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cliche
|
2003-01-10 오후 2:22:49 |
1983 |
 [8] |
|
|
한 영화를 보기에 앞서 '이 영화는 이럴꺼야'라고 혼자 상상해 보는 게 잘못된 일은 아니지만 섣부른 그리고 지나친 예측은 그 영화를 '오해' 하게 만든다. <피아니스트>에 대한 내 오해는 '숨어지내는 한 피아니스 트 출신 유태인이 나치장교에 발각되었는데 유태인의 피아노 연주를 듣 고는 그를 살려준다'라는 얘기를 들은 데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아~ 그렇 다면 전쟁이 끝난 후, 그 유태인은 유명 피아니스트가 되고 결국 생명의 은인인 그 독일인과 감동적인 재회를 갖는 것으로 눈물샘을 자극할 요 량이군'이 내 오해의 요지였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유태인이 그 독인장교에게 들키는건 영화가 거의 끝나갈 때 쯤이다. 제목이 '피아니스트'인 만큼 연주덕에 목숨을 잃지 않은 것이 중요한 부분이라면 그렇다고 할수도 있지만 이는 주인공이 극중에서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긴 일들중 하나일 뿐인 것이다. 그래, 이건 스필버그 영화가 아니다. 한 인물의 영웅담, 혹은 감동적인 스토 리를 부각시키려는게 아니라는 거다. 독일군에 맞서 싸운 용감한 시민 의 이야기도 아니고, 포화속에서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삶을 헤쳐 나간 자의 이야기도 아니다. 그는 단지 수용소로 끌려가는 기차에 오르기에 앞서 그를 알아본 친구가 끌어내주고, 강제노동을 마친 뒤 다른 유태인 들과 열맞춰 걸어가다 마주친 광기어린 독일장교의 무작위적 살상 속에 서 살아남고, 유태인을 도와주던 지하세력의 보호속에서 목숨을 연명해 나갔던 것 뿐이다. 특별할 것 없이 그저 그때 그 자리에서 보고, 겪고, 기억하는 자의 기록이다.
이 영화를 여타의 홀로코스트 드라마와 한 범주에 넣기엔 분명 차이점 이 있다. 악명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거다. 가 스실에서 쓰러져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신 택한건 폴란드 거 리의 모습이다. 포로가 되어 어딘가로 끌려가 처형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던 집에서 창밖으로 내던져지고, 총에 맞는 모습은 나치의 잔 혹함을 더욱 부각시킨다.
예상과 달리 뚜렷한 드라마가 없이 그저 숨어 다니는게 전부인 주인공 스필만(애드리언 브로디)에 실망과 지루함을 느꼈던 건 사실이지만 숨 어있느라 소리를 낼수 없어서 건반 위에 손을 얹은채 마음속으로 연주 하는 장면, 독일장교 앞에서 털북숭이 짐승같은 외양으로 신들린듯 즉 흥연주를 해내는 장면, 그리고 엔딩 크레딧이 끝나는 순간까지 이어지 는 콘서트 홀에서의 라스트 시퀀스는 작은 떨림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물론 전작 <빵과 장미>에서보다 훨씬 수척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애드리 언 브로디의 연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그 자신이 실제로 홀로코스트 속에서 부모를 잃 고 살아남은 유태인이기 때문에 독일장교의 숭고한 박애주의 스토리인 <쉰들러 리스트> 감독제의를 거절했었던 반면 이 영화를 만들수 있었다 고 본다. 블라디슬라프 스필만의 자서전을 토대로 하고 있다지만 그 속 에 감독 자신의 경험을 묻어 낼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히틀러 체제하에서 어떤 일들이 자행되었는지를 지금의 세대에게 보여 주는 것 뿐만 아니라 오랜동안 그저 그런 작품들을 만들어냈던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한층 무게를 실을수 있게 되었다.
|
|
|
1
|
|
|
|
|
피아니스트(2001, La Pianiste)
제작사 : Le Studio Canal+, Les Films Alain Sarde / 배급사 : (주)블룸즈베리리소시스리미티드
수입사 : (주)블룸즈베리리소시스리미티드 /
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