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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라>진부함과 오만함으로 무장한 롤라
ludens 2009-01-07 오후 2:54:21 1301   [3]

Whatever Lola Wants, <롤라>의 원제에서 롤라 대신 내 이름을 집어넣어도 될까. 벌써부터 흐릿한 기억을 더듬어서 작년을 돌이켜보니, 천만에. 어릴 때 소원인 "대통령"이 줄고 줄어 졸고 졸아서 "입에 풀칠"이라는 그을음으로만 남으면서 꿈을 이룬다는 게,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게 만만치 않음을 여실히 느끼면서 살고 있다. 그러니 그래도 꿈을 놓치지 말고 살아야지 하면서도 영화 문구 혹은 광고 카피처럼 생경하다. 영화 <롤라>는 역시 그런 건 꿈(=픽션, 영화)이라는 걸 보여준다. 일종의 소격효과라고나 할까.

백인 여성이 이집트에서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거쳐 벨리댄스로 성공하고, 그 와중에 주변 인물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내용의 <롤라>는, 사실 드라마나 만화로도 충분히 익숙한 진부한 클리셰가 차고 넘친다. 허나 명랑소년 성공기는 익숙한 만큼 잘만 만들면 오밀조밀한 재미가 있다. 하지만 <롤라>는 배우들의 그 밝은 미소에도 불구하고 당최 좋은 인상을 받을 수가 없다. 

벨리댄스가 중동 전역에 걸쳐  추는 춤이긴 하지만, 중동 국가 중에서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것은 그나마 온건파에 대한 손 들어주기일까. 요즘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폭격에 대한 요즘 미국을 보면 이 영화가 편하게 보이지만은 않는데, 영화를 들여다 보면 자꾸만 그 혐의를 지울 수가 없다.

영화 말미에 보면 이집트에서 벨리댄스로 성공한 롤라는 "이 춤을 뉴욕에서 널리 알리고 싶어요!" 라고 외치고, 다음 장면에서 뉴욕 공연 포스터를 장식한 씬이 나온다. 이 역시 이라크, 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의 경제적, 정치적 이해득실을 제쳐두고는 "봐라. 우리가 이렇게 중동의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니?"라는 포용 정신을 강조한 듯이 포장한다.

게다가 이미 벨리댄스가 관능미가 넘치는 춤으로, 글로벌한 인기를 얻는 문화 코드라는 걸 생각해보면 어쭙잖게 새삼 이 춤을 알린다는 건방진(?) 발상 자체가 웃기는 일이다. 다시 말해 벨리댄스를 민속무용 정도로 비하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제작자의 눈에 벨리댄스가 그렇게 보인다 치고 이걸 이집트에서 우리나라로 배경을 옮기면 미국인이 한국에서 탈춤이나 판소리를 익혀서 널리 알린다는 식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몇 달 가지고 될 일도 아니지 않은가? 벨리댄스를 익히는 과정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릴수도 있지만 영화에서는 그다지 어려움이 없이 이집트 최고의 무대인 나일타워에서 이집트 최고의 벨리댄서로 거듭난다. (우리로 치자면 국악 한마당이다.) 이런 급성장을 이해시켜려고 하니 최고의 실력을 가졌음에도 이슬람의 가부장적인 편견에 묻힌 비운의 천재 이스마한에게 특훈을 받았다는 것 정도인데, 아무래도 개연성이 떨어진다.


롤라는 원래 춤을 배우기 위해서 이집트에 온 것이 아니라 뉴욕에서 3주 사귄 MBA 출신의 신세대 이집트 귀공자 잭을 따라 상의도 없이(?) 쫓아온 것이다. 그러다 둘 사이는 별 볼일 없이 끝나는데, 그 갈등의 원인이 가관이다. 잭은 미국물 먹은 신세대답게 미리 가문이 정해준 육촌 동생보다 사랑하는 롤라와의 결혼을 염두에 두지만, “앞으로 10년은 댄서의 꿈을 이루고 나서 애를 갖겠다”는 롤라의 사고방식까지는 이해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면 집에서 살림을 해야 한다는 식인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인권이나 여권 신장에 대한 논의 수준의 얘기가 결코 될 수 없는 상황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애를 낳고 살림을 하는 게 과연 억압인가? 적어도 롤라가 잭을 사랑한다면 중동 문화에 대한 이해를 떠나서 적어도 미래의 계획을 서로 미리 의논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 아닌가? 문화권을 떠나 개인적인 선택 사항 수준의 논의에서 얼마든지 해결을 볼 수 있는 전개임에도, 결론적으로 “내가 창녀인줄 알아?” 하면서 롤라는 잭에게 화를 낸다. 이는 역으로 자유의지를 가진 중동 여성이 창녀취급을 받는 현실에 대한 조롱인데, 이스마함이 바로 그렇다. 하지만 난 이 대목에서 롤라가 이집트의 뜨거운 태양 때문에 살짝 미친 게 아닌가 싶었다.

사랑하는 사이라는 게 한쪽의 일방적인 이해가 아니라는 상식을 둘 다 전혀 간과하고 있으니 사랑 구도 자체가 어설프고, 엔조이 관계 이상 이하가 아니다. 단지 롤라가 이집트에서 나일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가 백조로 거듭난다는 단계의 수순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영화는 이 부분을 개인 갈등이 아니라 여성의 삶을 두고 억누르는 이슬람 문화에 대한 조롱처럼 이 대목을 그린다.  이런 혐의는 롤라의 친한 친구인 유세프가 게이(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배려심 깊은 친구가 게이라는 허리우드 영화의 설정 지긋지긋하다. 어떤 점에서 이 역시도 게이에 대한 이미지 고착이자 폭력이라고 본다)라는 이유로 자국인 이집트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대목에서도 드러난다. 미국은 게이들에게 너그러운 나라라는 건 알겠는데, 유세프가 별 볼일 없는 바텐더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이 아랍인이라는 걸 숨기고 이태인인 흉내를 내는 건 어떻게 그리도 아무렇지 않게 잘 참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영화에 대한 이런 혐의는, 편견 때문에 창녀 취급을 받으면서 벨리댄스 계에서 쫓겨나 집에서 은둔 중인 이스마한과 나세르의 드러내지 못하는 사랑 구도에서도 드러난다. 결론적으로 롤라가 벨리댄스로 성공을 하고 자신의 스승이 벨리댄스계의 수치인 이스마한 임을 밝히자 객석에서는 야유대신 기립 박수로 호응을 하고, 이에 나세르가 용기를 내서 이스마한을 찾아가면서 해피엔딩이 된다. (초딩 수준의 진부함이여!) 이들은 심지어 40~50대 중년이다.

뭔 말이냐면  그 나이 되도록 자기 앞가림을 못하다가 이제 와서 그러는 게 참 거시기하다는 말이다. 여전히 세계의 중재자, 구세주가 되고픈 미국인들의 입맛에 딱 좋은 영화지만 짐작컨대, 아랍인들이 보기에는 창천1동대 예비군복을 입고 예비군(?)들과 싸우는 007 이상의 쇼크일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 영화의 미덕을 찾자면 단연 벨리댄스 장면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은퇴한 이스마한은 그렇다 쳐도 제대로된 이집트 무희의 벨리댄스를 보여주지는 않고, 싸구려 술집의 뚱뚱하거나, 못생겼거나, 서툰 무희들을 배치하여 롤라를 돋보이게 하는 식이다. 다시 말해  상대 구도 자체가 없다. 롤라의 실력(?)과 인기에 텃세를 부리는 술집 무희의 장면이 잠깐 등장하지만 다음 장면에서는 서로 참 정겹다. 그러다보니 롤라가 추는 춤이 예쁘고, 보기 좋긴 한데,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가 힘들다.

배우 로라 램지의 예쁜 얼굴, 잘빠진 몸매에 관능적인 의상과 춤이 어우러진 장면은 일품이지만 더티댄싱을 처음 봤을 때의 폭발력만큼은 아니었다. (시사회 장소인 드림시네마에서는 추억의 명화, 더티댄싱과 영웅본색2를 상영하고 있다.) 나름 미국식으로 변화를 줘서 뮤지컬 시카고를 본 따서 접목한 분장과 의상과 춤을 벨리댄스와 접목목시키는 장면은 속담처럼 ‘갓 쓰고 자전거 타는 격’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목은 비정규직 우체부인 롤라가 정규직 자리와 댄서를 놓고 고민하는 대목인데, 서두에서도 말했지만 이 영화는 분명 소격효과를 노리고 있다. 


(총 0명 참여)
prettyaid
잘읽었어요^^   
2009-07-07 10:25
ludens
아마도... 벨리댄스의 본고장이야 터키, 이집트를 비롯해 중동쪽이라고 하니 그렇다쳐도 미국 MBA 과정을 나온 호의적인 중동인이면서도 가부장적 관습을 벗지 못하는 한계라는 게 거슬렸던 것 같습니다.
세 분 모두 감사합니다.   
2009-01-13 14:55
traeumerin
너무 정치적으로 영화를 보셔서 다른 시각적인 미나 영화적 장치들은 놓치신듯...-_- 과속스캔들 같은 영환 뻔하고 미흡한 스토리에도 호평을 받고 질주하는데... 영화를 보는 관점은 뭐, 다양한거니까요........   
2009-01-11 19:25
ajaja84
영화를 너무 꼬아서 보신 건 아닐런지....이집트라는 배경을 벨리댄스의 본고장이라는 설정 때문이지 온건파의 손 들어주기라는 비약은 좀 심한 것 같아요.   
2009-01-11 12:34
okane100
글 잘 봤습니다.   
2009-01-07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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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라(2007, Whatever Lola W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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