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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감을 분실한 공포영화 유실물
jimmani 2006-07-27 오전 1:23:36 1098   [3]
 

북적거리는 사람들의 잔상이 사라진 공허한 지하철 플랫폼이 풍기는 포스는 생각보다 장난이 아니다. 모든 소리가 허공에 메아리치고 철로를 향해 고개를 내밀면 보이는 건 긴 목구멍처럼 시꺼멓게 어둠이 드리운 터널만 눈에 보인다. 거기다 바깥이 환히 보이는 지상도 아니고 사방이 꽉 막힌 지하니 그 공포감은 은근히 더 배가될 수 밖에. 누구나 한번쯤 겪어봤을 법한 꽤 소름끼치는 경험이다.

귀신, 악령 등 비현실적인 소재들이 많이 등장하는 공포영화는 그 특성상 현실과 거리가 멀 수 밖에 없는데, 그런만큼 소재나 설정이 현실과 밀접할 수록 관객이 느끼는 공포는 단순히 "나한텐 저런 일이 생길리 없다"는 안도감 내에서의 쾌감을 떠나 "나한테도 저런 일이 생길지도..."와 같은 불안감 안에서의 진심어린 공포가 된다. 영화 <유실물>은 이렇게 현실에서 꼭 한번쯤 두려움을 느껴볼 만한 섬찟한 경험을 모티브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아무도 없는 지하철, 그 속에서 줍게 되는 주인 모를 유실물. 상상이 어렵지 않으면서도 오싹해지는 설정 아닌가.

반에서 반장을 맡고 있지만 소극적인 성격인 여고생 나나(사와지리 에리카)는 어느날 어린 여동생 노리코의 친구 타카시를 만난다. 그런데 만나자마자 그애가 대뜸 한다는 말이 어떤 여자가 자기더러 "전철 패스를 주웠으니 죽게 될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나나와 노리코는 뭔소리냐며 그냥 웃어넘기지만 아니나다를까 다케시는 그 말을 하고 떠난 뒤 종적을 감춘다. 뒤이어 사라진 다케시를 찾아나선 노리코 또한 행방을 알 수 없게 된다. 한편, 나나와 같은 반인 카나에(와카츠키 치나츠)는 남자친구인 시게루로부터 팔찌를 선물받는데, 그 팔치는 시게루가 전철 안에서 주운 것. 그런데 어느날 시게루가 열차에 치어 숨지고, 카나에 역시 의문의 존재로부터 죽음의 위협을 느끼게 된다.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연이은 의문의 사건 앞에 직접 그 진실을 파헤쳐보기로 한 나나는 전철을 운전하다 철로에서 여인의 시체를 발견했다는 운전사 슌이치(오구리 슌)를 만나게 되고, 이들은 이 유실물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일단 이 영화는 시작이 꽤 흥미롭다. 여기저기 흩어진 물건을 주운 여러 사람들이 하나둘 실종되거나 끔찍한 사고를 당하고, 이들은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 각자의 가족에게 모습을 드러내고, 또 다른 재앙을 부른다. 이런 일련의 현상들은 하나같이 지하철에서 누군가 잃어버린 물건을 줍는다는 매우 단순한 행동에서 비롯된다. 누구나 잃어버린 물건을 줍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마련이고, 특히나 값어치가 나가는 물건일 수록 그걸 주인에게 돌려주기 보다는 자신이 간직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는 게 응당 사람이라면 갖게 되는 당연한 심리이기에, 이렇게 작은 행동이 일파만파 무서운 결과를 낳게 되는 건, 역시나 꽤 무섭게 다가온다. 앞으로 지하철에서 유실물을 발견하게 되면 쉽게 손을 댈 수 없을 것 같다는 그런 후유증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할까. 일단 영화 속 공포가 마냥 말도 안되는 건 아닌 꽤 그럴 듯한 설정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점에서 공감대는 어느 정도 형성할 만하다. <주온>처럼 귀신들린 특정 집에서만 참변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보이는 지극히 일상적인 지하철에서 참변이 일어난다는 것 또한 그럴듯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영화는 공포감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주운 물건을 통해 끊임없이 이곳저곳으로 뻗어나가는 인간 관계의 모습을 그리고자 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건을 주운 당사자가 피해를 입게 되면 그 피해가 단지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주변 가족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도 그렇고, 사건에 연루됐다는 공통점에서부터 오는 나나와 카나에의 남다른 친밀감 등 이 영화는 이런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더 단단해지고, 때론 새롭게 형성되는 인간 관계의 모습에 대해 탐구하고자 한 듯 싶다는 인상을 풍기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감독의 의도가 핀트가 어긋나도 많이 어긋났다는 것이다.

일단 장르를 공포로 하고자 했다면 영화는 무서워야 한다. 때때로 공포영화를 보고 예상치 못한 감동을 얻었다, 예상치 못하게 웃긴 부분도 많았다는 평가가 나오곤 하나, 이런 얘기들이 마냥 긍정적인 평가만은 아니다. 공포영화가 본연의 기능인 "무서움"보다 "감동"이나, "웃음"의 비중에 더 치우칠 경우, 그것은 공포영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뜻이 되기 때문에 공포영화로서의 가치 면에서는 낮게 평가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 또한, 공포영화로서의 기능에 충실하지 못했다.

영화는 처음에는 연이어 발생하는 의문의 사건들을 꽤 긴장감 있게, 때론 심령공포 특유의 홱홱 놀래키는 수법을 통해 꽤 임팩트 있게 보여주지만, 예상치 못하게 정말 깜짝 놀랄만한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당연히 예고편의 책임이 크다. 나는 그래도 설마했으나, 영화 속에서 왠만큼 충격적인 장면들 중 대다수가 예고편에 이미 빤히 나와 있었다는 것이 매우 아쉬웠다. 머리를 잔뜩 풀어헤친 채 스스스(어떻게 떠오르는 의성의태어가 이런 거 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움직이는 귀신의 몽타주 또한 그동안 숱한 심령공포물에서 보아온 모습과 비슷해 식상한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예고편에서 다 보여줘도 될 만큼 영화 전체의 충격 묘사 수위도 15세 관람가를 받을 만큼 잔혹하지 않았다는 점도 살짝 아쉬웠다. 그러나 이 정도는 애교로 넘어가 줄 수 있을 것이다.

정작 영화는 중후반부 나나와 슌이치가 사건의 실체에 한 발짝 씩 근접해 가면서부터 공포감은 조금씩 사라진다는 것이다. 영화가 처음에 현실적인 지하철 공간에서 생기는 공포스런 현상을 꽤 흡인력 있게 보여준 것과는 대조적으로, 갈수록 영화는 사건 뒤에 숨은 사연, 나나와 카나에의 교감을 필요이상으로 보여주며 공포영화로서의 리듬을 깬다. 특히나 나나와 카나에의 우정을 표현한 부분은, 물론 어떻게 보면 충분히 감동적인 부분이 될 수 있었겠지만, 한창 죽음의 위기 앞에서 아비규환에 있을 때 덜컥 등장하니 분위기를 깨는 코믹 요소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공포영화와 조합이 가장 어색한 장르가 이런 휴먼드라마다. 음악까지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면서 공포분위기 잔뜩 조성하던 영화가 순식간에 감동주려는 모드로 넘어갔다가 다시 공포모드로 넘어오니, 꾸준히 물고 늘어지는 공포를 기대했던 관객의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고 실망스러울 수 밖에 없다. 뭔가 큰 임팩트를 주고 끝날 줄 알았던 엔딩 신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사실 이건 공포영화라기보다는 휴먼드라마가 목적이었다고 고백하는 듯 허무하고 잔잔한 흐름으로 끝맺어 버린다. 간간이 등장하는 너무 감정적인 면에 치중한 대사들도 관객들을 당혹스럽게 하면서 때론 헛웃음도 유발한다. 물론 공포영화라는 틀 안에 이런 메시지도 어느 정도 심어놓는 것은 결코 반대하지 않으나, 공포영화 본연으로서의 기능까지 소홀히 한 채 오로지 이런 메시지 전달에만 치중했다는 건 공포영화로서 쉽게 용서받을 수 있는 죄목은 되지 못한다. 관객들은 적어도 공포영화 앞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서운 자극을 받기만을 기대한다.

영화 보는 내내 객석에서는 예상치 못한 장면과 대사, 흐름을 내놓는 영화때문에 웃음과 탄식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렸다. 물론 공포영화라는 틀 안에서 예측불허의 전개를 보이는 건 탁월한 미덕이 될 수 있겠지만, 공포영화의 틀을 벗어나면서까지 이렇게 럭비공같은 전개를 보여주는 건 관객 입장에서 심히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다. 물론 공포영화라는 장르적 한계를 넘어 감동과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감독의 의도를 인정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공포영화의 첫번째 의무는 관객을 무섭게 하는 것이라는 걸 깜빡한 것만 같아 아쉬움이 크다. 요즘은 공포영화들이 너무 "공포" 이외의 것까지 많이 따지려 드는 듯해 안타깝다. 어떤 머리 아픈 스토리나 예측불허의 반전이 없더라도 좋다. 관객들을 끝까지 끈질기게 공포로 몰아넣는 공포영화라면 관객의 입장에선 얼마든지 환영이다. 그 공포의 여운이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를 보고 나서, 바로 맞닥뜨린 지하철 플랫폼에서 여전히 여운이 남아 있는 무서운 분위기를 느끼며 으시시한 기분이 들어야 한다. 그런데 이 영화의 문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지하철에서 물건 놓고 다니는 것도 정신없는 일이지만 감독님, 공포영화에서 공포감을 놓치시면 어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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