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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상장교 지혁과 경원이 하나 되어 손을 들고 바람을 느끼고 있다 ©코리아픽쳐스 | ◇ 박경원 친일 논란, 홍보-흥행에 得 될까 毒 될까
최근 사법고시 수석 합격 등 여성들의 전문직 진출이 화제가 되고 있다. 영화 <청연>(靑燕)은 국내 최초의 민간인 여류 비행사 박경원의 실제 삶을 모티브로 해 이들 여성보다 1세기 앞서 암울했던 시대를 살다간 한 여자의 꿈, 도전 그리고 고단했던 삶을 그리고 있다.
"가장 행복하고도 달콤했던 순간은 하늘로 비상할 때였노라" - 박경원의 말 中 "하늘 위에 올라가면 조선인이고 일본인이고 남자고 여자고 상관없으니까.." - 영화 속 경원의 대사 中
작품의 원형 인물인 '박경원의 친일 행적' 관련 네티즌들로부터 화제까지 되고 있다. 이러한 이슈는 과거에 영화의 홍보나 입소문을 위한 네거티브 요소로 활용되었지만, 이유가 어찌되었건 오마이뉴스의 기사와 시사회 당일 기자 간담회의 돌발 질문을 통해 사이버 공간에 급속히 전파됐다.
지난 21일부터 영화정보 사이트 무비스트가 진행중인 '청연의 친일 논란,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설문에서 23일 오후 1시 현재 중간 집계 결과, 전체 2,377명의 영화팬들 가운데 45%(1.079명)가 '영화 보고 판단하자'고 한데 이어 '섣불리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19%)라고 답한 반면 '문제가 있다'는 의견은 25%에 그쳐 이러한 논란이 영화 관람 의도가 연결되진 않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윤 감독은 이번 영화 <청연>에서 "박경원에게 면죄부를 주고 싶지 않았으며 일만친선(日滿親善) 비행으로 일장기를 들고 사진찍는 장면으로 이를 나타냈다"고 기자 간담회를 통해 논란에 대한 답변을 했다.
이 영화는 과거 실패했던 국내 시대물에서 볼거리와 비약적인 결말에 치중한 나머지 내러티브에서 허약함을 나타냈던 결점을 보완한 것으로 보인다. 윤 감독의 전작 <소름>에 이어 자칫 무거운 분위기와 촛점을 잃기 쉬운 멜로 라인의 에피소드를 인서트 형식으로 연출해 최소화하고 꿈을 향한 그녀의 이야기를 중반부 이후부터 속도감 있게 전개해 지루함을 없앴다.
영화 제목처럼 윤 감독의 카메라는 스스로가 마치 한마리 제비가 되기라도 한듯 다양한 각도에서 자유로운 연출을 시도했다. 이러한 연출에는 영화 내내 연주곡을 배경으로 하다가 종영과 함께 애잔하게 울려퍼지는 이승철의 영화 주제가 '서쪽 하늘'이 영화 중간에 삽입되지 않은 것도 그렇다.
여자에게 학교가 허용되지 않았던 농가에서 아버지로부터 야단맞는 장면은 꿈과 조국 사이에 갈등하는 그녀에게 영화 후반부에서 '조선적색단'으로 오해받아 일본 군관으로부터 고문 받고 '조선이 내게 해준게 뭐야'라는 말로 일만친선 장거리 비행의 길을 선택하도록 하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다.
또한, 박경원이 행진중인 일본 군대를 닌자 무사로 생각하고 하늘을 나는 판타지의 설정, 그리고 붉은 노을 아래 들판 위로 날아가는 비행기의 검은 그림자에 가린 그녀의 모습은 영화의 가벼움은 물론 윤 감독의 주제의식에 대한 암시를 준다.
◇ '영화적 재미'를 가득 담은 영화 '청연'
영화 초반부, 일제 강점기였던 1910년, 여자와 조선 그리고 가난이라는 세 가지 제약을 뛰어 넘으려고 일본을 선택한 박경원은 일부 매체와 네티즌이 주장하는 조선 최초의 여류비행사 권기옥이 선택한 중국과 달리 드라마적 갈등 국면을 다양하게 제공하고 있어 드라마를 강조하려 한 윤 감독의 영화적 소재로 선택된 것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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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원(장진영 분)에게 "부디 훌륭한 비행사 되시구"라고 인사를 건네는 지혁(김주혁 분) ©코리아픽쳐스 |
하늘을 날고픈 꿈 많은 소녀는 어느새 자신의 꿈을 위해 밑바닥 인생을 치르고 있다. '다치가와 택시'의 대타 운전기사 생활과 힘들게 입학한 일본 비행학교의 학비를 조달하기 위해 추운 골방에서 힘겹게 끼니를 떼우지만 그녀의 눈에는 꿈과 열정으로 가득차 있다.
야간 택시 손님으로 만난 연인 지혁과 일본 외무성의 후광을 업은 기베(유민 분)와 인연으로 인해 그녀는 당시 상류층이 누릴 수 있는 사교춤과 복고풍의 의상 등으로 치장해 여류 비행사로서 누릴 수 있는 화려함을 누려 관객에게 영화적 볼거리를 제공한다. 시대적 배경과 어울려 극적이다.
이러한 화려한 생활은 그녀가 조선인이란 점과 꿈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역이용하는 이면이 있어 가능하고, 일본 비행학교과 외무성은 그녀를 홍보 도구로 이용하지만 이에 개의치 않는 대담성은 결국 조국 조선으로 가는 장거리 비행까지 이끈다.
"세상 끝까지 날아가 보는 게 제 꿈이에요" - 박경원(장진영 분)의 말
비행 장면은 본격적인 항공 영화라고 당초 기대했던 것보다 과장되진 않아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감동적인 스펙터클이나 <진주만> 등 항공 소재 영화의 긴장감과 액션과 또 다른 볼 거리와 영화적 재미를 제공한다.
구름을 넘어 푸른 창공에 솟은 복엽기는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언제 부서질 지 모르는 안타까움 속에 진행되는 비행 경연 장면의 스릴, 그리고 스릴 뒤의 짜릿한 감동 등을 선사하며 특히, 비행 장면은 주인공의 감정 변화와 함께 외적 갈등까지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
영화 초반부에 경원이 비행학교에 입학하게 된 사연이나 주요 갈등을 일으키는 기베와 화해하고 오히려 자신을 따르던 정희와 지혁을 두고 갈등하는 모습으로 전개되는 멜로라인은 관객에게 신선함을 줄 것이다.
다만, 영화 초반부에 허구적 요소들이 영화 속 리얼리티와 간혹 충돌하고 있고 한 편의 뮤직비디오처럼 처리된 지혁과 설원 데이트 장면은 로맨스를 기대했던 관객에겐 아쉬움으로 남을 수 있겠다.
극 중 박경원 역을 맡은 장진영은 영화 <싱글즈> 이후 2년만에 스크린에 복귀해 원톱으로 했어도 손색없을 정도의 처연함과 보이시한 박경원의 면모를 보이며 열연했다. 특히, 요인 암살 사건으로 혹독한 고문을 견디는 장면은 영화 <소름>에서 학대받았던 인상적인 장면을 다시 떠오르게 한다.
일제 강점기를 살아간 재일 조선인의 모습을 대변하는 고문 장면, 지혁의 수양 동생이자 그녀의 동료 비행사였던 이정희 역의 한지민을 통해 관객의 감성을 자극하는 눈물, 영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 이어 비행중 사고사 한 강세기 역의 김태현의 감칠맛 나는 유머 연기는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 한지혁, 과연 박경원을 고이 보내주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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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스터의 투톱 주인공 장진영과 김주혁 ©코리아픽쳐스 |
영화 관람 전 예고편에서 사랑보다 꿈을 선택하게 해준 한지혁이 '과연 그녀의 든든한 정신적 후원자 였을까' 라는 의구심은 영화 중반, 달콤한 로맨스 이후 '결혼을 하자'고 매달리는 지혁의 모습에서 확인된다.
조선으로 날아가는 비행 경비 마련을 위한 조선인 후원회 실적도 좋지 않은데, 자신에게 매달리는 그의 존재가 버겁기만 하다. 경원에게 로맨스가 꿈보다 우선 순위가 되지 않기에 그녀는 사랑을 뒤로 하고 일만친선 비행이란 되돌릴 수 없는 길을 택한다.
지혁이란 인물은 친일파 아버지를 두고 제법 배경을 가진 남자로 경원의 비행학교에 기상장교로 입대해 경원이 위기일 때 마다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지만, 기자를 가장한 조선인 테러단 친구의 암살 사건은 더 이상 그가 경원의 후원자가 될 수 없게 한다.
'조선인'이란 이유로 혹독한 고문을 견디다가 경원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거짓 자백으로 군사 재판에서 처형되는 지혁의 모습 뒤로 울부짓는 경원의 눈가에 맺힌 눈물은 영화 속 멜로 라인의 정서를 극에 달하고 그의 유골과 함께 고국을 향한 비행 결심을 굳히게 한다.
"박경원이 비행 밖에 몰랐지, 언제 조국 때문에 고민했냐. 조선이 네게 해준 게 뭐가 있다구" - 영화 속 한지혁(김주혁 분)의 말
당초 장진영을 원톱으로 진행하려 했던 영화 홍보에서도 김주혁은 그녀에 뒤지지 않는 비중을 차지하며 '투톱' 영화로 해 장진영에게 힘을 실어 주며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의 상현, 영화 <..홍반장>의 홍반장, <광식이 동생 광태>의 광식을 이어가며 연기력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영화 <2009 로스트 메모리즈>에 출연해 국내 관객들에게 낯익은 나카무라 토오루도 '도쿠다 교관' 역으로 출연해 극 중 경원의 버팀목이 되어준다.
영화 <청연>은 박경원의 친일 논란이라는 이슈를 끌어내며 비행사가 되고픈 일제 강점기 여자의 꿈과 현실의 대립을 잘 연출하고 있다. 영화 <실미도><태극기 휘날리며><웰컴 투 동막골>에 이어 영화가 표현할 수 있는 문제의식이 극중 박경원과 주변인물의 갈등 상황이 극적으로 대비되며 허구라는 영화적 재미에 충실한 작품이다.
특히, 어떤 공동체 소속보다 개인의 자유와 생활을 중시하는 요즘 젊은 관객들이 '그녀의 꿈(성공)이 사랑이나 조국애보다 앞선 것'이거나 '영화는 영화 일 뿐'이라고 말하게 되지 않을까. 영화 사이트의 설문 결과처럼 박경원의 행적에 대한 평가는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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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스크린 데뷔에서 주연 배우를 뒷받치는 호연을 보인 한지민과 유머러스 한 캐릭터를 잘 소화한 김태현 ©코리아픽쳐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