 마지막에 프로로 데뷔해서 퍼펙트를 치고, 관객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순간이 있다. 그때 ‘철종’과 눈을 마주치는 장면이 있는데 연기가 아니라 정말로 울컥 하더라. 유지태 선배가 날 보고 웃고 있었는데, 그 순간에는 이게 ‘영훈’과 ‘철종’의 관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정말로 나 이다윗과 유지태 사이에 유대가 있었구나 싶었다. 연기를 하다 보면 내 캐릭터의 감정 흐름과 실제 나의 감정선이 탁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나니, 이 관계가 잘 쌓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21분짜리 단편 <물결이 일다>(2005)가 당신의 데뷔작이다. 꽤 어릴 때부터 연기를 했다.
그 때가 11살 때일 거다. 애초에 연기를 하려고 마음 먹고 시작한 건 아니다. 내가 세 살 어린 여동생이 있는데, 그 애가 5살 때 예쁜 어린이 선발대회에 나가서 1등을 했다. 나는 거기에 따라갔다가 얼떨결에 연기를 시작하게 된 거다. 2주 뒤에 남자 어린이 배우가 하나 필요한데, 혹시 오빠인 네가 해보지 않겠냐고.(웃음) 그래서 처음으로 연기를 하고, 방영날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비디오 녹화를 하기 위해 기다렸다. 결국 편집 돼서 안 나왔다.(웃음) 다음에 다시 연락이 와서, 이번에는 절대 편집 안될 테니까 한 번만 더 출연하라고 하더라. 그렇게 시작된 거다.

부모님도 그런 활동을 지지해 주셨나.
아버지는 처음에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셨고, 날 늘 촬영장에 데려다 주시던 어머니도 몸이 안 좋아지기 시작하시면서 그만 하자고 하셨다. 원래는 나를 데려다 줄 겸, 바람도 쐴 겸 나가는게 좋았다고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힘들어서 못 다니겠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핸드폰 하나만 사주면 혼자 다니겠다고 했다. 그리고 중학교 때부터는 오디션장이든, 촬영장이든 정말 혼자 찾아다녔다. 내 촬영이 다 끝나면 다른 분들 기다렸다가 같이 버스 타고 숙소 가서 자고.(웃음) 지방 촬영을 가야 될 때만 부모님께 태워다 달라고 했던 것 같다.(웃음)

본인이 연기를 상당히 재밌어했던 모양이다.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힘들기보다는 약간 자부심이 있었달까.(웃음) 내 친구들 중에 지하철 노선 나만큼 잘 아는 애는 없을 거야! 라면서.(웃음)

워낙 어릴 때부터 연기를 시작했는데 지금까지도 얼굴이 좀 앳된 편이다.
앳된 얼굴은 맞지만 그게 싫지는 않다.(웃음) 내 모습이 어리게 보이면 그에 맞는 역할을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20대 후반까지는, 도전 할만한 캐릭터는 다 해볼 계획이다. 연기는 어쩔 수 없이 그 배우가 살아온 시간에 비례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잘 해도 그 나이가 아니면 보여줄 수 없는 느낌 같은 것들이 있으니까. 그런 느낌을 줄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다지고 또 다지면서 나이를 먹고 싶다.

좋아하는 배우가 있나.
인간문화재라고 할 만큼 연기 잘하는 선배들과 배우들은 너무 많다. 너무나 당연하게 좋아한다고 손꼽을 수 있는 그런 선배들을 제외하고 말한다면, <동주>(2015)에 나온 박정민 형이다. 그 형하고 <신촌좀비만화>(2014) <순정>에서 두 번 만났는데, 이 사람한테는 연기로 절대 이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웃음) <스플릿> 시나리오를 보자 마자 그 형한테 전화해서, 형이라면 어떻게 할 거야? 하고 물어봤었다. 근데 알아서 하라고 하더라.(하하하)

박정민 배우와 이미지가 다소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정민이 형이 좀 더 못생겼다! 어딘가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그럴 때마다 이렇게 대답한다.(웃음)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깊은 한숨) 으음. 한동안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엄청 생각했던 적이 있다. 나에게 어떤 수식어가 붙으면 좋을까. 잘 생각이 안나더라. 그러다가 지나가면서 어딘가에 ‘배우 송강호’라고 쓰여있는 문구를 봤는데 그 때 마음이 딱 정해졌다. 그래, 뭐가 더 필요한가. 배우 이다윗이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요즘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아아. 그게 내 고민이다. 그런 순간이 잘 기억나질 않는다. 연기한 시간을 빼면, 내가 하고싶어 했던 취미활동을 하나도 못했다. 음악도 배우고 싶고, 곡도 쓰고 싶고, 단편이라도 직업 연출해서 영화도 찍어보고 싶었는데 늘 생각만 하고 제대로 한 게 없다. 내가 고등학교 때 생각했던 20대의 삶은 이런 게 아닌데!(웃음) 아아. 정말 시간을 너무 날렸다.(웃음)



2016년 11월 10일 목요일 | 글_박꽃 기자(pgot@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사진 제공_ 스타하우스 엔터테인먼트

0 )
1

 

1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